< 39. 사냥을 위한 준비 (1) >
"시작해 볼까··· ."
그는 우선 미리 만들어둔 포션을 꺼내 마셨다. 집중력과 마나감응력, 마력 등 여러 마나관련 능력을 짧은 시간동안 향상시켜주는 포션이다.
그 뒤 오크 폼을 취하고, 미스릴에 단조를 사용한다. 그러면 우우우웅- 짧은 공명음과 함께 미스릴이 흐물흐물한 푸른액체로 녹아내린다. 그렇게 생겨난 미스릴과 마나의 혼합물을 고블린 폼으로 심혈을 다해 세공한다. 또한 방어구로서의 효용을 책임지는 여러 성질을 덧붙이고, 레비아탄의 몸집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니 신축성도 추가한다.
언뜻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무릇 장인에겐 '장인정신'이라는 필사(必死)의 마음가짐이 있는 법. 김세진은 한땀 한땀에 정신을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다.
뚝-
약 2시간. 턱 끝에 고인 땀이 방울져 떨어졌을 때, 단조가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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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방어구가 완성되었습니다.]
[A등급 피해경감]
물리적인 공격에 피격당했을 시 위력의 50%가량을 경감합니다.
[A등급 마법상쇄]
마법에 피격당했을 시 위력의 40%가량을 경감합니다.
[S등급 신축성]
아무리 크기가 커져도 웬만하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한 몸 과도 같음.
[B+등급 마나보관]
3000만큼의 마나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수치의 기준은 일반 성인의 평균 마나수치로, 일반 성인의 평균 수치는 10입니다.
[C등급 공간왜곡]
마나를 소모하여 공간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최대 거리는 1km.
[F등급 시간왜곡]
극히 많은 량의 마나를 소모하여 시간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최대 시간은 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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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질이 부가된 레비아탄 전용 갑옷. 갑옷이라기 보다는 웬 천쪼가리처럼 생겼지만, 여기에 부가된 성질 중 몇몇은 '사소한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대단할 터.
"와 드디어 시간왜곡······ 으아아 어지러죽겠네···“
완성품에 흡족한 그는 바닥에 철푸덕 드러누웠다. 포션의 효능도 끝난 것 같고, 집중의 후유증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렇게 약 10분정도를 멍때리고 있던 김세진은 이내 방어구 착용을 위해 레비아탄으로 변했다.
2.5m 남짓한 몸체에 타올같은 은색 방어구를 두른다. 타올(?)은 몸에 닿자마자 살가죽처럼 비늘에 딱 달라붙어 레비아탄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전체적인 빛깔이 청록색에서 찬연한 은색으로 변했다.
원래 색과는 다른 느낌으로 폼이 나는데, 일단 더 강해진 것 같기는 하다. 아마 세간이 자신을 발견하면 청룡이 진화했다며 난리 굿판을 벌이지 않을까.
'···여기에 망토 하나 더 붙일까.‘
헌데 너무 애기 장난감처럼 될 것 같아서 그만뒀다. 안 그래도 요즘 청룡 인형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데.
"크응··· 코옹··· 그르르릉! 뀨웅···"
거울을 들여다보며 여러 근엄하거나 뾰루퉁하거나 귀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와중에, 김세진은 문득 한달 전에 심부름을 시켰던 일이 떠올라 조한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
조한성은 대기음이 한번 채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네 길드장 님.
"아 한성 씨, 제가 전에 말했던 거 있죠?“
-······아, 아하. 그거 말입니까?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지요.
묻기 전까지는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것 같던데. 김세진은 살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뭐. 그래서 경과를 좀 물으려고요.“
-아, 근데 그것이··· 바다괴수 마나석이 희귀하고 또 값비싼 터라···
바다괴수의 마나석. 즉 김세진은 레비아탄의 꼬붕을 구하고자 심부름을 시켰다.
"못 찾았습니까?"
-아뇨······ 여태 너무 비싸서 팔리지 않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효용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서, 수집가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요.
순간 김세진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안 팔릴 정도로 비싼 몬스터라니, 휘몰아치는흥분에 몸이 저릿하다.
"뭐, 뭔데요? 몬스터 이름이?“
-그······
조한성은 약간 머뭇거렸다. 그에게는 TM사의 CEO로서 회사의 재정을 안전하게 관리해야는 의무가 있다. 허나 이 마나석은······
"빨리 말해요.“
-아 그······ '크라켄' 입니다.
'크라켄'. 조금 폼 안나게 말하면 거대한 오징어, 그러나 이 웅대한 몬스터는 엄연히 신화의 한 자락을 차지하는 괴수다.
"크, 크라켄?!"
그 영롱하게 빛나는 듯한 이름 석자를 듣는 순간 김세진의 심장이 두근- 뛰었다. 조한성의 심장도 마찬가지로 철렁했다. 혹시라도 김세진이 산다고 할까봐.
-하, 하지만! 측정된 평가금액만 700억입니다! 게다가 기사단에서는 그보다 100억 높은 금액을 원하고 있고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입니다.
"와. 비싸네. 근데 크라켄은 어떻게 잡았대요? 신변은?“
-지중해 쪽에 상주하던 '아마리'라는 크라켄입니다. 로마 기사단이 기사 세 명을 잃으면서 처단한 놈이라, 흥정은 씨알도 안 먹힐겁니다.
조한성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크라켄 고유의 특수마나가 빵빵하게 들어있는 마나석이라 하더라도, 경제적 효용은 400억의 값어치도 못한다. 하나에 800억은 너무 비싼······
"사오세요.“
쿠구구궁? CEO로서 조한성의 가슴이 하염없이 무너져내렸다. 800억이면 1년 동안의 인건비···
"대신 기사단이라니까 물물교환으로 하면 되겠네. 무기랑 아티펙트 원하는 성능으로 4개까지 맞춰준다고 하세요. 너무 터무니없는 건 말고, 리미트 정해서.“
-······아.
그러나 조한성은 잊고 있었다. 김세진은 황금알을 낳는, 아니 미스릴 알을 낳는 한국 토종 오골계라는 것을···
적어도 기사단 혹은 마탑과의 협상에서 실패할 염려는, 단언컨데 없다.
-예. 알겠습니다. 아마 그럼 당장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네.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
세진은 전화를 끊고서 휘파람을 휘휘 불었다.
대충 네스만한 놈이면 만족하려 했는데, 그보다 더한 거물이 걸려들었네.
이제 크라켄까지 더하면 심장에 담아둘 수 있는 남은 몬스터 수는 1마리. 그러나 남은 한자리는 무조건 남겨둘 예정이다. 그때 그 브레스를 뿜어대던 뱁새를 담아두기 위해.
*
김세진이 즐거워하던 그 때, 김유린은 정 반대의 우울함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밤은 깊어가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본래 기사는 잠이 적은 족속이지만, 이틀 새 한숨도 자지 못한 건 조금 심각하다.
게다가 매사에 힘이 없고, 혼자 있기 싫어졌다. 혼자 있기 싫은데 집 밖을 나가는건 더 싫다. 무슨 이야기냐면, 누군가와 단 둘이서 함께 있고 싶다.
갑자기 이게 웬 빌어먹을 우울증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니, 솔직히 모르지도 않다. 이유는 충분히 알고 있다.
동료기사들에게는 기생마나를 떼어낸 수술 후유증이라고 어찌어찌 둘러대었지만······.
"···.“
보고싶다. 이곳에 없는 향긋한 체취가, 기억에 남아 코끝에 아른거린다.
그 오크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내 생각을 하지 않을거란 건 당연히 안다. 또 치고박고 싸우거나, 아니면 고요히 무기나 방어구를 다듬고 있겠지.
김세진, 문득 그가 생각났다. 그는 어떻게 오크와 친해졌을까. 어떻게 했길래 그 오크에게 '소중한 인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고, 부럽고, 질투도 난다.
링딩동-
그때 핸드폰이 울었다. 그러나 만사가 귀찮아 전화가 오는 채로 가만히 놔두었다.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아니 기사단에 입단하고 13년동안 난생 처음으로, 휴가를쓰고 싶다는 생각했다.
* * *
오늘 오전. 더 몬스터는 이유진이 단장으로있는 진 무도유파와 파트너십을 체결했음을 공표하였다. 내용은 심플했다. 진세한의 유지를 잇는 단장 이유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존중하기에, 후원은 물론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근처 부지까지 매입하여 도장과 협회의 규모를 빠르게 늘려가겠다고.
그 짧지만 강렬한 소식은 더 몬스터가 3개월전 공표한 '신입 단원 선발'과 맞물려 여러 루머들을 재생산해냈다.
[진 무도유파 협회장 이유진, '더 몬스터' 가입하나?]
[더 몬스터 신입단원에 관해 급물살을 타는 루머와, 세간의 관심을 받는 후보들.]
언론에서는 이미 후보까지 메기고 난리가 났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단 한 번도 고려해본적 없는 기사들을 물망에 올리면서.
심지어 몇몇 언론사는 그렇게 후보에 올려진 기사들의 인터뷰까지 땄다.
[유력후보, 상급기사 김원종 단독 인터뷰]
-요즈음 유력후보라고,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세계적인 배팅사이트에서도 가장 낮은 배당률을 받고 계시는데···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하하.. 아닙니다 아니예요. 아직 알려진 사항도 없고, 저는 더 몬스터의 단원이 될 만한 실력과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입단 제의가 오더라도 거절하겠다는 뜻인가요?
-어허허.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제의가 온다면 더 몬스터가 제 가치를 높게 사준다는 뜻인데, 그에 걸맞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욱 많은 노력을 할 뿐이지요.
대백기사단의 상급기사 김원종의 인터뷰였다. 이렇듯 쿨하고 겸손하게 인터뷰한 남자는, 더 몬스터 직원에게 뇌물을 들이밀다가 걸렸다.
그렇게 한국 안팎이 더 몬스터와 관련된 소식으로 시끄러울 때.
'대현생명'의 부사장실에는 때아닌 고성과 욕설이 오고갔다.
"···이런 씨발! 야이 개새꺄 그게 말이 돼!“
술에 진탕 취해 음란하게 노느라 오늘의 소식을 늦게 접한 김종혁, 그는 욕설을 내지르며 책상을 박살냈다.
"죄송합니다. 정말 갑자기 벌어진 상황인지라······"
"아니. 아니. 왜? 그새끼들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게, 김세진이 전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100억을 입금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 시발새끼가 하다하다 별 짓을 다하는구나. 지가 무슨 씨발 자선사업가야? 천한놈이 운좋게 좋은 특성 얻었다고 핏줄까지 달라진 줄 착각을··· 아오!“
김종혁은 기업과 기사단을 주도하여 이유진을 압박한 주동자였다.
여러 기업과 정부까지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항이었으니, 곧. 정말 곧 있으면 될 일이었다.
한국에서 잉태되고 한국에서 자란 영웅 진세한이 독자적으로 창조한 '무예'가 전세계에 아무런 대가없이 퍼지는 것은, 나라적 차원에서도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
"어, 어떻게 할까요···?"
"아니 씨발 이제와서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이 개같은 새끼야! 니들이 곧 될거라고 낙관적인 염병 떨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
김종혁이 책상 위에 들린 재떨이를 바닥에 내다꽂았다. 그렇게 때리고 부술수록 응어리진 분노는 더욱 격렬하게 치솟았다.
"그 씨발새끼를 내가··· 죽이고싶은데 죽일수도 없고··· 아오 씨발 진짜!"
김세진, 그 개새끼 때문에 유치장에도 갇히는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말을 따라 화를 삭이며 넘어갔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빌어먹을 놈의 대가리를 잘라버리기에는 이미 너무 커져버렸으니까.
"꺼져. 꺼져, 이 개씨발. 꺼져 당장!“
"죄, 죄송합니다."
김종혁은 발길질을 하며 비서를 쫓아냈다. 그럼에도 분을 못 삼킨 그는 사무실을 모조리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갈한 부사장실이 쓰레기장이 되고 나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아.“
그러다 돌연 생각이 났다. 협상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던, 음험하게 생긴 마법사가.
뱀파이어 특유의 불쾌한 기운 때문에 쫓아내긴 했지만···
그는 이내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놓인 핏빛 수정구를 툭툭 건드렸다.
* * *
유세정이 기사단으로 출근한, 자유의 오후. 조한성이 마나석을 품에 안은 채 김세진을 찾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무슨 하루만에 도착해요?“
김세진은 마나석이 담긴걸로 추정되는 보합을 받아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어제, 아니 고작 12시간 전에 부탁한 걸로 기억하는데.
"아, 연락주셨을 당시 로마 기사단이 막 업무를 개시한 시점이라서 빨랐습니다. 저희가 조건을 말하니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물건부터 보내고나서 연락을 하더라고요. '이미 보냈으니 거래 취소 불가'라면서.“
"하하, 다행이네요.“
김세진이 보합을 천천히 열자, 자그마한 틈새에서부터 새까만 빛이 폭포수처럼 터져나왔다.
"오우. 오우.“
그는 그 감춰지지 않는 영험함에 연신 감탄하며 보합을 완전히 개봉했다.
보합 안에는 과연, 역시.
크라켄 답게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마나석이 성스러운 비단에 싸인 채, 김세진이라는 주인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 39. 사냥을 위한 준비 (1)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