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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몬스터-130화 (130/174)

< 37. 오크와 여기사 (4) >

오크가 반응하기도 전에 뿜어져 나온 브레스는, 그러나 황금빛 일섬에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과연 마나 따위가 없어도 찬란하게 빛나는 김유린의 궁니르였다.

“이게 무슨···.”

김유린은 당황하며 커다란 새를 바라보았다.

삐약삐약-! 자기 공격이 막힌 것이 분한지, 새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포악하게 부르짖고 있었다.

오크가 메이스를 움켜쥐고 김유린을 뒤로 물렸다.

“위험하다.”

삐약삐약- 새가 다시 병아리처럼 짖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오크는 김유린을 힐끗 바라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그녀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무튼 위험하다.”

“···압니다. 방금 화염을 방사했잖습니까. 저도 봤습니다.”

“알면 긴장하라고.”

오크가 늑대의 동공을 발현했다. 그러나 본질을 관통하는 눈도 저 새의 약점을 포착해내지는 못하였다. 즉, 저 흉포한 새에게는 약점이 없다. 물론 약점이 없다고 해서 다 강하다는 건 아니고, 어딜 가격하든 쉽게 바스라질 것같이 생기기는 했지만.

“근데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어떻게 길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

귀여운 외면에 매몰된 김유린이었으나, 일견 일리 있는 말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어마어마한 우군이 될 테니.

오크는 잠시 고민했다.

그 순간 다시금 쀄에에엑-! 하는 굉음과 열화의 브레스가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오크가 나서서 막았다. 메이스에 부가된 [A등급 파괴]성질은 마법도 뭉갤 수 있으므로, 브레스는 메이스와 맞닥뜨리는 순간 먼지로 바스라졌다. 동시에 사육의 의지도 연기처럼 증발했다.

“저런 성격 드러운, 흉폭한 놈을 길들인다고?”

“···.”

김유린은 말 없이 뒷목을 긁적였다.

“차라리 지금 죽여야 된다.”

막 태어난 새끼라 그런지, 강하긴 하지만 아직 이쪽을 상대하기에는 이르다. 허나새끼일때도 이정도 파괴력이라면 언젠가 커다란 위협이 되겠지.

“최선이라면, 어쩔 수 없죠.”

동의한 김유린은 낯빛을 어둡게 굳히고서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저 뱁새도 그 살의를 눈치챈 것인지, 입을 크게 벌렸다. 또 어떤 브레스를 뿜어낼까. 오크와 김유린이 긴장한 순간.

꼬르륵-

상황의 심각성을 깨트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오크는 무의식적으로 김유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솔직하게 말해라.”

“지, 진짜입니다!”

오크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이번에는 뱁새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콘락을 바라보았다. 허나 소환된 존재가 굶주릴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저 아이, 배가 고픈가 봅니다.”

“···.”

“먹거리로 유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유린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허나의 뱁새의 배속에 마나가 위협적으로 뭉치는 것을, 오크는 눈치챘다.

“아니. 물러서!”

오크는 콘락에게 김유린을 맡기고 뱁새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놈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쏜살같이 하늘로 도망쳤다.

그렇게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윙윙 배회하던 놈이 별안간 입을 크게 벌렸다.

오크는 재빨리 놈에게 메이스를 투척했다. 허나 그보다 먼저 놈의 작은 부리에서 거대한 바람이 태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니, 이건 바람이 ‘흘러나온’것이 아니었다. 놈은 저 작디작은 부리로 사방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 브레스에 비해서는 별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단지 오크에게만 위협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풀썩-

갑자기 김유린이 쓰러졌다. 오크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놈의 입으로 흡입되는 바람을 타고, 김유린의 마나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마나는 처음에는 연한 푸른색이었지만, 점차 색이 진해지더니··· 이내 시뻘건 피의 색까지 드문드문 새어 나왔다.

저대로 두면 죽는다. 오크는 재빨리 메이스를 투척했으나, 빌어먹을 뱁새는 이리저리 몸을 나풀거리며 메이스를 가볍게 회피했다.

결국 그는 마나단조를 활용했다. 대기에 함유된 마나를 원격으로 단조하여, 뱁새의 몸통 아래로 창을 쏘아낸다.

콰직-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창살까지 피할 수는 없었는지, 놈은 날개 하나가 부러지고 나서야 흡수를 멈추고 황급히 천장 너머로 날아 도망갔다.

놈을 쫓아갈 틈은 없었다. 오크의 본능은 당장 벽을 타고서라도 저 빌어먹을 면상을 짓이기라 말하고 있지만, 보살펴야 할 사람이 있어 본능을 억제하는 포션을 덜덜떨며 복용했다.

그제서야 이성을 되찾은 오크는 김유린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마나에 피가 묻어나올 정도라면, 문자 그대로 죽기 직전까지 흡수되었다는 뜻. 실제로 그녀의 얼굴은 전에 비해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어이!”

오크가 그녀를 흔들며 소리쳤다.

혼절했던 그녀는 그 우레와도 같은 포효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

“괜찮냐!”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김유린은 오크이 다급한 얼굴을 보았다.

싫어서 쫓아냈다면서 뭐가 그렇게 급한 건지··· 허나 더 이상 생각을 할 여유가 그녀에겐 없었다.

그렇게 고요히 눈을 감은 그녀의 입 속으로 무엇인가가 쏙 들어왔다.

딱딱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이상한 물체. 아무 맛도 없고, 아무 향도 없었다. 그러나 몸이 먼저 반응해서 식도 너머로 삼켰다. 동시에 기묘한 활력이 몸에 감돌았으나, 그녀의 기억은 그것을 끝으로 어둠속에 잠겼다.

*

응급처치가 주효했다. 마나석을 만들어서 먹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대로 절명했을지도 모르겠지.

그만큼 치명상을 입은 그녀였지만 워낙 몸이 건강한 탓에 늦지 않게 눈을 뜰 수 있었다.

상당히 많은 량의 마나를 흡수당했기 때문에 무척 수척했으나,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다행이었다. 오크의 본성은 병약한 존재를 싫어한다. 약은 이미 다 떨어졌으니 건강하고 탱탱한 것보다는 이게 더 낫지.

“아직도 마나는 움직이질 않는건가?”

“···네. 아쉽게도······.”

김유린의 마나를 싸그리 갈취한 이름모를 새는 이미 달아났고, 구조대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머니에 모아 놓은 식량이 꽤나 많다는 것 뿐.

“...어디 불편한 점은 없나?”

“괜찮습니다··· 아직은. 헌데 기생마나일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습니다. 기사로서 예상은 했어야 했는데···”

기생마나. 보통 몇몇 특수한 몬스터들은 신체구조는 물론 체내에 흐르는 마나도 인간과 다르다. 그리고 이 기생마나는 몬스터 고유의 마나 중에도 아주 특이하고 까다로운 마나.

마나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생명체의 몸 속으로 들어가, 마나의 순환을 방해하여 강제로 쌓이게 만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마나의 본체가 나타나, 기생 마나를 통해 쌓여진 마나를 흡수한다.

그런 점에서 방금의 뱁새는 꽤나 대단한 놈이었다. 무려 기생한 대상이 무려 ‘김유린’이었고, 고작 20초 남짓한 시간에 그녀를 죽음까지 몰고갔으니까.

“······덕분에 살았습니다 오크 씨,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필요할 때 불러라.”

피식 웃은 오크는 바깥으로 나가려했다.

“···저기.”

오크를 붙잡은 그녀는 이불 위로 얼굴만을 빼꼼 내뺀 채 귀엽게 덧붙였다.

“배가 조금··· 고픕니다.”

“···기다려라.”

오크는 금세 죽을 만들어서 가져다 주었다.

“···손이 잘 움직이질 않습니다.”

직접 먹여다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만족한 김유린은 고요히 잠에 들었다.

* * *

그 이후로 오크는 흡사 집사, 혹은 하인이 되었다.

배고플 때 죽쒀서 주고, 쇠약한 몸으로 운동하겠다고 나대는 그녀를 다시 들여보내고, 심심할때 얘기 들어주고, 심지어 잠이 안 온다고 할 때 재워주기까지······

그나마 나은 점은 그녀가 밖으로 잘 나오질 않아, 쉬고있을 때는 인간 김세진으로숨을 고를 수 있다는 것 뿐.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김유린에게 낯설고도 신선한, 무척 기분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되었다. 자신이 아주 소중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소박한 행복감이었다. 그녀는 부하기사들을 보살펴본 적은 많았어도, 이렇듯 일방적으로 보살핌을 받은 적은 없었으니까.

어둠 속에 갇혀 있음에도, 기생마나가 등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에도, 하루하루가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래도 사람인지라 잠에 들기 전에는 우울함과 두려움이 새록새록 솟았으나, 침소까지 찾아와준 오크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히려 이 전보다 미소가 잦아졌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아니 오크가 맹목적으로 의지의 대상이 되어주며, 약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나는 수술을 하지 않는 이상 돌아오지 않을테지만, 그녀는 그래도 혈색은 되찾을 수 있었다.

“곧 구조대가 올 것 같다.”

오크가 콘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늑대의 동공으로 저 위쪽을 샅샅들이 살펴서 알아낸 사실, 이미 많은 기사와 구조대원들이 구조를 위한 제반공사를 끝마쳤다.

“···그렇습니까?”

허나 김유린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뭔가 오묘한 기색이었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그녀가 우쭈쭈- 혀를 찼다. 콘락은 오크의 손에서 벗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오크가 그런 콘락을 어이없다는 듯이 째려보자 유린은 슬쩍 혓바닥을 내다보였다. 메롱.

“···올라가면, 이제 다시 못 만나겠죠?”

말 없이 콘락의 털만 쓰다듬던 김유린이 조심스레 스쳐가듯 물었다.

오크는 차갑게 대답했다.

“물론.”

“···.”

그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콘락의 털에 얼굴을 파묻었다.

갑자기 또 마음이 복잡해졌다.

몬스터가 인간을 만나지 않는 것, 어찌보면 당연하다. 아니 지극히 당연하다. 근데 자꾸 한 구석이 아려오는 것은 왜······.

김유린은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자신과 오크에 대한 복잡한 상념이 가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날을 지새웠다.

*

다음 날. 김유린은 시끄러운 소리와 희미하게 내리쬐는 조명에 눈을 떴다. 저 위쪽에서 여러 말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구조대가 왔구나. 그녀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목이 건조하고 몸 전체가 결렸다. 구조되는 날인데, 전혀 상쾌하지 않았다.오히려 섭섭하고 쓸쓸했다.

-아래에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 오크! 거 위에 누가 내 검 좀 던져줘!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사단이 날것 같은 상황이었기에, 김유린은 애써 바깥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돌침대에 걸터앉은 오크가 보였다. 그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일어났나?”

“···.”

김유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솔직하게, 그와 헤어지기 싫다.

누군가와 줄곧 함께 있고 싶은 기분, 그런 행복하면서 동시에 괴로운 감정을 오크에게 느낄 줄은 몰랐지만··· 그러나 사실이다.

이 어두운 곳에 갇힌 시간은 그만큼 길었고, 오크의 정성어린 보살핌은 아픈 김유린의 마음을 양껏 뒤흔들었다.

“나는 이제부터 말을 하지 않겠다. 그러니 네가 알아서 말해라.

“···당신은 남겨두고 갈겁니다.”

“···뭐?”

“당신은 몬스터니까요.”

오크가 어이없어하며 유린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그 날 선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러다 갑자기 섭섭해졌다. 왜 이렇게 냉정한지, 조금은 살갑게 대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치솟았다.

“저한테는, 어차피 안 만나줄 거라면, 당신이 여기에 있든 밖에 있든 상관이 없단말입니다···.”

그녀는 울먹이면서도, 그러나 결코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너 혼자 올라가라.”

“아 진짜···.”

마지막 방법까지도 단호한 오크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검을 든 기사들이 마법 도르래 위에서 소리쳤다.

“김유린 기사님! 맞습니까!”

“···네. 맞아요.”

머뭇거리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물러서십시오! 오크와 늑대는 저희가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김유린은 오크를 보고, 콘락을 보고, 다시 시선을 위로 옮겼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고 촉촉하게 글썽이는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이 오크는 ‘영웅오크’거든요.”

< 37. 오크와 여기사 (4)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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