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오크와 여기사 (2) >
오크를 태운 늑대가 광분한 눈을 부라리며 스완에게로 치달았다. 김유린은 차마 놀랄 틈도 없었다. 아무리 오크라도 위험할 것 같은데, 생각을 하는 순간에 이미 다리가 그에게로 움직이고 있었다.
콱!
오크가 투척한 메이스는 스완의 주둥이에 큰 상처를 새기고서 그의 손아귀로 마치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신비한 광경이었다.
-쁩!
주둥이를 가격당한 스완은 비명을 지르는 것은 멈췄지만 몸 전체가 붉게 달아올랐다. 성장, 혹은 진화의 위험한 징조였다. 그러나 전사와 늑대는 그런 걸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타앗!
늑대가 도약했다. 그렇게 오크는 스완의 코앞에 다다랐다. 마나로 넘실거리는 메이스가 놈의 목전을 훑었다. 거대한 파격음이 울리고, 사방으로 충격파가 일렁였다. 허나 백조는 그 피학으로 인해 오히려 한 단계 더 진화를 거듭한 것 같았다스으으으······
붉어진 몸이 점점 쪼그라들며 고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열기를 머금은 불투명한 흰색 연기가 하늘을 가리고, 나무를 녹이며, 대지를 달군다. 김유린의 마나강기를 흔들리게 할 정도의 열화(烈火)였다.
그녀는 뒤로 돌아서서 크게 소리쳤다.
“도망가!”
외침이 산세 속에서 비명처럼 찢어졌다. 머뭇거리던 기사들은 그제서야 뒤로 물러섰다. 김유린이 침을 꿀꺽 삼켰다. 버텨낼 수 있을까, 내가 아니라 저 오크가······
그러나 고민은 짧았다.
그녀는 오크에게로 달려갔다. 이것은 가슴속에 맺힌 잡다한 감정 때문이 아니다. 머리속에 응어리진 당신에의 호기심과 의심 때문이다··· 라고 합리화를 하면서.
달려간 그녀가 오크, 김세진의 손을 붙잡았을 때.
오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오크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있던 늑대가 짖었다. 동시에, 스완의 몸에서 거대한 폭발이 터졌다.
콰아아앙······.
세상을 짓뭉개는 굉연한 폭발, 그리고 버섯 모양의 뭉게구름이 일었다.
오크는 폭발이 해일처럼 덮쳐오는 그 찰나에, 김유린을 껴안고서 레비아탄의 비늘을 활성화했다. 이 미친 여자가 왜 사지로 걸어들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구해야 했기에. 오크든 김세진이든, 그녀가 죽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지상에서 치솟은 폭발이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옮겨갔다. 산세를 뒤흔들었던 난리 뒤에는 짙은 고요가 들어섰다. 그러나 두 사람이 디뎠던 대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폭발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화산의 분화구처럼 끝도 모르게 움푹 패여 있었다.
살랑살랑- 희미한 가루가 낙진처럼 가라앉았다. 그 속에는 백조의 뻣뻣한 털이 섞여 있었다.
* * * * *
침착한 어둠 속에서 오크는 눈을 떴다. 오크의 분노와 본능에 잠식되었던 머리가 이제서야 시원하게 냉각되는 것 같았다.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졌다.
바로 눈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보였다. 편안히 감긴 눈과 반듯한 콧날, 그리고 피에 젖은 입술. 오크는 투박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쓸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으음···.”
그러자 김유린이 반응했다. 오크가 흠칫 놀랐다. 그는 우선 서로 껴안고 있는 것 같은 이 모호한 자세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녀가 제 팔을 베고있었다. 그냥 확 빼 버릴까. 궁리하던 오크는 그냥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나 예상치 못한 점이라면, 오크는 고작 한숨조차도 인간과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
오크의 잇새에서부터 불어닥친 거센 바람이 그녀의 눈가에 닿았다.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녀는 결국 잠에서 깨어났다.
“···.”
“···.”
둘은 눈을 끔뻑이며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김유린에게는 이 모든 상황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웠다.
아닌 게 아니라, 갑자기 오크가 나타나고, 그를 쫓아가다가 폭발에 휘말리고······그가 자신을 껴안는 기억 뒤, 망막을 가득 채우는 오크의 모습까지. 그녀가 체감한 시간은 고작 '1분' 에 불과하였으니.
“···일어나지.”
그렇게 얼마동안을 서로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을까. 오크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간질였다.
“아, 예. 예···.”
김유린이 퍼뜩 몸을 일으켰다. 오크도 따라 일어났다.
“여, 여긴 어딜까요?”
오크를 힐끗 곁눈질 한 유린이 괜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모른다. 놈의 폭발때문에 아득한 지하로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크겠지.”
“···그렇겠네요.”
김유린은 왠지 모를 데자뷰를 느꼈다. 과거에도 분명 이런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에는 사람이 좀 많았지만.
“우선 그때처럼 동굴은 아니다.”
오크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스며드는 빛은 없었지만, 천장은 까마득히 높았다.
“아, 그러면.”
김유린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나 폭발에 휘말린 전자기기가 성 할리는 없었다.
“안되네···.”
그럼 되겠냐. 오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별한 마나의 기운도 없고, 암반수가 쫄쫄 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냥 조난인가?’
결계에 휘말렸던 그때와는 다르다. 그저 평범히 폭발에 휘말려서, 지반 아래로 가라앉은 것 뿐···
"으으. 으으!"
“···?”
그러나 별안간 김유린이 해우소에서 일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처럼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꽉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두 주먹은 부서져라 쥐어졌다. 왠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저건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같은···
“···마나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그러길 10분.
김유린이 나라 잃은 얼굴로, 울먹이면서 오크를 바라보았다.
* * *
아마 꽤나 낮은 지하라고 추정되는 어두운 곳,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며 훈훈한 온기를 내뿜는다. 두 사람은 그 모닥불의 온기를 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만약 조난이면 늦지 않아 구조대가 찾아 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아무래도 스완의 능력인 것 같습니다.”
모닥불을 관찰하던 김유린이 문득 입을 열었다.
“폭발 때문인지 등에 상처가 생겼는데, 아마 그 속으로 놈의 마나가 흘러 들어온 것 같아요.”
“···.”
오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크를 힐끗 곁눈질하고서 말했다.
“일주일이면 나을 수 있을 겁니다.”
“후.”
갑자기 오크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때리려는 것인가! 싶어 김유린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 예상대로 오크는 한 손을 쭉 뻗더니? 콰직!
바닥에 박힌 큼지막한 돌덩이를 떼어냈다.
“···뭐 하시려고요?”
바들바들 떨던 김유린이 다시금 평정을 되찾고서 물었다. 오크는 말 없이 단조기술을 사용했다. 그러자 우둘투둘했던 표면이 반듯해지고, 동그란 형상이 기다래졌다.
“..와?”
“오크가 무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놀라하는 김유린이 괜히 멋쩍었던 오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또 다른 돌덩이를떼어냈다.
그 뒤로 오크는 약 30분간 바닥에 박힌 여러 돌덩이들을 떼고 부수고 붙이고 잇고 메우고 하는 과정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저 오크가 대체 뭘 하나-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김유린은, 나중에 그 결과물이 완성되자 무척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뚝딱뚝딱- 오크의 손이 여러 번 지나간 곳에는, 아담하지만 꽤나 그럴듯한 오두막이 하나 지어져 있었다.
과연 A등급에 다다른 고블린의 손재주의-비록 오크 폼이라 패널티는 크지만- 힘이었다.
“우와··· 이걸 어떻게···.”
“잠은 저 안에서 자라.”
그녀는 말을 다 잇지 못할 정도로 놀라워했으나, 오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나는 여기서 잘 테니.”
이번에는 그가 바닥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투박한 돌바닥이 네모 반듯이 솟아올라 대리석 침대로 변하였다.
“그··· 고맙습니다.”
김유린이 왠지 귀여운 오두막의 기둥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종종걸음으로 오크의 곁으로 바싹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아직은 안 졸리는 걸요~?"
그녀의 눈꼬리가 교태스럽게 휘었다. 살랑이는 머리카락이 팔에 슬쩍 닿았다.
이건 무슨 애교야. 김세진은 흔들리려는 심장을 애써 어르고 달랬다.
* * *
이곳에 갇힌 지 반나절이 지났을 때. 작동하지 않는 핸드폰과 수정구를 열심히 만지작거리던 김유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퍼졌다.
“앗···.”
낭패어린 읊조림. 그녀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오크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부끄러웠다.
놀릴 만도 한데, 오크는 아무런 내색 없이 주머니에서 고기 덩어리를 꺼냈다.
김유린의 동그래진 눈이 찬란하게 빛났다.
오크는 모닥불의 화력을 최대한으로 키우고서 바비큐를 했다. 사이 좋게 나눠서 먹으니 그녀는 그제서야 포만한 배를 쓰다듬으며 흡족한 기색을 원없이 내비쳤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연신 입을 촵촵촵촵- 다시기 시작했다. 배 속에거지가 들었나··· 오크는 어이없어하며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이번에는 배고픔 보다는 갈증라고 말했다.
오크는 말 없이 암반수가 흐르는 수맥을 찾아나섰다.
그리 멀지 않았기에 10분이면 가능했다. 적절한 위치에 구멍을 톡 하고 뚫으니 암반수가 쫄쫄쫄~ 적정량만큼 흘러내렸다. 오크는 돌로 만든 수통에 그 물을 담아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연신 오크를 귀찮게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세상 황홀한 표정으로 물을 삼켰다.
“캬아··· 앗.”
아무래도 시원한 듯했다.
그녀의 반응에 오크는 피식 웃었고, 그의 눈치를 살피던 김유린도 이내 배시시 미소지었다.
그녀를 위한 소일거리를 끝마친 오크는 바닥에 주저앉아 메이스를 갈기 시작했다. 샤샥- 샤샥- 하는 소리를 감상하며, 김유린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한 1시간 정도 그러고 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겨버렸다. 사실 당연했다. 밥을 먹고 물까지 마시고 난 뒤, 인간이 마땅히 해야할 일은···.
“···으으.”
그녀는 좋은 위치를 찾아보며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건, '둘 다'인데.. 아니, 괜찮다.
기사의 인내심은 허투루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
그러나 얼굴이 붉어졌다. 허벅지가 저절로 비비적거리고, 몸 전체가 부들부들 떨린다.
그녀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마나가 없는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원래 없었던’보다는 ‘있다 없어진’이 훨씬 나약하다는 것을···
“저,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
결국 참다 못한 그녀가 어딘가로 어기적어기적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허나 이곳은 가려진 곳이 그다지 없는 개활지였다.
“오두막에 작게나마 만들어뒀다.”
“···.”
흡사 구세주의 계시같은 오크의 말에 김유린이 우뚝 굳었다.
“그, 그런거 아니거든요······ 그냥 손을 좀 닦고 싶을 뿐이란 말입니다. 제가 워낙··· 청결한··· 성격이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두막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애타게 움직였다.
풋-
오크의 조소가 나지막이 울렸다. 그에 김유린은 눈물을 글썽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들이 일상 속에 생겨난 자그마한 공백을 즐기는 와중.
그들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놓인 ‘알’ 하나가 자그맣게 들썩였다.
그것은··· 스완이 제 몸을 폭발시켜가며 뱉어낸 알이었다.
* * * *
[‘자이언트 스완’의 레이드 도중 거대한 폭발이 일어, 현재 ‘김유린’기사가 실종된상태입니다. 칠흑 기사단은 구조대를 급파하였지만, 폭발지에 스완 특유의 ‘기생 마나’가 낙진처럼 가라앉아 아래로 내려가기에 쉽지 않은 것으로······]
용병단장실의 TV에서는 뉴스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 세정 씨. 아, 길드장 님은 지금······”
[한편, 기사들의 증언으로는 이 레이드 도중에 영웅오크가 출몰하였다고······.]
그리고 용병단 임시단장직을 맡은 김선호는 TV를 보랴 사모님과 통화를 하랴 몹시 바쁜 상황이었다.
“일이 있으셔서 아마 며칠 동안은 못 들어가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정 씨가 훈련 중이셨던지라, 일단 도착하고나서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저에게 먼저 말하셔서···”
-..진짜죠?
“네.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그럼 하젤린 언니는 어디 있어요?
“아마 요선에 있을겁니다. 연락해보세요.”
-···흠. 알겠어요.
유세정이 전화를 끊었다. 김선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왜 거기 계십니까.”
그가 한스러이 중얼거렸다.
뉴스 속보에는 늑대를 탄 오크가 스완을 향해 뛰쳐나가는 모습과, 그 뒤를 황급히쫓는 김유린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37. 오크와 여기사 (2)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