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방배동 마법사 (2) >
김세진의 손 위에서 화르륵 타오르는 백열광을 보는 요한슨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하기야 그렇겠지. 체내의 마나를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야만 터득할 수 있는 전문적인 기술, 괜히 마법사가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게 아니다.
헌데 그런 마법을, 여태 단 한번도 마나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남자가 이렇듯 간단하게 마기서를 본 것만으로, 심지어 마법을 단지 발현만 하는 수준을 넘어 수정과 진보까지 동시에 이뤄냈다고? 아무리 특성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한번 해보시라니까요? 이렇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현실도피를 하고 있던 요한슨의 귓가에 한 줄기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멍하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빨간 볼펜으로 좍좍 그어진··· 아니, 수정된 마기서가 보였다.
“이대로 해보세요. 저처럼 되실겁니다. 한슨 씨도 뛰어난 마법사니까.”
“···아, 예··· 잠깐만요.”
세진의 말에 얼떨결에 휩쓸린 요한슨은 마기서에 적힌 그대로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이 백열광은 심장에서 몇 바퀴를 빙빙 돈 후 손바닥 위로 발현되는 마법인데, 확실히 이 전 보다는 마나가 더욱 쉽고 효과적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과정 끝에 발현되는 마법의 농도가······ 전에 비해 확연히 폭발적이다.
“어때요?”
마법은 보통 두가지 기준으로 분류된다. ‘등급’과 ‘세기’.
등급이 높을수록 고급마법이라 칭하고, 세기(빛깔)가 진할수록 숙련도가 높다 일컫는다.
즉 사용하는 마법이 다른 건 ‘등급’의 차이, 똑같은 마법이라도 위력이 다른 것은 ‘세기’의 차이. 여기서 세기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술사가 마나를 다루는 힘인 ‘마력’이라고, 여태 마법사들은 배워왔다.
“···.”
그래서 요한슨은 더욱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의 손아귀에서 활활 타오르는 마법을 보고 있노라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법이 한단계 발전했다는 기쁨도 뿌듯함도 없었다. 그저 의문 뿐이었다. 자신의 마력은 결코 성장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마법이 이토록 활활 타오르는지.
“어···.”
“말했잖아요. 제 특성이 좀 좋은 게 아니라고.”
이 말도 안되는 현상을 일으킨 김세진을, 요한슨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나 그는그저 간지러운 듯 뒷목을 긁적일 뿐이었다.
“일단.. 남은 교습은 나중에 합시다. 저도 해야할 일이 남았고 하니···”
“···.”
슬그머니 돌아서려는 김세진에게, 요한슨이 큼지막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저기요, 김세진 씨!”
큰 외침에 김세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요한슨은 뭔가 결연한 표정으로 김세진과 제 손에 쥐어진 마기서를 번갈아보다가, 마기서를 세진에게 건넸다.
“가지십시오. 백열광이 백열광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이제 이건 저희 마탑 소유가 아닙니다.”
“아뇨. 필요 없습···.”
“가지세요.”
그는 세진의 품에 억지로 마기서를 안겼다. 그리곤 난처해하는 세진을 더욱 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말을 잇는다.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당신의 힘을 저희 마탑을 위해 써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아니, 저희 마탑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마법계는 아마 여태 당신같은 천재······크음. 불세출의 특성이 등장하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요즘은 공격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법사들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공격마법의 어려움 때문이지요. 그 탓에 몬스터 사태에서도······.”
요한슨의 속사포같은 말을 다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허나 몇 가지는 확실하다. 이 남자는 자신이 마법사로 활동하기를 바라고,
“···그리고 제, 제가 대, 대변인이나 중계인이 되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서울 마탑에서 촉망받는 마법사이니···.”
자신의 덕을 보고싶어 하기도 한다.
“흠···”
김세진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이제 신분을 숨기는 짓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오크 대장장이로 그 난리를 하면서 욕도 많이 들어먹었으니까.
하지만 여기 앞에서 자꾸 마법계에 큰 공헌을···! 솰라솰라 떠드는 요한슨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훗날 있을 대재앙에 대비하여 마법계에 큰 족적을 남기는 것도······..
“···요한슨 씨, 혹시 어디 사세요?”
“예? 저 그··· 방배동에 삽니다만, 그건 왜···?”
“아닙니다. 뭐. 생각은 한번 해 볼게요. 일단 돌아가세요.”
그는 피식 웃으며 요한슨을 돌려보냈다. 그의 손에 이제는 ‘백열광 (방배동 마법사. Ver)’가 된 마기서를 쥐어주고서.
*
‘마기서’는 마탑의 핵심적인 자산이다.
또한 마탑이 얼마만큼의 마기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서열이 구분되고 평판이 달라질 정도로, 마탑을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마탑은 마기서의 보관과 열람에 몹시 엄격하다. 마법사의 등급에 따라 대여에 제한을 두고, 한번 대여하면 반납을 할 때까지 마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허나 개중 굳이 마탑이 보관하지 않아도 될 아주 하급의 마법들, 화염구나 아이스애로우, 신속화 등등은 대중에 공개되어 수업용으로 활용되곤 한다.
실수로든 고의로든 마기서가 마탑 밖으로 유출되면 사람 죽일듯이 달려드는 마탑들도 그런 하급의 마법에는 예외를 둔다. 그것들은 어차피 마법사를 지망하는 학생이라면 14살이 되기 전에 뗐을 기본 마법이니까.
“···세멘 선배. 이거 봤습니까?”
그러나 요즘 마탑의 마법사들의 관심을 끄는 마법은 그러한 ‘하급마법’들이었다.
“뭔데?”
“이거요. 개인 무적(無籍) 마법사가 운영하는 블로그인데··· ‘화염구’와 ‘아이스 애로우’의 마기서 수정본이 올라와 있어요.”
“···뭐?”
이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마탑이라 불리는 ‘서울 마탑’의 중층부. ‘중급’ 마법사들이 머무르며, 마기서를 토대로 마법을 익히거나, 또는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티펙트에 사용될 마나진을 연구하는, 이른바 ‘중급마법지대’이다.
“마기서가 왜 수정돼? 아니, 어느 미친놈이 그딴 짓을 해?”
최하급 마기서는 거의 수정되지 않는다. 고작 최하급을 수정할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는게 아까울 뿐더러, 최하급은 아주 오래전부터 ‘정석’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게 좀 신기합니다.”
후배 마법사가 관련 블로그를 허공에 송출하자, 난잡한 마기서가 홀로그램으로 둥둥 떠올랐다. 마기서는 마나의 흐름에 더해 여러 글자가 낙서처럼 벅벅 쓰여져, 이미 마기서가 아닌 낙서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뭐야 이 낙서는.”
보통 마기서는 순환표라고 하여 마나의 흐름만 기록되어 있다. 그 이외는 마법사가 독자적인 ‘영창법’을 개발하여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유인데, 사실 합리화일 뿐이고 폐쇄적인 마법사 사회의 수많은 불친절 중 하나다.
“이 마법사가 어떻게 마법을 움직여야 좋을 지 팁을 적어 놓은 거라는데··· 요즘 이게 초보 마법사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F등급 화염구가 최소 E플러스, 최대D마이너스의 위력까지 낸다고 하는군요.”
“···하. 이번에는 또 무슨 사이비냐.”
세멘이라 불린 엘프 마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 근데. 아직 초짜들이나 일반인이면 몰라도, 니가 그걸 믿으면 어떻게 해? 요즘 이런 돌팔이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무적(無籍)이라매? 딱 봐도,어떻게든 명성 끌어올려서 입탑(入塔)한번 해보려고 지랄하는 놈이잖아.”
“아, 저 그게 사실··· 제가 방금 해봤는데요···”
“뭐? 해봐?”
“네. 저도 처음에는 선배님처럼 생각했는데 요즘 마법사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너무 많아서···”
“근데. 그래서 뭐. 어떻게, 잘 돼?”
“···네. 제가 말한 그대로.. 위력이 적어도 몇 등급 이상은 상승한 것 같았습니다.”
후배 마법사의 약간은 충격적인 선언에, 팔짱을 낀 세멘은 마기서의 홀로그램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부분은 잘못하면 빙빙 도니까 더욱 신경써주세요’ 따위의 글자가 신경이 거슬렸으나, 대충 마음을 바로잡고서 한번 그대로 따라해보니···
“···.”
“···.”
화염구가 발현되었다. 헌데 그 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천장까지 치솟는 불길에 당황한 세멘은 마나를 이용하여 그 화염을 농축시켰다. 그러자 고작 ‘화염구’는 마치 축소된 태양처럼 진한 빛을 내뿜는 영롱한 구체가 되었다.
“여,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후배 마법사는 그 찬연한 빛에 감탄했다. 그리고 세멘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시금 블로그를 들여다보았다. 연신 입을 중얼거리는 것이, 아마 후배 몰래 블로그의 주소를 외우는 것 같았다.
“신기하긴 하네. 그, 근데 이 마법사가 누군데?”
“닉네임은 있습니다. ‘방배동 마법사’라고, 근데 실제 정체는 아직 모릅니다. 데뷔한지 일주일 밖에 안 돼서···"
“어, 그래? 근데··· 이, 이거보다 더 좋은 마법은 없대?”
세멘이 짐짓 ‘나는 필요 없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소개해준 네가 무안하지 않게 물어는 보겠다’ 라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이스 볼트와 화염구가 끝이에요. 근데 있어도 이것처럼 무료로 공개를 할까요? 돈 받고 마탑에 팔거나 자기가 독점하겠죠.”
“..그렇겠지?
세멘은 블로그를 한번 살펴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후배마법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뭐라고 쓸까요.”
눈치 빠른 마법사는 재빨리 댓글창을 눌렀다.
“혹시 다른 마법 없냐고··· 아니, 이건 너무 속보이니까, ‘무척 참신한 방법이군요. 저는 생각만으로 담아뒀던 걸 이렇게 표현해내시지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혹시 저희와 함께 일을 해보실 생각이 없으신가요?’이런 식으로. 아, 근데 비밀, 비밀댓글로. 아니 인마! 비밀댓글로 하라고!”
“아, 죄, 죄송합니다. 지우고 다시 쓰겠습니다······.”
* * * *
시범삼아 올린 두개의 마기서로부터 일어난 작은 파문을 아직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김세진은 김유손과 함께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길드장 님의 말 대로, 그곳이 노스페라투의 아지트인 것 같습니다. 사람을 사냥하지 않는 흡혈귀는 그쪽밖에 없거든요.”
“흠···.”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그는 고민했다. 어머니는 왜 흡혈귀와 합작을 했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나야만 하겠지. 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그들에게서 또 어떤 진실을듣게 될까······
디이이이잉-
그때 핸드폰의 알림이 울렸다. 힐끗 보니 [방배동 마법사님의 블로그에 새로운 댓글이······] 따위였다. 대충 무시한 그는 다시금 김유손이 건네준 서류철에 집중했다.
노스페라투의 근거지는 몬스터 필드의 경계에 있지만, 걱정만큼 험난하지는 않다. 그저···
디이이이잉-
또다시 핸드폰이 울었다. 미간을 좁힌 김세진은 [방배동 마법사···] 두 단어만 보고서 핸드폰을 매너모드로 바꿔버렸다.
“···뭔가요? 그건? 블로그?”
“아, 예. 요즘 제가 취미로 마법 블로그를 하나 하고있거든요. 근데 마법사 분들이 제가 올린 글을 싫어하시나 보네요.”
무단 수정때문에 그런가. 김세진은 살풋 웃으며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쪽이 워낙 자존심이 세지 않습니까.”
“하하···.”
김세진은 그저 웃고선 다시금 서류에 집중할 뿐이었다.
“입구까지는 그래도 용병이랑 같이 가는게 낫겠죠?”
“네.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회의는 이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방배동 마법사’라는 예명은 마법사 커뮤니티의 근저에서부터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 35. 방배동 마법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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