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19화 (119/174)

< 33. Heroic (4) >

김세진의 어머니, 진소정. 그리고 아버지, 김재혁.

두 사람은 모두 본래 에덴의 기사였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먼저, 모종의 이유로 에덴의 고위 간부들과 다툼을 한 끝에 퇴사했다. 이 정보물은 에덴이 기록했기에, 그들은 그저 ‘반항심’ 때문이었다고 서술했다.

어쨌든 그렇게 에덴을 나온 그녀는 용병으로 전향하여 수많은 인외종들을 죽여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특출난 A급 용병으로서 활동해오던 그녀는 여느 때처럼 뱀파이어 사살임무를 나섰다가, 뱀파이어의 일족 중 하나인 ‘노스페라투’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을 살해하려던 그녀였지만, 이내 그들의 말에 설득-에덴에서는 현혹이라 하였다-당하여, 단지 살려두는 것을 넘어, 그들의 입장에 서서 여러 일들을 자처하여 해결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허나 그러던 중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여태해오던 모든 일들을 그만둔 뒤 다시금 에덴의 품으로 돌아가 ‘증인보호’를 요청한다. 노스페라투의 편에 있으면서 사게 된 여러 뱀파이어들의 원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덴은 그녀의 경호를 상당히 소홀히 하였고, 결국 그녀는 훗날 바토리 일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김세진은 우선 어머니에 관한 정보부터 빠짐없이 읽어갔다.

허나 페이지를 다음으로 넘긴 그의 망막에 아버지 ‘김재혁’에 관한 진실이 새겨졌을 때. 머리속이 새하얀 가루가 되어버린 양,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 김재혁은 사실 3세대 '마인'이었다.

전말은 이러하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70여년 전. 아직 세계가 균열의 존재를 숨기기에 급급했을 때, 김재혁의 조부가 지구의 땅을 밟았다.

하프-마인이기 때문일까. 마인이면서 인간을 동경했던 그는 지구를 배척하며 여러 범죄를 저질르는 여타 마인과는 달리, 평화롭게 정착하여 인간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렇게 2세대가 더 지나 그의 손자로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김재혁.

허나 그는 평생토록 자신이 3세대 마인이라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청소년기의 그는 그저 제 ‘특성’을 믿고 까불대는 한량이었던 그는, 진소정을 만난 것을 계기로 개과천선을 한다.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힘을 길러 에덴에 입단하고, 결국에는 그녀와 자신을 닮을 아이까지 만든다. 그러나 그는 바토리에 의해, 간절히 고대하던 아이의 얼굴조차도 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뭔···.”

아버지가 마인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믿기 쉬운 진실이 아니었다. 잘못 본 것인가,싶어서 몇 번이나 더 소리내어 되뇌어 봤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기록물은 참 냉정하게도, 사후에 밝혀진 김재혁의 유전자 고리까지도 저장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김세진은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러한 특성이 생겼는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세계의 어그러짐으로 인해 생겨난 [특성]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은 대부분 무작위로 골라지지만, 유전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그것은 존재가 세계와 세계를 뛰어넘으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힘을, 원 세계가 보충해주기 위한 것으로···.’

김유손이 읽어보라고 주었던 정보논문지에 적혀있던 내용의 일부다. 마냥 이해가가지 않았던 문장이었으나, 지금은······.

머리속에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해일처럼 밀려든다. 빈 곳 없이 혼란스러운 머리속은 구역질을 야기시킬 만큼 어지러웠다. 이 모든 진실을 꼭 알아야만 했을까, 겉잡을 수 없는 후회 또한 몰아쳤다.

어느새 그는 바닥에 형편없이 주저앉은 채였다. 일어설 힘조차도 없어서, 터질 것만 같은 머리를 조용히 감싸쥐었다. 그럼에도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몽롱한 시야 때문에 지금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마인으로 오해받을까봐 특성공개를 안했는데. 진짜 마인이었네.’

한참동안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그는 결국, 체념 섞인 헛웃음까지 터트리고 말았다.

* * * *

혼란에 빠져있던 김세진은 찬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우선 탑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리 늦지 않은 오후, 대로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모와, 즐겁게 웃으며 무리지어 이동하는 학생들. 김세진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족의 사랑과 마냥 즐거운 우애였다.

“···”

그렇게 자신에게 없었던 것들을 바라보며 느리게 걷다 보니, 수없이 많은 상념이 떠올라 머리속을 헤집었다.

우선 어머니와 협상했다던 노스페라투라는 일족을 만나야겠지. 그런데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할까.

“하아···.”

우뚝 멈춰선 김세진이 가느다란 탄식을 내뿜자, 몇몇 사람들이 쭈뼛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그들은 에덴의 휘장으로 진세한을 알아본 듯 사인과 사진을 요청했다. 그는 억지로 나마 미소를 지으며 응낙했다.

그렇게 몇 사람을 상대해준 그는 다시 길을 걸었다.

몇 십분 동안을 말 없이 걸었을까.

저 멀리, 횡단보도 건너편에 로브를 쓴 사람이 보였다. 후드로 얼굴을 가렸기에 눈과 코는 보이지가 않지만, 그녀는 분명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입가에 새겨진 진한 미소가 그 증거.

김세진은 그녀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럴수록 그녀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가 더욱 진해져만 간다.

분명 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나약함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지금, 그에게는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그녀를 향해 걸어가던 그때.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스러져가는 노을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빛깔을 뒤삼키며 도래한 짙은 어둠의 장막, 그 중 일부는 별안간 거대한 주먹의 형상으로 돌변하더니? 하젤린의 머리위에서 추락했다.

“씨!”

김세진은 하젤린을 향해 질주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웃고만 있는 그녀를 품에 안고서 레비아탄의 비늘을 활성화한다. 콰아아앙! 둔탁한 파쇄음과 동시에, 대로변의 온 사방에 비명이 찢어졌다.

**

“괜찮아요?”

푹 무너진 대로의 파편속에서 김세진이 중얼거렸다.

“···어휴··· 깜짝 놀랐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제가 막을 수 있는 거였는데···”

그의 품 속에서 짐짓 힐난하는 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눈을 슬쩍 아래로 내리니, 두 볼에 홍조가 붉게 오른 하젤린이 두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괜찮은거 맞냐고요.”

“···갑자기 웬 오바래. 세진 씨는 저를 정말 무슨 나약한 10대 여아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저 그런거 질색하니까 다음부터는 자제 좀 해주세요.”

괜히 부끄러워서 이래저래 까불어보는 하젤린이었다.

“네 뭐. 미안해요. 구해준게 잘못이면.”

퉁명스레 대응한 그는 사방에 자욱한 대로의 잔해를 들어내고서 몸을 일으켰다.

밖의 광경은 더 없을 아수라장이었다. 형체가 모호한 암흑의 존재들이 주먹, 날붙이, 개, 몬스터의 형상으로 사람들을 살해하고 건물들을 박살내고 있었다.

“왜···.”

김세진은 그 잔악한 광경을 보며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품었다.

이건 필시 뱀파이어들의 소행일 터, 허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이 들여다본 정보는 조금 복잡한 출생의 비밀과 사망의 연원 뿐이다.

헌데 그 따위 정보를 들여다보았다고 세계의 이목을 끌 대사건을 일으킨다? 그건소 잡는 칼로 개미 써는 격, 리스크가 커도 너무 크다.

“뭐해요? 이럴 때야말로 영웅이 나설 차례잖아요.”

그가 고민하는 사이, 하젤린이 김세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영웅’.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별안간 그의 머리속에 무엇인가가 번쩍였다. 생각을해 보니,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절호의 묫자리가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젤린 씨.”

그는 하젤린을 지긋이 응시했다. 그 선 굵고 뚜렷한 이목구비의 집중에 하젤린은 얼굴을 붉히며 물러섰지만, 이내 짐짓 태연한 척 대답했다.

“왜, 왜 그러시죠.”

“오늘.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오늘 죽습니다.”

그 한마디에 하젤린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전에, 김세진은 수정구를 꺼내 어딘가로 통화를 걸었다.

“김유손 씨.”

-저, 김선호입니다. 길드장님.

상황의 심각성은 이미 그들에게도 급파된 듯, 김선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다급했다.

“지금 상황 아시죠?”

-예. 안 그래도 지금 정부의 명에 따라 그리핀 라이더 6명을 호출했고, 급파임무라 하여 용병들 또한 그쪽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아, 그래요? 근데 그것보다 김선호 씨. 진세한 오늘 죽습니다.”

-예? 아······ 예. 유백송 님에게 연락하고, 첩보원들을 출동시키겠습니다.

마법통신을 끊은 김세진이 하젤린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물었다.

“저, 혹시라도 가사상태 되는 마법 배우셨나요?”

“···있긴 있는데···”

“···있다고요?”

“네.”

있을 줄은 몰랐는데. 김세진은 하젤린의 마법적 능력에 새삼 감탄하며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그럼 뭐··· 갑시다.”

“아니, 잠깐. 저 설명은 해주셔야······으!”

“곧 선호 씨 올 텐데, 그분한테 들으세요.”

김세진이 가공할 만한 강권으로 허공을 가격하자, 콰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일직선으로 쏟아져나가 그 궤적에 놓인 어둠을 모두 걷어냈다. 그렇게 탁 트인 시야 사이로 아이를 안은 채 비명을 내지르는 이름모를 어머니가 보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달려, 사람의 형상을 한 암흑 하나를 분쇄했다.

“끅..!”

눈을 꼭 감았던 어머니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내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망막에 미소짓는 한 남성의 모습이 가득 들어선다.

“걱정하지마세요. 에덴입니다.”

그가 그렇게 영웅코스프레를 하자마자, 역시나 뱀파이어 냄새를 풀풀 풍기는 한 놈이 그를 습격해왔다.

전신이 온통 암흑으로 물든 놈은 다짜고짜 검부터 대차게 휘둘렀다. 챙! 손톱과 칼이 맞닿으며 날 선 불씨가 튀어 오른다. 허나 고작 일 합만으로 놈이 든 검은 힘없이 부서졌다.

“···”

“···”

동강난 제 검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던 암흑은 슬쩍 물러서더니, 주변을 살폈다.

역시 조기진압에서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벌써 부터 도착한 기사들의 기합과 날 선 마나의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그만큼 촉박한 사정이었기에, 놈은 초장부터 필살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가만히 멈춰선 놈이 기묘한 영창을 외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입술만이 바쁘게 달싹인다.

그렇게 약 10초동안 지속된 영창이 끝나자, 별안간 창공을 가득 메우던 어둠이 거대한 운석의 형상으로 밀집되었다.

불덩이처럼 들끓지는 않아도, 번개처럼 굉음을 내뿜지 않아도, 아무런 소리도 없이 고요 속에서 추락하는 운석은 시민들에게 절망을 선사하기에충분했다.

저 패악의 형체가 추락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수많은 시민들의 일부는 두려움에 가득 찬 시선으로 그것을 올려다보았고, 일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나마 부리나케 도망쳤다.

“풋. 수고해.”

김세진이 운석을 뚫어져라 응시하자, 놈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갔다. ‘어떻게 하나 보자.‘ 정도의 의미가 담긴 조소였다. 뒤이어 새빨간 시선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었다. 진세한을 확실히 살해하기 위한 암기(暗器)들이겠지.

그러나 김세진은··· 오히려 제대로 판을 깔아준 놈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늘에서 추락하는 거대한 암흑의 운석을 올려다보며? 그는 전신에 마나를 끓어올렸다. 저 운석 정도면.. 쉽진 않아도 충분히 당해낼 수는 있을 터.

-세진 씨!

어디선가 하젤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도로 한복판에 부상자인 양 누워 있었다.

세진은 그에게 눈짓을 한번 하고는,콰앙! 노면을 거세게 박차, 한 줄기 푸른 빛무리가 되어 운석으로 치솟았다.

순간 모든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저 멀리서 암흑을 베며 다가오는 기사들 마저도 잠시 멈춰선 채 그 광경을 응시했다.

< 33. Heroic (4)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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