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Heroic (2) >
해일처럼 밀려드는 몬스터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여서, 여태 짠 전략이 무색하게 전장은 개싸움판이 되었다.
각 몬스터마다 약점과 상성, 습성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렇듯 혈과 육이 낭자하는 아수라장이 될 줄은···.
어쨌든 그 난장판 속에서 김세진은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엔 검강은 물론 검기조차 서려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리한 날은 그 자체만으로 공간과 마나를 어그러트리고 몬스터의 뼈와 살을 도륙해냈다.
‘모든 것을 벤다’는 다소 막연하고 모호한 성질이 무려 [C+등급]까지 작용된 결과물이었다.
“와우.”
그 엄청난 예리함 감탄하고 있을 때 다시금 몬스터가 하나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그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유세정이 나서서 대신 막아주었다.
“방심하면 안돼, 오빠!”
그녀는 그렇게 소리치고서 그의 옆에 딱 달라붙어 온 사방으로 검격을 쏘아냈다.
쾅! 펑! 쿠와앙! 감히 몬스터들이 근처에 다가올 수도 없게 만드는 그 수많은 검격들은 지반에 여러 많은 분화구들을 만들어냈다.
이러다 땅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광포한 검격을 쏘아내는 유세정을 보며, 김세진은 자기가 어떤 괴물을 탄생시킨건지 잠시 고민을 해야만 했다.
‘저러니까 마나문신을 해달라는 사람이 많아졌지. 마나통이 대체 얼마나 커진거야?’
사실 요즈음 몬스터 사태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김세진에게 적극적으로 부탁-이라 쓰고 애걸이라 읽는다-하고 있다. 더 몬스터의 길드원들에게만 폐쇄적으로 마나문신을 시술하지 말고, 적당한 대가를 정해놓고 다른 기사들에게도 시술을 해달라며.
“세정아 나 잠시 빠져 있을 게. 피 냄새 맡으니까 머리가 어지럽다.”
그녀의 무위를 잠시 감상하던 그는, 이내 피식 웃으며 유세정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넸다. 유세정은 그 즉시 반색하며 소리쳤다.
“어서 가! 당장!”
원래 그리핀을 타고있어야 하는 그녀는 사실 김세진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온 거였다. 물론 그가 걱정되어서.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잘못된 일이 생길 까봐.
“아 진짜 많네.”
그녀가 무지막지한 검격을 연신 휘두른 끝에 주변의 몬스터들이 아주 잠시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얻은 찰나의 휴식시간, 세진은 그녀에게 검 하나를 건넸다.
“세정아, 이거.”
“오빠 아직도 있었어? 빨리 가라니··· 뭐야 이거?”
“선물. 사실 이거 너 주려고 가져온 거거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검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명색이 애인인데, 여태 직접 챙겨준 건 마나문신과 여러 아티펙트들··· 아 충분히 많구나.
어쨌든. 애인인데 챙겨준 '무기'는 그때 공모전의 무기가 끝 아니었던가.
“···.”
유세정이 멍하니 그 검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검자루와 칠흑의 검날이 합쳐져 귀족적 미(美)를 풍기는 보검.
침을 꿀꺽 삼킨 그녀는 이번엔 자신의 검을 한번 살폈다. 이 검은 몬스터를 벨수록 성장하는 능력이 있어, 수 많은 몬스터들을 베어온 지금은 어쩌면 명품보다도 더좋은 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저 눈으로 훑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지금 세진이 건네주는 검은 거의 보물에 맞먹는다는 것을.
“빨리 가져. 나 피냄새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거든.”
쿠구구궁! 그때 다시금 몬스터들이 쇄도하는 진동이 울린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검을 받아 들고서 외쳤다.
“고, 고마워 오빠! 엄청 고마워! 근데 지금은 빨리 가! 여긴 우리 한테 맡기고!”
그녀가 김세진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그는 웃으며 떠났다.
어쨌든 이렇게 김세진으로 레이드에 참석한 셈이 되니까, 이제는 실적을 쌓을 차례다.
*
천 여명의 기사와 사냥꾼들, 그리고 언뜻 봐도 물경 오천은 넘기는 몬스터들 간의전투. 한 차례의 휴식도 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들에 기사들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비해 몬스터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저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행렬은 보고있기만 해도 질린다.
“···하아··· 하아···.”
그리고 그건 이유진도 마찬가지였다. 검을 쥔 손은 어느새 후들후들 떨리고 마나는 이미 바닥이다.
“유진아 괜찮아?!”
어디선가 고윤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걱정스런 얼굴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괜찮다고 손을 저었던 그 때.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오우거 한 마리가 솟아올라 주먹을 내리친다······
이유진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윤종아!!”
비명이 찢어지며, 고윤종이 자신의 위를 바라본 순간.
별안간 날렵한 그림자 한 줄기가 드리우더니? 옷자락을 휘날리며 날라온 남자가오우거에게 강권을 내질렀다. 그 '고작' 정권에 오우거의 팔 한 짝부터 분쇄되더니, 이내 몸 전체가 무너져내린다.
이유진은 멍하니 유유히 착지하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오우거 하나를 일격에 처치한 그는, 에덴의 중급기사이자 자신의 동기 진세한이었다.
“아저씨! 안 온다면서!”
상황을 인지한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집중하자, 집중.”
괜히 멋쩍었던 김세진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뒤를 노리던 몬스터는 그 권골에 면상이 가격당해 문자 그대로 폭발했다.
"지, 진세한 씨. 고, 고마워요!"
죽기 직전이었던 고윤종이 심장을 쓸어넘기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유진은 반가워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고.
"닥치고 집중하라고!"
"꺅!"
"으악!"
지쳐도 너무 지친 이 둘을 일단 뒤로 내던져두고서, 김세진은 발차기를 내질러 오크 전사의 다리를 분질렀다.
‘실적은··· 보스 몬스터 남아있으니까 그 놈 잡으면 되겠지.’
김세진이 부분 야수화를 한 진세한은 그래도 ‘야수화’를 한 만큼, 김세진보다는 훨씬 강력하다. 게다가 특성이랍시고 클로(손톱)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김세진은 꾀병을 핑계로 잠시 전선에 이탈해 있다가 진세한으로 분해 다시금 출전했다. 이번이야 말로 중상급 기사로 단번에 승격할 수 있는 기회. 놓칠 수는 없다.
그렇게 전선의 중간부 부터 끼어든 그는 여러 스킬들을 활용하여 몬스터들을 도륙해나갔다. 개중 ‘체인클로’가 실로 압도적인 위용을 발휘했다. 단 한번의 손톱이 여러 적들에게로 튕겨져 나가는 특성 상, 이렇듯 대규모 전투에서는 이것만큼 유용한 스킬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단지 이것이 아니다. 중상급으로 승격하기 위한 실적은 바로, 어딘가에 숨어서 몬스터를 부리고 있을보스 몬스터. 그 영악한 놈을 잡아 죽여야 한다.
그는 늑대의 감각을 활성화하고서 보스 몬스터의 기척을 찾기 시작했다.
넓어지는 시야와 극도로 예민해진 시청각, 수많은 감각이 시신경으로 격랑처럼 몰려든다······
그 결과, 그는 여러 대형 몬스터들 속에 숨어있는 한 마리의 고양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몸집이 큰 고양이. 면상은 귀엽게 생겼다만 결코 봐 줄 생각은 없다. 김세진은 그 즉시 크게 발을 굴러 탄환처럼 쇄도했다.
찰나, 온 사방에 소닉붐을 일으키며 고양이의 목전에 당도한 김세진은 놈의 모가지를 움켜쥐고?
“여기!”
미리 봐 두었던, 김유린이 전투하는 곳으로 다시 도망왔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형으로 보스 몬스터 하나를 잡는 건 불가능하니까.
“뭐, 뭣! 당신 누구야!”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김유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허나 그는 고양이의 얼굴을 다짜고짜 김유린에게로 들이밀 뿐이었다.
“애완동물 안 키웁니다!”
“아니, 이 놈이 대장입···!”
-그롸아아아옹!
그 순간 고양이가 날선 반항을 하며 김세진의 팔에 손톱을 휘둘렀다. 김세진이 재빨리 놈을 내려놓고 뒤로 후퇴하자,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김유린이 놈에게 검을 휘둘렀다.
"여기 대장있다!!"
김세진은 그걸로도 그치지 않고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그러자 그 요란함에 시선이 끌린 기사들이 이 빌어먹을 고양이에게 다가왔다.
놈은 뭔가 묘한 표정으로 도주로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 거렸으나,
"여깄다!"
"눈 빨간 고양이!"
이미 수십의 기사에 포위당했을 따름이다.
-그, 그라아아옹
방금보다 조금 맥아리 없게 그르렁대는 놈의 이마에는, 이미 다량의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중이었다.
*
무사히 방어전이 끝나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에덴의 탑에는 수많은 기사들과 취재진, 기사들이 모였다. 모두 진세한의 ‘최단기’ 중상급 기사로 승격식을 지켜보기 위함이다. 최연소 중상급 기사는 유세정이지만,고작 6개월 만에 중상급기사의 딱지를 단 기사는 진세한이 세계 최초였다.
“그간 진세한은 사회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왔고, 공익을 위하는 모범적 행보로 타인의 귀감이 되었다. 이에 에덴의 탑은 기사 ‘진세한’이 중상급 기사로 승격되었음을 알린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며, 진세한은 중상급 이상의 기사만이 수여받을 수 있는 백금 훈장을 부여 받았다.
“감사합니다.”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서 내려온 진세한, 김세진은 최단기 중상급기사라는 이유로 여러 다른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그때, 진세한 기사님이 몬스터를 상대하시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는데, 그 기지 덕분에 쉽게 전투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칠흑기사단 대표로 참석한 김유린이 웃으며 손을 건넸다. 세진은 그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감사드립니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무척이나 남자다운 전투 스타일이었습니다. 언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함께 합을 맞춰보고 싶군요."
"..과찬이십니다."
"오~ 여기 우리의 영웅이 오셨구만!"
뒤이어 오정혁, 김약산 등등 비롯한 부기사단장들 과의 악수마저 모두 끝낸 뒤.
김세진은 진세한으로서 취재진 앞에 섰다.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다. 앞으로의 계획, 월셋집을 살면서도 월급의 대부분을 기부하는 이유, 최단기 중상급기사가 된 소감 등등······ 김세진은 그중 대답하기 쉬운것들만 고라서 대답했다.
“월급을 기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짧은' 인생, 어차피 떠날 때 빈손으로 가게 될 거, 아쉽고 아깝지 않게 먼저 베풀 뿐입니다.”
곧 있을 진세한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었지만, 취재진들은 그의 더 없는 자애로움에 그저 열광하였다.
그렇게 취재진과의 면담까지 끝나자, 김세진은 관계자들에게 다가가 중상급이 된 기념으로 에덴의 탑 상층부를 가보겠다 말했다.
관계자들은 꺼리지 않았다. 오히려 흔쾌히 허락하며 60층대에 배정될 그의 집무실을 먼저 가보라 말했다.
“감사합니다.”
미소를 애써 숨기며 대답한 그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진세한의 집무실이 있는 60층이 아닌 ‘기밀문서 보관층’, 81층을 눌렀다. 어차피 당장 내일 죽을 신분인데, 이 이상 꾸물거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81층으로 올라가는 그 순간에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당신들은 어떤 비밀을 숨기고 돌아가신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어떤 비밀이길래 에덴이 직접 나서서 그것을 함구했던 것일까.
그때 품 속에 담긴 수정구가 윙- 하고 울었다. 그는 연락을 받기 전에, 늑대의 감각을 활성화하여 주변을 살폈다. 에덴의 기사 전용 엘리베이터이기 때문인지 다행히 CCTV나 녹음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나다, 유백송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81층으로 가는 중입니다.”
김세진이 피식 웃었다. 앳된 목소리로 구사하는 영감같은 말투, 그녀의 외면이 상상되니 오히려 더 귀엽게만 느껴진다.
-벌써?
“예. 곧 죽음이 머지 않았네요.”
-···그렇군.
김유손은 진세한이 최대한 극적으로 죽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건 유백송 또한 마찬가지.
-근데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이미 유서는 다 작성해 뒀다.
"언제 전사할지 모르는인생을 살기로 다짐하면서···"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김유손이 써준 유서인데, 정말 명문이다. 잘하면 국어 교과서에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게요. 요즘 사건사고 많으니까··· 아, 혹시 로망스 호텔로 임무갔다가 바토리한테······.”
-그건 안돼. 바토리는 정말 위험한 여자라고. 괜히 아지트가 들킨 걸 탄로내기보다, 계속 그 년이 거기에 머물도록 해야만 해.
바토리에 관한 건 유백송과 유백송의 최측근, 김유손과 김선호, 그리고 김세진만이 알고있다.
“그럼···.”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81층에 도착했다.
“아,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김세진은 연락을 끊고서 앞을 바라보았다.
한 층을 꽉 채운 이 곳, 광활한 서고에 부모님의, 또 자기자신의 모든 진실이 담겨있다. 기대와 동시에 긴장이 되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곤 혹시라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젤린이 만들어준 포션을 하나 뒤 삼킨 뒤, 중상급 기사 자격증을 고요한 센서 앞에 대고.
크게 발자국을 내딛는다.
< 33. Heroic (2)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