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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몬스터-116화 (116/174)

< 33. Heroic (1) >

김선호와의 만남이 끝난 뒤. 김세진은 밖에서 기다리던 하젤린과 함께 유명 한식당으로 향했다. 자리 하나하나가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어, 이미 얼굴이 팔릴대로 팔린 세진에게 딱 맞는 식당이었다.

“예?! 그 방어전에 참가하신다고요? 왜요!”

가만히 밥을 먹는 와중에, 별안간 하젤린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크게 소리쳤다.

어찌나 놀랐는지, 그녀는 방금까지 정성스레 살을 바르던 생선까지도 흉악하게 짓뭉개버리고 말았다

“그냥 그게 나을 것 같아서요.”

“아니, 그걸 세진 씨가 왜 나가요? 몬스터로 변하는 거 말고 잘하는게 어디 있다고.”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때 제가 두억시니랑 싸운 영상 못보셨어요? 조회수 1000만 넘었던데.”

비난인지 걱정인지 모를 하젤린의 말에 김세진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니, 그러다 인간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세진씨 특성이 만천하에 다 까발려질 텐데”

“그럴 일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뭐··· 아마 인간인 지금도 하젤린 씨는 무리없이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 잠시동안은 따라 웃던 하젤린이었지만, 이내 자존심이 퍽 상한 듯 얼굴을 굳혔다.

“가녀린 여자 취급은 좋은데··· 아마 10초도 못 버티실 걸요?”

하젤린의 서늘한 목소리, 이번에는 김세진이 자존심이 상할 차례였다.

“10초요? 예전에, 습격 당했을 때 도와준게 누구 였더라··· 누구는 그냥 넋 놓고만 있던데, 내가 잘못봤나?”

콰직- 갑자기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젓가락이 분질러졌다.

“그때는 이상한 결계 때문에 마나가 제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잖아요. 마법사한테는 마나가 가장 치명적인 거 몰라요? 그 결계만 아니었으면 김세진 씨 도움은 필요 없었을···.”

“예예. 알겠습니다. 역시 A급 마법사 셰나린이십니다.”

“···옛날 성격 나오게 하지 마세요. 저 이래봬도 엘프 마법사라 자존심 엄청 세거든요.”

현대의 마법사는 고집과 아집, 자존심과 자부심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자기 실력에 대한 프라이드가 드높은데, 거기에 종족이 무려 그 ‘엘프’라면······ 얼마나 고집스러울지는 두 번 말해 입 아프다.

“아니, 근데 옛날에 대체 무슨 일을 하셨던 겁니까? 마피아, 삼합회, 뭐 어쩌구 저쩌구 중얼거리시던데.”

그의 물음에 하젤린은 미간을 좁힌 채 새 젓가락을 들었다. 위협의 의도가 다분한, 상당히 거친 손놀림이었다.

“알면 다쳐요.”

“···.”

김세진이 얼굴을 살짝 굳혔다. 약한 사람 취급 받는건 확실히 기분이 썩 좋지만은않구나.

“정 그러시면 밥 먹고 대련 한번 하실래요?”

그가 찬물을 홀짝이며 말했다. 그리고 하젤린은 실룩이는 입가를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여야만 했다.

“···그러다 죽으시면 어쩌실려고.”

“하. 와. 어이가 없네.”

“그럼 내일 또 만나요. 어디 몬스터 방어전에 나가실 수 있나, 실력 한번 봐 드릴게요.”

“예. 봐요. 봐요.”

김세진은 퉁명스레 대답했고, 하젤린은 속으로 웃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약속 하나를 또 잡았구나, 하는 즐거운 생각에.

* * * *

요즈음 중구난방으로 발생하는 몬스터 사태를 대비하여, 정부는 직접 ‘몬스터 재해 관리본부’를 임시로 결성하였다. 그리고 지금, 강원도 도심에 위치한 관리본부의전략실 내부에선 회의가 한창이었다.

“전례가 없는, 상당히 특이한 보스 몬스터입니다. 전체적인 형상은 몸길이가 5m정도 되는 거대한 고양이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정신적인 측면에 관여를 하는 듯 몬스터 필드의 몬스터들을 모두 꾀어 군락을 형성하였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인원의 면면 또한 화려했다. 칠흑기사단의 김유린, 고려기사단의 부단장, 대백기사단의 부단장 등등··· 모두 굵직굵직한 거물들 뿐이었다.

“그 군락에 대응하기 위해 중급 혹은 중상급 이상만을 기용했던 과거 두번의 보스 레이드 때와는 달리, 그 이하의 기사는 물론 중상급 이상의 사냥꾼까지 기용하기로 했습니다.”

“아. 잠깐. 그 부분에 관련해서 말인데··· 그 분도 레이드 방어선에 참가한다는데. 사실입니까?”

대백기사단의 부단장 오정혁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이번에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고위기사로 승격한 오정혁은 자신의 어깨를 잔뜩 치켜세운 채였다. 일명 고위기사의 어깨- 라고, 그는 위세를 부리는 중이었다.

“예. 참가하신답니다.”

“허어··· 헌데 그분은 배려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혹시, 만에 하나라도 그분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국가적 재난이나 다름이 없을 터인데···”

더 몬스터의 후광과 혜은을 등에 업고서 고속성장한 대백기사단 다운 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오?"

오정혁이 김유린을 힐끗 바라보았다. 어서 너도 거들라- 는 눈빛이었으나, 김유린은 난처로워하며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뭐, 그래도 상급 사냥꾼이니 참가하는게 좋지요. 정부에서 의사를 물어본 것만으로 배려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참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고려기사단의 부단장 ‘김수호’가 불쾌함을 드러냈다. 고려기사단은 트릴로지의 창단자 ‘김약산’이 단장이기도 하고, 이미 더 몬스터와의 모든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터라 아예 그들을 적대하기로 작정한 듯했다

“거기서 거절을 어떻게 한단 말이오? 애초에 잘 사정을 봐서 제했으면 되었을 것을··· 너무 원칙만 지키는 것도 그렇게 좋게 보이지는 않소. 몬스터의 길드장이 이런 방어전에 참가한다면 외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소?”

“참 평등하고 좋은 선진국이구나, 생각을 하겠지 무슨 다른 생각을 하겠습니까?”

“뭐요? 당신네 나라는 대통령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는 것이 평등인거요?”

“비유가 참 이상하군요. 김세진이 대통령입니까?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지금은 일선에서도 물러나 일개 사냥꾼에 불과할 뿐인데···.”

"어허!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것 아니오!"

난데없이 벌어진 김세진에 관한 논쟁은 꽤나 격렬하게 치달았다. 당장 트릴로지 소속의 기사들도 이곳에는 많았기에 인원은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어, 보스 몬스터 회의현장은 기묘한 파벌싸움장으로 변질되었다.

“···그만 하십시오. 김세진 씨께서 직접 참여의사를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참다못한 김유린이 나섰다.

“허어, 김유린 기사까지도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과한 신앙이 바로 이런 것일까. 오정혁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혀를 끌끌 찼다.

“김세진 씨가 당신에게 해준 것이 얼만데 어떻게 이렇게 배은망덕···.”

“제가! 직접 전화해서 다시금 의사를 물어보겠습니다. 그럼 되지 않겠습니까.”

“···크음.”

그녀의 선언에 다른 모든 관계자들이 잠시 입을 닫았다. 몇몇은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김유린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김세진과 사적을 연락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와 가깝다는 뜻이었으니.

위잉-위잉-

핸드폰의 수화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긴장하며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기다렸다. 그러나 마지막에 있어 그들을 맞이한 것은 한 여성의 목소리로···

[지금 거신 고객은······]

“···.”

순간 엄숙했던 회의장 안에 풋-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렇게 행동하는데, 당연히 받지를 않겠지.”

오정혁은 무척이나 통쾌하다는 듯 입가를 씰룩였다.

“다,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니 필요 없소. 어차피 안 받을 것 같은데.”

“아, 아니 그게···”

“일단 그 얘기는 그분의 의중을 나중에 직접 묻는 것으로 하고, 회의부터 재개 합시다.”

김유린이 한번 쪽팔림을 당하는 것으로 회의장의 분위기는 이상하게 화기애애 해졌다.

그렇게 재개된 회의 속에서 그녀는 뚱한 얼굴로 연신 핸드폰을 노려보았으나,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회의가 끝나고도 무려 한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

2월 1일.

방어선은 강원도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 구축되었다. 이번 보스 몬스터는 많은 몬스터를 현혹하는 특성이 있어 꽤 다수의 기사와 사냥꾼, 마법사가 방어선에 모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특별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기사도, 마법사도 아닌단 한 명의 사냥꾼이었다.

“와, 왁. 저 분 김세진 아니야?”

“나 처음 보는데.. 포스 쩐다. 뭐야.”

방어선에 집결한 사람들은 연신 상급 사냥꾼 ‘김세진’을 힐끗힐끗 바라보았으나, 감히 그 이상으로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김세진이 선망어린 시선집중을 받고 있을 때, 별안간 창공에서 그리핀이 네 마리가 등장했다. 기사를 등에 태운 그리핀들은 김세진을 반기는듯 잠시 라이더의 명령을 무시하고서 그의 머리 위를 윙윙 배회했다.

“어, 여기 있으셨군요 길드장 님! 한참을 찾았습니다.”

또한 고위급 정부인사는 물론 명문 기사단의 부단장, 고위기사까지 직접 그를 찾아와 굽실거리며 악수를 청했다. 개중 성격급한 몇몇은 무슨 계약관련 이야기를 꺼냈지만, 김세진은 업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며 모두 물리쳤다.

모두, 전장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색한 진풍경이었다.

‘..역시 둘러싸여 있네.’

그리고 뒤에서 서성이던 하젤린은 차마 저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 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어디선가 나타난 유세정이 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절로 한숨이 나왔다. 걱정되어서 있는 힘껏 용기까지 냈건만, 오히려 속만 쓰리게 생겼네.

“저기, 어디 쪽 마법사이십니까?”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하젤린의 등골을 섬찟케 했다. 단지 목소리 하나 들었을 뿐인데 등허리에 열이 오르고 이마에는 땀이 비오듯 흐른다.

“저기요?”

김유린이 하젤린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한다. 하젤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김유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유린 기사님! 곧 방어선이 시작한답니다!”

“···알겠다!”

부하의 외침에 원래 자기가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갔다.

“휴···”

하젤린은 쿵덕쿵덕 난리쳐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도망갈까, 아니면 조금 더 지켜볼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은 듯했다.

저 멀리 몬스터의 군세가 보이기 시작하였으니.

놀·호그·트롤·오크를 비롯한 소형, 중형 몬스터부터 오우거·와이번·바실리스크 등등의 대형 몬스터까지, 많은 몬스터들이 서로를 동료삼아 ‘군단’을 이룬 채 진군하고 있는 모습은 평생 한번도 보기 힘든 장관이라 말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데.’

오천은 적어도 가벼이 넘길 만한 군세에 김세진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물론 대다수가 약한 몬스터이긴 하지만, 후방에 보이는 바실리스크와 쓰리-헤드-오우거 등등 거의 보스급 몬스터들도 즐비하다.

‘어쩌면 플러쉬 골렘보다도 까다롭..지는 않겠지?’

개체수가 많긴 하지만, 이 전장에는 대한민국의 고위기사들이 거의 전부 모여있다. 별안간 레드문이 터지거나 하지 않는 이상 무사히 막아낼 수 있을 터.

샤앙-

김세진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새하얀 칼자루와, 그것에 대비되는 칠흑의 검면. 주변의 기사들이 잠시 상황도 잊고서 검을 멍하니 바라볼 만큼 아름답고 또 섬세한 보검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열심히 합시다.”

그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는 옆사람을 힐끗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에덴의 기사, 이유진이 바싹 굳은 자세로 크게 소리쳤다. 이런 장소에서 진세한이아닌 김세진으로 만나니 꽤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콰아아앙-!

그때. 마나포가 마나탄을 격발하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오우거의 세 머리 중 하나에 명중한 마탄은 퍼엉! 굉연한 폭발을 일으켰다.

“전군, 돌격!”

그 직후 들끓는 함성과 함께, 온 사방으로 마나의 푸른 향연이 펼쳐졌다.

< 33. Heroic (1)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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