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창해(滄海)의 왕, 레비아탄 (4) >
언론사 '국념일보'의 편집실에는 하나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멀리 창해에 청룡이 기지개를 켜는 와중. 갑작스럽게 바다괴수 네스가 출현한다.
동해 쪽에서는 꽤나 악명높았던 놈. 네스의 도발에 청룡은 우아하고도 경이로운 매력발산을 시작한다. 청룡이 눈을 부릅뜨자 마치 예수가 홍해를 가르듯, 네스가 서있는 구역의 바닷물을 통째로 갈라진다.
결국 네스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말라 죽고, 청룡은 의기양양하게 수면 아래로 잠수한다.
“···와우. 장난 아니네. 김PD, 이런걸 어떻게 찍었어?”
이러한 초-대박-특종영상 덕에, 국념일보의 박정혁 국장마저도 편집실로 찾아왔다. 김현제 PD는 빳빳이 세워지려는 고개를 최대한 겸손하게 유지하며 엷은 미소를지었다.
“몬스터 용병단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사방신 청룡’이라는 사이트에 청룡이 출몰한다는 좌표가 적힌 글이 올라왔는데, 그 진위를 확인해 달라면서.”
“흐음······ 진위를?”
“예. 저도 당연히 사이비겠지, 생각했는데 용병단의 요청이라 어쩔 수 없이 간 거였습니다.”
박국장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용병단이 갑자기 사이비같은 사이트의 진위를 파악해 달라 했다는 건······ 당연히 돌려 말한 것이겠지.
“근데 그 사이트 주인이 누구라는데? 그것도 혹시 김세진 씨냐?”
국장이 키보드를 뚜들기며 말했다. 편집실의 컴퓨터에는 어느새 영상이 사라지고, 누군가가 만든 ‘사방신 청룡’이라는 사이트가 띄워졌다.
“그쪽에서는 아니라는데··· 저는 맞다고 생각됩니다. 왜, 김세진이 몬스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필 언질을 해준 쪽도 몬스터 용병단이었고요.”
“그래? 그럼··· 함구하고 있어라. 김세진 씨 덕분에 우리도 살아나고 있는데 괜히초치지 말고.”
국념일보는 ‘KNS’라는 종합편성채널도 하나 가지고 있는 대형 언론사이지만, 그래도 그간 겪었던 수많은 풍파 탓에 다른 언론사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밀렸던 것이 사실이다.
헌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더 몬스터’가 독점적인 정보를 국념일보에게만 제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별 기대없이 만들었던 예능프로에 유세정과 주지혁, 이혜린을비롯한 더 몬스터의 단원들이 출연하더니, 이제는 더 몬스터가 KNS를 인수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돌 정도로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언론사의 입지 또한 장족의 발전을 했다. 이제 적어도 기사나 연예인들의 매니저에게 ‘KNS요? 아··· 죄송 거기는 좀.’ 따위의 말은 듣지 않게 되었다. 아니, 기사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KNS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더몬스터라는 후광이 있으니까.
박국장은 눈을 감은 채, 그간의 고초와 현재의 단맛을 비교하며 잠시 상전벽해의 자부심에 잠겼다······.
“아. 그런데, 김PD.”
그러다 돌연 눈을 매섭게 치켜세우고는 김PD를 노려본다.
“예?”
“버릇없게 김세진이 뭐냐? 김세진이. 씨를 붙이거나··· 아니, 너는 님을 붙여. 김세진 님. 알겠어? 그 분 없을때도 꼭 붙여라. 나중에 혹시라도 인터뷰할 때 실수할라.”
박국장에게 김세진은 이미 종교가 되어있었다.
“······아, 예.”
PD는 뒷목을 긁적이며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따라해봐. 김세진 님, 김세진 님, 김세진 님······"
*
한겨울.
김세진은 데이트의 일환으로 유세정과 함께 ‘몬스터 용병단’을 찾아왔다.
개조, 보수와 증축을 반복하였기 때문일까, 나무판자로 이뤄져 있을 것만 같았던용병단 건물은 오히려 기사단보다 장려하고 깔끔했다.
\역시 세계 최고의 용병단답다고나 할까··· 참고로 용병단은 전 세계적으로 30개소 정도로 늘어나, 이제 세계 최고의 타이틀이 조금은 유의미해졌다.
“시설이 깔끔하고 좋네요.”
내부를 둘러보던 김세진이 감탄하며 말했다. 로비, 카운터, 임무판, 등등··· 용병의 자유로운 전통과 현대의 첨단시설이 적절히 버무려진 공간이었다.
“예. 내부의 장려한 인테리어와 여러 혜택, 복지들이 소문나면서 전현직 기사들도 입단하고 싶다고 아우성입니다.”
김선호가 말했다. 자부심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오, 그래요?”
“응. 우리 새벽 중에서도 몬스터 용병단에 몰래 지원서 넣은 기사가 있어. 처음에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죽을 때까지 잡아떼더니, 결국 붙더니 휙 가더라. 나 진짜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유세정이 약간 뚱한 얼굴로 대신 대답했다.
“하하하···. 사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아티펙트 무료 대여 서비스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말 나온 김에 거기로 가실까요?”
아티펙트 무료 대여 서비스.
그 효과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TM(The monster)사(社)의 다양한 아티펙트들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서비스, 아마 전세계 모든 기사단이 가장 부러워할 몬스터 용병단 만의 혜택이다.
용병단에 소속된 용병들은, ‘세계의 기사들이 가장 원하는 아티펙트 브랜드’에 압도적 1위에 꼽힌 TM사의 수석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티펙트를 아무 대가없이 대여할 수 있다.
참고로 여기서 수석디자이너는 대외에서 붙인 직함인데, 물론 김세진이다.
“나도 궁금하다, 오빠. 한번 가봐도 돼?”
“···그래 뭐. 갑시다.”
“그럼 가시지요.”
김선호가 환한 미소로 그들을 안내했다.
‘Artifact Service’라는 간단한 이름이 붙은 대여실의 내부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금고와 최첨단 도난방지 시스템이 살벌하게 도사린다.
“도난은 없었답니까?”
“예. 이 시스템이 아주 확실합니다.”
“···좋군요.”
이 곳, 아티펙트 서비스실은 대여를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게 오래 둘러보지는 못했다. 10분 정도 구경하고서 밖으로 나온 그들은 이번엔 휴게실로 향했다.
“와, 여기. 사진으로 보던 거 보다 훨씬 좋네?”
유세정마저도 감탄할 정도로, 200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휴게실에는 주류와 음식, 당구와 볼링을 비롯한 여러 편의시설들이 가득했다.
“아마 기사단의 기사들이 제일 부러워할 휴게실일겁니다. 용병단은 기사단과 달리 자유분방하거든요.”
김세진은, 오오- 감탄하는 유세정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주변 시설과 용병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야, 이거 봤냐? 사방신 청룡.”
“아··· 그 전래동화?”
개중 유세정의 관심을 끄는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잠시 멈춰서서 두 남자용병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로. 너 뉴스 안 봤냐? 사이트에서 청룡이 출몰할 장소를 적어 놨는데, 그게 딱 맞아 떨어······.”
“당연히 구라지 그걸 믿냐고.”
‘사방신 청룡’이란 사이트는 TV전파를 타자 마자 방문자가 폭주했다. 물론 잘 만든 서버는 폭등한 트래픽 양을 모두 감당하였고, 그렇게 ‘사방신 청룡’은 굉장히 유명해졌다. 일부는 아직도 전래동화라며 놀리고 있지만.
“구라 아니고. 스페인 쪽에서 국가차원으로 사이트 운영자랑 접촉하려고 노력한다는 소문도 있던데? 거기 바다괴수 많잖아.”
“···운영자가 누군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것도 김세진 길드장이라는 소문도 있긴 한데······”
그때 그들이 멘 용병시계에서 띵동- 하고 알람이 울렸다.
“오우오우. 임무보수 들어왔네. 받으러 가자.”
“어? 그래? 가자. 더 적은 사람이 한턱 쏘기······”
그러나 그들이 일어난 순간, 그 뒤에는 유세정과 김세진이 있었다.
“······.”
“······.”
자신들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김세진과 유세정의 등장에 그들은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
“가던 길 가세요.”
유세정이 말했다. 그녀는 사실 김세진을 대할 때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의 말투가 극명히 달랐다. 후자는 아무 감정도 담겨져 있지 않은 차가움이었다.
“···.”
그 차가운 목소리를 오해한 그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찾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있었다. 김세진을 사이트의 운영자라고 오해한 것···
“죄송합니다.”
두 명의 용병은 묵직하게 한 마디를 내뱉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예? 아니 지금 뭐하는···.”
두 사람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고, 김선호는 그 모든 광경을 재밌다는 듯 지켜보았다.
* * * *
호텔의 최상층.
어두컴컴하게 꾸며진 VIP 플로어 내부의 커다란 TV에서는 때아닌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룡은 오늘도 시민을 도왔습니다. KNS의 취재팀을 갑작스레 습격한 몬스터, ‘악명 높은 네스’를 처단하였는데요. 마치 기적과도 같은 그 광경을 KNS의 기자가 담아왔습니다······
“···저거 내 애완동물로 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니?”
바토리의 말에 사도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기이한 몬스터의 출몰, 그리고 그 생김새를 봤을 때 어느정도는 예견했던 일이었다. 바토리는 왜인지 모르게 사람보다 몬스터를 어여삐 여기는 괴이한 취미가 있으니까.
“하, 하하하··· 그건 아무래도··· 요즈음 저희의 일이 바쁜데 너무··· 그리고 저 몬스터를 길들이려면 꽤나 많은 노고가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
사도는 최대한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으나, 바토리의 칼날보다 날카로운 눈빛은 여지가 없었다.
“나도 알아. 근데··· 너무 가지고 싶은 걸 어떡해? 그리고 쟤가 내 네스까지 죽여버렸잖아. 그러니까 쟤가 네스의 자리를 대신하는게 맞다고 생각되지 않니?”
뱀파이어의 핏줄에는 선천적으로 ‘마기’가 흘러 몬스터에게 습격 받는 일이 드물다. 오히려 친밀하게 지내는 경우가 더 많다. 친밀하다기 보다는 뱀파이어 특유의 현혹마법을 몬스터에게 사용하는 것이지만.
“물론 백 번, 천 번, 만 번은 옳은 말이시지만··· 그래도 저, 저 생명체는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력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저 정도면 나한테는 쉬워. 게다가 아직 새끼잖아. 아무리 면역이 있어도 몇 번 뚜들겨 패면 반항 안하겠지. 길들이면 되게 쓸모 있을 것 같지 않니? 그리고 무엇보다···.”
바토리가 화면 속 ‘쟤’를 바라보며 입술을 비릿하게 핥았다.
“진짜 귀엽잖아. 일부러 눈 근엄하게 치켜뜬거 봐 저거. 깨물어주고 싶네."
‘···깨물면 죽어요.’ 사도는 뒷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동해의 신’이니, ‘창해의 왕’이니 하는 생명체를 도대체 무슨 수로 잡는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기가 나설 것도 아니면서.
" 게다가 로드 님도 좋아하실 걸? 그분도 애완 몬스터 네 마리나 있잖아. 바실리스크랑, 케르베로스랑······.”
-이 청룡에 관한 다양한 정보는 ‘사방신 청룡’이라는 사이트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바토리의 목이 휙 꺾여 사도에게로 향했다.
“들었지?”
“예, 예. 듣긴 했습니다만······”
“그럼 뭐해. 여기 가만히 붙어있다가 목 떨어지길 바라는 거야?”
“아 그게···. 그것이···.”
사도는 거의 울먹이면서 우물쭈물대다가, 그녀가 하이힐로 바닥을 쿵 찍자 마자 헐레벌떡 사라졌다.
*
그와 같은 시각.
“와아아아~~”
김세진은 동물원 곰탱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여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뭘 하든. 정말 뭘 하든 환호가 울려 퍼진다.
꼬리를 뒤흔들어 바닷물을 첨벙 내면.
“와아아아아~~”
환호가 울려퍼진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면서 하품을 하면.
“와아아아~~”
역시 환호가 울려퍼진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눈을 끔뻑이더라도.
“와아아~~”
그래도 환호가 울려퍼진다.
‘아니 저 크루즈는 어디서 난거야?’
세진은 아까부터 자신을 쫄래쫄래 쫓아오는 크루즈를 보며 앞발로 뒷목을 긁적였다.
“와아아~~”
역시나 환호가 울려퍼진다.
‘..어휴.’
배의 옆면에 ‘TM’이라는 영어가 붙어있는 걸로 보아, 동해가 정화된 걸 보고 조한성이 재빨리 사업에 뛰어든 것 같긴 한데······
“후우.”
괜히 귀찮게 하네. 김세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와아아아~~”
다시한번 환호가 울려 퍼졌다.
계속 듣자니 너무 짜증이 나 심술궂게 물을 뱉었다. 퍼어엉- 위로 솟구친 물보라가 보자기처럼 쫙 퍼져 시민들의 머리 위로 가라앉는다.
“꺄아아아~ 와아아아~”
그러나 비명은 커녕, 그들은 더 커진 환호와 커다란 웃음소리로 보답해줄 뿐이었다.
“동해의 수호신. 청룡의 물쇼였습니다~”
그때 가이드가 크게 외쳤다. 누구야, 힐끗 보니 무려 '조한성'이었다.
일을 하라고 중책을 맡겼더니 여기서 휴가를 즐겨? 갑자기 팍 화가 끓어오른 김세진은 얇고 긴 물줄기를 쏘아보내 그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아아악!”
조한성이 커다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세진은 만족하며 코웃음을 쳤다.
머리를 부여잡은 조한성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크루즈의 승객들은 세진에게 환호를 보낼 뿐이었다.
······참고로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사실 조한성은 사업의 일환으로 크루즈에 올라탄 것이었다고 한다. 그곳에 탄 사람들은 모두 투자처, 정재계의 사람들이었다고.
< 32. 창해(滄海)의 왕, 레비아탄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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