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창해(滄海)의 왕, 레비아탄 (3) >
“갑자기 무슨 대련···.”
김세진이 뒷걸음질쳤다. 허나 김유린은 한 발자국 더 그에게 다가갔다.
“제가 평가를 해드린 적은 있었어도, 진심으로 대련을 해본적이 없지 않습니까.”
“저···”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한번 합시다."
그가 시계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훈련장에 온 지 고작 10분 밖에 안 지났고, 게다가 훈련복까지 갖춰입은 터라 집에 가기도 뭐하다···
“한번 해요~”
김유린은 답지 않은 애교까지도 부려가며 김세진을 훈련장으로 끌고 왔다.
떨떠름한 표정의 세진은 연습용 검을 뽑아들었지만, 김유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메이스를 하나 건넸다.
“여기 메이스 있네요. 그때 메이스 잘 휘두르시던데.”
“예?”
그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 채 다가와 직접 메이스를 쥐어주었다.
“···.”
그는 메이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김유린은 확실히 뭔가 의심을 하고 있다.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의 불씨를 크게 할수 있는데······
고민이 다 끝맺기도 전에, 별안간 김유린이 쇄도해와 검날을 내려찍었다. 마나는 담겨있지 않았지만 충분히 예리했기에 그는 있는 힘껏 메이스를 휘둘러 방어해야 했다.
그렇게, 메이스와 검이 예리하게 오고 가는 대련이 정말 갑작스레 펼쳐졌다.
*
김세진은 절반 이상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언뜻언뜻 몸에 베인 습관을 지우는건 역시나 불가능하였고, 김유린은 의자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
그녀가 한숨을 토해냈다. 분명 오크와 비슷한 감이 없지않아 있다. 분명히······
그렇다면 김세진은 오크에게 사사했다는 말인가? 확실히 그는 영웅오크 졸병과 친하다는 말을 하기는 했다. 허나 오크 부락을 갔을 때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겨져 있지 않았는데······.
‘혹시?’
그녀는 스트레칭을 하고있는 김세진을 보았다. 몬스터면서 인간이 될 수 있는 몬스터는 드물지만 존재한다. ‘마인’이라 하여 자신이 직접 사살하기도 하였으니.
하지만 김세진은 결코 그런 과가 아니다. 여태 그가 걸어온 행보는 결코 몬스터라고 형용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만약 그 반대, ‘인간이면서 몬스터가 될 수 있는 경우’라면······ 그걸 가능케 해주는 것은 세계가 사람에게 내리는 축복, '특성' 하나 뿐이다.
“김세진 씨?”
김유린이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예?”
“저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특성이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 특성이요?”
“아··· 네. 그, 불편하시면 안 알려줘도 돼요.”
“그래요? 그럼 안 알려드릴게요. 그건 실례니까.”
그러나 김세진은 기분 나쁜 기색을 역력히 내비치며 밖으로 총총 빠져나갈 뿐이었다.
“어···?”
유린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쌀쌀한 바람이 나부끼고, 어느 지방은 이른 첫눈을 환한 미소로 반긴다. 거리에는두꺼운 패딩을 입은 사람이 익숙하며 목도리와 장갑을 파는 좌판도 심심찮게 보인다.
새로운 계절은 언제나 그렇듯 거리의 풍경을 변화시키며 찾아왔다.
“지금 포르투갈도 아슬아슬 하다는데··· 이러다 진짜 멸망하는거 아니냐?”
“에이 설마.”
거리에서 오고 가는 말들은 겨울다운 차가움이 스며들어 있었다. 세간을 들썩인 기자회견 이후 채 한 달이 지났건만 이렇게 세계에는 혼란이 찾아왔다.
급격히 증가한 몬스터 개체 수, 보스 등급 몬스터의 꾸준한 출현. 한국의 ‘괴조’는단지 시작에 불과했던 듯, 괴조보다도 훨씬 강력한 보스등급 몬스터들이 세계를 들쑤셨다.
사태는 심각하게 진행되어 애초부터 몬스터에 관한 방비나 기사단의 발전이 더뎠던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대륙의 국가는 거의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난민수용 또한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불거졌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괴조를 시작으로 보스 중에서도 꽤나 강한 축이었던 플러쉬 골렘까지 출몰했지만, 다른 나라와는 대조되게 별다른 피해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꽤나 초자연적이라 말할 수 있는 신비함 덕분이었다.
그 신비함은··· 레비아탄, 세간은 청룡이라 부르는 존재였다.
“···뭔가 이상하네요.”
김세진은 ‘사방신 청룡’이라는 사이트의 글을 읽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뭔가 사이비 같은 이름과는 달리 사이트는 무척 잘 꾸며져 있었다.
청룡공지, 자유게시판, 소식란 등등··· 심플하지만 고급스럽게 꾸며진 사이트는 활발하지는 않지만, 몇몇 사람들이 꾸준히 활동을 해주고 있었다.
“사이트는 아직 휴면상태나 마찬가지 이지만 그래도 청룡은 대한민국의 수호신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김선호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김세진은 김유손을 찾아왔지만, 그의 몸이 편찮았기에 대신 그의 아들, 김선호를 만나게 되었다.
“근데 이··· 카페는 도대체 어떻게 활용한다는 겁니까?”
“아, 그거에 관련해서 이런 건 어떻습니까? 오래전 영화에 ‘스파이더맨’이라는게있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방법을 했었는데요······”
김선호는 꽤나 즐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의 제안은 간단했다.
일단 사이트의 주인은 김선호와 김세진, 김유손이다. 그런데 이 중 김세진은 레비아탄으로 활약이 가능하다. 그러니··· 김세진이 미리 레비아탄 폼으로 출동(?)할 곳을 알려주면, 그보다 앞서 사이트에 그 소식을 올려놓는 것.
그걸 통해 사이트는 청룡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신뢰도와 명성을 얻고, 레비아탄-그들에게는 청룡-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믿음 또한 심어주게 된다.
“···근데 그거 넓게 보면 사기 아닙니까?”
“네? 그, 그··· 아니요. 괜찮을겁니다. 안 들키면 되니까요.”
안 들키면 되는 것 자체가 어감이 조금 그런데··· 김세진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서 김선호를 노려보았다.
“그, 그런 걸로 사기죄면 라이칸으로 활동하는 길드장님은 무기징역 당할 겁니······ 아, 죄송합니다.”
김선호는 황급히 둘러대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뒷목을 긁적였다.
세진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더니, 지금은 편해졌는지 갑자기 가벼워졌지만 오히려 친구 같고 유쾌해서 더 좋다. 애아빠가 이렇게 철이 없는 면모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었지만.
“어찌되었든. 그걸로 일단 길드장님께서 당장 오늘 헤엄치실 좌표를 적어 놓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겠죠. 근데 호의적인 언론사에 언질을 해두었으니··· 아마 거기는 찾아갈 겁니다.”
김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김선호가 갑자기 얼굴을 심각하게 굳혔다.
“아, 그리고. 바토리가 활동을 개시한 것 같습니다.”
“···바토리가요?”
“네. 인간이랑 공기도 섞기 싫어하던 여자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밖으로 노다니더군요. 헌데 이상하게 해안 쪽을 눈여겨 보는 것이··· 아무래도 청룡의 소문을 의식하는 듯 합니다.”
“그럼··· 잘하면 만날수도 있겠네요?”
세진이 눈을 빛냈다. 레비아탄은 평지는 몰라도 바다위에서 만큼은 무적이나 다름이 없다. 레비아탄에게 바다는 무한 마나공급원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잘못'되면 만날수도 있는겁니다 길드장님.”
하지만 김선호의 반응은 다소 싸늘했다.
“예?”
“바토리는 힘듭니다. 과거 종족전쟁때 혼자서 수십의 고위기사를 학살하였던 바토리입니다. 아무리 레비아탄이라도 지금 여전히 새끼인 이상 불가능해요.”
“···바토리가 그렇게 강합니까?”
레비아탄은, 비록 기교를 부리긴 했지만, 플러쉬 골렘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헌데 그 정도로도 바토리를 못 이긴다는 말인가···.
“예. 바토리 일가는 대대로 유전되는 특이한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동족의 죽음을 대가로 강해진다는 것이지요.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피로 목욕하는 바토리’ 가 바로 거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김세진은 그제서야 이해를 했다.
과거. 종족전쟁 때에, 전 세계적으로 사살당한 뱀파이어의 수는 무려 10만 여명에 달한다.
* * *
김유손과의 만남 이후 김세진은 레비아탄 폼으로 변화하여 동해를 수영했다.
요즈음. 눈에 척 보기에도 레비아탄의 크기가 커졌고 몸무게도 미친듯이 불어났다. 일주일에 3회정도만 동해를 유영했을 뿐인데.. 아무래도 능력을 활발하게 사용하니 성장세도 더욱 빨라진 듯했다.
또한 무엇보다, 정말 예상대로 오크나 늑대때와는 달리 본능에 잠식당한다는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진은 레비아탄이 사실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의 상위존재가 아닐까, 생각하며 널리 알려진 레비아탄의 본성에 대한 의심도 품었다.
영역을 침범하면 광포한 모습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어찌보면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주거침입을 용납할 만큼 살아있는 부처는 없으니.
“저기 있다!”
세진은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외침을 들으며 일부러 표정을 근엄하게 굳히고 자세를 바로했다. 파도에 떠밀려나가던 레비아탄의 모양새는 어느새 물길을 전지전능하게 다루는 신령처럼 올곧아진다.
“시끄러. 조심조심찍어. 조심조심.”
이쪽을 향하는 카메라의 렌즈는 바다 위를 가르는 요트 위에 있었다. 그러니까, 동해의 위험구역에 배가 떠있다- 이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었던 일, 아마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바다마수의 위로 직행했겠지.
“네 여러분. 저기··· 청룡이 있습니다. 크기도 예전에 비해 커진 것만 같은데, 자태는 여전히 근엄하고 의연하군요···.”
리포터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김세진은 힐끗 카메라 위에 붙은 스티커를 확인했다. 역시 KNS, 여태 호의적인 기사를 써준 것이 감사하여, 김유손이 비밀리에 언질을 했다던 방송사다.
“저 청룡 덕분에 동해의 해협 일대가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기에 눌린 바다괴수와 비행괴수들이 모두 동해를 떠나 다른 해협으로 도망가고 있는 것이지요··· 당장 이 청룡이 동해를 정화해준 것의 경제적 가치만 해도 무려 조단위에 이른다고······”
물론 모든 괴수들이 도망간 건 아니다. 가끔씩 호전적인 바다괴수들이 출몰하여 도전을 해오기도 한다.
···지금처럼.
“으헉!”
갑작스레 일은 거센 해류에 배가 거세게 출렁인다. 동시에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더니, 수면을 뚫고 한 마리의 거대한 괴수가 기괴한 낯짝을 들어올렸다.
붉은 안광과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흉험한 치아, 레비아탄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 부근을 장악했던 바다괴수 ‘네스’였다.
“이, 이, 이······”
순간 요트 위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기사들이 뒤늦게 검을 빼어들긴 했지만, 바다에서만큼은 기사가 바다괴수를 이길수 없다는 것이 정설. 리포터는 간절한 눈빛으로 레비아탄을 바라보았다.
“···크흥.”
김세진은 코를 헹- 하고 풀고서 설렁설렁 몸을 움직였다. 네스가 으르렁거리며 위협적인 마나를 내뿜었으나, 역시 그저 코웃음을 칠 수준이었다. 가볍게 브레스를 내뿜어 놈을 산화시키려던 세진은, 그러나 지켜보는 카메라를 의식했다. 뭐든지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면 더 멋지게 내보이고 싶은 법.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좋은 방법을 하나 떠올리고서 바다로 마나를 불어넣었다.
휘이이잉-!
멀쩡했던 대기에 거센 바람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더니─ 별안간 네스가 헤엄치던 구역의 바닷물이 통째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진공상태가 되듯 통째로 밀려나간 수면 내부에, 숨겨져 있던 네스의 몸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헌데 네스에게 해수는 생명과도 같은 법. 네스는 바닷물이 없어져 텅 빈 공간에 매달린 채 허우적거리며 꼬리 끝부터 말라가다, 마지막에는 눈동자에 감돌던 붉은 인광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정도면 됐겠지. 김세진은 몰아치는 폭풍우와, 커다랗게 갈라진 바다의 형상을 원래대로 되돌리고서 요트를 힐끗 살폈다. 꿈보다 더 꿈 같은 광경에도 카메라맨은 혼신의 프로의식을 다해 이쪽을 찍고 있었다.
“어···.”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그들의 머릿속에 ‘청룡’은 어제보다 오늘 훨씬 더 경이적인 존재로 격상했다.
바다를 저렇게 통째로 들어내는 것은··· 문자로는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었고, 그것을 행한 주체는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
멍하니 있는 그들을 한번 뒤돌아보고서, 김세진은 바다 깊숙이 잠수했다. 네스의 사체에 담겨진 마나석을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성장 10% 완료.]
- ‘네스의 마안’을 습득합니다. 바다괴수의 부릅뜬 눈과 마주한 생명체는 잠시 온몸이 굳게 됩니다. (단, 신격(神格)의 생명체 제외.)- 이 스킬은 오직 ‘바다괴수’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떠오른 알림창이었는데, 세진은 그 내용을 기뻐하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게 10%밖에 안되는 거라고?’
이만한 강함이 고작 10%라니. 김세진은 레비아탄의 위엄에 새삼 감탄했다.
< 32. 창해(滄海)의 왕, 레비아탄 (3)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