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창해(滄海)의 왕, 레비아탄 (2) >
콰아앙! 굉음이 지반을 진동시키며, 거신의 우람한 주먹이 플러쉬 골렘의 정수리를 찌그러트렸다.
─그으으으으
갑작스런 동류의 공격에 당황한 듯, 플러쉬 골렘은 기묘한 저주파소리를 내며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허나 거신은 아랑곳 않고 다시금 정권을, 이번에는 놈의 가슴을 향해 내찔렀다. 하늘을 가릴 듯 웅장한 몸체답지 않게 상당히 스타일리쉬한 움직임이었다.
쿠우우웅-!
골렘은 두 팔을 교차하여 거신의 공격을 막아내긴 하였지만 한쪽 팔이 한번 분해되는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그 통증에 진심으로 격노한 듯, 놈은 고통과 분노가 반쯤 섞인 음울한 저주파를 내지르며 거신에게로 돌격했다.
이성을 잃은 골렘에게, 방금 전 마법과 육체를 뒤섞어 사용했던 간교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무식하게 거신의 허리를 움켜쥐고서 그대로 고꾸라뜨릴 뿐.
-풍덩!
바다에 빠진 골렘은 허우적거리며 거신에게 주먹을 휘둘렀으나··· 아쉽게도 전투가 이뤄지는 장소가 문제였다.
레비아탄이 만들어낸 거신은 해수를 연료로 삼는 존재. 바다 위에서 만큼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부우웅- 부우웅- 골렘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연신 몸을 향해 날라오지만 거신은 결코 방어 따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으면서 반격했다.
두 거병의 잔악무도한 육탄전. 마나가 마치 스파크처럼 사방으로 튀긴다.
허나 전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신에게 유리해져만 갔다. 플러쉬 골렘의 살점은 계속해서 떨어져 나갔으나, 거신의 피해는 모두 바닷물이라는 연료로 복구되었으니.
‘어지럽다.’
다만 거신을 불러낸 술사인 레비아탄, 김세진의 마나가 급속도로 소모되는 희생이 있긴 했다. 허나 그 마저도 레비아탄의 마나용량은 인간 형태의 수십배는 가벼이넘겼기에, 그다지 걱정할 거리도 아니었다 하겠다.
콰앙! 퍼엉!
흉험하고 둔탁한 타격음, 골렘 끼리의 주먹질 한번에 살점이 튀어오르고 물보라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해변의 기사들은 그 치열한 전투에 차마 끼어들지 못하였고, 하늘을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던 기사단과 언론사의 드론들은 모두 카메라의 방향을 그쪽으로 삼았다.
쿵! 쾅! 쿵! 쾅! 서로의 자웅을 겨루는 우격다짐이 야기시킨 공기파에 날개가 부러지고 카메라 렌즈가 깨어져나갔지만, 몇몇 드론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그 광경을 꿋꿋이 담아냈다.
“저게 뭐여···.”
“신기···하네 꿈인가?”
기사들은 그 난해하고 신이한 광경을 약 3분동안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본분을 깨닫고서 다시금 기세를 정비했다. 어찌되었든, 상황을 보니 저 거신은 우군이다. 그러니 우선 합심을 하여 저 혐오스러운 골렘부터 깨부수자···
“모두 돌격!”
김현석이 외침과 동시에 먼저 쇄도했다.
쏴아아아아? 그의 태양검에서 뿜어져 나온 불덩이같은 일격이 골렘의 한쪽 팔에깊은 자상을 남겼다. 골렘은 다시금 부르짖으며 분노했으나 거신은 그런 틈을 놓치지 않았고, 놈의 아가리로 거대한 주먹을 크게 뻗었다.
콰직-!
아마 아가리가 찢어졌을 만큼 잘 먹힌 정타.
비틀거리는 골렘의 위로, 수백의 기사들이 도약하며 병장기를 휘둘렀다. 마나가 예리하게 서린 무기들은 제각기 다른 형상의 검강을 만들어내어 놈의 온몸을 벌집처럼 헤집어 놓는다──
***
?그어어어어···
때아닌 거신과 기사의 합동작전에 플러쉬 골렘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전투는 끝났지만 기사들은 다시금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이 거신이 돌변하여 자신들에게 달려들지는 않을까.
허나 그것은 단지 기우에 불과했다. 부스스스? 거신은 여러 줄기의 바닷물로 변화하여 수면으로 가라앉을 뿐이었으니.
갑작스레 거신이 분해되자, 기사들은 거신의 잔해에서 흩어진 마나가 흐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 출렁거리는 바다 위에는 한 마리의 생명체가 있었다.
전신은 영롱한 연푸른 비늘로 뒤덮였고, 형형한 눈동자는 속에 서린 총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다.
귀여운 외면과 달리 풍겨지는 기운은 너무나도 비범한, 감히 무어라 형용할 길이 없는 신비한 생명체였다.
저건 뭐야. 기사들이 웅얼거리며 그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허나 그 생명체는 그들의 시선이 부끄러웠던 듯, 순식간에 수면 아래로 깊이 잠수할 뿐이었다.
“···전투 끝. 모두 골렘의 사체를 정돈해라.”
그때 김현석이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여타 기사들은 이미 피곤에 절은 상태였으나, 대장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 * *
플러쉬 골렘의 토벌이 예상보다 아무 피해없이 끝났다.
그리고 그 이유인 레비아탄의 활약상이 담긴 영상은, 당장 다음날부터 널리널리 퍼져갔다. 허나 아직 레비아탄의 유아시절을 모르는 세상은 그저 ‘정체불명의 생명체’라 지칭하며, 플러쉬 골렘을 무너트리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는 사실만을 부각할 뿐이었다.
물론,
“저 영롱한 비늘과 깊고 맑은 눈망울을 보아하니, 레비아탄 같습니다.”
라고 주장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허나 그들은 몬스터 관련 학과가 아닌 역사나 전설을 주로 전공한 학자들이었기에, 몬스터 관련 전문가들에게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일축당했다.
레비아탄은 세계에서 가장 게으른, 그리고 게을러서 다행인 전설의 마수. 게다가 그 영역 또한 아주 깊은 심해이지 연안이나 다름없는 동해에서 활동할 리 없다고 하면서.
“신수가 아닐까?”
그리고 지금, 김세진의 집에서 활동하는 방구석 전문가 유세정은 새벽페이지로 모든 내용을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가설을 들이밀었다.
“응?”
“신수말이야. 예전에 중국 쪽에서는 현무가 있었잖아. 그리고 청룡이랑 레비아탄이랑 이름만 다르지 생김새나 능력은 비슷하다고들 하잖아?”
“···그러니까 얘가 청룡이라고?”
김세진은 어이없어하며 아무리 잘 쳐줘도 강아지를 닮은 레비아탄의 면상을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그는 이 사진이 되게 귀엽게 찍혔다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던 중이었다.
“어. 이거 근데 나만 이러는게 아니야. 벌써 새벽 기사들 몇몇은 그렇게 생각하고있던데?”
“···어디 줘봐. 나도 좀 보자.”
유세정의 말은 진실이었다. 새벽 페이지에는 청룡이니 뭐니 하는 말로 가득 차있었다. 새벽은 엘리트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도 많이들 하는구나.
“내 말 맞지? 근데 요즘 한국에만 이런 일이 잦네. 육지에는 영웅오크가 있고, 바다에는 청룡이 있고··· 아! 게다가 봐봐! 사방신에서 청룡은 동쪽이잖아. 동해도 동쪽···.”
“그런거 아닐거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 그래.”
“···뭐야. 오빠가 그걸 어떻게 확신해?”
“···.”
그게 나라서 확신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김세진은 괜히 헛기침을 한번 하고서 핸드폰을 다시 건네주었다.
그런데 핸드폰을 돌려받은 유세정은 그의 눈치를 힐끗 살피다가, 아주 자연스러운 척 부자연스럽게 물었다.
“···오, 오빠 것도 한번 줘봐.”
“내꺼? 내꺼는 왜.”
“줘, 줘봐. 오빠도 내꺼 가져갔었잖아 방금. 그래야 공평하지.”
“···.”
논리가 다소 이상하기는 했으나, 세진은 별 말 없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재빨리낚아챈 그녀는 혹시라도 그가 볼까 핸드폰을 제 눈 앞에 딱 붙이고서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그렇게 한 3분정도가 흘렀을까. 하젤린과 별다른 연락이 오고가지 않았음을 확인한 유세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식탁 위에 내팽개둔 채 세진의 품으로파고들었다.
“오빠는 맨날 싫다고 툴툴대면서 내가 해달라는건 다 해주네~?”
“···뭔 소리야?”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그녀는 이유모를 소리를 뇌까리며 김세진의 셔츠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
정확히 1주일이 더 지났다. 그리고 정세는 결국 유세정의 말처럼 되었다.
레비아탄은 별안간 뭔 청룡의 유아시절로 둔갑되었고, 세간에서는 사방신 중 하나인 청룡이 동해의 수호신일 되어줄 것이라며 부산을 떨었다. 게다가 정부마저도 그 사실을 믿고, 미래에 국가의 큰 자산이 될 청룡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동해를 샅샅들이 수색하는 등 난리법석을 벌이는 중이시다······.
“라하임드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요?”
그리고 그런 난리 중에 김세진은 김유손을 찾아갔다. 김유손의 안색은 예전보다 더 수척해져 있었다.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크음. 약물을 통해 놈을 억제하는 것도 잘 되어서··· 필요한 정보를 밝히는 데에 시간은 얼마 안 걸릴 것 같습니다. 헌데 그것보다···.”
김유손이 책상을 탁탁 두드리자 홀로그램이 솟아올랐다. 홀로그램에는 ‘사방신 청룡’이라는 카페가 떠올랐다.
“···이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 이거···는···.”
“저는 오히려 잘 됐다고 봅니다.”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김유손이 선수를 쳤다.
“잘 됐다고요?”
“예.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잦은 빈도수로 보스 몬스터가 출몰할 텐데, 아군에게는 믿음을 주고 흑막에게는 두려움을 선사할 존재가 있으면 골백번은 더 좋지요. 게다가 레비아탄이라면 혼자서 보스 몬스터와 대등하게 싸우실 수도 있을 테니, 세계에 큰 전력이 될 겁니다.”
“···.”
김세진은 어딘가 굉장히 열정적이고 본격적인 김유손의 모습에 뒷목을 긁적였다.이래서야 무슨··· 정말 세계 멸망을 막는 결사대 같지 않은가.
“아··· 그···.”
“그리고 사실, 이 카페도 제가 만들었습니다. 물론 길드장 님께서 명하신다면 언제든지 청룡이 아니라 레비아탄이라고 밝힐 생각입니다.”
“예?! 아니, 그건 왜···”
갑작스런 고백에 김세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길드장 님의 능력은 엄청난 것입니다. 레비아탄은 신격을 지닌 몬스터나 다름이없습니다. 길드장 님께서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여 꾸준히 레비아탄으로 남아주신다면, 이 늙은이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이상하리만치 다급한 김유손의 눈동자에는 애절함이 핏물과 섞여 붉게 반들거렸다. 김세진은 당장이라도 토혈을 할 것만 같은 그 절실한 얼굴에 대고 차마 싫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예. 뭐··· 제 부모님도 뭔가 노력을 하신 것 같으니 저도··· 그래야 겠지요. 근데 일단··· 이것 좀 드세요. 눈에 피가 고이셨습니다.”
세진은 마지못해 대답하고서 김유손에게 포션을 건넸다. 시중에서는 구할래야 구할 수 없는 최상급 포션.
“허허··· 감사드립니다.”
김유손은 한층 여유로워진 미소를 지으며 포션을 받아 들었다.
***
김유손과의 만남 이후, 언제나 처럼 훈련을 하기 위해 길드의 훈련실로 향했던 김세진은 예상 외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아, 오셨군요 김세진 씨.”
김유린이었다. 그녀는 손에 뭔가 물건을 바리바리 싸든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뭡니까?”
“빈손으로 오기에는 좀 뭐해서 이렇게 가지고 왔습니다.”
“···그걸 다요?”
“네.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여러 전자기기랑 시계랑 지갑이랑···..”
고개를 갸웃한 김세진은 일단 그녀의 품에 안겨진 선물다발들을 휴게실의 탁자 위로 내려놓았다.
“왜요? 혹시 뭐 부탁할거 있습니까?”
“예? 아.. 부탁이요? 저 별 건 없는데··· 그게···”
그녀는 뭔가 부자연스런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을 슬며시 흔들었다.
···이게 뭔 교태스런 춤사위지? 얼굴을 붉혔던 그는 이내 그녀의 허리춤에 매인 검 하나를 발견했다. 검 집에 넣어져있지 않은 이 검은 척 보기에도 이가 다 빠져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무기 날이 다 빠지셨네요.”
“아··· 그렇습니까? 어! 근데 내 검집이 어디갔지?”
티가 너무 나서 오히려 귀여운 모습이었기에, 김세진은 피식 웃고서 말했다.
“그렇게 돌려말하지 않으셔도, 김유린 씨는 당연 가능하죠. 할인도 해드릴 게요.”
“그, 그래요? 그렇다면 저야···.”
“50억만 받을게요. 물론 품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명품 3등급 이상은 확실히 해드릴테니까.”
“···오, 오십···.”
표정이 굳어가는 김유린을 보며 김세진은 결국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죠. 그 이하는 안됩니다.”
“아, 예. 저, 저도 각오오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김유린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사실 그녀의 방문 목적은 무기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무기 따위보다도 더욱 중요하고, 알아내고 싶은 것. 그것에 대한 고민과 천착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던···
“근데··· 그건 그렇고, 김세진 씨.”
갑자기 날카로워진 목소리에 세진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예?”
“저와··· 대련을 한번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32. 창해(滄海)의 왕, 레비아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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