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얽히고설킨 (2) >
미리 대략적인 정보를 전달받은 정부는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며, 세 달 뒤 11월의 하순까지 기자회견의 시일을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거기에 더해 혹시라도 있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어와 어조를 완화하여 전달해달라고.
-유백송 님과 친 새벽 국회의원 분들께서 많이 신경을 써주신 것 같습니다. 정부는 라이칸의 정보를 저들이 알아낸 것처럼 직접 발표하려고 했다는 군요.
“그래요? 어쨌든··· 알겠어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냥 무시할 줄 알았는데.”
정부의 관료들은 대개 불확실과 불안정을 싫어한다. 그래서 당장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레드문을 예측한 라이칸’이라는 이름값이 있었으니 가능했겠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한성 씨, 바쁠텐데 어서 업무 보러 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언제나 일이 생기면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김세진이 전화를 끊었다. 그때까지 그의 옆에서 지켜고 있던 유세정이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진짜 이러다가 우리나라 망하는 거 아니야?”
“···아니니까 걱정 마.”
김유손은 수 많은 보스 몬스터와, 점령된 도시들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이미 결정된 과거가 아니다. 다만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미래일 뿐.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뱀파이어들의 '살생부'까지 모조리 폭로할 예정이니 변수는널리고 널렸다.
“우리나라에 인재가 얼마나 많은데. 당장 너 만해도 최연소 중상급 기사잖아? 유린 씨보다 2년 빠른가?”
“···3년.”
그녀는 수줍게 수정하며 그의 품에 안겨왔다.
“세계적으로도 최연소인데··· 그래도 뭐. 다 오빠 덕이지.”
자신의 자랑인지 김세진의 칭찬인지 모를 말을 읊조리며, 유세정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아 맞다. 근데 오빠도 전투 되게 잘하던데? 나 깜짝 놀랐어. 오빠가 그 정도일 줄은···”
그러다 돌연 그녀가 이유모를 말을 해왔다.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뭐야? 몰랐어?”
유세정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새벽페이지에 접속했다.
“여기. 누가 오빠 두억시니한테 습격 당했을 때 CCTV 올려가지고 지금 엄청 핫한데··· 아직 기사단 커뮤니티에서만 유명해서 그런가?”
“···아?”
엄한 나라에서 세진이 습격당했다는 사건은 국내에서도 꽤나 크게 회자되었다. 미합중국 대통령이 직접 유감의 말을 건넸을 정도였으니까.
“잠깐. 근데 이거···.”
그는 조금 불안해하며 유세정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육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두억시니는 CCTV에 찍히지 않는데···
그리고 그 불안은 실제가 되었다. 화면 속의 김세진은 허공에다 대고 칼과 창을 비롯한 여러 무기들을 휘두르고 있었으니.
“아~ 그게. 상대가 없어서 조금 이상하긴 해도 그 움직임 만으로도 충분히 멋져. 엄청 멋져. 게다가 저 무기, 마나를 무기의 형상으로 응집시킨거지? 그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기사들 엄청 궁금해하고있어. 검강을 초월한 단계 아니냐면서..”
유세정은 내심 그녀도 궁금했던 듯, 눈을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특성이지.
“···그래? 어쨌든. 우리 새벽페이지에서도 엄청 칭찬하고있어. 오빠보고 재능낭비라면서 기사시험 보라는데?”
“큼. 그, 그래?”
이게 유세정만의 사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만한 찬사를 들으니 영상이 괜히 다르게 느껴졌다. 마나의 검이 겉잡을 수 없이 빠른 속력으로 허공을 베어 넘기는 모습은···.
“그럼 우리 대련 한번 해볼까?”
괜히 어깨를 으쓱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유세정은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아니 나는··· 그 대련 말고 다른 대련 하고싶은데.”
얼굴을 붉힌 채 그의 입술로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띵동-
그렇게 활시위가 당겨졌던 몸의 대련은 그러나 갑작스런 벨소리에 가로막혔고, 얼굴을 찌푸린 유세정은 거실 문까지 쿵쾅쿵쾅 걸어가 불만스레 소리쳤다.
“누구세요?!”
여태 그 누구도 들어 본적 없었던 그녀의 분노어린 고함이었다.
-깜짝··· 어··· 기, 김유린입니다만. 저··· 김세진 씨 계신가요? 이번 연예 쪽 일로문의를 드리려고···
“···”
화들짝 놀란 유세정은 김세진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재빨리 옷방으로 숨어들었다.
*
몬스터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더기로 출몰하는 일명 ‘괴이사태’와 겹쳐, 요즘 들어 기묘한 사건사고들 또한 잦아졌다.
당장 여러 기자, 마법사, 연금술사는 물론 ‘기사’들 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인적이드문 시간대에 정체불명의 사고사를 당해 사망했다.
특수경찰국은 이에 의문을 가졌으나, 증거라고 할 것이 없어 그저 괴이사태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저 김유린 씨. 듣고 있습니까? 이게 굉장히 의문이라니까요?”
그러나 김세진은 그것이 ‘살생부’로 인해 벌어진 일임을 알고 있었고, 그는 지금 연예계 관련 일로 김세진을 직접 찾아온 김유린에게 쓴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허나 그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다만 다소 우울한 낯빛으로 이제 연예계 활동은 그만하겠다고 연신 중얼거릴 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근데 이런 시국에 혼자서, 밤 늦게까지 몬스터 필드를 배회한다니요. 그건 위험할뿐더러···”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습격당한다고 해서 당하겠습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논점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프로그램을 하차하고자 하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단지 요즘 너무 연예 쪽에 집중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기사라면 본연의 목적에 집중해야겠지요. 몬스터 필드를 배회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구요. 그러니 부디 제 의사를 존중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더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하며 김유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물러갔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되냐.’
저건 딱 봐도 오크때문이다.
김유린을 떠나 보내고, 김세진은 아파오는 머리를 짓눌렀다.
“···갔어?”
하지만 고민할 틈은 없었다. 어느새 고양이처럼 은근슬쩍 나타난 유세정이 이상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덮쳐왔기 때문이었다.
**
김유린이 모든 프로그램을 하차하고서 일주일 뒤.
김세진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바다를 부유하고 있었다.
동해의 물결이 살가죽을 어루만지고, 잔잔한 바람과 내리쬐는 햇살이 몸과 마음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현재 그의 몸상태는 인간이 아닌 ‘레비아탄’.
아무 짓도 안했음에도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는 레비아탄은, 몸체가 140cm가량으로 불어나 아탄이라고 하기에 너무 거대해졌고 강함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 강함의 정도는 지금, 동해를 둥둥 떠다니는데도 하이에나같은 바다 괴수들이 덮쳐오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우우웅
그때 저 멀리서 파도가 치밀었다. 물론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고, 심심했던 김세진이 서핑을 하기 위해 물결을 잠시 지배했을 뿐이다.
파앙-! 솟아오르는 파도는 살가죽을 간질이며 찰나의 롤러코스터가 되어준다.
‘별 하나에 어머니···’
채애앵-!
그렇게 평화롭게 시를 외며 낙도(樂道)의 안락함을 만끽하고 있는데, 별안간 저 멀리 모래사장 쪽에서 날붙이와 마나의 공명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기사 세 명과 오우거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김세진은 때아닌 전장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았다.
남자 둘 여자 하나. 휘장은··· ‘고려’기사단. 요즘 들어 세진에게 가장 애걸을 해오는 기사단 중 하나다. 같은 라인이었던 새벽은 저 멀리 천상계로 올라가서 칠흑과 경쟁을 하고, 아래에서는 여러 경쟁자들이 턱밑까지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겠지
‘음?’
헌데 저 셋 중 유일한 홍일점은 김세진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은지. 기사단의 명령을 받았는지 요즘들어 계속해서 SNS, 혹은 길드를 통해 직접 연락을 해오는 여인이었다.
‘저거··· 위험하겠는데?
방금 오우거의 방망이에 기사 한 명의 검이 부러졌다.
오우거의 강함의 척도 중 하나인 ‘뿔’이 두개나 달리고 피부도 회색인 투-호른-그레이-오우거(two horn grey ogre)라는 까다로운 몬스터이기 때문일까. 전황은 꽤 아슬아슬했다. 포션의 힘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
김세진은 그런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드문드문 성장한 레비아탄 폼의 강함도 시험해 볼 겸. 살짝만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서 그 속에 마나를 모았다.
고오오오오-
벌려진 입으로 공명하며 모여드는 자연의 마나를, 오우거에게 취약한 ‘불’이라는 성질로 변화시킨다. 갑작스런 기류의 격변에 회오리가 휘몰아치고 물결 위로 거대한 파문이 일었다.
그렇게 레비아탄의 아가리에 고인 화염은 선홍빛을 자랑하며 구체의 형체로 응집되더니······ 찰나. 레비아탄은 드래곤을 닮은 열화의 브레스를 쏘아냈다.
“···쀼!”
···물론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 소리는 다소 맥빠졌지만.
어쨌든. 그의 아가리에 고인 화염은 거대한 불기둥의 형상을 그리며 쇄도했다.
해수와 대기를 불사지르는 업화, 그것은 찰나에 저 먼 곳에 도달하여 오우거의 상반신을 뒤덮었다.
“꺄악!”
“으, 으어! 뭐야!”
들끓는 고열을 발산하며 치솟은 브레스는 놈의 상반신이 순식간에 용융시켜버렸고, 그 압도적인 위력에 기사들은 물론 김세진마저도 당황했다.
'와 씨. 뭐야.'
아무리 홈 그라운드나 다름이 없는 ‘바다’위에서 쏘아냈다 한들 중상급 수준인 오우거를 녹여내다니.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는데··· 순간 겁이 날 정도였다.
“저, 저거 뭐야!”
그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정은지가 이 쪽을 가리켰다. 화들짝 놀란 김세진은 재빨리 잠수했다.
*
“···.”
세 기사는 방금 강렬한 화염을 뿜어냈던 괴생명체가 있던 방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야?”
정은지가 물었다.
“방금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는데요.”
아직까지도 어벙한 얼굴의 남기사가 대답했다.
“···그건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죠.”
“드래곤 아닐까요?”
“예?”
“아니···”
남기사가 상반신이 녹아내린 오우거 사체를 가리켰다. 쏟아져나온 불기둥은 오우거를 녹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뒤쪽의 숲 마저도 원형으로 불사질러버렸다.
“근데 드래곤이 있다 하더라도, 날아서 도망가지 잠수하진 않겠죠.”
“···그렇죠? 날개 있는 놈이 잠수하면 이상하긴 하네.”
“예. 아주 이상하죠.”
세 사람은 한동안 기이한 침묵속에서 바다의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머리를 빼꼼 내빼지는 않을까.
*
레비아탄 폼이 이토록 강력하다는 것은 하나의 수확임과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더욱 성장하면 훗날 출몰할 보스 등급의 몬스터도 가볍게 때려잡을지도 모르지만, 성장의 조건이 단지 시간의 흐름이라면 그 강함이 야기하는 본능 또한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링링링링-
그런 고민을 안고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세진에게 갑작스레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을 보니 하젤린이었다.
“네, 하젤린 씨. 무슨 일이에요?”
-아 세진 씨. 저 별건 아니에요. 그냥 저희 이번에 포션수출관련 미팅이 잡혔는데, 세진씨도 같이 참석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언제요?”
-다음주 화요일이에요.
다음주 화요일··· 그는 중얼거리며 제 스케쥴을 한번 확인해봤지만, 진세한으로서 실적을 쌓는 걸 제외하곤 스케쥴이 없었다.
“근데··· 제가 꼭 가야합니까?”
하지만 귀찮았다. 당장 지금도 몸이 3개인 채로 살고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불참해도 상관없는 자리는 최대한 피하고 싶다.
-아··· 뭐··· 안 오셔도······ 근데 오시면 좋아요. 아무래도 세진 씨가 직접 참석하시면, 그분들이 대우받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테니까요. 그러면 그 소식을 들은 다른 국가들도 저마다 지지 않기 위해 경쟁을 하겠죠? 그렇게 치킨게임을 유도하는······
그녀는 왠지 모를 다급함으로 횡설수설했다.
"뭐 그럼··· 갈게요.”
-오, 약속한거 맞죠?
“예. 그럼 그때 봅시다.”
-네. 그때 만나요.
용건은 모두 끝났다. 그러나 하젤린은 묘하게 아쉬운 한숨을 뱉어내며, 먼저 전화를 끊지 않았다.
“끊을게요?”
-······.
허나 하젤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요 근래에 하젤린은 이랬다. 이상하게 별 것 아닌 일에도 전화를 걸고, 목소리에 담긴 감정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뭐 할 말 있어요?”
-···제가 요번에 레스토랑을 갔는데요···
“끊을게요.”
-아, 잠깐만! 이거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
김세진은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