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제대로 된 시작(1) >
김유손과의 통신을 끝낸 뒤, 김세진은 유세정과 아침식사를 가졌다.
“아 맞다. 오빠, 나 엊그제 오빠랑 이상하게 닮은 사람 봤다?”
방금전의 대화가 워낙 심각했던지라 계속 머리속에서 아른거렸으나, 유세정의 입에서 나온 말도 충분히 주목을 끌 만한 문장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찔린 김세진은 그녀가 말을 하자마자 광속으로 반응했다.
“아 그게. 내가 이번 기사시험에서 대련교관을 맡았거든? 거기서 오빠를 닮은 사람을 봤어.”
“···그래?”
“응. 게다가 분명 생도인데 생도 답지않게 되게 강해서 당황했어. 아무래도 관상이란게 진짜 있나봐. 오빠도 그렇고, 그 생도도 그렇고. 되게 특이하네? 아~주 관심이 가더라고.”
유세정은 그렇게 말하고는 김세진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이건 어쩌면 질투유발이라는 행위··· 그러나 김세진은 차가운 무표정으로 수저를 내려놓을 뿐이었다.
“···왜? 또 맛없어?”
그러자 유세정이 살짝 불안해하며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괜히 닮았다니까 궁금하네. 그래서 그 생도는 어떻게 됐는데?”
“아. 나도 그 부분에서 꽤 아쉬웠어. 수료식에서 내가 직접 설득하려고도 했었거든? 근데 이미 다른 기사단을 다 깐 상태더라. 칠흑까지도. 나중에 관계자들한테 물어보니까 에덴에 자원했대.”
“그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에덴은 쓸데없이 기준만 높지 대우도 새벽에 비해서는 별로 안 좋은데··· 물론 승격시험에 에덴특혜도 있고 해서 등급은 시원시원하게 올라가겠지만, 나는 뭐하러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네.”
그녀는 알아서 술술 불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결정적인 부분을 듣지 못했다.
“···근데 정작 에덴이 떨어트리는 거 아냐?”
“뭐? 여태까지 뭘 들은거야 오빠. 나도 당황할 정도였다니까? 당연히 합격이지.”
“확실해?”
“어. 내가 아버지 통해서 직접 물어봤다니까. 탈락했으면 반 년 이따가 우리 쪽으로 꼬시려고.”
김세진은 최대한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다. 압도적인 성장세를 마음껏 표출하며 가능한한 빨리 중상급이라는 지위까지 올라가면···
“오빠, 또 나한테 집중 안했지? 무슨 생각했어? 여자 생각했지?”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요번에 하젤린 언니랑 또 어디 나간다며. 그 생각한 거 아냐?”
장난 섞인 말이었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일말의 진심과 다분한 불안이 담겨있었다.
“아니야. 그리고 그건 그냥 일이잖아. 연금술 관련해서······.”
갑자기 이상하게 뒤틀린 화제에 김세진은 때아닌 변명을 해야만 했다.
*
1주일 뒤.
유세정의 스포일러처럼, 김세진은 진세한으로서 영광스런 에덴의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과연 백금으로 만들어진 에덴의 휘장은 여타 국내 최고의 기사단의 기사들도 힐끗힐끗 시선을 돌리게 할 만한 마력이 내재해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함께 잘 해봅시다.”
서임식에서 그의 옆에는 이유린이 서있었다. 대련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한 뒤 에덴이 물건너갔다 생각하여 펑펑 울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지만, 그래도 에덴에서는 6년의 기사 아카데미 내내 오직 에덴만을 목표로 설정한 그녀의 신념을 높게 산 듯했다.
“···.”
“앞으로 만날 일 많을 텐데, 동료끼리 이렇게 말 안해도 되는 겁니까?”
이유진은 서임식 도중은 물론, 서임식이 끝나고 탑을 나오는 동안에도 연신 옆에서 쫑알쫑알 떠들어댔다.
허나 그 수다스러움도 오래 이어질 수는 없었다.
“나온다!”
3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에덴의 기사가 한 기수에 두명이나 배출되었다는 사실은 국가적 자존심을 고취시킬 만한 일이었기에?
“···뭐야 저거.”
이미 수많은 취재진들이 탑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터져나오는 플래쉬와 질문을 가장한 고함, 이유진과 김세진은 동시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분명 탑으로 들어올 때는 없었는데···.”
-두 분, 에덴의 기사가 되신 심정을 듣고 싶습니다!
-진세한 기사님은 노숙자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이유진 기사님, 예쁜 얼굴 한번만 비쳐주세요!
언제나 느끼지만, 저 마지막 질문을 한 언론사 MBS는 분명 실존하는 파리떼다.
“와. 저거 무슨..”
그 압도적인 인해에 이유진은 당황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김세진은 그녀에게 눈짓을 한번 하고는 용감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사실 용감할 것도 없었다. 이제 그에게 기자회견 따위쯤은 너무 익숙해져 일상의 한 부분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온다!”
기자의 해일이 먼저 진세한에게로 몰려들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에덴의 기사가 되어서 만족합니다.”
-목표는, 비키봐요 좀! 에덴의 기사가 되셨는데, 목표는···으악!
“목표는··· 일단 저기 깔리신 분 좀 구해주세요.”
-휴우··· 가, 감사합니다
“제 목표는 간단합니다. 육 개월 안에 ‘중상급’ 기사가 되는 것입니다.“
김세진은 가식 따위는 필요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아주 진실한, 그러나 기자들에게는 무척이나 호기로운 대답이었다.
그리고 아주 찰나. 약 1초 남짓한 시간동안 적막이 흘렀다. 허나 곧바로 플래쉬 세례가 터졌다. 그들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벌써부터 최대한 자극적인 기사의 제목을 생각해 놓았다.
에덴의 기사는 등급적인 면에서 혜택을 많이 받는다. 일단 에덴에 입단했다는 것 자체가 실력과 재능적인 면에서 뛰어나다는 뜻이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작 6개월 만에 중상급 기사? 어떤 역대급 재능과 특성을 지닌 기사도 그런 것은 이뤄내지 못한다.
-하하. 무척 대단하네요. 그 이후는요? 세계 최고의 기사? 아니면 기사왕?
“일년 안에 상급기사가 되야겠지요. 아. 여기서 일 년은 육 개월에 더해진 일 년 육 개월이 아니라, 그냥 일 년입니다.”
기자들의 비아냥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대답, 그럴수록 플래쉬와 질문 세례는 더욱 격해져만 갔다.
“워후.”
그리고 진세한에게 관심이 집중된 틈을 타, 이유진은 무사히 인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유진아~”
그러자 성격답게 저 멀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윤종이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뭐야. 기다리고 있었냐? 니도 진짜 시간낭비 많이 한다, 인마.”
입가에 드리운 환한 미소와는 다소 솔직하지 않은 태도로, 이유진은 자신과 키가 비슷한 고윤종과 어깨동무를 했다.
“가자. 에덴 된 기념으로 밥 비싼걸로다가 사줄게.”
*
[에덴의 기사가 된 진세한, 일년 안에 세계 최고의 기사가 되는 것이 목표···]
[일년 안에 상급을 넘어선 고위기사까지? 호기로운 에덴의 신입기사.]
이튿날 이런 기사가 터졌다.
그리고 모든 기사단의 기사들은 분개했다.
“···이거 미친놈 아니냐?”
“미친놈 플러스 도둑놈이지.”
그들에게 기사란 꽃피는 10대를 노력이라는 미명으로 희생하여 이뤄낸 업적이나다름이 없다. 허나, 여태 한 번도 노력을 하지 않은 노숙자였던 놈이, 고작 특성 하나 잘 얻었다고 기사를 우습게 봐?
“실력도 없는 놈이··· 걔 언제 우리기사단 안 오나?”
보통 에덴의 기사는 전국의 기사단과 합의된 ‘범(汎)기사’라 하여 여러 기사단을 제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다. 물론 아주 기본적인 구내식당이나 대련장, 훈련장 같은에 한해서지만, 때로는 임무도 같이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오면, 대련으로 조져야지.”
그렇게 이들 새벽기사단 뿐만 아니라 전국 수 많은 기사들의 뒷담화를 당하고 있는 장본인, 김세진-진세한-은 그러나 몹시 여유롭게 출동을 나선 상황이었다.
마치 하늘을 구르듯 지축을 박차고 도약하여 당도한 강원도의 변방.
?크어어어!
목표는 ‘학교 앞’이라는 페인트가 칠해진 도로 위에서 난동을 부리는 트롤 형제. 놈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는 모르나, 지금의 그에게는 단지 일용할 실적사항일 뿐이었다.
“꺄아아악!”
“으아악!”
하교하던 학생들은 트롤의 출몰에 앞다투어 도망갔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몇몇 여학생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것이 꿈이기를 바랄 뿐.
“흐어어어엉···.”
다친 발목을 매만지며 서럽게 흐느끼는 여학생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녀는 힐끗 뜬 실눈으로 높게 치켜세워진 트롤의 흉악한 팔을 확인했다. 그 이상의생각은 불가능했다. 다만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질 뿐···
콰아아앙-!
거대한 파공음이 도로를 진동시켰다.
그리고, 높게 치켜세워진 트롤의 팔이 흐느적거리며 무너져내렸다.
쿵-
대지로 주저앉은 한 기의 트롤, 눈을 꼭 감은 채 바들바들 떨던 여학생은 뭔가 의아함을 느끼고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곳에는 한 남자의 등이 있었다. 너무나도 넓고 단단하여, 순간 마음의 평화를 되찾게 되는, 그런 등이었다.
“아···.”
여학생이 나지막한 감탄을 하자, 남자가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여자들에게 마이너스 요소인 기다란 턱수염마저도 지금의 학생에게는 그저 서양 모델, 아니 한 폭의그림이었을 따름이다.
“도망가라.”
간단하고 묵직한 음성, 뒤이어 그는 아직 하나 남은 트롤을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 격전적인 태세에 트롤 마저도 긴장한 듯 짐짓 거센 포효를 내지른다.
-크어어!
허나 김세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전력을 다해 한 발 크게 딛어, 놈을 향해 탄환처럼 쇄도할 뿐······
-크아아아!
트롤은 주먹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거대한 주먹과, 상대적으로 나약한 권골이 맞닿았다.
허나 승자는 압도적이었다.
권골에 맞닿은 트롤의 손과 팔은 마치 두부처럼 힘없이 분쇄되어갔다. 단 일격으로 인해 한쪽 팔을 잃은 트롤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뒤이어 쏘아지는 정권에심장이 꿰뚫려 절명했다.
“···.”
“···.”
비명으로 시끄러웠던 도로는 어느덧 고요해지고, 모든 시민들은 멍하니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큼···.”
그러나 남자는 그 관심집중이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다시금 크게 도약하여 어딘가로 빠르게 사라질 뿐이었다.
마치 한낱의 신기루처럼. 이 모든 광경은 1분이 채 되지 않는 찰나에 끝이났다.
*
김유손이 꾼 꿈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기 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하지않았다.
김세진이 기사신분으로 처음 몬스터를 격퇴하고 2주일이 지난 시점.
신문과 뉴스의 머리기사는 온통 ‘몬스터 습격 사건’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전국방방곡곡, 인구가 밀집된 도심부터 한적한 시골까지. 하루 평균 40건의 몬스터 출몰사건, 그리고 하루 평균 300여명의 사상자 발생.
이 기이한 현상을 두고 민중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혼란 속에서는 영웅이 태어나는 법.
[이번에도 에덴의 기사 ‘진세한’? 강원도 도심에 출몰한 중급 오우거를 혼자서 단독처치.]
[새로운 영웅의 출현··· 노숙자 출신 기사, 진사한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
그들은 때아닌 영웅의 출현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직 단 하나, ‘권골(拳骨)’만으로 모든 몬스터를 일격에 초전박살내는 전례없는마초적 전투스타일. 거기에 더해 노숙자 출신이라는 절절한 스토리텔링과, 노숙자였으면서도 돈을 좇지 않고 에덴을 선택한 신념이라는 극적인 인물.
거의 모든 언론은 이 모든 요소들을 절묘하게 버무렸고, 활동을 시작한 지 3주일 정도가 더 지나니 진세한은 요즘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기사가 되어있었다.
비록 여전히 숱한 기사들은 과거 거만한 인터뷰로 진세한을 재단하고 ‘만들어진 영웅’ 이라며 성토하듯 비난하는 실정이지만.
어쨌든. 그의 명성과 인기는 날로 드높아졌고, 그 독특한 전투스타일에 기사 아카데미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투 영상을 저희 기사아카데미에서 조금 사용하고 싶습니다만··· 괜찮으신지요. 아, 물론 라이센스비는 내겠습니다.”
에덴은 범(汎)기사단이라 하여 일어나는 모든 몬스터 사태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권리가 있다는 것은 곧 져야할 의무도 있다는 뜻. 진세한은 에덴 간부의 요청에 따라 기사아카데미의 관계자라는 인물을 만나야만 했다.
“···영상이요?”
“예. 진세한 기사님 고유의 전투스타일이 나름대로의 효용이 있고, 현재 알맞은 인기까지 얻어가고 계시니··· 기사님이 전투하는 영상을 교육에 활용하면 긍정적인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라이선스 수입도 있습니다. 저희가 수업이 아닌 강의식이라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거든요. 학부형들은 시류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으신데, 요즘 진세한 기사님의 인기를 보면··· 아마 수입이 아주 대단할겁니다.”
진세한은 별 대수로운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자신 덕에 무투에 소질이 있는 어린 생도가 재능을 꽃피우게 된다면 그건 마냥 기분좋은 일이니까. 물론 자신은 ‘무기 마스터리’에 포함되는 ‘권골’이라는 보너스를 받고 있는거긴 하지만···따라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충분히 따라할 수 있겠지.
“예, 뭐. 그러죠.”
“오!”
그러나 관계자가 품은 생각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진세한의 흔쾌한 승낙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여타 기사들은 등급이 높을수록 자신의 전투영상 공개를 무척 꺼려한다. 이유야 당연히 자신의 약점과 치부가 드러날 수 있고, 뭐가 됐든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한다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테니.
허나 진세한은 승낙했다. 오직 자신만 유니크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건도 없이 아주 흔쾌히. 여기까지만 해도 감사할 지경인데··· 뒤이어 들려온 말에관계자는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라이선스는 필요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은 넘칠 듯이 많으니까. 죽을 때까지 있는 돈도 다 못쓰고 갈 지경인데···
“그냥 제 강의를 아예 무료로 하시거나, 아니면 생도들에게 장학금 형식으로 돌려주거나 하세요.”
“······.”
관계자는 말을 잃었다.
그는 오늘 뼈저리게 느꼈다. 턱수염과 콧수염, 선이 굵은 인상을 위시로 한 험악함은 단지 겉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남자의 내면에는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그래. 마치 성녀의 자애로움이···.
“그럼 이만.”
진세한은 관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본주의를 탐식했던 자신은 도대체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가. 관계자는 자신을반성하며,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30. 제대로 된 시작(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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