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84화 (84/174)

< 24. 전야 (3) >

[라이칸슬로프로 진화하시겠습니까?]

아탄이 폼의 김세진은 천장에 아른거리는 상태창을 바라보며 욕조 위를 동동 떠다니고 있다.

라이칸슬로프.

최초의 목표였으나, 이제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버린 계륵.

"끼잉···."

라이칸슬로프로 진화하는 것이 저어되는 가장 큰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 인간과 늑대폼이 합쳐짐에 따라 야기될 가능성이 높을 ‘외면의 변화’.

지금까지는 늑대의 본성이 옮아옴에 따라 ‘인간 김세진’의 외면을 유지한 채 특정이목구비만 선이 굵게 변모하였지만, 라이칸이 된다면 그 외면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여러 사회적 관계를 맺고있는 지금. 만약 진화를 했다가 지금의 김세진과 너무나도 판이한 외모가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겪을 수 있는 재앙 중 가장 최악이다.

그리도 두 번째 문제는 라이칸슬로프의 본성.

전설 속 라이칸슬로프는 그 앞과 뒤를 가리지 않는 흉악한 본성으로도 유명하다. 수인의 한 분파임에도 같은 종족에게 ‘말하는 몬스터’라는 취급을 받을 정도로.

그 본능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인간 김세진이 무력의 발전은 물론. 기력, 즉 ‘인간의 정신력’ 또한 틈틈이 계발시켜야만 한다.

“쀼쀼-“

세진은 입으로 물총을 쏘아 보냈다. 물길은 직선형의 궤적을 그리며, 상태창이 아른거리는 천장을 강타했다.

물론, 이 ‘아탄이’를 진화시키는 것도 라이칸슬로프와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탄이의 진화가 품은 위험부담은 다른 방법보다 훨씬 막심하다.

지금쯤 광활한 대서양을 유영하거나, 혹은 깊이 잠수하여 숙면을 취하고 있을 괴수 레비아탄을 떠올려 보라.

시간의 흐름, 바다의 물결, 내리쬐는 태양. 자연의 만물과 세상의 섭리 그 자체가 힘의 근원이 되는 이 괴마의 등급은 ‘규정불가’. 바다의 드래곤이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과거 레비아탄이 서울 한강에 출몰했을 당시에 김유린이 어느정도 활약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사실 소환된 레비아탄은 그 위력이 급감하기 때문. 만약 레비아탄이 술법 따위 없이 그 본신이 직접 서울 한복판에 도래했었다면··· 아마 그 날로 서울은통째로 내려앉았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몸이 좀 많이 커졌네.’

그렇게 레비아탄에 관련된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체감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분에 닿을수록 점차 강성해지는 성장형 몬스터이기 때문일까. 욕조가 예전보다 확연히 작아져 있었다.

“끙.”

그것이 괜히 꺼림칙했던 세진은 재빨리 인간폼으로 변화하여 욕조를 빠져나왔다.

시계를 힐끗 보니 오전 11시, 곧 있으면 훈련을 하는 시간이었다.

*

레드문이 끝난 이후부터 쭈욱- 김세진은 자신을 발전시킬 단련과 훈련을 계속했다.

레드문을 겪으면서 오크 대전사의 본능이 막심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라이칸슬로프로의 진화를 의식해서였다.

검술훈련은 쉬웠다. 무기 마스터리에서 ‘고급자 등급’에 이른 그의 검술을 능히 당해낼 수 있는 자는 기사 중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

그들은 세진을 저마다 검술의 천재라 치켜세우며, 중세시대 태어났으면 최고의 검사가 되었을 거라 감탄했다.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무술’ 또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전사의 특질]은 ‘몸은 어떻게 다뤄야 효율적인지’에 대한 본능을 선사해 주었는지, 낙법, 보법, 권법 등등··· 수 많은 무도법(武道法)들이 이미 몸 속에 내재되어 있었다.

신체적인 부분은 완벽하니 남은 문제점은 오직 하나, ‘마나’였다.

마나는 조기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싹수가 파래도 골든타임이라는 5~6살의 시기를 넘기면 평생 마나를 몸 안에 담아둘 수 없다고 여겨질 정도이니 만큼, 20대 중반으로 달려가는 김세진에게는 -비록 특질로써 마나를 부릴 수는 있더라도- 마나를 몸안에 담아 둔다는 개념은 너무 어려웠다.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막연했고, 아침안개처럼 모호하고 희미했다.

그리고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김세진은 A급 마법사라는 딱지도 동시에 달고있는 하젤린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응낙하여, 매달 둘째 주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2회씩, ‘마나교습’이라는 스케쥴이 생기게 되었다.

“눈을 감고 마나를 받아들이세요. 슈욱?슈욱?”

단원 전용 훈련실 내부. 김세진은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반복하고 있다.

가용마나량을 늘리기 위한 마나교육의 일환이었다.

“슈욱?슈욱?“

“그렇게 계속 슈욱? 슈욱? 반복하세요.“

“···이걸로 되는 건가요?”

그러나 세진으로서는 의심이 컸다. 근 30분동안 하는 거라곤 슈욱- 슈욱- 밖에 없었으니.

“일단 하라면 하세요. 세진 씨의 마나친화력이 얼만큼 되는건지 테스트하는 거니까요.”

허나 하젤린은 단호했다.

“···그래요? 그렇다면야···. 슈욱~ 슈욱.”

세진은 다시금 명상 비스무리한 호흡을 계속했다.

그렇게 수십 번 정도를 반복했을까, 드디어 하젤린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만을 알렸다.

“됐어요. 호흡에서 묻어나오는 마나 농도는 중하급 기사 수준이시네요.”

“예?”

그는 순간 당황했다. 아무리 ‘마력’과 ‘마나친화력’의 능력치가 여타 신체능력치에 비해서는 낮다 하더라도, 이건 예상보다 너무 낮은 수준이 아닌가. 적어도 중급은 될 줄 알았는데···.

“···그 표정은 뭐예요? 상급 사냥꾼은 평생 노력해도 하급기사 수준의 마나도 못 갖춰요. 그러니까 중하급 기사정도면 아주 높은 거라는 뜻.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훈련으로 돌입하겠습니다?”

하젤린은 그렇게 말하며, 세진이 준비하기도 전에 마법을 발동시켰다.

“왁!”

순간 위압적인 마나의 기류가 발생하여, 앉아있는 세진의 몸 전체를 육중하게 짓눌렀다.

“그 상태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거예요, 알겠죠? 힘들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미 마나교육을 할 시기를 놓쳐도 너무 놓친 세진 씨가 유일하게 마나량을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거든요.”

갑작스런 압력에 세진이 끅끅- 대기만 할 뿐 어떤 말도 못하자, 그녀는 일단 마나를 갈무리했다.

“잘 들어봐요. 이곳은 아탄이와 마나의 샘 덕분에 마나농도가 굉장히 높지요? 그리고 또 제가 마법으로 공기중의 마나를 압축하여 세진 씨에게 쏟아 부을 거예요. 그러니까 세진 씨는 잠시나마, 온몸으로 대기 속 마나의 사랑을 받게 된다 이 말이겠지요?”

하젤린은 방긋 웃으며 팔을 빙글빙글 휘저었다. 마법을 발동하기 전 예열동작 같았기에, 세진은 살짝 긴장했다.

“그 상황에서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면 모공이 열리고, 그 모공을 통해 마나가 체내로 들어가겠지요? 또 근육이 움직일수록 마나가 더 잘 스며들겠고요. 물론 그중 99%는 다시 몸 밖으로 빠져나가겠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이나마 가용마나량이 늘어나긴 할거예요. 그럼 이제, 옷 벗으세요.”

“예? 옷은 왜··· 요?”

세진이 두 팔로 제 가슴을 감싸며 짐짓 가련한 척을 하자, 하젤린은 이맛살을 강하게 찌푸렸다.

“장난하지 말아요. 한 겹이라도 더 벗어야 마나가 더 잘 스며든다구요. 천쪼가리가 덧대지면 공기가 잘 못스미잖아요. 차이가 꽤 커요.”

“···그렇긴 하겠지만···.”

“빨리요. 선생님 말 안 들으면 화냅니다? 저는 세진씨가 부탁해서 기껏 와줬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곤란하다구요? A급 마법사 교습비용이 얼만지는 아세요?”

그는 떨떠름해하며 일단 트레이닝복 상의의 지퍼를 내렸다.

“···바지도요?”

“···그건 봐 드릴 테니까 일단 티까지 마저 벗어요.”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세진은 티까지 벗었다. 균형이 잘 잡힌, 튼실한 실전근육이 꿈틀거리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흠. 흐흠.”

하젤린은 그 넓게 벌어진 어깨와 튼실한 가슴근육, 선명한 복근과 치골을 차례로 훑어보고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여, 역시 특성 덕분인가 몸은 좋으시네.”

부러 평범하게 말했으나, 사실 그의 몸은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었다.

‘마법사의 눈’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평생동안 육체를 단련한 기사들도 가지기 힘든 ‘완벽에 가까운 몸’이다.

분명 체내를 순환하는 마나의 양은 적지만, 마나의 ‘질’이 상당히 높다.

“···큼.”

“뭐해요? 어서 준비 안하고?”

부끄러워하던 김세진은 하젤린의 말에 퍼뜩 팔굽혀펴기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안 그래도 선명했던 어깨와 등허리의 근육이 더욱 강하게 도드라진다. 하젤린은 애써 고개를 돌렸지만, 그래도 여자인지라 눈이 힐끔힐끔 돌아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마법 쓸게요. 최대한 열심히 해보세요.”

“네.. 끄어!”

이번에도 또 준비할 틈없이 압도적인 기압이 세진의 등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악물고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고작 10초 했을 뿐인데 팔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땀방울이 바닥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하나.”

횟수는 하젤린이 대신 세주었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게 하나인지 둘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기도 싫었다.

“씨...바”

입밖으로 세어 나오는 단어라곤 욕설뿐이었다.

“욕하지 마요.”

“끄윽···.”

그 욕설을 힐끗 들은 하젤린은 마법의 강도를 강하게 했다.

“자. 다시 둘. 둘은 언제 되나요? 한 시간정도 기다려야 할까요?”

“···끄으으···.”

그녀의 비아냥을 들으며. 세진은 힘을 냈다.

*

[‘마력’능력치가 2만큼, ‘마나친화력’이 1만큼 상승합니다.]

훈련의 결과물이었다.

김세진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바닥에 엎드려 숨을 몰아 쉬었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 정도면 중급 마나석 수십개는 흡수해야 가능한 상승폭이었으니. 역시 하젤린에게 도움을 요청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

허나 정작 그를 성장케 도와줬던 하젤린은 사뭇 복잡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마나가 그의 몸에 정착해버렸다.

사실 이 방법은 그저 부수적인, 한계가 명확한 훈련법이다. ‘키’로 말하자면, 모든성장이 다 끝난 상황에서 뼈의 교정을 통해 ‘숨어있던 키’를 찾아내는 것과 일맥상통.

‘..근데 무슨 몸이 이렇게 탐욕스러워?’

보통 대기에 함유된 마나의 50%가 몸속으로 스며들고, 그중 99%가 다시금 밖으로 빠져나가 몸에 남는 건 고작 0.5% 뿐이어야 한다. 허나 김세진의 신체를 들여다보니, 무려 25%이상의 마나가 그 몸속에 정착해 있었다. 아니, ‘붙잡혔다’. 그의 체내에 상주하던 원래 마나에 의해.

‘특성 때문이겠지?’

허나 무슨 특성인지는 감도 잡히지가 않는다. 만약 이런식으로 한계없이 마나가 계속해서 그의 몸에 정착한다면, 1년이면 자신의 마나량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세진 씨. 몸은 괜찮아요?”

“아. 예 물론이죠 선생님.”

“성과가 좋죠? 일단··· 일어나요. 밥먹으러 가죠.”

하젤린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건넸다. 세진은 만족스러워하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오빠, 나왔어···?”

때마침 유세정이 훈련실로 도착했다.

세정은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는 김세진과, 방금 화들짝 놀라 재빨리 로브를 뒤집어 쓴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 일찍 왔네?”

약속했던 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김세진은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으며, 약간 망연한 표정으로 유세정을 바라보았다.

*

“추적이 완료되었습니다. 인조심장의 현위치는 강원도 몬스터필드 근처의 도시, ‘더 몬스터’의 부지 내부였습니다.”

“···곤란하군. 라이칸과 친분이 있다는 단체장이 가지고 있는 건가?”

부하의 말에 사도 베렌이 낭패섞인 말을 읊조렸다.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베렌은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꼭 되찾아야 하는 물건이, 예상보다 거물의 손에 들어가 있다니.

“···어떻게 할까요.”

라이칸과의 친분, 단체 더 몬스터의 장(長)이라는 직함. 김세진이라는 사내는 ‘바토리의 사도’로서도 망설이게 되는 거물이었다.

“일단··· 감시라도 해두어라. 라이칸이 곁에서 보호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꼭두각시들을 이용해라.”

“예. 알겠습니다.”

부하의 짧은 말이 텅 빈방 안을 울렸다.

< 24. 전야 (3)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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