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83화 (83/174)

< 24. 전야 (2) >

늦은 밤. 김세진은 인조심장을 시용해보기 위해, 단체 중심사옥의 지하에 위치한 훈련실로 내려갔다.

“길드장님?”

허나 등 뒤에서 있어선 안될 목소리가 들려와,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는 재빨리 품속에 인조심장을 쑤셔 넣고서 짐짓 태연하게 뒤돌았다.

“···큼. 주지혁 기사님. 아직도 안 돌아가셨어요?”

“아, 예. 환경이 워낙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훈련하다 깜빡 잠에 들어버렸습니다.”

주지혁이 숙직실을 가리키며 멋쩍게 뒷목을 긁었다.

“아, 그래요? 근데 새벽도 환경 좋기로 유명하지 않나?”

“네. 그렇긴 한데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이 훈련장에는 그 아탄이가 각각 효과별로 무려 3개씩이나 비치되어 있으니···. 12시간동안 내리 훈련을 해도, 쌓이는 피로는 새벽에서 6시간 한 것보다 적습니다.”

세진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즈음 단원들이-무려 김유린까지- 자기 기사단 훈련실을 내팽개치고 단체 훈련실에 오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그게 또 소문이 나서, 새벽페이지에서는 한번이라도 견학하고 싶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하하하.”

주지혁이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렇군요.”

“예. 그럼 저는 이만 집으로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길드장님.”

어느새 단원이나 직원들이 세진을 부르는 호칭은 단체장에서 길드장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더 몬스터가 길드로 승격한 건 아니다. 오히려 숱한 견제 탓에, 전년도 심사에서는 순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빠꾸를 먹었다. 그럼에도 단원이나 직원들이 자신을 길드장이라 부르는 건 아마 소속감 혹은 자부심 때문일 테고.

“아.. 예. 수고하세요.”

그리고 세진은 그 호칭이 마음에 들었다.

“예!”

주지혁을 보낸 그는 다시금 품에서 인조심장을 꺼냈다. 손바닥 크기만한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모양새는 여전히 그로테스크하다.

“···이거 어떻게 못하나.”

활용도가 높다 하여도 이렇게 혐오스러우면 실전에 활용을 할 수 없다.

‘부피를 줄이면 목걸이나 반지같은 액세사리 형식으로 어떻게든 커버될 것 같은데.‘

그러나 일단의 고민은 차치해두고, 세진은 심장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기록된 마법은 총 스물 세가지, 그 중에 지금 여기서 사용할 만한 건···.

“결계부터.”

그렇게 읊조린 순간. 그가 딛고있는 대지에서 흑색 파동이 원형으로 퍼져나가며 훈련실 안을 까맣게 물들였다.

“···오.”

그는 살짝 감탄했다. 이제 여기에다 마나석을 재료로 소모하면, 그 당시 동굴결계처럼 여러가지 효과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혹한이라던가, 마나사용불능이라던가.

“흠. 괜찮군.”

그가 심장 내부의 마나를 모두 끄집어내자, 결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젠···.”

공격마법을 한번 시험해보자. 그때 그 빌어먹을 인형 놈이 제 심장을 꿰뚫을 때 사용했던 ‘섬전’부터.

* * * *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결론적으로, 레드문은 대한민국 한정 ‘호재’였다.

몬스터의 등급이 뒤섞인 이유는 지반이 어긋났기 때문이었는데, 이번 레드문에 의해 수많은 몬스터들이 도심 쪽으로 진군하다가 방어병력에 의해 전사했다. 그렇게 해서 몬스터 필드는 텅텅 비게 되었고, 정부는 몬스터 등급의 구역을 다시 나눌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모두 레드문의 덕택이었다.

그리고 몬스터 필드의 등급을 나누는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몬스터 방산기업 ‘TM’사에서 심사를 요청한 ‘등급 구획기기’가 기존 회사의 그것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정부에서는 TM사의 기기를 채택하기로 했다.

여기서 예전에 구획기기를 설치·관리했었던 기존 회사가 꽤 더러운 방법으로 저항을 했으나, TM사의 뒷배는 ‘새벽’이라는 거물이었기에 아주 손쉽게 무마되었다.

이 일을 두고 기사들은 부패와 청탁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던 기업이 패배한 것을 통쾌해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레드문이 종식된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몬스터 필드는 다시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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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영웅 오크의 서식지입니다. 오크를 자극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만약 오크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을 할 시, 불이익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This is the habitat of hero orcs. Please be care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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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몬스터 필드에 사냥하러 온 김세진은 중급지대의 귀퉁이에 있는 영웅오크의 부락지를 들렸다가 이 팻말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라에서 설치한건가? 싶었으나 팻말 구석에 조심스럽게 새겨진 칠흑기사단의 인장이 이것이 누가 설치했는지를 어렴풋이 알려주었다.

“···지극정성이네.”

세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요즘도 일주일에 2~3번 꼴로는 찾아온다고 듣기는 했지만···.

─쿠르왈-!

그때. 등 뒤로 게걸스러운 짖음이 들려왔다. 그는 별 생각없이 태연히 돌아섰다.

몬스터가 하나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족보행하는 거대한 들개의 형상, 전신이 흑색 금속으로 둘러싸인 ‘아이언 놀’이었다.

─콰왈타톼!

놀은 침을 폭포수처럼 내뱉으며 다분히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세진은 그저 가만히 응시하며 한 손에 마나를 방출시켰다.

그 마나는 위이잉- 공명하며 손바닥 위로 퍼져오르더니, 이내 짧지만 예리한, 푸른색 단검으로 변모했다.

‘마나지체’의 숙련도가 꽤나 올라, 이제 이 정도 짧은 무기는 마나로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강도나 밀도는 상위금속보다는 떨어지지만, 이건 나름대로의 활용법이 존재한다.

그 이후는 본능-혹은 스킬-에 기록된 대로였다.

그는 단검을 움켜쥐고서, 놀을 향해 투척한다. 제 손을 떠난 날붙이는 푸른 궤적을 그리며 놈의 미간에 처박혔다.

─쿠왈!

보통사람 같았으면 즉사했을 치명상이었으나 놀의 몸은 꽤나 단단했다. 하지만, 이 단검의 역할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놀은 분기탱천하여 제 미간에 꽂힌 단검을 빼내려 했다. 허나 놀이 단검을 부여잡은 순간, 그것은 다시 마나로 화(化)하여 그 미간에 생긴 틈새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놀의 머릿속으로 스민 마나는 세진의 의지를 충실히 따라,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되었다.

─끅!

놈은 노성도 내지르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타죽었다.

이것이 세진이 새로 고안해낸 마나지체의 활용법.

어쩌면 필살(必殺)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 방법은 모든 몬스터에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중상급 몬스터 이상만 되어도 기사들처럼 ‘마나표피’라 하여 피부와 근육에 마나가 진득하니 젖어있어, 아직 이정도 숙련도로는 그 표피를 뚫어낼 수 없다.

중급, 그 중에서도 저 아이언 놀처럼 내실을 다지지 않고 외실에 집중한 놈에게나통하는, 아직까지는 일종의 ‘묘기’나 다름이 없는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렇게 시시한 사냥을 마친 세진은 남은 마나량을 확인해보았다. 거진 절반 이상이 증발하여 있었다. 역시, 마나소모가 너무 심하다. 그냥 검으로 베어 죽일 걸.

“야! 저기있···?”

때마침 세 명으로 이뤄진 일행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무래도 원래 놀을 쫓던 파티인 듯했다.

“뭐야?”

남자 둘,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파티.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언 놀을 내려다보며 잠시 어리둥절했다. 겉보기에는 외상이 하나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

그러나 그들은 곧 낭패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 놈을 추적하고, 함정으로 유도하느라 무려 3시간 동안의 노력을 쏟았다. 말 그대로 이놈이 오늘치 일당의 전부였는데···

“···어?”

개중 얼굴이 가장 일그러졌던 여성 사냥꾼은, 그러나 놀의 뒤쪽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남자를 발견하곤 낮은 탄성을 내질렀다.

더 몬스터의 단체장 김세진.

큰 키와 남자다운 얼굴, 요즈음 커뮤니티나 카페, SNS 등지에서 대단히 유명한 남자다. 당장 자신만 해도 그의 400만 팔로워 중 한 명일 정도니.

뒤이어 다른 일행도 그를 알아보게 되었고, 세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저, 안녕하세요. 그··· 김세진 님 맞으시죠?”

“아. 예. 반갑습니다.”

김세진은 긴장하는 그들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요즈음은 워낙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생판 모르는-그러나 그들은 나를 아는- 사람을 대하는 것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그··· 사, 사냥 나오셨나봐요?”

“네. 그렇긴 한데, 이 놀은 예정에 없었어요. 갑자기 튀어나오더군요.”

“아, 그게 사실···.”

사냥꾼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이언 놀은 그 단단한 표피 탓에 중급 중에서는 꽤나 강한 축에 드는 몬스터이고, 그만큼 부산물이 비싸다. 그래서 아이언 놀을 먼저 발견한 자신들은 꼬박 세 시간동안 함정을 파고 놀을 유도했으나, 한참 쫓아오던 놈은 별안간 코를 킁킁대더니 방향을 급선회하여 어딘가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아하.”

내 냄새 때문이구나. 김세진은 납득했다.

“그러시구나. 그럼 그냥 가져가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그는 사체를 가리키며 흔쾌히 사체를 넘겼다. 어차피 이제 마나석 흡수도 한계에 맞닿은 것인지, 중급 쯤은 흡수해도 고작 소수점단위밖에 안 오른다.

“저, 정말요?!”

파티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네. 가져가세요.”

김세진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에 사냥꾼들은 감동한 표정으로 허리를 90도로 한 4번정도 숙이더니, 실례가 안된다면 사진을 좀··· 을 요청했다.

김세진은 그것 또한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들은 갑작스레 만난 친절한 유명인에 몹시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일이 있고서 정확히 세 시간 뒤, 이제 퇴근하려는 세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유세정이었다.

─오빠, 누가 SNS에 오빠 내용 올려가지고 지금 기사로 떴어.

"···어?"

─근데 미담이라서 지금 다 오빠 칭찬하고 있어. 한번 봐봐요.

"크흠."

유명인의 삶이란··· 별일이 다 기사화 되는구나. 그는 괜히 가련한 척을 하며 뉴스창을 들어갔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승천할 듯 걸려있었다.

*

어느새 햇볕이 쨍쨍해지고, 쌀쌀함은 먼 옛적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김세진은 야외를 거닐며, 여름이라는 계절이 물씬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충분히 테마파크 같네.”

이제는 일선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김세진이었으나, 그는 소여진의 요청에 따라 단체부지를 함께 거닐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이 근방은 몬스터 필드와 너무 가까운-채 40km도 떨어져 있지 않다-터라, 기사, 마법사는 많았어도 일반인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아이와 함께 놀러온 부모들과 데이트를 나온 연인,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유동인구가 참 많아졌다.

“이만 봐도 되겠는데요?”

“네? 아직 호텔이랑 영화관 같은 편의시설은 잔뜩 남아있는데요? 거기도 사람 무지 많아요.”

소여진이 저 멀리 늘어선 건물단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김세진은 그저 설핏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해요. 근데 그건 그렇고, 사람이 진짜 많네요?”

“그렇죠? 요즘 한창 세정씨와 유린씨가 함께하는 예능촬영도 이곳에서 해서 그런지, 전년 대비 유동인구가 4배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요. 조금만 더 성장하면 아덴의 탑이 있는 도심지와도 비슷해질 것 같아요. 저희가 이 부근의 땅값을 올리는 장본인이라니까요~”

소여진의 말에는 자부심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그래요?”

“네. 역시, 무리를 해서라도 부지를 넓힌 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어요. 순수 시세차익만 엄청나게······”

그는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이 땅과 건물이 다 자신의 소유라는 것이 행복했다.

“아 맞다. 제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오크 대장장이의 특별전.

두 달 전 레드문의 밤, 몬스터 웨이브가 꽤 널널했던 사흘째.

세진은 레드문의 영향으로 전체적인 능력이 2할 가까이 상승한 상태로, 오크의 단조기술을 사용하여 무기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눈이 부실정도의 역작이 되었다.

오크 대전사의 역량으로 만들 수 있는 무기 중에서는 단연 최고봉. 당당하게 ‘보물’이라는 등위에 등극한 롱 소드. 이름은 아직 ‘오크의 롱소드’밖에는 안되나, 이걸내놓는 순간 오크 대장장이는 ‘명인’이 되어 이 검에 새로운 이름을 지을 수 있겠지.

“예. 그럼요. 이미 홈페이지와 길드 SNS를 통해 홍보와 광고를 했어요. 세정 씨와 유정 씨도 예능에서 언급을 하기도 해서, 많은 기사들이 기대하는 눈치예요.”

김세진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오크 대장장이는 세 달 가까이 새로운 무기를 안 내놓고 있다 하여, 공약파기다 뭐다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라고 말하는 순간 모두 합죽이가 되겠지.

“네. 근데 오크 대장장이는 경매형식으로 팔까 생각중인 것 같던데, 여진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몬스터의 등장과 마법, 연금술의 신비함으로 말미암아 인플레이션이 나날이 심해지는 요즘. 이 보물은 얼마만큼의 금액으로 팔릴까.

“경매요? 그럼 다른 나라에서 사갈지도 모르는데···.”

오크 대장장이는 과거 명품을 타국에 판매했다고 많은 욕을 들어먹었다. 헌데 이건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문자 그대로 ‘문화재’ 수준의 무기. 만약 그 무기가 타국으로 팔려갔을 시에는 어떤 재앙이 펼쳐질 지···. 소여진은 조심스러웠다.

“오크가 요청한 거예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명성을 전세계적으로 넓히는게 낫다면서. 아직 세계최고의 대장장이는 헤파이토스라면서요? 그 이름 때게 만들어야죠.안그래요?”

김세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 24. 전야 (2)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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