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준비 (3) >
벌컥 열린 연회장의 대문 사이로 한 사내가 등장했다.
큰 키와 다부진 체격에 어울리는 정갈하고 장려한 정장, 남자다운 이목구비가 돋보이도록 깔끔하게 위로 올린 머리. 날카로운 눈매와 얼굴형은 한 마리의 늑대를 연상시킨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이내 유세정을 발견하곤, 그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씩 다가올 때 마다, 유세정의 양 볼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세정아."
마침내 유세정의 발치에 멈춰선 김세진, 그는 그녀와 마주하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 좀 늦었지?”
매력적인 중저음이 연회장을 울리고, 유세정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끝난건가?”
“예? 아.. 아니에요. 아직 안 끝났어요···.”
유세정은 그와 1년 이상을 알고 지내왔으면서도,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오늘 이 남자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멋져서,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 수 밖에 없었다.
“오호, 당신이 그 유명한 김세진 님이군요?”
두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김종혁이 세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는 ‘대현전자’의 이사 김종혁이라고 합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김세진입니다”
김세진은 악수를 하며 그의 심성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 순간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김종혁이라는 남자에게서는 너무나도 탁한 암기가 풍겨졌다. 이토록 짙은 암흑은 처음이었다.
“하하하. 실제로 보니, 화면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멋지시군요.”
김종혁이 뭐라뭐라 씨부렸으나, 김세진은 굳이 그와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를 무시하고서 유세정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어~ 이거이거, 대현기업의 삼남이 아니신가.”
“오, 장관님이 아니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자꾸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김종혁을 핑계-징검다리삼아 다가와서는, 김세진의 호감을 사기 위해 입에 발린 말을 건넸다.
그러나 유유상종인지 아니면 근묵자흑인지, 그들의 심성은 모두 하나같이 악(惡)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 있었다. 물론 김종혁만큼 악한 심성을 지닌 사람은 없었지만.
“이 분이 그 김세진 씨인가? 안녕하시오. 나는 내무부 장관···.”
“예, 안녕하십니까. 근데 옆에 분은 누구시죠?”
어느샌가 바글바글한 사람들의 중심이 된 세진, 그는 방금 자신을 장관이라 소개했던 남자의 비서를 가리켰다. 악인의 옆에 있기에는 너무 착하고 재능도 뛰어난 사내였기에.
“아, 김호형이라고. 내 비서인데, 일을 뭐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야. 그냥 오랫동안 내 집에서 일했던 가정부 아들인데, 앞길 책임져준다는 명목으로 같이 가고 있지.”
이름모를 장관이 그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리자,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따라서 웃었다. 모조리 가식적인 웃음이었다.
김세진은 도저히 이곳에 오래 있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유세정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도 그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아. 근데 저 머리가 조금 아프군요.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김세진이 짐짓 머리를 문지르며 연기를 했다.
“하하, 확실히 그럴만도 하지. 요즘 더 몬스터가 안 끼는 곳이 없으니까 말이야. 각하께서도 언급을 하셨을 정도니까.”
“혹시 각하라면···.”
“대통령님이지 누구겠는가!”
저들끼리 웃고 떠드는 속에서, 김세진은 안주머니를 뒤적여 번쩍이는 물체를 하나 꺼냈다.
[더 몬스터 단체장 김세진]이라는 문자가 음각된 명함, 그러나 결코 평범한 명함은 아니다. 무려 순금을 아주 얇게 펴서 만들었기에, 하나 당 거진 70만원은 가벼이넘길 만큼 값비싸다.
단지 허세를 부리기 위함은 아니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또는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만 명함을 주기로 마음먹고서 만든 것이다.
“오호? 그게 뭔가?”
그 명함을 발견한 장관의 눈에는 어느새 탐욕이라는 이채가 서려있었다.
“명함입니다.”
“아하. 그게 그 명함이구료. 나도 신문에서는 조금 봤지. 아무한테나 주는 물건이아니라더니만··· 근데 그거 진짜로 순금이오?”
장관은 당연히 자신이 받을 것이라 착각을 한 듯,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네. 순금입니다.”
주변사람들이 감탄사를 내지르며 명함을 응시했다.
그리고 장관은 괜히 헛기침도 하고, 넥타이의 매무새도 가다듬으며 그 명함이 자신의 손에 쥐어지기를 고대했다.
“부럽습니다, 장관님.”
김종혁이 가식적인 미소로 장관의 비위를 살폈다. 장관 또한 호쾌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허허허. 역시 요즘 가장 뛰어난 젊은이답게, 사람 보는 눈이 있구먼.”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김세진은 장관이 아닌,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의 비서에게 명함을 건넸을 따름이다.
“이름이 뭡니까?”
“···예, 예?”
“이름. 혹시 명함 있으세요?”
“아··· 김호형이라고 합니다. 그 며, 명함은 없습니다만···”
김세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명함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나중에 연락하세요.”
그렇게 한마디를 남긴 채.
김세진은 고작 20분 만에 연회장을 나섰다.
“···.”
장관은 그 뒷모습을 멍하니 좇다가, 김호형의 손에 쥐어진 순금명함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어떤 의미가 담긴 눈빛인지는 알아챌 만 했으나, 호형은 그 명함을 슬그머니 자신의 정장 품 속에 집어넣었다.
“저 가정부 아들놈이···.”
장관은 그런 그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이 이상의 화를 표출할 수는 없었다.
*
연회장에서 나온 김세진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어느새 뒤따라온 유세정의 아련한 눈길을 져버릴 수 없었다.
“뭐,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
“나는 오빠 집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
그는 자동차의 핸들을 움켜쥔 채 그녀를 노려보았다.
“왜요? 나 어차피 드레스 차림이라 쪽팔려서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유세정이 제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 새하얀 속살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 김세진은 일단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3시간 03분 59초.
허나 이제 3시간만 지나면 자정이 되어 시간이 초기화된다.
그 말인즉 시간은 충분하다는 뜻.
“이제 저 성년식도 한 성인인데··· 그냥 저녁만 같이 먹어요.”
유세정은 김세진이 고민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
“와. 깔끔하고 좋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김세진의 집에 입성하게 된 유세정,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집 내부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말하는데, 잠은 너네 집에 가서 자야된다.”
“아, 알았다니까요. 무슨 내가 신데렐라도 아니고··· 자정지나면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야.”
그녀는 세진을 한번 흘겨보고선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푹신푹신하네. 오빠 뭐해? 불편하게 있지 말고 여기 앉아요.”
유세정이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김세진은 약간 어기적거리며 다가갔다.
“짜자잔-“
그가 앉자마자, 그녀는 차에 타기 전부터 들고왔던 종이백을 자랑스레 꺼내들었다.
“그게 뭔데?”
“양주요.”
“···어?”
순간 김세진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유세정은 더욱 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그렇게 난데없는 음주가 시작된 지 한 시간, 도수가 57도에 달하는 양주 한 병은 벌써 동이 나버렸다.
“···오빠는 진짜 너무한 것 같아. 오빠, 내가 왜 성년식 1월 1일에 하기로 했는지 알아요?”
얼굴이 붉어진 유세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나 마셔댔는지, 숨결에서 알코올의 향기가 다분했다.
“오빠도 알죠? 내가 오빠가 좋아 하는거. 모를리가 없지, 모를 리가 없어··· 나, 오빠가 맨날 성인 성인 노래를 부르길래 성년식을 1월 1일···.”
“이제 집에 가라. 데려다 줄게.”
"내 말 끝까지 들어요. 나도 내가 왜 오빠를 좋아하게 됐는지는 잘··· 꺅!"
김세진이 그녀의 손에 들린 잔을 뺏었다. 그녀는 짜증난다는 듯 주먹 쥔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살짝 가격했다.
“씨! 집에 안 갈 거야. 평생 여기서 살 거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게 짜증나서라도 여기서 살거야.”
“···후.”
이번에는 김세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은 안된다. 지금 당장 보내야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된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나 진짜 오빠가 해달라는거 다 해줬는데. 도와달라는거 다 해줬는데. 내가 그 동안 아빠랑 할아버지한테 얼마나 졸랐는지 모르지? 오빠, 나 없었으면··· 읏."
“가자.”
그가 유세정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별다른 저항없이 그에게 이끌렸다.
그렇게 거실을 지나 차가운 복도,
“오빠.”
등 뒤에서 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김세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유세정이 온 힘을 다해 세진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곤 그의 목에 자신의 두 팔을 두르더니···.
“······끙.”
입맞춤을 하려했다.
하지만 키가 모자랐다.
185와 160. 25cm는 결코 여자의 까치발로는 닿을 수 없는 차이였다.
“···씨이.”
회심의 반격이었는데. 울상이 된 유세정은 울먹이면서, 어쩔 수 없이 그의 목에다가 자신의 입을 맞췄다.
"알죠···? 나, 오빠 많이 좋아하는 거. 그러니까··· 오빠도 나 좋아해주면 안돼요?"
그리곤 간절하고 애틋한 고백이 이어졌다.
"오빠는 아직 아니어도 괜찮아요. 나, 기다릴 수 있으니까."
물기어린 눈빛에 담긴 감정은 너무나도 애절했다.
그 다음은 김세진의 차례였다.
이성이 반쯤 날라간 그는 유세정의 뒷목을 강하게 붙잡고서, 그녀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랑을 교류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너무나도 거칠어, 그저 욕구를 해소한다는 형언이 알맞을 정도.
“읍···.으읍···.”
김세진의 억센 손길에 드레스의 자락이 찢겨 나갔다.
유세정은 그의 갑작스런 돌변이 무서웠다.
“오빠, 잠깐···. 으읍!”
하지만 그는 집요했다. 그의 설육이 자신의 입 속을 유린하듯 헤집고, 손은 자신의 온몸을 거칠게 더듬는다.
유세정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겁이 났다.
물론 거부하고자 한다면 거부할 수 있다. 마나는 알코올을 몰아내는 효과도 있으니. 그러나, 그렇게 해서 만약 김세진이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면···
그녀는 그게 겁이 났다.
“아···.”
그리고 그 눈물 덕택에 김세진은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거칠게 찢겨나간 드레스의 조각조각들과, 거의 반쯤 옷이 벗겨진 유세정.
“···미안.”
그는 머리를 감싸쥐며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런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를 집에 들여버렸다.
헌데, 그럼에도 빌어먹을 몬스터의 본능탓을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가엾고 찌질했다.
“..아니. 나는 그게···”
그에 당황한 건 오히려 유세정이었다.
그녀는 괴로워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다가가 그 다부진 등을 껴안았다.
"저는 괜찮아요."
김세진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냥 깜짝 놀라서 그래요."
유세정이 그의 허리를 더욱 진하게 감쌌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갈게요. 이거 하나만 알아두고, 내일 다시 얘기해요. 아. 꼭 내일이 아니어도 돼요. 언제든 준비가 될 때."
허리에 감긴 팔이 스르륵 풀렸다.
"저는 오빠를 아주 좋아해요. 이런 감정, 난생 처음이에요."
그녀는 가장 중요한 고백을 남겨두고서, 김세진의 집을 나섰다.
*
이틀 뒤.
“무사(武士)의 타입에는 교본형과 감각형, 둘로 나뉩니다.”
더 몬스터의 훈련실 내부. 김세진은 칠흑기사단에서 초빙된 기사에게서 개인강습을 받고 있다.
“교본형은 말 그대로 교본에 충실하여 정석적인 무술을 구사하는 타입입니다. 이러한 무술에는 많은 유파가 있습니다만, 현재에는 김현석 칠흑기사단장님의 특성으로부터 탄생한 현서(賢壻)파가 가장 뛰어나다고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강력한 기사와의 진지한 대련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의 숙련도와 성장을선사했기에, 인간으로서의 역량과 스킬의 숙련도를 동시에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유파를 따르는 대표적인 기사는 고위기사 김유린님, 그리고 저. 상급기사 진이한이 있지요.”
자신을 진이한이라 소개한 상급기사가 자랑스레 말했다.
“또한 감각형은 말 그대로 자신의 감각대로, 본능과 센스를 십분 활용하는 타입을 뜻합니다. 이 부문에서는 새벽 기사단장 유수혁 님이 단연 돋보이시지요. 이혜린중상급기사에게 들어보니, 김세진 단체장님은 이 감각형인 듯 하더군요.”
김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패시브 스킬의 덕이지만, 일단 자신이 구사하는 무기술의 베이스는 본능과 직감대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니.
“그럼 일단 가벼운 실력테스트부터 해보겠습니다.”
진이한은 연습용 검면을 손가락으로 쓰윽 훑고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연습용 무기일 뿐인데, 거진 상품에 가까운 수준이 아닌가.
“···혹시 이거, 연습용 무기라면 제가 딱 하나만 가져가도 될까요?”
“예? 아, 예. 마음대로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진이한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이제 전력을 다해 오시지요.”
*
비무(比武)는 꽤나 격렬하게 진행되었으나, 마지막은 간단했다.
쏴아아아-
진이한의 마지막 검격이 날카로운 선풍을 일으키며 세진의 검을 두 동강내고, 그는 그 충격파에 의해 노면을 나뒹굴었다. 명확한 격의 차이. 역시, 상급기사는 달랐다.
“대단하시군요.”
“아니요, 그건 오히려 제가 하고싶은 말입니다.”
진이한이 엎어진 김세진에게 다가가 손을 건넸다. 패배하긴 했지만, 세진은 만족스러워하며 그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전사의 특질- 숙련도 98.99%]
이번 대련으로 인해 무려 3%의 숙련도가 올랐기 때문이다.
“이 정도 감각이면, 마나를 다루지 못하시더라도 충분히 중급기사까지는 이겨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진이한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이 정도면 '레드문'이 뜨기 전에 전사의 특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슨 효과가 더해질 지는 가늠도 되지 않지만, 어쨌든 도움은 확실히 되겠지.
"아, 저기 유세정 씨가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진이한이 훈련장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유세정이 있었다.
*
이튿날. 이른 오전부터 TV 뉴스에서 급보를 쏟아냈다.
-레드문의 징조가 포착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사흘 뒤에는······.
‘레드문’이 발현될 징조가 포착되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레드문.
말 그대로 달에 핏빛이 스며드는 현상. 현대과학도 아직까지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레드문은 5~6년의 주기로 지구에 닥쳐오는 하나의 ‘재앙’이다정체모를 원인에 의해 붉어진 보름달이 비추는 달빛은, 몬스터의 공격성과 위력을 평소보다 강력하게 증폭시킨다.
그렇기에 이 레드문이 발현되는 일주일 동안은 전세계적으로 비상상태가 선포되고, 기사는 물론 사냥꾼과 마법사까지 모두 국가의 통솔을 받으며 이 사태에 대비해야만 한다.
헌데 다른 누구보다 특히 김세진에게만큼은, 레드문은 재앙을 넘어선 대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레드문의 징조를 발견했다며 제보한 사람도 김세진 본인이다.
-최초제보자는 전설적인 용병 ‘라이칸’으로, 투명한 햇볕에서 일어난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국방부에 알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전 세계적인 위협을 미연에 알아챈 라이칸을 칭송하며···.
때마침 앵커가 그것과 관련된 얘기를 했다. [라이칸의 명성이 치솟았습니다]라는상태창이 떠오른 듯한 착각이 일었다.
어쨌든, 김세진이 이 레드문의 세계최초 제보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경고: 늑대의 눈썰미가 레드문의 징조를 발견했습니다! (레드문의 영향 아래에는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평소의 10%로 줄어듭니다.)]
이 상태창 덕분이다.
레드문이 발현되는 동안엔 인간이 될 수 있는 시간이 10%로 줄어든다는 것은 곧,하루에 겨우 45분만을 인간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뜻. 인간 사회속에서 살아가기에는 엄청난 리스크다.
그래서 세진은 결정을 내렸다.
차라리 강원도의 몬스터 필드에서 생활하며 성장을 도모함과 동시에, 금강산 근처의 뱀파이어 은신지까지 조사하는게 나을 것 같다고.
“식수, 통조림, 포션, 야영텐트······.”
그는 확장주머니에 레드문이 지속되는 동안의 노숙을 버텨낼 수 있게 해줄 준비물을 쑤셔넣었다.
이미 단체일은 조한성에게 임시위임을 해 놓았고, 어찌어찌 그때의 키스로 인해 관계가 이상해진 유세정에게는··· 어떻게든 둘러대는데 성공했다.
“됐다. 으쌰!”
세진은 거진 총합 300kg 이상의 물건들 들어간 확장주머니를 들쳐 메고서, 집을 나섰다.
< 22. 준비 (3)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