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새로운 시작점 (3) >
또 다시 찾아온 몬스터 필드, 김세진은 흉악한 힘을 담아 대호의 머리에 메이스를내리쳤다.
콰아아앙-!
그 가공할 만한 일격은 굉연한 굉음을 내며,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다는 대호의 머리통이 움푹 함몰시켰다.
“그으으으···.”
검치대호는 정수리를 가격당했음에도 연신 발톱을 휘두르며 김세진을 위협했지만, 그건 잠시 일 뿐. 놈은 곧 나비처럼 비틀거리다가 노면 위로 쓰러졌다.
김세진은 놈에게 다가가 이빨을 뽑아 주머니에 넣고, 심장은 흡수를 했다.
[액티브 스킬-검치대호의 기운] [등급 F]
- 소모한 체력과 마나를 순간적으로 회복합니다. 하지만 회복된 체력과 마나는 10분 뒤에 소멸되고, 시전자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옵니다.
막바지에 얻은 성과는 꽤 만족스러웠기에, 김세진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등을 돌린 순간.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오크 재규어 두 마리의 얼굴이 그의 시야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크어!”
그 그로테스크한 형상에 놀란 세진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단지 비명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취하고 있는 몬스터 폼이 문제였다.
뜻밖의 강자 검치대호는 늑대폼으로는 상대하기에 벅찬 포식자였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오크 대전사폼을 취해야만 했었다.
부르르르-
그 탓일까. 그가 내지른 비명은 천둥보다 웅장한 사자후가 되어 산세를 진동시켰다.
“구우구우!”
그에 앞서 있던 오크 재규어들이 황급히 엎드렸다. 그리곤 마치 절을 하는 듯한 행위를 반복한다.
“···뭔.”
상황이지.
김세진은 한참동안이나 요상한 두 오크를 쳐다보았다.
‘아. 설마?’
그러다 그의 머릿속에서 전구가 반짝이고, 이 기이한 상황을 확실히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이 도출되었다.
오크는 보통 자기보다 강한 ‘동족’에게 종속되고자 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자신은 어쩌면 몬스터 필드의 모든 오크를 굴복시킬 수 있을 만한 강자다.
게다가 방금 전, 자신은 대호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던 이 놈들을 구해주지 않았던가. 물론 스킬에 눈이 멀어서였지만, 어쨌든. 충분히 이 오크들이 자신에게 반할(?)만한 상황이 맞긴 했다.
“···알았으니까 가라.”
납득한 세진은 손을 내저으며 두 오크를 보내고 갈 길을 가려 했다.
하지만 두 오크 재규어는 계속해서 세진을 따라왔다. 그가 힐끗힐끗 뒤 돌아 볼 때면 예의 초롱초롱한 눈빛도 잊지 않았다.
그러기를 20분.
‘왠지 측은하네.’
지금 자신이 오크 폼이기 때문일까. 괜히 이 두 연놈의 오크가 불쌍해졌다.
무장을 보아하니 그래도 중급 쪽의 부족에서 살던 놈인 것 같은데··· 아마 지반이 뒤틀린 탓에 본래 머물던 부락을 상실한 것이겠지.
게다가, 몬스터의 등급까지 뒤섞여버린 몬스터필드에 이런 소수의 오크들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확률은 몹시 낮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해도 될정도.
“후.”
김세진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이미 까마득한 어둠속에 파묻혔다. 어쩔 수 없다, 이들을 보살피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는가.
그는 다시 고개를 내려 두 오크를 바라보았다.
“···어휴.”
자세히 보니 얼굴이 참 정감가게 생겼다.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왜 이렇게 흉측하게 생긴 놈들이 귀여워 보이는지는 스스로도 모를 노릇이지만.
“키워 두면 언젠가 도움은 되겠지.”
결국 김세진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인간이 아닌 몬스터 폼이라면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따라와라.”
그는 나지막이 읊조리고서, 두 명의 오크를 데리고 새로운 부락을 건설할 지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
뒤쪽에는 가파르게 융기한 절벽이 있어 방어가 용이하고, 멀지 않은 곳에 시냇물이 흘러 식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
김세진은 이 천혜의 지세에 부락을 짓기로 결정을 내렸다.
허나 그 전에, 일단 각인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잘 봐라.”
김세진은 두 오크를 앞에 세워 두고 자신의 각기 다른 폼을 보여주었다. 인간, 고블린, 늑대인간. 아탄이는 뺐다.
“으헝!”
놈들은 김세진의 형체가 변할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지만, 그래도 ‘포식자’와 ‘향기’를 비롯한 여러 특성 탓에 대들지 않고 복종했다.
그렇게 각인작업을 끝마친 세진은 오크의 단조를 이용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작했다. 능력의 등급이 B-등급에 다다른 덕에, 세진 자신도 놀랄 정도로 간단하고 효율적이었다.
토양의 성질을 바꾸어, 특정 위치에 강철보다 강도가 단단한 목책이 솟아오르게 한다. 또한 그렇게 솟아오른 목책에는 ‘피해반사’의 성질을 부가. 그러면 이 목책에 당도한 몬스터는 자기가 자기를 상처 입히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죽어가겠지.
그렇게 7시간, 오크의 부락은 아침 해가 밝아올 때쯤 완성되었다.
‘번식은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오크는 발정기때마다 교미를 하고, 한 달에 열 이상의 자식을 낳는다고 들었다.
고작 두개체가 부족을 꾸리게 된다면 훗날 근친으로 인한 위험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오크는 가족을 가리지 않는 몬스터이니 그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어찌어찌 제대로 끝냈네.”
뜻 밖의 노동을 끝내고 흘리는 땀은 상쾌했다. 그는 저 멀리서 멍하니 자신을 지켜보는 오크들을 한번 눈에 담고서 떠나려 했다.
‘아. 그 전에.’
하마터면 깜빡할 뻔. 그는 두 오크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의념을 흘려 보냈다. 과거 머핀이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의미의 의념이었다.
‘사람은 너희의 친구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그들이 생명을 위협한다면 비록 싸우기는 할지라도 절대 죽이지는 말아라. 자식교육도 단단히 하고······.’
나중에 필요할 때 갑자기 사람이랑 싸우면 안되니, 오크에게 사람을 해하지 말라는 행동원리를 단단히 심어 준다. 물론 사람이라는 카테고리에 흡혈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오크들의 마음속 깊이 의념까지 새겨 두고서, 김세진은 발걸음을 움직였다.
“···.”
하지만 자꾸 눈에 밟혀 발이 쉬이 떼어지지 않았다.
단지 부족만 만들어 주고 니네가 알아서 살아나가라, 하다 가는 당장 내일 죽어버릴 것 같았으니.
“···후.”
세진은 결국 다시 몸을 돌렸다.
그는 한 시간의 시간을 더 소비해 오크들의 해진 무기를 명품에 준하게 탈바꿈해서 쥐어주고, 자신의 피를 이용한 마력문신까지 여러 개 새겨주었다.
근력과 민첩 등을 비롯한 신체능력을 증진시켜주는 문신과 영웅오크와 동류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레비아탄의 비늘’까지.
물론 레비아탄의 비늘은 등급이 무지하게 격하된 채 적용되어 비늘따윈 없이 단지 피부만 조금 파래진 정도지만, 그래도 파란 오크라 하면 모든 사람들은 영웅오크와 연관이 있을거라 추측하겠지. 그럼 자연스레 공격도 덜 할테고.
‘여기까지 해줬으면, 알아서 쑥쑥 커서 훗날 내 도움이 돼라.’
이게 마지막 의념.
김세진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감동하는 오크를 등 뒤로 남겨둔 채, 쉽게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였다.
***
그렇게 두 마리의 오크와 이상한 인연을 쌓은 뒤로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김세진은 유세정이 촬영한 ‘기사들의 전원주택’ 방영 일 하루 전, 단체 부지 내에 건설한 ‘몬스터 아티팩트(Monster Artifact) 상점’을 개장했다.
일단 내놓은 아티팩트는 고작 8개에 불과하지만 그 가격대가 하나같이 어마어마했다. 제일 값싼 머리핀이 100억일 정도니···.
당연하게도 개장 당일에는 이 아티팩트 상점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들의 전원주택’이 방영되자,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기술팀도 놀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이 일었다.
그러나 막상 ‘유세정 목걸이가 뭔가요’하고 문의해왔던 사람들은 그 가격대를 확인하고는 기함하며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사람들 중에는 손철준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충 몇 백, 최고 몇 천이라 생각했을 뿐인 그 목걸이는.
[전사의 영혼 (Soul of Warrior)]
[품절 ? 15,000,000,000KRW]
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표가 붙어있었으니까.
이 어마어마한 가격을 목도한 사람들은 목걸이가 뭐 이렇게 비싸냐고 투덜거렸지만 김세진이 그 범상치 않은 효능을 밝히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사와 마법사들이 달려들었다. 더 몬스터에 비치된 아티펙트는모두 현장판매, 예약 방문이었기에, 거진 100여명의 기사 · 마법사가 더 몬스터로 찾아와 대기표를 뽑아갔다.
“어때요?”
그렇게 폭풍같았던 이틀이 지나고. 유세정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단체장실을 찾아왔다.
“오구, 세정이 왔어?”
세진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유세정은 그 애정이 잔뜩 묻어나오는 손길을 기분 좋게 만끽했다.
“나는 안 피하네? 그 손철준은 기민하게 피하던데.”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그녀가 손철준과 요리를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방영 분 중에서도 꽤나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자신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유세정의 태도, 그리고 손철준이 모기잡는 시늉을 하는 모습.
“당연하죠··· 오빠는 아저씨랑 완전 다르니까···. 아, 맞다. 그리고 오빠.”
유세정은 갑자기 가방을 뒤적이더니, 봉투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음? 이게 뭐야?”
그리곤 방긋 미소를 짓는다.
“내 성인식 초대장.”
“···음?”
그 예상외의 대답에 김세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인이라면 보통 성인식은 굳이 하지 않고, 한다 하더라도 성년의 날 혹은 자기 생일에 맞춰서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너 생일 4월 20일 아니야?”
허나 유세정의 생일은 아직 반년 가까이 남아있다. 김세진은 그걸 염두에 두고 한말이었으나, 그녀는 별안간 깊은 감동을 받은 표정이 되었다.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뭐···.”
어제 본 예능프로에서 네 생일이 몇 월 며칠인지 나왔으니까.
하지만 그는 굳이 그걸 언급함으로써 산통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반년이나 남은거잖아. 왜 벌써부터 주는 건데?”
“아··· 그게 생일이 아니라 1월 1일에 하기로 했어. 원래 생일날 하기로 했는데···그냥 내가 빨리하고 싶다고 졸랐거든. 어쨌든. 꼭 와야 해?”
유세정이 결연한 표정으로 세진의 손을 꼭 잡았다. 제 딴 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알았어.”
그 얼굴이 터지기 직전까지 붉어졌을 때, 세진이 조심스레 손을 빼고서 초대장을 품 안에 넣었다.
“아 맞다 그리고. 우리 단원은 뽑은 거예요?”
“응. 이제 발표만 남았어.”
김세진이 점찍은 인물로는 김유손의 아들과 이혜린. 두 명뿐. 의도는 하지 않았지만, 뽑을만한 사람만 뽑다보니 거진 2000:1에 달하는 극악의 경쟁률이 되어버렸다.
“누군데~? 나도 알려줘요~”
유세정은 세진의 몸에 제 어깨를 비벼대며 교태를 부렸다. 별로 비밀은 아니니 김세진은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이혜린 기사님?”
“어, 너도 알지?”
순간 유세정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허나 김세진이 마음에 든다는 투로 말하자,그녀는 애써 억지미소를 지었다.
“아.. 응. 알지. 좋네. 실력도 좋고. 잘 뽑았네···.”
그녀는 가슴에서부터 치미는 씁쓸함을 꾹꾹 눌렀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괜히 여기서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그가 속 좁은 여자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허나 그 사실을 모르는 김세진은 속 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10월 27일. 더 몬스터 공채 최종 합격자가 발표되었고, 일순 전세계가 동시에 들끓었다.
그리고 합격자에게는 사람들의 극렬한 관심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왔다.
세간의 관심에 익숙한 이혜린은 괜찮았으나, 김유손의 아들 김선호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기사를 퇴직하고 용병으로 전향한 특별한 스토리까지 있었던 탓에 기자들이특히 들쑤셔댔고, 결국 그는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단체 사옥의 숙직실에 잠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와. 대박. 이거 뭐야? 단체장님, 이거 봐요~”
그 난리통이 여전히 현재 진행중인 주말 오후. 훈련을 끝내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와중, 이혜린이 호들갑을 떨며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야 주지혁. 너도 봐.”
“···뭔데?”
이혜린의 옆에 앉아있던 주지혁이 괜히 얼굴을 붉히며 핸드폰 위로 투사되는 영상에 집중했다.
네 명의 중급기사가 지반탐사를 하는 와중 몬스터에 포위당하는 위험에 빠진다. 그런데 어디선가 온몸이 시퍼런 오크 두 마리가 나타나 그들을 도와 몬스터들을 함께 격파한다. 그렇게 전투가 끝나자 오크는 기사들에게 식수까지 선물해주고서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러니까, 이 영상의 주인공은··· 아마도 두 마리의 파란 오크.
“···어.”
그 모든 장면 하나하나는 김세진의 입 속에 있던 음식물이 튀어나오게 만들기 충분했다.
“신기하죠? 이거, 그 영웅오크의 부족원이라면서 우리 칠흑 커뮤니티에 돌고 있는 영상이에요. 아직은 신입공채 때문에 묻혀있지만, 나중에 엄청 크게 난리날 것 같지 않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이혜린의 웃음기 가득한 모습에, 김세진은 억지로 억지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 21. 새로운 시작점 (3)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