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69화 (69/174)

< 20. 사구 (5) >

2주 전.

‘더 몬스터’는 뜨거운 화두가 되어 10월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김세진은 신입단원을 뽑기 위해 홈페이지에 관련내용을 올리고 SNS를 통해 광고했다. 총 250명까지 가입할 수 있는 단체에 (직원 제외)고작 6명밖에-그마저도 김세진이 세명분을 하고 있다- 가입되어 있지 않은 건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 비밀리에 단원을 섭외하는 여타 다른 B등급 이상 단체와는 달리, 공개적으로 단원을 뽑겠다는 더 몬스터의 공지에 홈페이지가 잠시 마비되었고, 뉴스에서도 그 사실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그 소식에 당장 새벽페이지를 비롯한 기사단 커뮤니티에서도 대난리가 나서, 같은 기사단의 기사들은 서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여서 회의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의 기간동안 지원한 국내는 물론 국외의 기사, 사냥꾼, 마법사의 머릿수는 무려 3000. 다른 직업까지 합치면 물경 사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였다.

헌데 그 중에선 세진을 살짝 불안하게 만드는 지원자도 있었다.

‘김유손’, 용병의 선술집 주인장이자 자신을 라이칸이라는 전설적 용병으로 둔갑시킨 장본인.

‘알고 있을까?’

김유손의 특성은 꿈과 인물에 관련되어 있다. 꿈속에서는 잠시 특정한 인물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그 말은 즉··· 김유손은 김세진이 라이칸임을 알고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

“흠···.”

하지만 오히려 불안하기에 자신이 품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직접 대면하지만 않았다 뿐이지 신뢰도는 확실. 애초에 그가 박쥐같은 사람이었다면, 특수경찰국에서 쑤시고 들어온 즉시 모든 사실을 불었을 테니까.

게다가 김유손은 이미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위해 꽤나 치밀하게 노력해왔다. 과거 이름 없는 A등급 용병이었던 자신의 임무기록과 라이칸의 임무기록을 짜맞춰, 특수경찰국이 라이칸을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의심이 아닌 확신을 얻게 만들었을 정도로.

-단체장 님. 김유손 이라는 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여보낼까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김세진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들여보내세요.”

그는 얼마간의 긴장을 한 채 김유손을 맞이했다.

*

“···그럼 꽤 오래전 부터 알고계셨던거네요?”

김세진의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김유손은 약 삼 개월 전. 그러니까 그가 한창 괴물오크로 난리를 피울 때부터 그의 정체를 알아챘다고 한다. 아니, 알아챘다기 보다는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욱 옳겠지.

“예. 라이칸이 단체장님이라는 사실은··· 어느 순간 알아지게 되더군요.”

“그것 이외에도 말이죠?”

“···예.”

그동안 김유손은 많은 착각을 했다고 한다. 어느때는 오크의 시점에서, 어느때는 늑대, 인간의 시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꿈.

갑작스레 몬스터의 꿈을 꾸었기에 처음에는 특성이 성장했나?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알게 된 계기는 김세진이 괴물오크 폼으로 수 많은 시민을 구했을 때라고.

“이것 참. 부끄럽네.”

그러나 늑대의 동공으로 엿보이는 김유손에게는 어떠한 악한 의도도 없었다. 애당초 악한 의도가 있었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즉시 협박을 하거나 했겠지.

“그 사실이 알려져도 괜찮으신겁니까?”

막상 불안이 현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다. 어차피 평생동안 영원히 비밀이 유지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언제까지고 비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뇨 그런 건 아니죠 당연히. 제 치명적인 아킬러스건인데··· 흠. 어쩔 수 없네요.”

“···예?”

세진의 말에 순간 김유손이 몸을 흠칫 떨었다. 중년의 사내는 그의 말을 마치 폐기선언이라고 생각한 듯.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려 했다.

“저랑 평생 함께 가셔야겠네.”

그러나 김세진은 그저 웃으며 손을 건넬 뿐이었다.

"···아.. 하하. 예. 감사합니다."

그 날. 김유손이 주인장으로 있는 새로운 ‘용병의 선술집’이 더 몬스터 단체의 부지 내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 * *

B-등급 단체가 되니 할 일이 많아졌다. 법인설립이니, 사업허가니, 신입 단원 선발이니 뭐니 하면서.

그 탓에 세진은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단체일에 할애해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적인 일로 사람을 만나는 게 소홀해졌다.

“사람들 뽑는 거. 꼭 오빠가 직접 봐야되는 거야?”

그래서 유세정은 할아버지의 체벌이 끝난 이후로, 퇴근 후에 단체장실을 찾아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곳이 아니면 김세진이 만나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 어차피 남은 건 100명밖에 안 되잖아.”

“흠··· 나도 도와줄 수 있는데.”

“100명이면 30분이면 끝나. 그리고 중급밖에 안 되면서 뭘.”

“아 진짜. 또 무시하네. 최연소 중급이랑 그냥 중급은 다른거라니까.”

유세정이 짐짓 퉁명스레 미간을 좁혔다. 그는 그녀의 불만을 그저 웃어넘기며 마지막 결재를 완료했다. 지원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건 내일부터 시작이기에 이걸로 모든 업무가 끝.

“저 오빠.”

유세정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오늘도 시간 안 돼?”

매일 매일. 그녀는 세진과 같이 무언가를 하고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남은 시간을 살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그녀와 함께하기에는 너무 촉박하다.

“아니, 뭐 별로 어디로 놀러가는 거 없이. 그냥··· 오빠 집에 가서 놀아도 되고···.”

그 기색을 눈치챈 유세정이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녀의 수줍은 모습은 가슴에 응어리진 음심이 동하기에 충분했으나, 세진은 가까스로 참아내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 어린 애가 무슨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온다고. 지하 훈련장에서 훈련이나 열심히 하고 있어.”

그는 유세정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서 단체장실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몬스터 필드. 지반 자체가 뒤틀린 탓에 일반인은 물론 등급이 낮은 기사들의 출입까지 엄격하게 통제되었으나, 김세진은 그곳에서 해야할 일이 있었다.

“음?”

헌데 갑자기 유세정이 성큼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아챘다.

고개를 돌아본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꽉 다물린 입술과, 어느새 촉촉해진 눈가.

유세정은 한숨을 깊게 한번 내쉬고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 가는데? 나도 같이 가면 안돼?”

“···어. 안 돼.”

그러나 세진은 단호했다.

물론. 언젠가부터 그녀가 품게 된 감정. 그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챌 수 있었다.

퇴근하면 항상 자신을 만나러 오고, 헤어지고 나서는 잠에 들기 전까지 문자를 보내온다. 애틋한 감정이 없다면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왜요. 왜 맨날 나는 안 되는데.”

“너는 어리잖아.”

평생 여자와 깊은 관계따위를 가져본 적이 없는 세진은 단지 이런 변명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자신의 이 빌어먹을 특성에 대해서 솔직히 말할 수도 있다. 이미 김유손도 자신의 실체를 모두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김유손이 아니다. 유세정이라는 여인은 김세진이라는 남자가 엮어낸 귀한 인연 중 하나이기에 너무나도 꺼려졌다.

그녀가 몬스터로 변하는 자신을 두고 혹시라도 품을 수 있는 오해, 공포, 두려움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에게 이러한 감정을 품게 된 이유는··· 몬스터의 스킬 때문이지, 결코 그녀 스스로 키워나간 감정이 아니다.

그녀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할지.

몬스터의 본성은 그런 건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외쳤지만, 그러나 인간 김세진은 아직 어리고 여린 그녀를 상처입히기 싫었다.

“너무···.”

그러나 유세정은 그 이유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어리다는 이유로 계속 뒤로 내뺄거면 그동안 왜 스킨십을 하며 여지를 줬는지.

그녀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어장관리냐고, 근데 나는 물고기 치고는 너무 큰 대어 아니냐고, 소리라도 크게 한번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알았어요.”

이런 자신이 너무 처량하고 초라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미움받고 싶지가 않았다.

* * *

“끄허어어···.”

맨티코어가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흑색늑대, 김세진은 사체가 된 놈의 심장을 향해 손톱을 쑤셔 넣었다.

[맨티코어의 마나석 흡수]

-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패시브스킬 ‘인면구조’를 습득합니다.

[인면구조] [등급F]

- 등급이 오르면,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몬스터도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건 뭐야?’

몬스터필드로 진입하자마자 처음 맞닥뜨린 몬스터는 이미 한 번 전투경험이 있는맨티코어였다. 그때에는 정신이 없어 마나석을 흡수하는 것도 잊었었기에, 잘 만났다 싶어 달려들었다.

몸 속에 영체가 되어 스며든 '명품'의 힘으로 생각보다 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지만.

‘스킬이 왜 이렇게 쓰레기야?’

놈으로부터 얻은 스킬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세진이 ‘흡수’를 하는데 있어, 중상급 이상의 몬스터는 특별하다.

단지 마나석을 흡수하기만 하면 스킬 하나를 공짜로 주기 때문이다. 그 덕에 중상급 몬스터는 원활하게 사냥만 성공하면, 김세진에게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전해주는 연료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이 필드는 출입이 통제된 탓에 기사나 사냥꾼도 별로 없고.

‘오늘이 아닌가?’

허나 그것은 단지 부수적인 목적일 뿐. 김세진이 매일 밤 몬스터 필드를 배회하는이유는 김유손의 예언때문이다.

‘흡혈귀 하나가 홀로 몬스터 필드를 거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잡아서 겁박하거나 회유를 하여 입을 열게 한다면, 꽤나 큰 성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흐음.”

김세진은 괜히 헛기침을 한번 했다.

“음?”

헌데 정말 인간처럼 발음이 되었다.

“머야?”

물론 정확한 발음은 아직 무리였다. 이래서 맨티코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거구나, 김세진은 괜히 납득했다. 그렇게 쓸모 있는 스킬은 아니지만 일단 스킬은 다다익선이니까 만족하기로 하고, 그는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김세진은 찾아 헤매던 냄새를 발견하게 되었다.

*

몬스터 필드의 뒤틀린 지리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말단 뱀파이어 드웨인은 영국 국적의 히스패닉으로, 선진국 출신 사냥꾼이라는 신분 덕분에 별다른 의심없이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그가 맡은 임무는 고향으로 향하는 '통로’와 ‘사균열’까지의 지리를 조사하여, 보다 고귀하신 분들에게 전달하는 것.

샤샤샥-

그렇게 지리를 조사하며 발걸음을 움직이던 중, 등 뒤에서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웨인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으나 생명체는 전무. 바람이겠거니 싶은 그는 별 생각 없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어..”

그리고 그런 그의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것은.

한 마리의 늑대였다.

이족보행하는 거대한 늑대.

늑대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 소름끼치는 아가리를 천천히 벌렸다.

“오랜만이다.”

“···.”

낮고 묵직한 저주파 소리. 늑대는 단지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드웨인은 게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뭐.”

꽤나 의외의 반응이었으나, 김세진은 곧 그 이유를 파악해낼 수 있었다.

자신은 목소리와 관련된 특성 2~3개 정도 있다. 그러한 특성들이 늑대의 목소리와 연동되어, 공포효과가 배가 된 것이겠지.

‘어쨌든 일은 덜었네.’

세진은 기절한 놈의 위로 발산하는 검은 탁기를 확인하곤, 진한 '탁기의 고리'를 형성했다.

*

김세진은 포로로 삼은 뱀파이어에게 ‘심문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는 암시를 걸어두고서, [괴롭히면 정보를 뱉어낼 것입니다]라는 쪽지와 함께 놈을 인적 드문 곳에 감금해놓았다.

그 이후, 집에 도착한 김세진은 유백송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간 세진의 어머니와 관련된 일로 몇 번 더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었기에, 유백송과 자신은 서로 꽤나 친해졌다고. 김세진은 생각했다.

“백송 씨.”

-···끊는다.

“예? 왜죠?”

-내가 성씨 안 붙이면 상대 안하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텐데?

그러나 유백송은 역시 까칠한 신수다웠고, 냄새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곳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유백송 씨.”

-그래, 왜.

“제가 불러준 주소로 부하요원 좀 보세요. 라이칸이 흡혈귀를 거기에 잡아뒀다네요.”

-···흡혈귀를?

그는 흡혈귀를 가둬놓은 주소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제가 부탁한 건요?”

-그거, 관련 정보는 이미 준비해뒀어.

“그럼 내일 만나죠.”

-만나자고?

유백송은 꺼리는 기색을 내비쳤다. 역시 향기 때문이겠지.

“예. 그 중요한 자료를 택배배송을 하거나 부하직원을 시킬 순 없잖습니까.”

-···알겠어. 내일 내가 다시 연락할게.

그녀는 여전히 삭막한 어투를 유지한 채 전화를 끊었다.

< 20. 사구 (5)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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