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68화 (68/174)

< 20. 사구 (4) >

“어서오···”

김세진이 문을 열었다.

헌데 전방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그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내리자, 그제서야 불만스런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 보는 유백송이 보였다.

새하얀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와 고집이 엿보이는 꾹 다물린 입··· 오밀조밀 조각된 이목구비는 역시 신수다운 아름다움이었다.

허나 세진은 그런 인간의 이목구비보다는, 그녀의 머리 위로 쫑긋 솟아오른 두 귀와 등 뒤에서 빳빳이 세워진 호랑이 꼬리에 더욱 눈길이 갔다.

‘···생각보다 작네?’

세진은 약간 의외라는 듯이 유백송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기자회견에서는 얼굴만 보여주길래 키가 더 클 줄 알았는데, 이건 거의 중학생 수준이 아닌가. 끽해봤자 155? 156?

"큼큼."

유백송이 헛기침을 했다. 무섭게 보였던 첫 인상과 달리, 아담한 체구와 날카로운얼굴이 맞물리니 마냥 귀엽게만 느껴졌다.

“어서오세요.”

김세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유백송은 말 없이 김세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길 잠시.

그녀는 그가 가장 우려하던 행위를 시작했다.

“킁킁.”

유백송은 코를 킁킁거리며 세진에게서 퍼져 나오는 향기를 맡았다. 과연 그의 향기에는 중독성이 있었기에, 그 행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킁킁- 킁킁-. 그녀는 이곳으로 찾아온 이유도 목적도 잊어버린 채, 냄새 삼매경에 빠져버렸다. 꼿꼿이 세워져 있던 꼬리는 어느새 살랑살랑 흔들리고, 베일 듯 뾰족했던 귀는 둥그렇게 말아져서는 팔랑거린다.

“저기요?”

“···아. 실례.”

세진의 부름에, 잠시 향기에 빠졌던 유백송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특수경찰국장 유백송입니다.”

그녀가 작고 고운 손으로 명함을 건넸다. 새하얀 피부와는 대조되는 새까만 명함.세진은 그것을 받아 들고서, 그녀에게 손을 건넸다.

“김세진입니다. 굳이 직업이 있다면 단체장입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예.”

그가 비켜주자, 유백송이 현관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킁킁.”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또 다시 냄새를 맡았다.

“..큼.”

김세진이 초조해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이 집에 거주한지는 근 1년이 되어간다. 그 길다면 긴 세월동안 다양한 몬스터 폼으로 있었고, 그만큼 꽤 진한 몬스터 체취가 쌓였을 터.

“집에 벤 냄새가 좋네.”

허나 다행히도 유백송은 쉽게 날아가는 몬스터의 체취보다 진하게 가라앉은 늑대의 향내에 집중한 듯, 오히려 이 최상의(?) 환경을 무척 만족스러워 했다

“그런가요? 일단··· 따라오세요.”

그는 쓴웃음을 짓고서 유백송을 거실로 안내했다.

아니, 하려했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몇 발자국 걷다 멈춰서 냄새를 맡고, 잠시 정신을 차렸다가도 또 멈춰서서는 다시 냄새 맡고···

“···저기요?”

“..집 인테리어가 좋네.”

그렇게 말하는 유백송의 얼굴에는 희미한 화색이 감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뚱하고 고집스러웠다면, 지금은 왠지 새초롬하다고나 할까. 과연, 환경에 따라 기분이 정해진다는 수인다웠다.

“아.. 예. 그 일단 따라오세요.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예.”

그제서야 유백송은 김세진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세진이 틈만 나면 뒹굴거리는 소파가 보인다. 그리고 유백송은 역시 그 소파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아주 자연스럽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소파 위로 직행했다.

“이겁니다.”

김세진이 목걸이를 집어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허나 반응은 없었다. 그에 의아한 세진이 고개를 뒤로 돌리자,

“···.”

소파에 얼굴을 처박고 누워, 숨죽인 채 냄새를 맡는 유백송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요?”

세진은 그 이후로도 약 서너 번은 더 유백송을 불렀다. 허나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김세진은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 소파 밖으로 직접 옮겨낼 수 밖에 없었다.

“아, 뭐야!”

유백송이 신경질을 내며 온몸을 파닥거렸지만, 이내 자신이 방금 전 보였던 추태를 깨닫고는 헛기침을 한번 했다.

“큼. 뭡니까? 초면에 사람 목을 잡다니.”

“죄송합니다. 너무 심취해 있으신 것 같아서.”

“심취는··· 어쨌든.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요?”

“아. 그게···.”

그는 유백송에게 방금 만든 목걸이를 하나 건넸다.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목걸이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뭐요.”

“흡혈귀를 구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이거만 있으면 일반인들도 근처에 흡혈귀가 있는지 없는지 판별해낼 수 있어요. 일단 한번 매보세요.”

“···흐음.”

유백송은 심히 못 미덥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목걸이를 매려했다.

"이거 왜 안 돼?"

하지만 평생 액세서리 따위에는 연이 없던 신수답게 쉽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런 씨···"

시간이 흐를수록 유백송의 얼굴과 기분만 찌그러져 갈 뿐 별 다른 진전이 없었기에, 결국 참다못한 김세진이 나섰다.

그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목걸이를 직접 걸어주었다.

“으아아···.”

헌데 그 와중에, 왠지 모르게 기묘하고 뜨거운 숨결이 목 언저리에 닿았다. 김세진은 순간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끙.”

유백송은 부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의 시선을 피했으나, 홍조가 붉게 오른 그녀의 두 볼은 솔직했다.

“뭐, 뭐! 아니 그것보다, 이게 뭔데!”

그녀는 부러 큰 소리를 치며 짐짓 공격적으로 으르렁댔다. 세진은 피식 웃으며 목걸이의 효능을 설명해주었다.

“그냥 평범한 목걸이 같은데···.”

유백송이 제 목에 걸려진 목걸이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믿어보세요. 이걸 끼고서 강원도 근처를 탐색하시다 보면, 사람 속에 숨어있는 흡혈귀를 색출할 수 있으실겁니다.”

“나는 그런 거 없어도 흡혈귀 구분할 수 있는데?”

어느샌가 유백송은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외면이 특출나게 어려 보일 뿐, 나이차이도 스물 가까이 나니까.

근데 이상하게 이건 나이 많은 어른이 반말하는 느낌이 아니라, 무척 어린 아이가반말을 쓰는 느낌이다.

“예. 신수는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다른 요원은 구분이 불가하잖습니까.”

“···흠.”

그녀는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뱀파이어라는 종족은 자신을 숨기는 능력이 여간 특출난 게 아니라서, 짐승보다도 감각이 예민한 1세대 수인들도 그 구별을 힘들어했다. 하물며 1세대 수인이 거진 멸종한 지금.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 단지 냄새만으로 흡혈귀를 구분할 수 있는건 ‘신수’ 유백송과 김세진 뿐.

“이게 라이칸이 만든거야? 나에게 전해달라고 그 쪽한테 시킨거고?”

“예? 아··· 뭐 저랑 라이칸이 공동제작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흐응···.”

유백송은 그를 의심스레 한 번 흘겨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에 도움이 되긴 하겠네. 근데 그것보다.”

그리곤 목걸이를 풀었다. 매는 것 보다는 푸는게 쉬웠기에, 이번엔 별 다른 곤란이 없었다.

“라이칸이 우리한테 줘야하는 정보가 있지 않나?”

“네? 아···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그 물건을 특수경찰국에 건네주는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

갑작스런 화제전환에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상당히 탐탁찮은 표정이었지만···.

“네. 당연히 공짜가 아니죠. 그거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세진은 은근슬쩍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향기를 더 진하게 맡을 수 있도록,

“으, 으응?”

단지 세 뼘 정도 가까워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눈에 띌 정도로 당황해서는, 세진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도 힘들어했다.

“···그게 말입니다.”

그는 제 어머니의 생각에 살짝 굳은 표정이 되어, 그녀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자, 잠깐, 오지마···.”

유백송은 바로 코앞에서 진하게 전해져오는 향내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정신력을 발휘하여 최대한 버텨보려 했지만··· 아직 어린 신수가 견뎌내기엔 그의 냄새가 너무 강했을 따름이다.

그 날, 김세진은 유백송에게 확실한 응낙을 받을 수 있었다. 역시 고작 냄새따위로 신수를 굴복시키는 것은 힘들었으나, 오히려 그녀가 1세대 수인이라는 점이 독이 되어 작용했다. 감각이 특히 예민하다는 듯은. 자신의 냄새에도 특히 유별나게 반응한다는 뜻이었으니까.

* * *

김세진은 특수경찰국의 요청에 따라 총 다섯 개의 목걸이를 더 만들었고, 경찰국은 개당 50억이라는 거금을 주고 그 아티팩트를 구매했다.

그 이후로는 라이칸의 도움따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일사천리였다. 그만큼 특수경찰국 요원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그들은 일주일 사이에 무려 39인의 뱀파이어를 잡아들였고, 그중 7명이 이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그러자, 뱀파이어 관련 옹호기사를 쓰던 몇몇 기자나, 흡혈귀의 인권을 주장하던 천부권단체의 회원들이 잠적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으로 인해 사회 속에 뱀파이어들이 스며들어 있었음이 어느정도는 확실해졌고, 대중들은 이에 공분하는 한편 특수경찰국의 대응과 김세진의 발명품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이 수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더 몬스터의 단체등급은 B-로 상향조정되었다.

게다가 기획팀과 재무팀에서 추천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강원도 부지 구매도 이번 사태로 강원도의 땅값이 폭락한 탓에 생각보다 금세 완료됐다.

문자 그대로의 전화위복.

그렇게, 발족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단체 더 몬스터는 어느새 강원도에 1만평 이상의 부지를 갖게 된 대형 단체로 성장했다.

“단체부지 개발이요?”

“예. 아마 이번이 적기가 될 것 같습니다.”

기획팀장 소진희이 찾아와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것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보고서에는 1만평에 달하는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이 적혀 있었다. 아탄이를 상징으로 삼은 테마공원, 김세진이 앞으로 만들 여러가지의 아티팩트를 판매하게 될 고급 마법상점, 그리고 하젤린의 요선 알케미하우스와 협력관계를 맺어 그 근처 일대를 고블린과 오크의 구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까지.

“좋긴 한데···.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요?”

“아뇨! 유 동 아저씨와 함께하면 최대한 절약해서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외국에서는 이미 유명한 단체들이 이런 사업도 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기도 하고요! 저희는 더 성공할 수 있어요! 게다가 몇몇 기사단이 도와주겠다고도 했습니다!”

소진희은 참 씩씩했다. 세진은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자신이 뽑은 사람들은 능력적인 면에서 걱정은 안 해도 되고, 돈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은 곧 잃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차라리 이렇게 투자를 하는 것이 백 번 옳겠지.

“···그래요. 열심히 해보세요.”

허가를 내린 김세진은 보고서에 결재사인을 했다. 그러자 소진희는 솟구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크게 인사를 하고서, 단체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아싸-! 하는 환희의 소리가 전해져왔다.

그에 엷은 미소를 지은 김세진이었으나, 그는 이내 다시 표정을 굳히고 책상 서랍속에 넣어둔 서류를 하나 꺼냈다.

< 20. 사구 (4)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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