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사구 (2) >
-이번 사태의 실종자 중에는 단체 더 몬스터의 리더 김세진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사망자는 물경 수 천에 다다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한 명의 실종자가 세간을 더욱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실종자는 C+등급 단체 더 몬스터의 리더, 김세진. 그는 차세대 몬스터 산업을 이끌어 갈 인재라 촉망받던 남자였기에, 이 실종이 야기시키는 충격은 더욱 컸다.
“후우··· 이게 도대체···”
그리고 그 실종소식 탓에, 유세정의 가족과 그 가문 사람들이 머무는 본가에는 한바탕 난리가 휩쓸고 지나갔다.
물론 유세정 때문이었다.
현재 몬스터 필드는 몬스터 등급이 구분되지 않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기사단은 최소 중급 이상의 기사만을 차출하여 필드 내부로 진입시켰다. 그 이하 등급의 기사들에게는 유지선 바깥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처음에는 유세정도 군말 없이 그 명령에 따랐다.
딱 김세진이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기 전 까지만.
우연찮게 그 뉴스를 목도한 그녀는 갑자기 초조해져서는 어딘가로 열심히 전화를걸더니, 잘 되지 않았는지 이내 유지선을 넘어 몬스터 필드로 진입하려 했다. 허나 당연히 그에 앞서 기사들과 군인들에게 붙들렸고, 놓으라며 난동을 부리다가 본가로 끌려온 게 약 1시간 전의 일이다.
허나 세정은 본가로 끌려오고 나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제 할아버지에게 울고 불며 매달렸다.
그녀의 할아버지, 유대호는 그녀의 이런 행동이 난생 처음이라 꽤나 당황했지만, 그는 자신의 손녀를 사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신 새벽의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김세진을 찾아주겠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세정은 호시탐탐 탈출 기회를 노렸고, 결국 그는 저택에 상주하는 마법사까지 불러와 그녀를 방 안에 감금시켜버렸다.
그래도 그녀는 유리창을 깨부수거나, 문을 쿵쾅쿵쾅 두드린 다거나 하는, 유대호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발작적 행동을 계속해왔다.
“세정이는 어떻지?”
“지금은 자고 계십니다.”
새벽의 집사, 박현오가 착잡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 진정인가 뭐시긴가 하는 신상 포션을 먹인게냐?”
“···예.”
“아니, 세정이는 도대체 그 김세진이라는 놈이랑은 무슨 관계길래 애가 저 지경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냐?”
현재 재난에 휩쓸려 생사도 모르는 인물이지만, 유대호는 세정의 할애비로서 분노와 적의를 표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말에 박현오는 뒷목을 긁적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하시는 그런 관계는 아니고 아마··· 아가씨께서 일방적으로 그 분을 좋아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뭐?”
유대호는 오히려 그게 더욱 열받았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좋아한다는 말이냐. 남자 쪽이 세정이에게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그걸 임마 니가 어떻게 알어!”
순간 열이 팍 오른 유대호는 집안의 최고 어른이라는 체통도 잠시 내려둘 수 밖에없었다.
“하하··· 아 그··· 주고받은 메시지 내역을 보면···.”
“뭬야! 내 손녀 메시지 내역을 네놈이 왜 본다는 것이냐!”
“···어르신께서 아가씨가 성인이 될 때 까지는 관리하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크음.”
집사의 대응은 침착했고, 유대호는 벌게진 얼굴을 잠시 진정시키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것보다 지금 경과는 어떻나?”
“김세진이 사냥을 나갔다던 중하급지대의 70% 이상은 수색을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김세진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나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흐음···. 잠깐, 벌써 70%나 수색을 완료했다고?”
불현듯 유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중하급지대 부근은 지반의 왜곡 탓에 중급은 물론 상급 몬스터까지 판을 치는 지경이 되었다. 근데 수색이 어찌 저렇게 빠르게 진척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 저도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알렌이나 베리타스를 비롯한 해외 여러 유수의 기사단에서도 기사를 급파해 수색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합니다.”
“···허어. 그네들도 참 속 보이는 짓을 하는 군. 아프리카 사태 때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니만···.”
유대호가 살짝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다 아탄이니, 오크의 무기니 하는 콩고물 때문이겠지. 혹시나 아직 생존해있다면, 그를 구출해내는 순간 그 혜은의 성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고 속 보이는 의도.
“일단 나는 세정이 애비에게 가볼 테니, 너는 책임지고 아이를 막아 두어라.”
현재 유세정의 실력은 충분히 중급기사가 되고도 넘치지만, 그래도 아직은 중하급이다. 게다가 지금같은 불안한 정서상태로는 가봤자 개죽음이라도 안 당하면 다행.
손녀를 지극히도 아끼는 할애비는 결코 그런 꼴을 보기 싫었다.
“예. 맡겨만 주십시오.”
* * *
“김유린이다!”
생존자들이 수풀 사이로 몸을 드러낸 기사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예의 따위를 따질 겨를은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김유린은 마나가 서려 시퍼래진 검날을 괴물오크에게 겨냥한 채, 생존자들에게 물었다.
“예. 예 괜찮아요. 이 오크 덕분에···.”
“···이 오크요? 일단 모두들 제 쪽으로 넘어오시지요.”
그 즉시 생존자들이 김유린의 등 뒤로 우르르 몰려갔다.
세진은 일말의 허탈감을 느꼈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면 안된다는 말이···.
“저, 기사님? 근데 무기는 내리셔도 될 것 같아요. 저 오크는···.”
“뒤에 다른 단원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가세요. 어서요!”
허나 유린은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녀는 단호한 태도로 생존자들을 먼저 피신시키고서, 영웅이라 불리는 오크와 마주했다.
그때까지도 그녀가 뻗은 검의 날은 한 치의 떨림도 없이 올곧게, 오직 오크의 머리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하냐.’
오크, 김세진은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대전사가 되어 일신의 무력이 강맹해졌다 해도 고위기사는 무리다.
애초에 그녀는 대한민국 9등, 전 세계 33등이나 되는 고위기사. 오크의 본능마저도 서늘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무력의 격차가 심하다.
“···.”
1초. 3초. 5초··· 시간이 흘러도 여기사는 침묵했고, 오크는 식은땀을 흘렸다.
한밤중의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달빛이 환하게 비쳐지는 속에서, 김유린은 전신에 내재된 마나를 체외로 끌어올렸다.
마치 불꽃처럼 거칠게 들끓던 마나는 이내 얇은 막의 형상으로 정제되어 그녀의 일신을 애워싼다. 마나강기라 불리는, 오직 기사만이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보호기제.
그녀는 모든 준비를 마쳤고, 어쩔 수 없이 김세진도 메이스를 굳게 움켜쥐었다.
-그으으으으···.
허나, 김유린이 세진을 향해 발을 살짝 뗀 순간.
어디선가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낮은 소리가 마치 진동처럼 울려 퍼졌다.
“···?”
심상치 않은 울림에 의해, 둘 사이를 팽팽하게 조이던 긴장이 느슨해졌다.
그리고 김유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세진의 뒤에서 고개를 치미는 형상을 발견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유별난 반응에 세진도 덩달아 놀라 뒤로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문자 그대로의 괴룡(怪龍)이 있었다.
칠흑색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뱀의 몸체, 그리고 덜 자란 드래곤을 닮은 얼굴.
아주 오래된 신화에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전설적 괴수, 일명 작은 왕(Basiliskos), 바실리스크.
몬스터 필드의 상급지대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굴에 거주하는 놈은, 성체의 경우 사냥하는 데 최소 대여섯 명 이상의 ‘상급’기사가 필요할 정도로 악명이 높다.
그런 놈이 이런 곳에 있는 이유는, 아마 지반이 뒤틀려 놈이 거주하던 동굴의 위치가 뒤바뀌었기 때문이겠지.
“···이런.”
또한 유린의 낭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저 바실리스크는 완숙하게 성장한 성체임이 확실했다.
-스으으으으···
대가리를 높게 치켜들어 대지를 굽어보던 바실리시크, 놈은 이내 전방에 있는 먹이감을 발견한 듯 이 쪽으로 기괴한 안광을 쏘아 보냈다.
그 순간 세진은 발 밑이 무거워진다는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이건 아마 바실리스크가 성체가 되면 개안한다는 ‘석화의 마안’.
이 현상은 유린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고, 그렇게 두 사람. 아니 한 명의 사람과 한 개체의 몬스터는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유린의 복잡미묘한 눈빛에 담긴 의미를, 세진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협공을 통한 바실리스크의 토벌.
그는 말 없이 그저 피식 웃고는, 메이스를 거세게 움켜쥠으로써 의지를 표출했다.
“···후.”
아무리 인간의 편이라 하더라도, 오크의 미소는 어딘가 섬뜩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김유린은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저 놈을 처리하지 않으면, 등 뒤로 도망치는 생존자들과 동료기사들이 위험해진다.
그녀가 세진에게 향하던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신호가 되었다.
“그어어어어--!”
세진이 포효를 내지르며, 메이스 대신 손톱을 휘둘렀다.
그는 지금 늑대의 동공과 늑대의 손톱을 발현한 상태. 오크 폼이기에 하향적용 되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 ‘마안’의 효과를 제거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는 자신과 김유린 사이에 이어져 있는 암갈색 기운을 빠르게 흩어버리고는, 그녀에게 눈짓을 했다.
그리고 유린이 고개를 끄덕인 즉시. 세진은 우레와 같은 발소리를 내며 바실리스크를 향해 돌격했다.
선풍의 질주와 역전의 전사를 가동하여 전신의 근육이 터질 듯 울긋불긋해진 채로, 그는 노면을 거세게 박차고 창공으로 도약했다.
목적은 저 파충류의 머리를 강타로 짓이기는 것.
허나 과연 바실리스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놈은 아가리를 크게 벌려, 활공하는 오크를 향해 진녹색 숨결을 뱉어냈다. 이건 아마 맞닿는 만물을 녹여버린다는 바실리스크의 숨결.
그러나, 그 숨결은 어디선가 생성된 마나의 벽에 의해 상쇄되었다.
아마도 김유린의 능력이리라.
그녀는 ‘상급’을 넘어서, 일정한 경지에 다다랐다는 ‘고위기사’이니까.
*
격전은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끝났다. 그 장대함과 화려함 만큼은 세상을 번뜩이기에 충분했으나, 막상 전투가 벌어진 장소에는 무척 많은 폐해를 새길 수 밖에 없었다.
바실리스크의 부식성 혈흔이 온 사방에 퍼져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반경 500m내 모든 산림은 뿌리가 뽑히거나 두 동강이 나버렸다.
그 결과, 격전지는 불과 5분전 녹음이 무성했던 지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아....”
최후. 검을 지팡이 삼아 온 힘을 다해 정신줄을 붙잡고 있던 김유린이 결국, 단말마를 내지르고서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근데 진짜 대단하긴 하네.’
체내에 영체로 보관되어있던 포션 덕에 그나마 여력이 남은 김세진은 방금 벌어졌던 짧지만 격렬했던 전투를 되새기며 깊게 감탄했다.
김유린이 쉬지 않고 쏘아냈던 반월형의 검격. ‘아름답다’는 형용이 지극히 어울릴정도로 선명했던 마나의 검격은 장대한 장관이었다.
“후.”
그는 사위를 한번 훑어보았다.
당장 이 곳에 바실리스크가 등장했다면, 그 이하 등급의 몬스터들은 어딘가로 피난했을 공산이 크다.
그러니 이제 긴장을 좀 놓아도 되겠지.
“후우.”
꼼꼼하게 주변의 인기척까지 살핀 김세진은 인간으로 변해, 바닥에 엎어진 김유린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를 품에 안아···
“···으음···.”
그때 김유린의 잇새로 뭉개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순간 세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기절한 줄 알았던 김유린은 별안간 몸을 뒤척이기 까지 하더니···
"으응···."
“······휴.”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단지 잠꼬대를 했을 뿐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발걸음을 움직였다.
*
“어! 사람이다!”
김세진은 얼마 걷지 않아 수색중인 기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사들은 저 멀리서다가오는 세진과, 그의 품에 안겨진 김유린을 발견하고는 헐레벌떡 다가왔다.
“기, 김세진 씨! 찾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고려기사단 출신···.”
“김유린 기사님 좀 맡아주실 수 있습니까?”
허나 지금은 정신이 상당히 몽롱했기에, 세진은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 20. 사구 (2)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