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65화 (65/174)

< 20. 사구 (1) >

선혈로 적셔진 제단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번지고, 새까만 칠흑은 짙은 안개처럼 가라앉아 사방을 베일처럼 둘러싼다.

이곳은 누군가는 저주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제의(祭儀)라 부르는 의식(儀式)의 현장.

이 의식의 목적은 사람의 응어리진 염원을 정신력으로 치환하여 실재적인 현상을발현시키기 위함이다.

“준비는 되었니?”

중심의 제단보다 한 층 높은 곳에 위치한 ‘권좌’에서 고혹한 음성이 들려왔다. 영어도, 중국어도, 한글도 아닌 정체불명의 언어였다.

허나 그 황홀한 목소리야 말로 그녀가 뱀파이어의 차기제왕이 될 후보자 중 한 명이라는 증거, 의식에 열중하던 9인의 뱀파이어들은 모두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조아렸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단다. 그것보다, 일의 경과를 말해주렴.”

자애로운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9인 중 한 명, 로브를 깊게 뒤집어 쓴 적안의 뱀파이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현 로드님의 지혜를 통하여 저희 고향의 좌표를 알아내었고, 이제 그간 모아온 마나석과 제물을 사용하여 고향으로 향하는 통로를 여는 것만이 남아있습니다, 여왕이시여.”

“···후훗. 아직 여왕은 아니라고 말을 했잖니. 그렇게 말하면 안된단다.”

말과는 달리, 그녀는 목소리에는 다분한 만족감이 묻어나왔다.

“그래서. 그 통로는 어디에 열리게 되는거니?”

“총 세 군데입니다. 현재 저희가 위치한 영국과, 드레툰 쪽이 거점을 삼고 있는 중국, 그리고 꼬맹이와 늙은이가 있는 한국이지요. 헌데···.”

뱀파이어가 꺼리는 기색을 내비치며 잠시 말을 멈췄다.

“괜찮아. 말하렴.”

“그··· 실질적인 통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쪽은 한국입니다. 아무래도 그 나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사(死)균열이 무려 두 개나 있어, 저희 통로가 그것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뱀파이어가 돌연 말을 멈췄다. 그것은 필시 권좌에 앉은 여왕에게서 일렁이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졌기 때문이리라.

“죄송합니다.”

방금 말을 꺼냈던 뱀파이어가 황급히 바닥에 몸을 엎드렸다. 허나 여왕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문책이 아닌 격려를 해주었다.

“아니, 괜찮아. 오히려 잘 되었어. 어차피 꼬맹이와는 결판을 내야 했으니까, 우리가 한국으로 가면 되지 무얼. 준비는 미리 다 해놨겠지?”

“···예? 아, 예. 그, 그렇습니다.”

“그럼 됐어. 나머지는 너네가 알아서 잘 하리라 믿을게?”

그 즉시 제단을 짓누르던 위압감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9인의 뱀파이어는 그제서야 숨을 깊게 몰아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별로 노하지 않으셔서 다행이구나."

“그렇긴 한데.. 그것보다, 어떻게 할겁니까? 저희가 도대체 무슨 준비를 해놨다고···.”

다른 뱀파이어가 답답해하며 물었다.

“···큼. 그냥 5성급 호텔 하나 잡아주면 좋아하실 거다. 여왕님은 세상물정을 모르시니.”

“예? 그럼 투숙객들은요?”

“전부 여왕님의 수행인이라고 말하면 된다. 어차피 프레드릭 고성(古城) 바깥을직접 내딛은 적은 평생 한 번도 없으시니까, 오히려 수행인이 많아졌다고 기뻐하실지도 몰라.”

그 어이없는 말에, 화자를 제외한 8인의 뱀파이어가 모두 기가막히다는 표정이 되었다.

“정말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저열한 핏줄과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극히 싫어하는 분이시잖나. 투숙객이랑 마주칠 일 자체가 없어.”

“···하지만.”

“됐다. 그 말은 이만 하고, 일단 가장 중요한 일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 * *

청명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날의 오후.

“흡!”

김세진은 오늘도 몬스터 필드의 중하급 지대에서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매주 평일마다 반복되는 하나의 일과. 여태 새긴 마력문신과 영체화 덕분에중하급 몬스터 따위는 떼로 덤벼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퉤.”

세진이 입술 사이로 들어온 몬스터의 선혈을 뱉어냈다.

벌써 7개체의 몬스터를 짓뭉갠 그의 현 상태는 가관이었다.

얼굴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핏자국이 말라 붙었고, 갑옷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칠갑이 돼있다.

이건 오크의 본능으로 인해 얻게된 거칠고 투박한 전투스타일 때문. 그는 괴물보다도 잔악하고 무도하게 몬스터를 짓이겼다.

“퉤, 퉤!”

누군가가 본다면 하나의 악귀라고 착각할 정도의 형상으로, 그는 다시 발걸음을 움직였다.

허나 그렇게 고작 몇 발자국을 걸었을까.

별안간 기이한 진동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진동이어서, 그는 아주 잠깐 동안만 감각이 예민한 늑대의 형태로 변화했다.

‘···이건.’

그리고 그는 아주 먼 곳에서부터, 부서질듯 희미하게 전해지는 비릿한 내음을 맡게 되었다.

이건 꽤나 익숙한 종류의 냄새.

‘흡혈귀다.’

허나 향이 각기 다른 걸로 봐서 최소한 소수는 아니다. 적어도 10명은 넘을 가능성이 크다.

‘..뭐야?’

단독행동을 선호하는 뱀파이어들이 왜 떼거지로 몰려다니고 있는 건지, 또한 방금 전해진 기묘한 진동은 무엇인지, 그는 대단히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극도로 예민하게 발동한 늑대의 후각으로도 겨우겨우 붙잡은 냄새의 근원지는, 최소 10km 혹은 그 이상.

“···너무 먼데.”

다시 인간이 된 김세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집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역시나꺼림칙했다. 흡혈귀들이 단체로 몰려 있다는 것은 즉 뭔가 미심쩍은 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뜻일 테니.

‘일단 혹시 모르니 연락을 넣어 놓고···음?’

한참동안의 고민 끝에 그가 일단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을 때.

별안간 흡혈귀들의 냄새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점화된 굉연한 충격파가 온 사방으로 발산해왔다.

콰아아아앙-

대기를 찢어발기는 굉음, 대지를 거세게 울리는 진동. 아니, 이건 고작 진동 따위가 아니다.

지각(地殼)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씹.”

방금까지 내딛고 있던 평지가 별안간 뾰족하게 솟아오르자, 김세진은 재빨리 몬스터 폼을 취했다.

*

몬스터 필드는 보통 사(死)균열의 영향범위에 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여기서 사균열이란 문자 그대로 죽어버린 균열이란 뜻으로, 더 이상 넓어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몬스터는 생성되는 균열을 일컫는다.

헌데. 오늘 오후 2시경.

그런 사균열이 별안간 경상북도와 강원도 몬스터 필드의 경계선 부근에 '갑작스레' 생성되었다.

그 결과. 사균열이 야기시키는 왜곡으로 인하여 지반 자체가 뒤틀리고, 경상북도의 일부지역은 구분이 없는 몬스터 필드화 되었다.

이것은 과연 국가건립 이래 최악의 사태라 말할 만했기에, 국가는 그 즉시 일시적인 비상재난사태를 선포했다.

[현재 사균열에서 몬스터가 범람하고 있는 지역은 문경, 울진, 봉화, 영주, 예천. 경상북도의 총 1/3에 달하는 넓은 면적입니다. 경상북도의 모든 주민분들은 최대한 남쪽으로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허나 강원도에 거주하던 거의 모든 기사들의 조기대응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망자는 이미 수천을 넘었고, 재산상의 피해는 천문학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더욱 최악인 것은. 그 피해규모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라는 점.

“저, 국장님···”

그 탓에,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특수경찰국에는 한여름 날씨와 대조되는 거친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왜.”

“그··· 대통령 각하께서 청와대로 오시라고···.”

연신 굳은 표정으로 뉴스의 생중계와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번갈아 보던 유백송은 부하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미간을 찡그린 채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그녀의 책상 위에는 노트 하나만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용병 라이칸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그러나 이 신기한 노트에 라이칸의 답장은 오랫동안 없었다.

“흠. 대통령도 난리가 났나 보군. 다녀오겠다.”

유백송은 짐짓 태연한 척 말했지만··· 수인이 감정을 숨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실례로 언제나 빳빳이 세워져 있던 그녀의 순백색 호랑이 귀는 지금, 축 늘어져선 그 상심을 여과없이 표출하고 있었으니.

“내가 없을 때도 사태를 잘 정리 해두도록.”

부하직원들은 사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유백송의 아담한 뒷모습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1시간 30분 뒤. 유백송은 나갈 때보다 더 풀이 죽은 채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귀는 물론 그 꼬리까지 생기를 잃은 채로.

그럼에도 그녀는 짐짓 활기찬 표정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기자회견 준비해. 라이칸에게 사과한다.”

순간 내부에 소란이 일었다.

자기자신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 말하며, 라이칸이 건넨 증거는 확실히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이긴 하다. 실제로 소환석을 아주 우연찮게 발견하기도 했으니까.

다시 인간이 된 김세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집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역시나꺼림칙했다. 흡혈귀들이 단체로 몰려 있다는 것은 즉 뭔가 미심쩍은 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뜻일 테니.

‘일단 혹시 모르니 연락을 넣어 놓고···음?’

한참동안의 고민 끝에 그가 일단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을 때.

별안간 흡혈귀들의 냄새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점화된 굉연한 충격파가 온 사방으로 발산해왔다.

콰아아아앙-

대기를 찢어발기는 굉음, 대지를 거세게 울리는 진동. 아니, 이건 고작 진동 따위가 아니다.

지각(地殼)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씹.”

방금까지 내딛고 있던 평지가 별안간 뾰족하게 솟아오르자, 김세진은 재빨리 몬스터 폼을 취했다.

*

몬스터 필드는 보통 사(死)균열의 영향범위에 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여기서 사균열이란 문자 그대로 죽어버린 균열이란 뜻으로, 더 이상 넓어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몬스터는 생성되는 균열을 일컫는다.

헌데. 오늘 오후 2시경.

그런 사균열이 별안간 경상북도와 강원도 몬스터 필드의 경계선 부근에 '갑작스레' 생성되었다.

그 결과. 사균열이 야기시키는 왜곡으로 인하여 지반 자체가 뒤틀리고, 경상북도의 일부지역은 구분이 없는 몬스터 필드화 되었다.

이것은 과연 국가건립 이래 최악의 사태라 말할 만했기에, 국가는 그 즉시 일시적인 비상재난사태를 선포했다.

[현재 사균열에서 몬스터가 범람하고 있는 지역은 문경, 울진, 봉화, 영주, 예천. 경상북도의 총 1/3에 달하는 넓은 면적입니다. 경상북도의 모든 주민분들은 최대한 남쪽으로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허나 강원도에 거주하던 거의 모든 기사들의 조기대응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망자는 이미 수천을 넘었고, 재산상의 피해는 천문학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더욱 최악인 것은. 그 피해규모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라는 점.

“저, 국장님···”

그 탓에,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특수경찰국에는 한여름 날씨와 대조되는 거친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왜.”

“그··· 대통령 각하께서 청와대로 오시라고···.”

연신 굳은 표정으로 뉴스의 생중계와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번갈아 보던 유백송은 부하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미간을 찡그린 채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그녀의 책상 위에는 노트 하나만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용병 라이칸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그러나 이 신기한 노트에 라이칸의 답장은 오랫동안 없었다.

“흠. 대통령도 난리가 났나 보군. 다녀오겠다.”

유백송은 짐짓 태연한 척 말했지만··· 수인이 감정을 숨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실례로 언제나 빳빳이 세워져 있던 그녀의 순백색 호랑이 귀는 지금, 축 늘어져선 그 상심을 여과없이 표출하고 있었으니.

“내가 없을 때도 사태를 잘 정리 해두도록.”

부하직원들은 사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유백송의 아담한 뒷모습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1시간 30분 뒤. 유백송은 나갈 때보다 더 풀이 죽은 채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귀는 물론 그 꼬리까지 생기를 잃은 채로.

그럼에도 그녀는 짐짓 활기찬 표정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기자회견 준비해. 라이칸에게 사과한다.”

순간 내부에 소란이 일었다.

자기자신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 말하며, 라이칸이 건넨 증거는 확실히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이긴 하다. 실제로 소환석을 아주 우연찮게 발견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라이칸’이라는 인물 자체의 신뢰도가 문제다. 단지 20여년 전의 날짜로 작성된 용병신청서가 하나 남아있을 뿐, 그 이외의 정보는 용병의 몰락과 함께 모두소거되었으니, 라이칸의 모든 업적과 능력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정보가 없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많은···.”

“다 대통령이 허락해준 사안이야. 몇몇 소수종족 천부권 단체에 욕은 좀 먹겠지만, 아직 남아있는 용병법을 적용하면 법률상으로도 무리없어. 그리고··· 이 사태가천재지변이 아닌 게 명명백백 밝혀진 이상, 이제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고.”

허나 유백송의 결단은 단호했다.

애초에 그 누구보다 고고한 자존심을 지닌 백호가 사과를 하는 것은 외부의 압력만으로는 불가능, 그녀도 어느정도 자체적인 결심을 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내린 결정은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었기에, 직원들은 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숙고히 받아들였다.

* * *

유백송이 나름대로의 결단을 내린 것과 같은 시각.

김세진은 길을 잃었다.

별안간 지반이 뒤틀려 편안히 걸어왔던 길이 험한 산악지대가 되고, 시냇가는 까마득한 단애절벽이 되어버렸으니···.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몬스터의 구분에도 문제가 생겼는지 중상급 몬스터를 세 개체나 맞닥뜨려버려, 가능한 꺼렸던 ‘오크 대전사’폼을 취해야만 했다.

‘···돌아버리겠네.’

근데 그걸로도 끝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예상치 못한 짐짝들도 생겼다.

“지금 칠흑 기사단에서 이 부근으로 진입했다네.”

자신의 등 뒤를 쫄래쫄래 쫓아오는 생존자 일행들이 그 짐짝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시간 전. 위협적인 중상급 몬스터 ‘칼날 귀신’을 정신없이 때려잡고 보니, 어느새 세 명으로 이루어진 생존자 일행이 다가와 이 쪽을 사슴같은 눈망울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익히 들은 괴물, 아니 영웅오크의 아름다운 명성에 기대고자 하는 심리였을 것이다.

‘그때 내쳤어야 했나..’

그때는 그냥 내버려 두면 몬스터에 몰살당할 것 같아, 일단 아무 말 안하고 뒤따라오게 놔두긴 했으나···

“휴우··· 정말 다행이네요···.”

“저 오크 덕분이죠 뭐.”

“예. 근데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머리랑 턱수염이 굉장히 길어졌네요. 윤기도 나고, 엄청 멋있어졌네.”

출구가 있을 것이라 예측되는 '서쪽'을 향해 걷는 와중에도 생존자가 계속해서 달라붙어, 처음 3명이었던 생존자는 어느새 13명으로 불어났다.

9명은 사냥꾼이고, 4명은 기사.

기사들한테 맡기고 도망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대화를 엿들어보니 끽해봤자 중하급이 최대라, 중급~중상급 몬스터만 계속해서 출몰하는 지금에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만뒀다.

“흠··· 저 뒤태 사진 찍어도 될까요? 몬스터 치고는 너무 섹시한데.”

“···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 그게 지금 할 말입니까? 오크 자극할 행동은 하지 마십쇼.”

그 대화소리들을 들으며, 세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때 불현듯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다행히 기척은 하나다. 아니, 기척만 하나다.

“뭔가 온다! 무장해요!”

마찬가지로 그 기척을 느낀 기사가 크게 소리쳤다.

저벅저벅- 가벼운 발걸음, 뒤이어 수풀 사이로 몸을 드러내는···.

“···어!”

한 명의 여기사, 김유린.

나뭇잎과 몬스터의 혈흔을 온 몸에 뒤집어 쓴 그녀를 목도한 순간, 김세진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