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62화 (62/174)

< 18. 악순환 (1) >

여론의 반전은 성공했다. 주지혁은 그리핀의 기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머핀이는 기자와 인터뷰까지 했다. 실시간으로 송출된 머핀이의 미소는 문자 그대로 살인적인 귀여움이었고, 한동안 그녀는 인터넷의 주인이 되었다.

참 이상하게도 오직 조한성만이 그런 머핀이를 보며 저건 사탄 그 자체라며 치를 떨었지만··· 세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머핀이가 유명해지자, 단체의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러 기사, 혹은 기사단의 문의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심지어 중국상해에 거점을 둔 중원(中原)기사단에선 알은 이쪽에서 알아서 구할테니, 단지 길들여 주는 가격으로만 무려 세후 2천억을 제시했다.

역시, 기사들의 로망은 각국 어디에서든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겠지.

게다가 이 그리핀은 그저 로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핀을 타고 창천을 활공하는 기사,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그만큼 마케팅 효과도 톡톡하게 있을 터.

어쨌든 그 덕에, 김세진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해외에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극동의 좁은 나라의 평범한 소시민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단체의 리더로. 그 명성의 증거로, 어느새 팔로워 숫자가 100 만명을 뚫고 200만을 향해 질주했다. 게다가 당장 저번 주 단체의 등급이 C+로 승급하기까지 했으니··· 요 근래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하겠다.

“···나도 타고 싶은데.”

그리고 지금 여기, 더 몬스터 사옥의 단체장실의 내부. 그리핀을 원하는 또 하나의 기사가 있다.

유세정, 그녀는 책상위에 머리를 엎드린 채 업무를 보는 김세진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에는 어떠한 간절한 열망이 담겨있었다.

“너는 아직 안 돼. 중하급 기사잖아. 주지혁 씨 말 못 들었어?”

“아니.. 오빠. 기사의 능력은 등급에 따라 딱딱 나눠지는게 아니라니까요. 시험도일년에 두 번 밖에 없어서 능력에 비해 승급도 늦고 그런 거예요. 저, 충분히 가능하다니까요?”

오늘 그녀는 새벽기사단이 아닌 단체 사옥으로 출근했다. 그리핀을 얻어타러 간다니까 기사단이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나 뭐라나.

“안 돼.”

“···후.”

그러나 김세진은 시리도록 단호했고, 빈정이 상한 그녀는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책상을 팡팡팡 두드렸다.

“맨날맨날 주지혁 기사님만 편애하고... 오빠 남자 좋아해요?”

“뭔, 절대 아니야.”

“근데 왜 나는 이렇게 싫어하는건데요.”

일단 내뱉고서, 세정은 잠시 김세진의 눈치를 살폈다. 허나 그는 여전히 서류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때만 열심히 하는 척.”

일은 맨날 직원들 다 시키면서.

입이 댓 발 나온 세정은 그 이후로도 끈질기게 단체장실에 머물렀다.

재벌가문의 귀한 자재가 지닌 참을성과 집착, 그리고 집념은 과연 대단했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은 빠르게 흘렀으나, 그녀는 김세진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할 뿐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이런 시간과 관련된 부분에서 후달리는 쪽은 역시 김세진이었고, 실제로 그는 어느새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결국 김세진이 먼저 포기했다. 그가 자켓을 갖춰 입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정의 눈이 다시금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핀 알을 가져와.”

“네?”

사실 그가 방금 보고있던 서류는 ‘그리핀 알’ 관련 정보였다. 보통 1년에 대여섯 개정도가 경매로 올라온 기록이 있지만, 요 근래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가격일 공산이 높을 것이라며 유 동 재무팀장이 말하기도 했고.

그러니 아무리 새벽이라도 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그 정도 세월이면그녀도 충분히 중급기사가 될 수 있겠지.

“그럼 너도 탈 수 있게 해줄게. 됐지?”

그렇게 한마디를 툭 내뱉은 그는, 세정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서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일이 있어서, 이만 갈게.”

그렇게 김세진이 떠나가고, 살짝 멍한 표정의 유세정은 열어젖힌 문 틈새로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휴우.”

그러다 돌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핀. 타면 좋다. 그러나 그건 단지 부수적인 이유일 뿐이다.

‘같이 밥이나 먹을랬더니.’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내가 싫은 걸까. 그녀는 씁쓸한 마음을 안고, 미리 예약해둔 식당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움직였다.

*

늦은 밤, 침대에 누워서 뒤척이던 고블린이 눈을 번쩍 떴다. 붉게 충혈된 두 동공에서는 기묘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후.”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고블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별안간 인간의 형체로 변했다.

“···또 이러네.”

김세진이 멍하니 읊조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오크 대전사로 진화하고 한 달 가량이 지난 지금, 그는 여러가지의 부작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가장 먼저, 편안하고 깊은 숙면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몸 안에서 분류하는 오크의활력은 3시간 이상 가만히 누워있는 불합리적인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허나 여기까지는 괜찮다. 몸이 튼튼해진 탓에, 잠을 적게 자도 충분히 체력은 남아 돌았기에.

그러나 요 근래 들어 폭력성과 투쟁심을 비롯한 공격적인 감정, 성욕과 식욕을 비롯한 본능적인 욕구가 증폭된 건 꽤나 큰 문제였다.

강자에겐 전력을 다한 도전을, 그러나 약자에겐 받아 마땅한 정복과 유린(蹂躪)을. 승자가 되길 갈구하나, 패자는 예우따위 없이 능욕하고 짓밟는다.

웨어울프를 던져버렸더니, 이제는 오크의 원천적인 섭리와 심성이 옮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발.”

그는 괴로워하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도대체 이 무슨 악순환이란 말인가. 자아를 잃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진화를 도모했건만, 지금은 거칠게 치닫는 본능을 달랠 길이 없다.

창 틈 사이로 스며드는 보름달의 새하얀 빛을 쬐이며, 김세진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있어봤자 변하는 건 별로 없다.

어떻게든 노력을 해보자.

* * *

진화의 조건은 사냥으로만 충족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능한 한 모든 시도를 해봐야 한다. 지금은 그따위 마구잡이밖에는 방법이 없다.

“···흐, 흐으으···”

지금 이 앞에서 기어가고 있는 기사를 죽이면 진화를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너무 심하니 사지라도 한 번 부서트려 볼까.

‘어차피 죽지만 않으면···.’

고블린 연금술사가 만든 최고의 포션을 원조해줄 수 있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가 여기사의 얇은 허리를 움켜쥐었다. 웨어울프의 거대한 손은 그녀를 한 손에 집어 들기에 충분했다.

“놔, 놔··· 놔.”

그가 공포에 물든 여기사의 얼굴을 본 순간, 갑자기 내부에서부터 한없는 즐거움이 치솟았다. 그래서 늑대는 길게 내뺀 혀로 그녀의 면상을 핥았다.

“꺄읏!”

기사의 서늘한 비명이 귓가에 내다 꽂힌다. 청각이 예민한 늑대에게는 너무나도 큰 소리였고, 다행히도 세진은 그 비명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의 이성을 되찾을 수있었다.

“아···.”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름달이 높게 뜬 새벽하늘은 남색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그래, 보름달. 아마 보름달이 증폭시킨 늑대의 본능과 오크의 욕구가 뒤섞여서 이런 사단이 난 것이겠지.

“흐아..흐아아앙···.”

그때, 그의 손아귀에 잡힌 기사가 아이같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세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기사는 자신과도 일면식이 있는, 기사격전에서 유세정에게 패배했던 ‘정은지’라는 여인이다.

연예계 쪽에서도 알아주는 여기사가 도대체 왜 이런 위험한 시간대에 사냥을 나섰는지···.

“···그르릉.”

늑대의 아가리로부터 기괴하고 탁한 저주파가 뱉어져나왔다. 그걸 공격의 신호라여긴 정은지는 눈을 꼭 감았지만,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행동은 상당히 의외였다.

‘강해져서 돌아와라.’

그는 장난스런-그러나 정은지의 입장에선 무엇보다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풀어주었다.

저벅저벅-.

그리곤 무거운 발걸음을 다른 어딘가로 옮긴다.

얼굴이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은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늑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세진은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숲을 배회하다가, 기이한 기운을 하나 발견했다. 아주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전해지는, 검은색과 적색이 합쳐져 기분이 나쁠 정도로 탁한 기운.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쪽으로 다가갔고, 이내 바닥에 나뒹구는 ‘겉보기엔’ 평범한 돌멩이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소환의 돌] [설치형 포탈] [남은 횟수 20/24]

- 누군가가 만들어낸 소환석. 하루에 24번, 반경범위안의 몬스터를 정해진 지역으로 전이시킨다.

- 횟수가 다하면 소멸됩니다.

무기 이외의 물건 정보도 볼 수 있을만큼 성장한 패시브 스킬이 있으니.

그는 이 정보창을 확인한 그 즉시 직감했다.

이게 여태 벌어졌던 몬스터 습격사태의 원흉이다. 아니, 진짜 원흉은 따로 있겠지. ‘누군가가 만들어낸’이라고 적혀 있으니까.

‘그래도 뜻밖의 수확이네.’

세진은 소환석을 베어내 일단 그 작동을 중지시켰다.

*

─웨어울프에게 습격을 당한 정은지 기사는 현재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며, 1인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바로 이틀 뒤 정은지와 관련된 뉴스가 특종이랍시고 크게크게 터졌다.

분명, 세진은 정은지에게 외상을 입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무기를 좀 깨부쉈을 뿐.

그런데도 저렇게 뉴스는 물론 신문과 인터넷에까지 대서특필될 정도면, 역시 그 습격 당한 ‘대상’이 누구느냐가 가장 중요한 사안인거겠지.

─전문가들은 이 웨어울프가 꽤 오래전부터 몬스터필드에서 활동해온 몬스터임을 지적하면서도, 요 근래 다수 벌어진 몬스터 습격사태와 관련이 아예 없지는 않을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샤샤샤샥-

그렇게 세진이 뉴스에 집중하고있는 사이. 별안간 서랍속에서 기묘한 필기음이 흘러나왔다.

이건 통신용 노트에서 메시지가 써지고 있다는 신호, 그는 서랍속에서 노트를 꺼냈다.

[모든 원흉과 전말을 꿰뚫고 있다는 당신의 말은 믿기 힘듭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저희는 당신의 말에 기꺼이 따를 용의가 있습니다.]

특수경찰국에서 참 오랜만에 보내온 메시지다.

사건의 전말이란··· 때마침 이틀 전에 알아낸 부분이 하나 있기에, 그는 자신만만하게 펜을 집어 들었다.

[요즘 몬스터 필드의 몬스터 개체수가 너무 줄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또한, ‘소환석’이라는 존재를 알고 계십니까? 저는 이미 모든 걸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쪽에서 보답을 하지 않는 이상, 이 이후로는 답변을 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하지 않는게 아니라 못하는 거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걸 알려주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데, 그걸 인질로 거래를 하기에는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불편함은 아직 김세진, 자기자신이 오크나 늑대와 동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도 되니 괜시리 뿌듯했다.

샤샤샤샥-

그 글을 적어내자마자 노트에서 다급하게 답장이 적혀지기 시작했으나, 세진은 냉정하게 노트를 덮을 뿐이었다.

* * *

6월 21일,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夏至).

[해외로 뻗어 나가는 단체 더 몬스터, ‘아탄이 2.0’ 시연회에 무려 300여개의 기사단이 모여··· ]

[오크의 ‘사복검’, 마나에 의해 검신이 채찍처럼 휘어지는 혁신적인 무기, 또다시명품 5등급 책정. 오크가 우연 혹은 운이 아닌 이유.]

[또다시 상급 포션을 제조해낸 고블린 연금술사. 이제 요선 알케미하우스는 고블린하우스로 불린다.]

“우리 단체 참 잘 나가네요. 그죠? 아니, 오빠가 잘 나가는건가?”

일과를 마친 유세정은 여느 때처럼 김세진이 머무는 단체장실로 왔다. 때마침 신문을 읽고 있던 세진은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근데 너 학교는 안 가냐?”

“네, 저 이미 대학 붙었거든요. 이제 성인이나 마찬가지, 아니 그냥 성인이에요. 면허도 땄어요!”

유세정의 기분은 유난히 좋아 보였다. 오늘은 김세진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한 날, 그녀는 나름 쫙 빼입고 하이힐까지 신었다.

“그래? 그럼 뭐, 일단 가자.”

그렇게 말하며, 김세진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 미묘한 감촉에 세정은 살짝 놀랐으나, 단지 침을 꿀꺽 삼킬 뿐. 별다른 말 없이 그의 자연스러운 손길에따랐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네? 아, 네. 예약은 해놨는데, 오빠 가고싶은 곳 있으면 거기로 가도 돼요.”

“아냐. 괜찮아. 그냥 예약한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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