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58화 (58/174)

< 17. 전조 (1) >

청명, 하늘이 차츰 맑아지기 시작하는 4월 4일.

훈련이 일찍 끝난 유세정은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강원도에 위치한 더 몬스터 사옥으로 향했다.

겸사겸사 단체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고, 단체장인 김세진과 이야기도 나누기 위해.

“사옥이 굉장히 좋군요.”

그러는 와중에 혹이 하나 딜라붙긴 했다.

중상급기사 주지혁.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단체의 사옥을 살펴보았다. 세련되고 오밀조밀하니 잘 건축된 외관은 고작 C-등급 단체전용건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네 뭐··· 당연하잖아요. 새벽이 지은 건데. 안 좋을 리가 있나요.”

무심히 대답한 세정은 하이힐 특유의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주지혁도 그런 그녀의 뒤를 조심스레 따랐다.

“안녕하세요.”

들어가자마자 무척 고운 미성이 두 사람을 반겼다. 1층 카운터의 직원은 아름다운 여자 엘프였다. 그 엘프를 발견한 즉시 미간을 찌푸린 유세정은 뭔가 오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직원분이세요?”

“네. 오크의 무기점에서 매니저로 일하다가 승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세정의 경계서린 목소리에도 엘프는 아주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흐음··· 그래요. 그건 그렇고, 지금 세진 오빠는 뭐해요?”

“단체장 님께서는 오늘 아침에 잠깐 오셨다가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

세정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괜시리 짜증이 났다. 문자에 답장을 좀 해줬으면 이렇게 헛걸음 할 필요가 없었는데··· 도대체 세 시간동안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거야.

“알겠어요.”

퉁명스레 대답한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사옥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쉽군요. 아, 근데 훈련실은 어딘가요?”

그러나 주지혁은 아주 태연히 정체모를 ‘훈련실’을 물을 뿐이었다. 세정은 어이없어하며 그런 그를 흘겨보았다.

“훈련실이요? 그런게 왜 여기···.”

“지하 1층에 있습니다.”

“···예? 있다고요? 그게 왜 있지?”

“네?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으나··· 단체장님께서 두 개 만드시긴 하셨습니다. 하나는 지하에, 하나는 최상층에. 최상층은 단체장님 전용이신데, 아직 미완입니다.”

엘프의 말에 세정은 놀란 표정으로 주지혁을 노려보았다.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네가 알고있느냐, 따위의 복잡한 의미가 담긴 눈길이었다.

“아 그··· 단체장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아탄이 버전 2.0 프로토타입을 설치해 놨으니까, 한번 시간 날 때 체험을 해보라고요.”

주지혁은 뒷목을 긁적이며 대답하고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세정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

유세정이 김세진에게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꼈을 때, 정작 김세진은 사냥을 마치고 아주 태연하게 몬스터 필드의 휴게실로 향하고 있었다.

-전세계에 동시 다발적인 몬스터 강습 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장 미국, 일본, 중국 전역의 수 많은 도시에 이유모를 강습사태가 발생했으며, 그 원인은 균열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전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몬스터 필드의 휴게실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한 쪽에 설치된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휴식을 취하던 기사와 사냥꾼들은 심상치 않은 내용이 흘러나오는 뉴스를 경청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세진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하루 고작 5시간, 완벽한 인간으로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게다가 오늘은 은행에도 가야하는 날.

그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원도 은행의 VIP전용 룸에서 지점장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김세진은 통장에 찍힌 액수를 확인했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안젤라’라는 미국 기사가 물품대금을 200억이나 지불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세후 200억을 보냈을 줄은..

“혹시 이 자산을 관리할 구체적인 생각이 없으시다면, 저희가 자산관리사를 추천해드려도···.”

지점장이 파리처럼 두 손을 비벼가며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러나 이 남자의 눈동자에는 탁기(濁氣)가 가득했기에, 세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콰아앙-

그러던 그때. 별안간 외부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스산한 진동도느껴졌다. 그 대수로운 현상에 지점장과 김세진이 동시에 행동을 멈췄다.

“이 무슨···으엇!”

콰아아아앙--!

방금 전과 비교해서도 더욱 굉연해진 폭음.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세진은 퍼뜩 창문에 달라붙어 밖의 상황을 주시했다.

“···저게 뭐야.”

그렇게 그는, 저도 모르게 넋이 나간 소리를 중얼거리게 되었다.

휴게실을 나서면서 힐끗 보았던 뉴스가 어쩌면 징조였던 것일까.

-끼에에에엑--!

강원도의 도심이 수라장으로 돌변해있었다. 왠지 과거 서울 강습사태의 데자뷰같은 느낌이 들었다거대한 와이번이 암운처럼 창천에 드리우고, 가고일은 와이번을 뒷배삼아 간악한 마법을 지상으로 쏘아낸다.

또한 대로변 위에는 수 많은 몬스터가 배회하고 있었다. 늑대와 고블린을 비롯한 하급 몬스터부터 리치, 그리고 무려 오우거와 ‘맨티코어’까지.

이곳이 도심인지 몬스터 필드인지 착각할 만한 장면이었다.

“저기요! 저거······.”

갑자기 벌어진 긴급상황에 세진은 지점장에게 대처를 물으려 했으나, 빌어먹을 지점장은 이미 VIP룸 안에서 쏜살같이 달아나고 난 뒤였다.

“···”

역시 인간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깊게 한숨을 내쉰 세진은 창문을 깨부수고 이곳에서 탈출하려 했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으아아악! 도망가요!

그러나 바로 아래 층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냄새를 맡아보니 가장 지척에 있는 몬스터는 오크와 맨티코어.

오크는 그렇다 치더라도, 맨티코어는 인간 김세진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존재다.

쨍그랑-

김세진이 결국 포기하고서 주먹으로 창문을 후려치자, 유리는 너무나도 쉽게 깨졌다. 그렇게 그는 창문을 넘어 아래로 도망치려 했다.

-으아아아앙!

허나 뒤이어 들려온 아이의 울음소리가 세진의 몸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는 괜히 이를 꽉 깨물고서, VIP룸 내부를 한번 둘러보았다.

기운을 볼 수 있는 ‘늑대의 동공’은 모든 숨겨진 물체까지 찾아낼 수 있는데, 다행히 이 VIP룸 안엔 CCTV가 숨겨져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아···”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집중해서 냄새를 맡아보니, 도심이니만큼 기사들이 늦지 않게 출동한 듯 수 많은 기척이 느껴졌지만, 모두 현재 이곳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무슨 60년대 슈퍼맨도 아니고···’

단 한 번의 심호흡.

그 이후, VIP룸 안에는 김세진이 아닌 한 마리의 오크가 서있었다.

“그어어!”

뒤로 살짝 물러선 오크는 거칠게 발을 굴러 창문을 향해 질주했다.

우지끈-

유리창을 비롯한 은행의 벽면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그 틈으로 한 마리의 거대한 오크가 운석처럼 낙하한다.

콰아아앙─!

바닥에 맞닿자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순간 몬스터에 쫓기던 시민도, 시민을 쫓던 몬스터도 잠시 행동을 멈추고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오크를 바라봤다.

온 몸에 푸른 비늘을 두른 오크는 형형한 눈빛으로 시민과 몬스터를 번갈아보다가, 이내 근처의 몬스터를 향해 메이스를 후려갈겼다.

*

정체모를 몬스터들이 튀어나온 순간. 은행의 부지점장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은행 보안시스템을 가동시켰고, 그 덕에 은행 내부의 사람들은 잠시나마 안전할 수 있었다.

쾅- 쾅- 쾅-

그러나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잠시나마’일 뿐. 몬스터로 추정되는 놈들에 의해 입구를 봉쇄한 마나강판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기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강판이 먼저 뚫리거나,전해지는 충격에 은행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거나.

“···후.”

부지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켜야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우지끈!

특히 강맹한 일격에 강판의 균열이 터질 듯 벌어졌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부지점장은 두 주먹을 꽉 쥐고서 크게 소리쳤다.

“모두, 일어나셔서 금고 쪽으로 이동해주세요!”

은행 안에서 물건이 가장 안전하게 보관되는 장소는 금고, 그곳은 사람 또한 가장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한발 늦은 대처였고, 그보다 앞서.

콰아아아앙?!

결국 마나강판이 뚫려졌다.

저벅저벅-

바깥의 소란과는 대비되게 아주 고요히 울려 퍼지는 발자국 소리, 그것은 은행안의 모두에게 절망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인간을 닮은 얼굴과 사자의 몸통, 그리고 등에는 박쥐의 날개가 매달려 있는 흉측한 키메라.

중상급 몬스터 중에서도 그 간악함과 강력함으로 악명이 높은, 맨티코어(Manticore)-혹은 인면사자(人面獅子)-놈은 마치 미소를 짓는 듯한 모양새로 은행 안으로 들어와서는,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그리곤 터벅터벅 걸어, 가장 먼저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

맨티코어가 가까워졌으나, 어머니는 공포에 눈물까지 흘려가면서도 아이를 품에서 놓치 않았다.

“크흐흐흐.”

그러나 오히려 맨티코어는 그 모습이 즐거운 듯, 입맛을 다시며 웃음을 터트렸다.인면(人面)의 비틀려진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인간의 그것과 흡사했다.

“으하하하!”

맨티코어는 그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놈은 흉포하고 기괴한 웃음을 계속하며, 꼬리에 달린 촉수를 수십, 수백으로 분열시켰다. 이것은 이 은행안에 모인 사람들은 일순간에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릴 최악의 공격.

모두가 눈을 감고 단지 앞으로 펼쳐질 참혹한 광경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

“───!”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패기넘치는 포효가 온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 직후, 쿵쾅쿵쾅쿵쾅- 격렬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거대한 신형이 멘티코어에게로 쇄도하여 무기를 휘둘렀다.

“크엑!”

무기는 공기마저 일그러뜨리며 사자의 인면을 강타했고, 멘티코어는 은행의 깊은 구석으로 통통통- 깡통마냥 나가떨어졌다

“““···”””

멘티코어에 일격을 날린 사람, 아니 생명체는··· 무려 ‘오크’였다. 전신에 푸른 비늘을 두른 오크. 여기 있는 몇몇 사람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명 ‘괴물오크’.

예상치 못한 원군의 등장에 은행 안은 잠시 침묵으로 젖어 들었다.

그러나 그 침묵도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열려진 은행의 입구로 몬스터들이 쏟아져왔고, 오크는 마치 문지기처럼 문 앞에 굳건히 서서 놈들을 도륙했다.

메이스가 휘둘러질 때마다 몬스터들의 사지가 피륙처럼 쉽게 뜯겨지고, 절단되어 허공으로 비산한다. 그에 선혈이 분수처럼 솟아나와 은행 깊숙이 퍼져 기괴하고 끈적한 자국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오크의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은더 없는 듬직함을 느꼈다.

“크흐으으..흐흐.”

‘..시발. 안 죽었네.’

그 때. 저 멀리에서 멘티코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김세진은 낭패라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단 일격에 죽일 생각으로 역전의 전사를 발동하고 강타까지 사용했는데··· 맨티코어는 역시 그 악명 다웠다.

쿵쿵쿵쿵-

등 뒤에서 사자가 질주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전방도 위협적인 몬스터로 가득한데 어찌 등을 신경을 쓰겠는가, 그는 차라리 레비아탄의 비늘에 모든 걸 맡기기로 했다.

콰직!

허나 그 바람과는 달리, 멘티코어의 이빨은 레비아탄의 비늘마저도 쉽게 뚫어냈다. 어깻죽지에서부터 뜨겁게 전해지는 격통에 세진은 비명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

아픔은 곧 분노로 직결되었고, 그는 괴성을 내지르며 멘티코어의 꼬리를 붙잡아 벽으로 내팽개쳤다.

그러나 그 탓에 앞에서 오는 몬스터를 막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용아병’. 용의 뼈로 이뤄졌다는 스켈레톤 답게, 과연 그 위력이 대단했다.

쏴아아-

서늘하게 그어지는 놈의 뼈칼이 오크의 옆구리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도망가야···.’

두 번의 치명타를 얻어맞고, 역전의 전사의 지속시간까지 다 되니 정신이 몽롱해져왔다. 허나 다행히 줄행랑을 위한 비기 ‘선풍의 질주’가 존재하니, 이쯤하고 물러나서 나머지는 기사에게 맡겨야 하는데···

"그어어─!"

그래도 기분나쁘게 생긴 용아병은 터트려야 속이 편할 것 같아, 놈의 두개골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후두둑-

두개골은 전력을 다한 강타에 뼛조각으로 분해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그 직후 몸에 힘이 쫙 빠져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직 멘티코어가 죽지 않고 남아있긴 하지만, 이 이상은 무리다─ 그런데.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오크는 죽음보다 패배를, 패배보다 후퇴를 혐오한다. 그건 종족의 본능이자 반드시 따라야하는 오크만의 섭리나 다름이 없기 때문일까. 내부에서부터 까닭모를 투쟁심과 분노가 거칠게 휘물아쳤다.

"──!!"

그걸 그저 담아두기만 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저도 모르게 포효를 내지르고 말았다.

그렇게 오크는 다시 메이스를 굳게 움켜쥐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알림이 떠올랐다. 동시에 몽롱했던 의식이 차가워지고, 뜨겁게 타는 듯했던 격통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조건 완료─목숨을 건 사투, 오크의 집념 (2/2)]

[이제 포밍몬스터가 오크 재규어에서 오크 대전사로 변화합니다.]

[패시브 스킬- 전사의 특질(F등급)을 습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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