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57화 (57/174)

< 16. 미래의 청사진 (3) >

그리핀. 매의 머리와 날개를 가지며, 몸통은 사자인데 앞발은 또 매의 것인 기묘한 몬스터. 중급지대의 창공을 지배하는 그리핀은 그 위엄있는 생김새로도 대중에게 유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그들의 알은 표면이 이상하리만치 끈적해 다른 여러 물체에 잘 부착되는데, 그래서 중급지대에서 사냥을 하던 사냥꾼이나 기사들도 아주 드물게 이 그리핀의 알을 발견하곤 한다.

‘오우거가 걸어오다가 묻었나?’

세진은 터덜터덜 걸어가 그리핀의 알을 붙잡았다. 특유의 점액이 기분 나쁘게 질척거렸다.

‘깨 먹을까.’

그는 알을 훑어보며 입맛을 다셨다. 우연찮게 그 알을 발견한 사람들이 말하길, 그리핀 알의 맛은 대단한 별미라고 했다.

게다가 이 알 안에서 태동하는 존재는 필시 사회의 골칫거리가 될 몬스터. 그 본성과 본능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새끼라도 절대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하여 ‘괴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겠는가.

“킁.”

그렇게 프라이를 해먹을까 찜으로 해먹을까 생각하던 와중, 정말 불현듯.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패시브 스킬의 목록이 떠올랐다.

▶패시브스킬 ‘포식자’ [숙련등급 C-]

- 적을 처치할 때 마다 조금씩 강해집니다.

- 피식자는 포식자에게 공포를 느끼고, 굴복 혹은 지배되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관련된 스킬이 하나 있었다. 웨어울프로 각성하면서 얻은 모든 폼 범용 패시브 스킬.

사람과 사람사이는 피식-포식 관계가 아니기에 적용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당장 30초전만 해도, 이 알을 깨트려 계란 프라이 해먹을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크릉.”

그리핀을 타고다니는 오크, 혹은 인간. 상상해보니 뭔들 멋지지 아니한가.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한번 하고서, 그리핀의 알을 확장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

다음주 금요일, 더 몬스터 단체에 근무할 전문직원을 뽑는 날.

김세진은 거의 한 시간 만에 모든 면접을 끝냈다.

일단 첫번째는 능력이 먼저였기에,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황금색 오오라가 가장 진한 사람을 가려냈다. 그렇게 해서 먼저 270명중 30명이 선정되고, 나머지는 직접 개별면담으로 그 심성을 판별했다.

악인은 가장 기피해야할 대상이었으나, 마냥 착한 선인도 안 되었다.

그러나 무려 27명의 눈동자가 이미 탁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세진은 어쩔 수 없이 아주 맑은 색을 지닌 나머지 3명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보니 90:1이라는 극악의 경쟁률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았다는 생각에 세진은 만족했다.

“반갑습니다.”

김세진이 자신의 앞에 선,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단체장, 김세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모두 힘찼다.

“모두 자기소개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먼저 왼쪽의··· 소진희 씨부터.”

“아, 예. 옙. 저, 새벽전자 기획팀에서 2, 2년동안 말단 노릇을 하던 소진희라고 합니다아아앗!”

소진희는 볼에 주근깨가 귀여운 젊은 여성이었다. 잔뜩 긴장한 그녀의 대답에는 힘이 아주 바짝 들어가 있었다.

헌데 세진은 살짝 의문이 들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의 세기는 이 셋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다. 헌데 어째서 2년동안 말단에···

“조한성이라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새벽전자의 홍보팀 대리였습니다.”

다음은 조한성이라는 든든한 체격의 남자였다.

근데 이번에도 약간 애매했다. 능력도 좋고, 나이도 꽤 있어 보이는데 고작 대리?없는 지식으로도 대리가 그렇게 높은 직급이 아닌 건 알고 있다.

“저는 유 동입니다. 새벽물산 재무팀 과장인데··· 그 명퇴를 기다리고 있었습죠. 허허. 근데 이렇게 또 다른 기회를 얻어서.. 좋네요. 좋아.”

이름이 특이한 중년남성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모두의 소개를 듣고 나니, 세진의 가슴속에 묘한 감정이 일었다.

기업 새벽에는 능력이 좋고, 자신의 학벌과 여태까지 쌓은 실적을 어필한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심성까지 올곧은 이 세 사람은 고작 말단에 머물러있거나, 퇴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견제 때문에? 혹은 그동안 그 착한 심성을 호구라 비하하는 동료나 상사들에게 이용을 당해왔기 때문에?

“···네. 소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직급은 일단, 모두 ‘팀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 연유가 어찌되었든. 김세진은 이토록 재능과 가능성이 넘쳐나는 사람들을 홀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

“어?”

김세진의 갑작스런 선언에 세 사람의 얼굴이 급작스레 변화했다. 동공이 급격히 확대되고, 입이 떡 벌려졌다.

말 그대로 세상 놀란 표정. 요 근래 단체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어, 뉴스 기사 SNS 등등··· 사회와 통하는 모든 창구에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단체가 ‘더 몬스터’이니 만큼. 그들은 갑작스레 팀장이라는 높은 직책에서부터 시작하게 될 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뭘 그렇게 놀랩니까? 직원이 세명이고 팀이 세 갠데. 당연히 팀장이 되셔야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 아래 가득 쌓여 있던 서류를 들어올려 책상 위로 쿵- 내려놓았다. 한 번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총 네 번.

갑작스레 팀장이 되었다는 기쁨과 놀람도 잠시, 세 직원들은 별안간 등장한 가공할만한 업무량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아탄이 관련. 요거는··· 기사단이랑 마탑에서 제휴요청 들어온 거. 그리고 이건··· 가입신청서? 아 이건 그냥 다 불태우면 되겠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 뭉텅이의 서류가 책상 아래로 가라앉았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 단체원이 만든 무기랑 포션 판매 뭐 그런 거니까 재무 관련이겠네요. 자. 모두 각자 업무 가져가셔서, 열심히 해주세요.”

김세진이 박수를 짝짝 쳤다. 그러자 오크의 무기점에서 임시로 빼온 직원들이 단체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분들이 사무실로 안내해줄 겁니다. 아, 그리고 업무 다 하시면··· 최대한 쉽고 깔끔하게, 그림도 몇 개 좀 넣어서 보고서를 만들어서 제출해주세요. 그리고 또. 직원이 더 필요하면 알아서 데리고 오세요. 제가 보고 판단해서 좋은 사람인 것 같으면 꽂아 드릴게요. 낙하산, 아시죠?”

김세진이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이자, 세 직원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이후로 일주일이 더 흘러, 세 번째 아탄이의 주인이 결정되었다.

조건은 새벽이, 명성은 칠흑이 가장 높았지만. 그래도 두 기사단이 독점하는 모양새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기에-실제로 정부에서 부탁하기도 했다-, 김세진은 대백기사단을 선택했다. 부기사단장 오정혁과 그 아들 오대수가 아주 간절하게 매달리기도 했고, 조건도 새벽 다음으로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공표가 되자 실시간 검색어는 단체 ‘더 몬스터’와 대백기사단, 그리고 아탄이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들려오는 풍문으로는 공표가 난 날, 대백기사단 소속 기사와 사냥꾼들이 모두 모여 기쁨과 승리의 회식을 했다나 뭐라나.

참고로 아탄이는 바로 이틀 뒤. 대백기사단에서 보낸 의전차량을 타고, 수 많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백기사단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도대체 언제 부화하냐.’

그러나 지금, 정작 인터넷에 난리를 일으킨 장본인은 고작 알 하나를 두고 전전긍긍을 하고 있다.

그리핀은 생존을 위해 부화를 특히 빨리 한다고 들었으나, 가져온 지 이주일이 지났음에도 그대로다. 설마 안에서 죽어 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무정란인건 아닐까. 그런 걱정에 고블린 폼의 김세진은 집안을 빨빨거리며 배회했다.

부르르-

그러던 그때. 부화기에 앉혀져 있던 알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그 즉시 세진은 퍼뜩 달려가 부화기 앞에 엎드렸다.

순간 고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크 폼, 인간 폼, 고블린 폼. 도대체 어떤 폼으로 이 아이를 맞이해야 할까.

허나 고민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희미한 진동을 일으키던 알이 갑자기 통통- 튀어 오르며 난리법석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오.”

결국 세진은 인간형으로 변해 알 앞으로 다가섰다.

때마침 알이 쩌저적- 갈라지고, 삐약 삐약- 거리는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

“···.”

세진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역시 그 새끼는 언제나 옳은 법.눈도 제대로 못 뜨는 이 아이는 정말. 너무 사랑스러웠다.

“삐약- 삐약- 빼액- 빼애액- 빼애애액─ 빼애애애애애액─!!”

그러나 아무리 귀엽다 하더라도 역시 몬스터의 핏줄. 놈의 주둥이 사이로 거대한 굉음이 마치 우레처럼 터져나왔다.

귀여운 외관에 홀렸던 세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스킬 ‘포식자’를 본격적으로 활성화했다.

그는 그리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네 주인은 나다’ 따위의 복종과 굴복의 의미가 담긴 의념을 계속해서 흘려 보냈다.

“빼애··· 삐약- 삐약···.”

그러자 천둥같던 울부짖음의 볼륨이 서서히 낮아지더니, 이내 쌔근쌔근 하는 숨소리정도로 희미해졌다.

사상 최초로. 인간이 몬스터를 길들이는데 성공하여 그리핀이 하나의 애완동물로변하는 순간이었다.

“..귀엽네.”

멍하니 중얼거린 세진은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한 솜털과 말랑말랑한 살결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아직 눈을 다 뜨지도 못하는 새끼 그리핀은 자신을 매만지는 손길을 느끼고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혀를 빼꼼 내뺐다. 그리곤 할짝할짝- 그 손을 핥는다.

세진은 그런 그리핀을 아빠미소로 바라보았다.

“···아!”

그러나 아직 해야할 일이 하나 남아있다. 그리핀의 주인은 오직 인간 김세진만이 아니다.

그는 오크와 고블린 폼으로 차례차례 변해 자신의 생김새를 그리핀에게 각인시켰다. 다행히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 그리핀은 그 모든 걸 고요히 받아들였다.

“..흠.”

그렇게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인간폼으로 돌아온 세진은 ‘늑대의 동공’을 활성화했다. 이 놈의 잠재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이건 좀 아쉽네.’

허나 참 안타깝게도, 이 그리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평범 그 자체였다.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상관은 없다.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마력문신’이 어떻게든 너를 지상 최강의 그리핀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마침내 불어온 봄바람은 헐벗은 나무를 따스하게 애워싸며 초목의 태동을 알렸다.

그간 김세진과 ‘더 몬스터’에 관련해서 무척 많은 이슈들이 타오르고, 또 사그라들었다.

가장 먼저 오크 대장장이의 무기 두개가 발매되었고, 그 두 무기 중 하나는 5등급명품(명품의 단계는 1~5단계로, 숫자가 1에 가까울수록 더욱 좋은 명품이라 취급된다.)이라고 판명되어 크나큰 반향이 일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심한 논란도 휘몰아쳤는데, 바로 오크 대장장이가 해외기사단의 기사에게 그 명품을 판매했다는 이유였다.

오크의 무기를 구매한 기사는 북미 전역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베리타스 기사단’의 부기사단장, ‘안젤라’.

부기사단장이 직접 오크의 무기점까지 찾아와, 한국말까지 써가며 아주 정중하게 부탁했기에 성사된 거래였으나, 대한민국의 언론과 기사단은 그 사실을 두고 미친개마냥 물어뜯었다.

부기사단장인 안젤라가 해외에서도 손꼽히는 미녀라서 오크 대장장이가 혹했다,혹은 이미 성매매를 했다, 뭐가 됐든 대장장이는 명품 무기를 해외로 반출한 매국노다. 따위의 음해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고, 그에 결국 김세진이 SNS로 하나의 성명을 냈다. (본래는 기자회견으로 하려 했지만, 공식적으로 오크 대장장이와 김세진은 다른 사람이기에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만뒀다.)

‘한국의 기사들은 특정 등급 이상이 되면 대장장이를 찾아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러나 대장장이에게도 명예는 있는 법. 오크 대장장이는 자신을 더욱 중하게여겨주는 안젤라를 선택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김세진의 40만팔로워에게 퍼진 이 SNS글은 이후 유세정과 김유린이 공유해주었고, 새벽의 도움과 함께 여론의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 (참고로 이 일로 안젤라가 김세진을 팔로우 했다.)시류도 못 읽고 아직까지 대장장이를 무시하는 안일한 태도의 대한민국이라며, 비난과 비판의 화살은 기사단과 친기사단 성향의 언론들에게 돌려졌다.

그러나 그 여론전은 뒤이어 터진 다른 핫이슈에 의해 빠르게 묻혔다.

새벽기사단 소속 중상급기사 ‘주지혁’의 더 몬스터 가입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김세진의 단체는 가입·탈퇴관련 루머마저도 사회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기에, 세진이 관공서에 공문을 제출하고서 바로 다음 날. 곧바로 수 많은 기사가 터져 나왔다.

그 즉시 기자들은 주지혁에게 몰려가 인터뷰와 소감, 그 따위 것들을 요청했고, 주지혁은 갑작스런 관심에 당황하면서도 그저 ‘김세진 단체장님은 물론 그 단원들을 모두 존경하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따위의 정석적인 답변을 했다.

거기에 더해. 주지혁은 단지 더 몬스터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대한민국 기사들 사이에서는 최고 권위를 지니고 있는 주간지 ‘기사의 밤(Night of Knight)이 뽑은 ‘올해 주목할 만한 기사 30인’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수 많은 관심과 논란을 야기시키는 단체장은 지금, 몬스터 필드의 한 동굴에 틀어박혀 있을 따름이다.

‘날 수 있겠어?’

오크 김세진은 그리핀의 등에 설치한 안장에 올라탄 채 의념을 흘려 보냈다.

-끼룩.

몸집이 꽤 커진 그리핀이 혀를 삐죽 내빼며 고개를 갸웃했다.

성장속도가 어마어마한 것은 몬스터의 대표적인 특징. 태어난 지 고작 3주가 흘렀음에도, 그리핀은 거의 청소년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날 수 있겠냐고.’

머핀이가 ─세진은 이 그리핀의 이름을 그리핀의 '리핀'을 따서 '머핀'이라 지었다─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다시 의념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이 놈은 의도를 착각했그는 오크와 고블린 폼으로 차례차례 변해 자신의 생김새를 그리핀에게 각인시켰다. 다행히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 그리핀은 그 모든 걸 고요히 받아들였다.

“..흠.”

그렇게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인간폼으로 돌아온 세진은 ‘늑대의 동공’을 활성화했다. 이 놈의 잠재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이건 좀 아쉽네.’

허나 참 안타깝게도, 이 그리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평범 그 자체였다.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상관은 없다.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마력문신’이 어떻게든 너를 지상 최강의 그리핀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마침내 불어온 봄바람은 헐벗은 나무를 따스하게 애워싸며 초목의 태동을 알렸다.

그간 김세진과 ‘더 몬스터’에 관련해서 무척 많은 이슈들이 타오르고, 또 사그라들었다.

가장 먼저 오크 대장장이의 무기 두개가 발매되었고, 그 두 무기 중 하나는 5등급명품(명품의 단계는 1~5단계로, 숫자가 1에 가까울수록 더욱 좋은 명품이라 취급된다.)이라고 판명되어 크나큰 반향이 일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심한 논란도 휘몰아쳤는데, 바로 오크 대장장이가 해외기사단의 기사에게 그 명품을 판매했다는 이유였다.

오크의 무기를 구매한 기사는 북미 전역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베리타스 기사단’의 부기사단장, ‘안젤라’.

부기사단장이 직접 오크의 무기점까지 찾아와, 한국말까지 써가며 아주 정중하게 부탁했기에 성사된 거래였으나, 대한민국의 언론과 기사단은 그 사실을 두고 미친개마냥 물어뜯었다.

부기사단장인 안젤라가 해외에서도 손꼽히는 미녀라서 오크 대장장이가 혹했다,혹은 이미 성매매를 했다, 뭐가 됐든 대장장이는 명품 무기를 해외로 반출한 매국노다. 따위의 음해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고, 그에 결국 김세진이 SNS로 하나의 성명을 냈다. (본래는 기자회견으로 하려 했지만, 공식적으로 오크 대장장이와 김세진은 다른 사람이기에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만뒀다.)

‘한국의 기사들은 특정 등급 이상이 되면 대장장이를 찾아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러나 대장장이에게도 명예는 있는 법. 오크 대장장이는 자신을 더욱 중하게여겨주는 안젤라를 선택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김세진의 40만팔로워에게 퍼진 이 SNS글은 이후 유세정과 김유린이 공유해주었고, 새벽의 도움과 함께 여론의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 (참고로 이 일로 안젤라가 김세진을 팔로우 했다.)시류도 못 읽고 아직까지 대장장이를 무시하는 안일한 태도의 대한민국이라며, 비난과 비판의 화살은 기사단과 친기사단 성향의 언론들에게 돌려졌다.

그러나 그 여론전은 뒤이어 터진 다른 핫이슈에 의해 빠르게 묻혔다.

새벽기사단 소속 중상급기사 ‘주지혁’의 더 몬스터 가입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김세진의 단체는 가입·탈퇴관련 루머마저도 사회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기에, 세진이 관공서에 공문을 제출하고서 바로 다음 날. 곧바로 수 많은 기사가 터져 나왔다.

그 즉시 기자들은 주지혁에게 몰려가 인터뷰와 소감, 그 따위 것들을 요청했고, 주지혁은 갑작스런 관심에 당황하면서도 그저 ‘김세진 단체장님은 물론 그 단원들을 모두 존경하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따위의 정석적인 답변을 했다.

거기에 더해. 주지혁은 단지 더 몬스터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대한민국 기사들 사이에서는 최고 권위를 지니고 있는 주간지 ‘기사의 밤(Night of Knight)이 뽑은 ‘올해 주목할 만한 기사 30인’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수 많은 관심과 논란을 야기시키는 단체장은 지금, 몬스터 필드의 한 동굴에 틀어박혀 있을 따름이다.

‘날 수 있겠어?’

오크 김세진은 그리핀의 등에 설치한 안장에 올라탄 채 의념을 흘려 보냈다.

-끼룩.

몸집이 꽤 커진 그리핀이 혀를 삐죽 내빼며 고개를 갸웃했다.

성장속도가 어마어마한 것은 몬스터의 대표적인 특징. 태어난 지 고작 3주가 흘렀음에도, 그리핀은 거의 청소년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날 수 있겠냐고.’

머핀이가 ─세진은 이 그리핀의 이름을 그리핀의 '리핀'을 따서 '머핀'이라 지었다─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다시 의념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이 놈은 의도를 착각했는지, 머리를 뒤로 길게 쭉 내빼어 세진의 얼굴을 혀로 핥을 뿐이었다.

“크릉. 크르응!”

결국 세진은 화를 냈고, 머핀이는 그제서야 그 의도를 이해했다.

휘이이잉-

매의 거대한 날개가 사위에 바람을 휘몰아치며 펄럭이자, 머핀이는 오크를 태운 채 서서히 하늘로 활공하기 시작했다.

아직 온전한 성체로 자라나지 못했고, 오크의 무게가 무거운 탓에 단지 숲의 나무를 살짝 스치는 저공비행일 뿐이었다.

그러나 기분만큼은 죽도록 상쾌했다.

아래쪽에서 이름모를 사람의 외침이 들려올 때 까지만.

“으악! 그리핀이다!”

저공비행은 금세 눈에 띄었고, 최하급지대의 기사와 사냥꾼들은 그 위에 누가 탔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이건 확실한 민폐였기에, 세진은 결국 몇 분 날지도 못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쉽네.’

쩝. 입맛을 다신 그는 동굴 한 켠에 마련한 쉼터에 머핀이를 묶어 놓았다.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

어느새 인간으로 변한 김세진은 한숨을 내쉬며 그리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냥 좋아하며 눈꼬리가 초승달 모양으로 휘는 머핀이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냥 확 몬스터 길들이는데 성공했다고 기자회견 해버리고 집에서 키울까··· 세진은 진심으로 그런 고민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에 또 올 게. 기다리고 있어.”

그가 손을 휘저으며 동굴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뒤.

"끄아아아암-"

홀로 남겨진 머핀이는 쉼터 안에 남겨진 장난감을 두 팔로 후려치고는, 따분한 기색으로 하품을 했다. 마치 방금 세진에게 지었던 미소는 단지 억지였다는 듯. 대단히 시크하고 차가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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