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미래의 청사진 (2) >
“···괜찮아요?”
김세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거무죽죽한 안색의 유린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저희 칠흑이 생각하는 조건입니다.”
그리곤 제본된 보고서를 한 권 건넨다.
“아. 예.”
세진은 일단 보고서를 받아 들고서 그 내용을 한번 훑어봤다.
이게 벌써 5번째 미팅이지만, 솔직히 대부분의 내용은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고튕겨 나갔다. 글씨도 작고. 숫자와 수식도 많고. 쓸데 없는 영어도 있고··· 누가 ‘국립’ 기사단 아니랄까봐, 전형적인 관료형 보고서다.
‘진짜 전문 직원이 필요하겠네.’
그는 유세정에게 부탁해서라도 전문적인 직원을 구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으음.”
그는 일단 대충 모든 내용을 이해한 척 보고서를 덮었다. 허나 그런 그를 살피는 김유린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녀는 들릴 듯 말 듯한 한숨을 내쉬고는, 상심한 목소리를 힘없이 뱉어냈다.
“···제대로 읽어보시지도 않으시고···.”
“네? 아, 아뇨. 제대로 읽었습니다.”
뜨끔한 세진이 손을 휘저으며 일축했지만, 그러나 유린의 눈가는 더욱 슬프게 축 쳐질 뿐이었다.
“···김세진 씨.”
“예?”
별안간, 유린이 무어라 할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녀가 하고픈 말은 쉬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이나 그렇게 고민하기만 하다가, 이내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거세게 젓고서 짐짓 활달하게 말을 이었다.
“그때 주신 선물.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 툭 튀어나온 문장은 지금의 상황과 상당히 어울리지 않았다.
세진은 순간 당황했으나, 그래도 최대한 태연히 대답했다.
“아.. 예. 잘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 제가 선물받은 아탄이와 지금 아탄이는 다른거겠지요?”
“네? 아.. 네. 효력은 다릅니다만, 유린 씨에게 선물한 아탄이도 꽤 좋은 물건이에요.”
“역시. 제가 잘 때 마다 옆에 두고 자는데, 뭔가 특이하더군요. 세진 씨 말대로 마음이 안정되고 그러는 게··· 어느새 없어선 안될 제 최측근이 돼버렸습니다.”
"아하하.. 다행이네요."
처음엔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공적인 부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뭔가 툭툭 끊기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대화였다.
유린은 일부러 활기넘치는 척 가장했지만··· 그녀는 사실 꽤 소심한 여인, 열 번의 전화와 여덟 개의 메시지가 씹혔던 기억이 앙금처럼 남아 계속해서 떠올랐다. 게다가 당장 10분전에 수 많은 적들에게 정신적인 공격을 얻어맞았는데, 평소와 같은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결국 대화는 머지않아 끝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가라앉았다.
마냥 듣기만 했을 뿐, 이런 미팅을 주도해본 적이 없던 김세진은 괜히 애꿎은 서류 쪼가리 넘기기만을 반복했다.
[1시간 30분]
그러다 불현듯 얼마 남지않은 시간이 의식을 스쳤다. 유린을 보아하니 지금 할 말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세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가실까요?”
“···예? 아···.”
그러자 유린은 별안간 잔뜩 실망한 표정이 되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도그럴 것이 미팅이 시작한 지는 고작 10분 남짓. 다른 기사단이 최소 20~30분 이상 했던걸 감안하면 꽤 큰 차별이다.
“대신. 나중에 같이 밥이나 한번 더 할까요? 그때 다 못했던 얘기도 남아있고.”
그 어두운 안색을 캐치한 세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에? 아. 좋아요. 제가 마침 다음주 토요일이 비는데···”
“그럼 그 날. 그때 만났던 레스토랑에서 어때요?”
“···네. 괜찮습니다.”
“좋네요.”
세진이 손을 건넸고, 유린은 얼떨떨한 미소를 지으며 그와 악수를 했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그의 마음을 되돌리겠다. 따위의 결연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
요 근래, 김세진의 일상은 꽤나 복잡해졌다. 인간으로서 할 일이 많은 점심에는 인간폼으로 여러 업무를 보다가, 그렇게 정확히 4시간이 지나면 단체 사무실에서 나와 몬스터필드로 향해 성장을 도모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몬스터 필드에서의 세진은 인간이 아닌 괴물오크였다. 몬스터 도감에 게재된 정확한 학명으로는 ‘프로늄 비늘을 두른 오크 재규어’.
프로늄이라는 푸른색 금속과 오크의 전신에 붙어있는 레비아탄 비늘의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여 이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게다가 이 괴물오크의 사진과 소식은 국내를 넘어 해외 커뮤니티사이트로도 퍼져갔고, 세계 곳곳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 탓에 BBD, CNC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방송사 또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유니크하고 강력한 몬스터를 찍고싶다. 뭐 이런 식이었다.
‘..이제 사냥도 진짜 조심히 해야겠네.’
그리고 김세진은 유세정에게 빌린 아이디로 새벽기사단만의 어플인 ‘새벽 페이지’를 둘러보며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중급기사는 물론 중상급기사까지 괴물오크를 토벌한답시고 팀을 꾸리고 있단다. 유세정이 입원한 것에 대노한 기사단장이 공지로써 현상금을 무려 20억이나 걸어 놓았으니, 참여 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푸흥.”
그리하여 지금 김세진은 오크 폼으로 동굴에 틀어박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귀중한 시간을 축내기만 하지는 않았다.
마력문신.
그는 오크의 전신에 문신을 새기고 있다.
‘티도 안 나네.’
다 완성된 문신을 바라보며, 김세진은 만족했다.
오크는 손재주가 없는 만큼 그 모양새가 아주 투박하지만, 문신 색은 오크의 피부와 비슷하여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 레비아탄의 강체를 활성화하면 비늘에 뒤덮여버려 아예 보이지도 않아 별 상관이 없다.
[중급 속성저항 포션이 스며듦에 따라, 속성마법에 일정부분 저항할 수 있게 됩니다.]
[속성마법의 파괴력에 따라, D등급 이하의 속성마법은 무시할 수 있습니다.]
세진이 굳이 이 문신을 새긴 이유는. 마검사라는 특성이 있는 중급기사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서 얻은 교훈, 오크는 물리적 피해에는 대단히 강하지만 ‘마법’이 깃든 공격에는 아주 취약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후···.”
완성된 문신에 만족하고 있던 와중에, 돌연 가슴이 답답해져 다시 한숨이 나왔다.
‘오크 대전사는 언제 되냐.’
남은 조건 하나를 완료해야 재규어가 대전사로 진화할 수 있고, 그쯤 되면 이제 힘의 균형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될 터. 그러나 도대체 빌어먹을 ‘조건’이 뭔지는, 아직 감도 잡히지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뭐하냐···.’
오크는 똥씹은 표정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걸어 동굴 밖으로 향했다.
*
바로 다음날 이른 오전.
“인터뷰?”
-네. 타임지에서 저희 단체원들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 왔어요. 왜 제 쪽으로 제안이 들어온 지는 모르겠지만··· 어때요 오빠?
세진의 아침은 유세정의 모닝콜이 반겨주었다.
“···타임지? 그거 되게 유명한 거 아니야?”
아무리 없이 살아온 고아라고 해도, 오다가다 주워들은 단어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 그 중 하나가 바로 방금 유세정이 언급한 타임지였다.
-네. 맞아요. 주간지 중에서는 세계최고권위일걸요? 그런데, 그런 타임지에서 이번 주 주제 중 하나가 ‘떠오르는 단체’라고, 우리를 인터뷰하고 싶다네요.
유세정은 키득키득 웃으며 즐거움을 가감없이 표출했다.
-나중에 막 오빠가 올해의 인물 이런 걸로 선정되면 웃기겠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오바도 하면서.
“..그건 말이 안되고. 너는 하고싶으면 해. 근데 나는 안될 것 같네.”
세진은 아쉬움을 가득 담아 거절했다. 무지 하고싶지만,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인터뷰에 시간이 얼마나 뺏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예? 왜요? 단체장은 오빤데 오빠가 빠지면 어떻게해요···. 그러면 고블린 연금술사님이랑 오크대장장이 님이랑, 또 마법사 셰나린님은요?
“어··· 그 분들도 안돼.”
-아앗!
그녀의 낭패어린 비명이 들려오자, 세진은 피식 웃었다. 연금술사와 대장장이의 정체. 언젠가는 그녀에게도 알려줘야 하는데···
‘그냥 언제 날 잡고 알려줘야겠다.’
세정이와는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벌써 세정이를 알게 된 지 약 9개월 가까이 지났고, 처음 미성년자였던 그녀는 어느새 성인의 문턱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함께 TV에 출현하기도 했고, 사냥을 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녀를 후드려 패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있어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
-그, 그럼 이거 그냥 거절할게요. 너무 그··· 부담스럽네.
“어? 왜 거절해. 우리 단체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횐데.”
-···네?
“하고싶잖아. 그냥 네가 해. 나나 다른 단체원들 알아서 포장 좀 해주고 하면서.”
유세정은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반응도 내보이지 못했다.
“아. 그것보다, 내가 말한 직원은 구해줄 수 있어?”
-네, 네? 아.. 그거요? 네. 새벽 내부에서 뽑았으니만큼 능력은 의심하지 않아도 돼요. 근데 신청자가 꽤 많아서···.”
“아, 그런 건 괜찮아.”
사람의 겉모습으로부터 그 속을 판별해내는 것은 과거로부터 가장 어려운 일로 꼽혀왔다. 괜히 표리부동, 구밀복검, 이 따위 사자성어가 많이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김세진은 그 깊은 내면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터득했다. 어느새 등급이 B까지 오른 ‘늑대의 동공’이 바로 그것인데, 이 스킬의 등급이 많이 오른 덕에 세진은 인간형일 때에도 타인의 ‘존재’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동공을 극도로 예민하게 활성화하고서 타인의 눈을 바라보면, 그 눈동자의 색이 주인의 심성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먼저 양 극단인 악(惡)과 선(善)이 각각 검은색 하얀색이고, 그 중 어느 쪽으로 치우쳤는지에 따라 탁한 색, 맑은 색으로 나뉘게 된다.
게다가 이것은 심성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에 관련된 ‘능력’의 판별도 가능한데, 이를 위해선 전신에서는 뿜어져 나오는 기운의 세기를 보면 된다. 찬란한 황금빛에 가까울수록 비범한 사람, 색에 매가리가 없고 연할수록 평범한 사람.
물론 그럴 때면 자신의 동공이 샛노란색으로 물들지만, 이건 렌즈로 해결할 수 있으니 상관치 않아도 된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좌르르 모아서 5분동안만 보면 돼. 몇명인데?”
-270명이요
“그래 딱 좋······뭐? 270?”
근데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숫자다.
뭐가 이렇게 많아? 새벽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 헌데 그 자리를 버리고서라도 고작 C-등급의 단체에 취직하고자 하는 사람이 무려 270명이나···
“뭐가 그렇게 많아?”
-저희 단체의 비전이 좋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오빠가 조건을 좋게 걸었으니까 그렇죠. 무슨 월봉을 세후 600씩이나 줘요? 보니까 복리후생도 좋던데.
“아니 그거야 뭐··· 사람에 투자할 돈을 아껴서야 쓰나.”
이건 어쩌면 가슴에 응어리진 한(恨)때문이었다.
사람은 사람답게 대접해야한다.
어린 나이에 온갖 천시와 구박, 조롱과 무시를 견뎌내며, 그는 그 지극히 당연한 금언(金言)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네. 일단 이번 주 금요일에 단체 빌딩에 모이게 할 예정이니까, 오빠가 잘 알아서 하세요.
“어. 너는 인터뷰 알아서 잘 하고. 가능하면 내 이야기는 좋게 말해줘.”
-···흐응···. 네, 뭐 단체장님께서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절대복종해야지요. 그게 우리 단체에 들어오기 위한 조건인데.
갑자기 튀어나온 그 의미심장한 말이 세진의 폐부를 찔렀다.
“···너 그거 어디서 들었냐?”
-뭘 어디서 들어요, 소문 쫙 퍼졌던데. 가입 조건이 ’절대복종’ 플러스 ‘다른 단체 가입 불가’라던데요. 맞아요?
“큼··· 전자는 아니지만, 후자는 그렇게 해야겠네. 나는 박쥐는 싫거든.”
그때는 장난스레 한 말이었는데··· 그게 왠지 공식적인 가입조건으로 내달린 듯했다. 왠지 모르게 김인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놈이 퍼트렸나?
-그래도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 널렸던데요? 아 맞다. 그, 주지혁 중상급기사가 우리 단체에 들어온다는 거 사실이에요? 지금 루머 엄청 돌고 있던데. 우리 기사단 사이에서도 난리예요 난리. 주지혁 출세한다고, 기사들이 질투도 많이 하던데.
“아. 지혁 씨? 착하고 착실하잖아.”
‘단체’라는 이름까지 내걸고서 언제까지 고작 세명으로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세진은 요즈음 주지혁을 눈독들이고 있다. 실제로 지혁에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상상만해도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이미 가입신청서 받았어. 내일 승낙처리 하려고.”
-좋네요. 그분이면 믿음직스럽고. 흐음··· 그럼 내일 주지혁 씨랑 밥이나 같이 먹어야겠네~?
유세정은 살짝 묘한 목소리로 은근슬쩍 말꼬리를 늘렸다. 어쩌면 이건 그의 질투를 유발하고자 하는···
“어. 좋네. 같은 단체원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
그러나 김세진의 반응은 무미건조 그 자체였고,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뭐야?”
급작스레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주머니에 꾸겨 넣고서, 김세진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오늘은 일이 없는 주말. 그러나 그로서는 가장 빡세게 굴러야 하는 날이다.
가자, 몬스터 필드로.
*
오크와 오우거의 힘 싸움. 보통이라면, 오크 재규어는 오우거의 주먹 한방에 A4용지처럼 압축되어야만 했다. 그게 어느 세상, 어느 지역에서나 보편타당한 상식이었다.
-그어어어어어!!
그러나 전황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오크가 전력을 다해 휘두르는 메이스는 오우거의 나무 몽둥이를 바스러뜨린 것으로도 모자라, 그 팔의 일부까지 찢어버렸다. 흉악한 파괴력이었다.
-으으···
무기와 한쪽 팔을 잃은 오우거는 중심을 잃고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가만히 기다려도 승리는 뒤따를 터. 허나 오크는 성미가 급했다. 그는 전신에 뒤덮인 서릿발같은 비늘을 흩날리며 높이 도약해, 오우거의 얼굴에 메이스를 후려갈겼다.
콰아아앙-
그 일격으로부터 퍼져 나온 거대한 충격파가 초목을 휩쓸고, 오우거는 그렇게 이승을 하직했다.
그렇게, 격전을 마친 오크는 본래 있어선 안되는 ‘관중’에게로 몸을 돌렸다.
“..와.”
“오··· 짝짝.”
저 네 명으로 이뤄진 일행 중 두 명은 아예 미쳐버렸는지, 이쪽을 바라보며 박수까지 치고있다.
김세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그들을 노려보았다.
상황은 이러했다. 약 20분 전, 중하급지대를 배회하던 세진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될 몬스터 ‘성체 오우거’를 만나게 되었다. 무늬, 뿔같은 특징이 없어 평범했지만,그래도 성체 오우거는 명백한 ‘중상급’지대에 서식해야하는 중상급 몬스터.
별안간 느닷없이 튀어나온 오우거는 저기 있는 일행을 쫓고 있었고, 김세진은 찰나의 고민도 없이 ‘역전의 전사’를 발동하고서 오우거에게로 달려들었다.
“..도망가야 되는 거 아냐?”
“아냐. 저 오크 사람 안 죽여.”
“아니. 나도 알지. 근데 안 죽이는 거지 안 때리는게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다행히 저 네 명중 한 사람, 두려움에 귀가 바르르 떠는 수인만큼은 정상인 듯했다.
“그럼 잠깐. 나 셀카 좀 찍고···.”
그러나 기사로 보이는 한 여자는 정신을 차리기는 커녕, 더욱 미친 짓을 자행했다. 그에 어이없어진 김세진은 그 쪽으로 서서히 묵직한 발걸음을 움직였다.
“···됐다. 이제 도망가!”
여기사는 오히려 오크가 카메라 화면에 더 잘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서 타다다닷- 부리나케 도망갔다.
‘..세상은 넓고 미친 사람은 진짜 많네.’
명언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김세진은 오우거에게 다가가 그 심장에 박힌 마나석을 뽑았다.
오우거, 그것도 무려 성체 오우거의 마나석. 이걸 재료로 문신을 새기면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무지막지한 ‘근력’을 얻게 될 터.
괴물오크가 오우거의 힘을 얻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그릉?”
그러다 문득, 세진은 오우거의 허벅지에 부착되어있는 물체를 하나 발견했다.
자세히 바라보니··· 하나의 알이었다.
표면에 접착력이 있어 어떠한 것에도 쉽게 달라붙을 수 있는 알. 세진이 알고 있는 거라곤, 오직 하나 뿐이었다.
< 16. 미래의 청사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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