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의문, 노력 (4) >
요즈음 몬스터 필드의 휴게실에는 팀을 이룬 기사들이 많이 출몰하게 되었다. 그들은 저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진 채 이곳으로 왔다.
그 목표는 바로 괴물오크의 토벌.
괴물오크, 요새 SNS, 커뮤니티사이트는 물론 뉴스에까지 등장해 대단히 유명해진 몬스터.
얼마나 유명한지, 언론에서는 ‘스타 몬스터’라는 정신나간 별호까지 붙였다. (물론 이 오크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점에 대중이 적대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인 관심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는 토벌팀의 팀장으로 있는 대백기사단의 ‘오대수’라고 합니다.”
그런 만큼 몬스터 필드의 휴게실에서는 카메라를 비롯한 방송장비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지금도 방송사에서 한 토벌팀을 인터뷰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상은 대백기사단의 오대수. 자기 말로는 괴물오크와 처절한 혈전을 벌이다가 아쉽게 패배했다고 한다.
“혹시, 각오는 있으십니까?”
“간단합니다. 저번에는 아깝게 패배했지만, 이번만큼은 기필코 놈을 처단할 것입니다.”
“아.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그러면 팀의 구성은 어떻게 되십니까?”
오대수는 리포터의 민감한 질문에 입술을 달싹이며 뜸들이다가, 내키지않는 듯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했다.
“···중급기사 4명, 중하급기사 3명입니다.”
“어··· 예상외로 많네요? 오대수 기사님은 자기 혼자서 오크와 박빙을 벌이셨다고 하셨는데, 굳이 그렇게 많은 기사가 필요하지는···.”
“어허. 그때는 조금 다릅니다. 제가 그 괴물오크와 마주했을때는, 놈의 몸이 요상한 비늘로 뒤덮여있지는 않았거든요. 아마도 놈이 저와의 혈전을 경험삼아 깨달음을 얻어 성장을 한 것이 아닌가······”
오대수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래도 리포터는 프로정신을 발휘해 끝까지 들으려 했다. 저 발치에서 새벽기사단의 팀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역시, 몬스터도 좋은 상대를 알아보는구나 하는···.”
“네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리포터는 그 즉시 발길을 돌려 그쪽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뭐야 저 무례한···.”
오대수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그 뒷모습을 노려봤다. 그러나 곧 리포터가 찾아간 인물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갑자기 얼굴이 상기되어서는 리포터를 부랴부랴 따라갔다.
오대수, 그가 유세정 팬카페의 간부 중 한명이라는 사실은 기사단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
카메라의 환영을 받으며 몬스터 필드로 진입한 유세정과 그 외의 팀원들은, 괴물오크의 흔적을 찾기 위해 중급지대로 직행했다.
세정의 등급은 아직 중하급에 불과했지만, 그 능력만큼은 웬만한 중급기사보다도 나은 수준이었기에 그녀 자신은 물론 다른 기사들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괴물오크. 이름과 그 명성은 웅대하지만, 그것은 결국 별로 대단치 않은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에게서 얻은 승리일 뿐. 새벽기사단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물며 무려 3명의 중급기사, 3명의 중하급기사로 이뤄진 팀인데 별 일이 있겠는가.
팀원들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하.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그래서 이 팀에 참여한 기사들에게 괴물오크 토벌은 어쩌면 부수적인 목적이었다. 중점적인 목표는 최고의 인맥과 어느정도는 친해지는 것. 애초에 황금동아줄이 바로 옆에 있는데 오크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러네요.”
그러나 유세정은 계속되는 물음에도 단답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5명의 기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에게 한 마디라도 더 덧붙이기 위해 노력했다. 세정을 제외한 5명의 기사는 모두 남자였고, 그런 수컷들의 머릿속에는 영영 이뤄지지 않을 로맨스가 이미 펼쳐지고 있었다.
허나 그 분홍빛 상상은 오래 이뤄지지 않았다.
-쾅.
어디선가 아주 희미한 파열음이 전해져 왔다. 이건 아마··· 둔기의 타격음. 기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긴 고민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유세정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질풍처럼 뛰쳐나갔다.
*
세진은 얼굴로 번진 핏물을 닦아냈다. 그가 이번에 상대한 몬스터는 새끼 오우거.말이 새끼지, 5m는 가벼이 넘기는 괴수였다.
지금은 그저 발치에 쓰러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지만.
[특성 레벨업]
[모든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거진 2주만에 특성이 레벨업을 해 13이 되었다. 몬스터뿐만 아니라 기사까지 때려잡는 게 많은 경험치를 주었기 때문일까, 꽤 이른 레벨업이지만 감흥은 그리 크지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화. 적어도 이 오크가 대전사로 진화를 해야만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세진은 순간 이쪽으로 빛살같이 달려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하나가 아니라 다수.
‘또 팀이야?’
기척으로 보아하니, 이번에도 기사들의 팀인 듯했다. 벌써 일주일에 3번이다.
그네들은 대부분이 냄새나 기척을 없애는 아티팩트를 차고있는 탓에 무지 번거롭다.
물론 도망가고자 한다면 당장 선풍의 질주를 시전할 수도 있지만··· 굳이 걸어오는 싸움까지 피할 생각은 없다.
김세진은 메이스를 굳게 움켜쥐고서 곧 도래할 기사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정확히 10초 뒤에 후회했다.
“후.”
수풀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기사는 그에게도 익숙한 인물, 유세정이었다.
예상외의 조우에 세진이 당황하고 있는 틈에, 다른 기사들도 속속 도착했다.
“···와······. 진짜다.”
한 명의 기사가 오크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직접 두 눈으로 목도한 괴물오크의 모습은 실로 대단했다.
태양을 등진 채 굳건히 서 있는 저 웅장한 자태를 보라.
괴물오크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는 푸른 비늘에선 영롱한 빛이 새어나오고, 우람한 근육은 생동감이 넘치게 꿈틀거린다. 오크 족장, 아니 대족장이라 해도 믿을 만한 고고한 풍채다.
“..꿀꺽.”
그 정체모를 품격까지 느껴지는 웅대한 모습에, 몇몇 기사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갑시다!”
한 마디 크게 소리친 유세정이 지축을 박차고 쇄도했다.
그에 잠시 굳어 있던 기사들도 부랴부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흡!”
숨이 억눌려 잇새로 자연스레 흘러나온 기합, 유세정은 정말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사선의 검격이 허공에 마나의 자국을 남기며 오크에게로 쇄도했다.
그러나 오크, 김세진은 그 검격을 막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일 대 다 전투에서의 최선은, 최대한 빨리 상대방을 전투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 이 따위 일격은 몸으로 상쇄시키고, 자신은 그 본체를 노리자.
‘···미안.’
세정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6명의 기사로 이뤄진 팀은 자신도 힘들다. 괜히 살살한답시고 염병했다가 이쪽이 위험해지는 일은 사양이다.
애당초 자신은 그들을 살해할 의도가 없지만 저쪽은 토벌을 위해서 달려드는 것이니, 입장차이도 명백하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섣불리 돌격한 유세정에게 있다.
“그어어어어-!”
오크는 포효를 내지르며 메이스로 유세정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이건 기본공격이아니라, 무려 강도를 조절한 ‘강타’다.
“끅!”
몸에 내두른 마나강기가 힘없이 깨어지고,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마치 절구통처럼 튕겨져나갔다.
쿠당탕탕- 하염없이 튕겨지던 그녀는 나무에 부딪힘으로써 멈춰섰다. 그러나 몸의 미동은 없다. 확실한 전투불능 상태.
무기를 잘 다룰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의 등급이 B까지 상승함에 따라. 그는 상대의허점이나 실수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 유세정의 실책은 섣불리쇄도하여 메이스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온 것.
아마 제 딴에는 기습적인 일격으로 먼저 피해를 입히려 했던 것이었겠지.
헌데 실제로 그녀의 일격은 굉장히 매서웠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레벨업시스템이 적용되는 그녀이니, 일종의 ‘스킬’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스킬이다. 김세진은 자신의 가슴비늘에 새겨진 깊은 자상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여유는 사치였다. 아직 다섯의 기사가 남아있으니.
“세정 씨!”
다음 타겟은, 여유롭게 세정씨- 라고 부르짖는 남자기사로 정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장난인 줄 아는 것 같은데··· 저런 상황파악도 못하는 놈에게는 참교육이 필요한 법.
김세진은 다른 기사들의 공격을 기민하게 회피한 후, 쓰러져있는 세정에게 달려가려는 남자의 등에 메이스를 후려갈겼다.
“으악!”
등을 내보였던 기사는 단발마를 내지르고선 풀썩 쓰러졌다.
이 메이스에 부가된 성질은 오직 하나 뿐이다. B등급 ‘파괴력 강화’.
그만큼 무식할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이 지닌 무기인데, 그걸 무려 등뒤에서 얻어맞은 이상 의식이 남아있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그렇게, 세진은 두 명의 기사를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솎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투는 그 다음부터였다.
앞선 두 전례 때문일까. 나머지 네 명의 기사는 결코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합을 맞춰,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보완해가며 오크를 상대했다.
그 기가막힌 협공에 세진의 디딤발이 점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수 많은 공격을 허용했다. 단지 공격들의 깊이가 너무 얕아 레비아탄의 비늘을 뚫어내지 못했을 뿐.
기사들도 그걸 알고 있는지, 그들은 유세정에 의해 비늘이 헤진 가슴팍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러나 이토록 수세에 몰렸음에도, 김세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 하나의 비기가 더 남아있다. 5분동안이지만, 무려 지금보다 두배는 더욱 강력해질 수 있는 '역전의 전사'.
물론 그걸 쓰면 기력이 소모되어 오늘 사냥은 쫑이지만··· 역시 이토록 합이 잘 맞는 기사 네 명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태양을 등진 채 굳건히 서 있는 저 웅장한 자태를 보라.
괴물오크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는 푸른 비늘에선 영롱한 빛이 새어나오고, 우람한 근육은 생동감이 넘치게 꿈틀거린다. 오크 족장, 아니 대족장이라 해도 믿을 만한 고고한 풍채다.
“..꿀꺽.”
그 정체모를 품격까지 느껴지는 웅대한 모습에, 몇몇 기사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갑시다!”
한 마디 크게 소리친 유세정이 지축을 박차고 쇄도했다.
그에 잠시 굳어 있던 기사들도 부랴부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흡!”
숨이 억눌려 잇새로 자연스레 흘러나온 기합, 유세정은 정말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사선의 검격이 허공에 마나의 자국을 남기며 오크에게로 쇄도했다.
그러나 오크, 김세진은 그 검격을 막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일 대 다 전투에서의 최선은, 최대한 빨리 상대방을 전투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 이 따위 일격은 몸으로 상쇄시키고, 자신은 그 본체를 노리자.
‘···미안.’
세정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6명의 기사로 이뤄진 팀은 자신도 힘들다. 괜히 살살한답시고 염병했다가 이쪽이 위험해지는 일은 사양이다.
애당초 자신은 그들을 살해할 의도가 없지만 저쪽은 토벌을 위해서 달려드는 것이니, 입장차이도 명백하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섣불리 돌격한 유세정에게 있다.
“그어어어어-!”
오크는 포효를 내지르며 메이스로 유세정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이건 기본공격이아니라, 무려 강도를 조절한 ‘강타’다.
“끅!”
몸에 내두른 마나강기가 힘없이 깨어지고,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마치 절구통처럼 튕겨져나갔다.
쿠당탕탕- 하염없이 튕겨지던 그녀는 나무에 부딪힘으로써 멈춰섰다. 그러나 몸의 미동은 없다. 확실한 전투불능 상태.
무기를 잘 다룰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의 등급이 B까지 상승함에 따라. 그는 상대의허점이나 실수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 유세정의 실책은 섣불리쇄도하여 메이스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온 것.
아마 제 딴에는 기습적인 일격으로 먼저 피해를 입히려 했던 것이었겠지.
헌데 실제로 그녀의 일격은 굉장히 매서웠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레벨업시스템이 적용되는 그녀이니, 일종의 ‘스킬’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스킬이다. 김세진은 자신의 가슴비늘에 새겨진 깊은 자상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여유는 사치였다. 아직 다섯의 기사가 남아있으니.
“세정 씨!”
다음 타겟은, 여유롭게 세정씨- 라고 부르짖는 남자기사로 정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장난인 줄 아는 것 같은데··· 저런 상황파악도 못하는 놈에게는 참교육이 필요한 법.
김세진은 다른 기사들의 공격을 기민하게 회피한 후, 쓰러져있는 세정에게 달려가려는 남자의 등에 메이스를 후려갈겼다.
“으악!”
등을 내보였던 기사는 단발마를 내지르고선 풀썩 쓰러졌다.
이 메이스에 부가된 성질은 오직 하나 뿐이다. B등급 ‘파괴력 강화’.
그만큼 무식할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이 지닌 무기인데, 그걸 무려 등뒤에서 얻어맞은 이상 의식이 남아있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그렇게, 세진은 두 명의 기사를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솎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투는 그 다음부터였다.
앞선 두 전례 때문일까. 나머지 네 명의 기사는 결코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합을 맞춰,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보완해가며 오크를 상대했다.
그 기가막힌 협공에 세진의 디딤발이 점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수 많은 공격을 허용했다. 단지 공격들의 깊이가 너무 얕아 레비아탄의 비늘을 뚫어내지 못했을 뿐.
기사들도 그걸 알고 있는지, 그들은 유세정에 의해 비늘이 헤진 가슴팍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러나 이토록 수세에 몰렸음에도, 김세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 하나의 비기가 더 남아있다. 5분동안이지만, 무려 지금보다 두배는 더욱 강력해질 수 있는 '역전의 전사'.
물론 그걸 쓰면 기력이 소모되어 오늘 사냥은 쫑이지만··· 역시 이토록 합이 잘 맞는 기사 네 명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조금만 더! 이제···”
한 명의 기사는 이 유리한 기세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문자 그대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이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별안간 오크의 몸에서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전 까지는.
“···뭐야?”
“계속 쳐!”
그 불길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전황이 유리한데 공격을 멈추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
···애초에 앞서 유세정을 챙기느라 나뒹군 한 남자 기사가 제일 하수였지만.
하지만 갑자기 오크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몸과 눈에서 퍼져나오는 정체모를 붉은 기운 때문일까. 움직임이 더욱 날렵해지고, 그 위력이 훨씬 강맹해졌다.
휘잉-
허공을 가른 메이스의 풍압에 고목나무가 박살이 나고, 단지 스치기만 했을 뿐임에도 허벅지의 신경이 끊어진 듯한 격통이 전해졌다.
“시발!”
결국 기사들은 욕설을 뇌까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전세는 압도적으로 역전되고, 그들은 버티기에 급급했다.
허나, 그 단지 버텨내는 것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크어어어어어-!!
어느 순간 오크가 거센 포효를 내지르며 메이스로 땅을 내리치자, 지각(地殼) 전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가공할만한 강타에서 발생한 충격파는 범위 안의 기사들에게 오롯이 전해졌다.
사지가 짓이겨지는 격통이었다.
“읏.”
“끄윽.”
패악적인 힘이 휩쓸고 간 공간은 처참했다. 평지는 깊은 구덩이가 되었고, 그 속에 빠져버린 기사들은 온몸을 휩쓰는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이미 개중 두 명은 기절해버렸을 정도.
그들로서는 이런 극한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는 사실 처음이었다. 사냥꾼, 군인과는 구별되는 고급인력이랍시고 받들여지며 살아왔었기에.
애초에 몬스터를 그저 돈주머니로 보고, 사냥을 단순한 '노동'으로 쉽게 생각해왔던 기사들은 목숨을 담보로 내건 사냥꾼과는 그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몬스터 사냥이 단지 도축에 불과한 기사들은 그저 생명체를 '벤다' 혹은 '죽인다'에 익숙해졌을 뿐, 결코 칼날과도 같은 마음은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진정한 기사'라는 중상급 이상의 기사가 되기 위한 평가항목에 마음가짐이라는 게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김세진은 터벅터벅 걸어가 그런 그들을 굽어보았다. 오크는 유독 승자의 우월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렇듯 패자를 내려다보는 건 꼭 필요한······
“야!”
그때. 익숙한 음성이 메아리쳤고, 세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유세정이 서있었다.
“저기요! 기절한 기사 세 분 데리고 도망치세요!”
그녀는 세진에게 검을 겨냥한 채, 구덩이에서 고통스러워 하고있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순간 그 속에서 소란이 일었다. 어떻게 당신을 두고 도망갑니까, 뭐 그런 흔한 이야기였다.
“어차피 이 오크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서요!”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지금만큼은 확신하지 못했다. 이 오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흉흉한 기운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서요! 그리고 저도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거니까 어서 꺼지라고요!”
‘..얘가 왜이래?’
유세정의 태도에 오히려 오크, 김세진이 당황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곧 과거의 언젠가와 오버랩되었다.
식탐의 트롤을 마주했던 때. 그녀는 그때도 혼자서 트롤을 마주하며, 자신에게는 도망가라 종용을 했었지.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했으니 너무 자극하지 마시고, 그냥 저희와 함께 후퇴하는 것이···”
“자극은 그쪽이 다 해놓고 뭔.. 그냥 가서 도와줄 사람이나 불러오라고요 좀!”
유세정이 다시금 외쳤다.
“···?”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그저 대책없이 도망가라 일렀던 것이라면, 지금의 그녀에게는 필살기가 하나 있었다.
우웅-
바람이 불고, 검이 진동하며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에 초고압으로 압축되어가는 검기가 아마도 그 필살기.
검이 공명할 정도로 고밀도·고농도로 농축된, 검기를 넘어선 ‘검강’.
중상급기사도 쉬이 다루지 못하는 어려운 기술을. 그녀는 해내고 있었다.
남은 두 기사들은 그 광경을 확인하자, 쓰러진 기사 셋을 짊어매고선 빠르게 움직였다. 팔다리가 분질러졌어도 역시 기사는 기사. 웬만한 일반인의 전력질주보다도 속도가 빨랐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완전히 물러서고 나자, 유세정은 본격적으로 몸 안의 마나를 바닥까지 긁어서 모아냈다.
그 예리한 마나의 기운은 세진도 긴장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는 메이스를 강하게 투척했다.
숙련도가 높아졌기에 부메랑처럼 휘게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지상 최고의 전략, 일명 선빵필승.
전력을 다해 마나를 모으던 유세정은 그 갑작스런 일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콩-
“꺅!”
그렇게, 그녀는 후두부에 메이스를 얻어맞아 기절하고 말았다.
“···.”
솔직히 어이없는 결말이었다.
스킬만 쓰면 뭐해. 그걸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지···
역시, 어린 티는 이래서 난다. 금지옥엽처럼 자라서 뭔 고생을 했겠어. 괜히 콧대만 높아져서 만용을 부리는 나쁜 습관만 배워서는···
“후.”
주변을 슬쩍 훑어본 김세진은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인간폼으로 변했다.
그리곤 유세정을 업고서 발걸음을 움직였다.
조금 기다리면 도와줄 사람이 오겠지만··· 그때까지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러니까 같이 도망이나 갈 것이지. 진짜 바보네.’
그는 자신의 등에 업힌 유세정을 속으로 힐난했다.
그러나, 그 입가에 만큼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조건 완료: 5개의 팀 격파.]
- 앞으로 하나의 조건을 더 완수하면 오크 재규어 폼이 ‘오크 대전사’폼으로 변경됩니다. (1/2)*
“···어! 김세진 씨!”
새벽의 집사이자 비서실장인 박현오는 초조함에 줄담배를 태우며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저 멀리서 이 쪽으로 걸어오는 두 사람을 발견하곤 부리나케 달려갔다. 정확히는 한 사람만 걸어오고, 다른 하나는 그 한 사람의 등에 업혀있다.
“오랜만이네요.”
김세진은 빨빨거리며 달려온 박현오에게 유세정을 양도하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 진짜 오랜만입니다. 그간 왜 연락이 없으셨던 겁니까? 아가씨가 얼마나···”
“아 지금 얘가 많이 아프니까 그 얘긴 나중에 하죠.”
“···예.”
“포션은 먹여 뒀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세진의 말에 박현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괴물오크, 그 놈을 잡으러 가다가 이렇게 된겁니까? 분명 여섯 명이 팀을 이뤘다고 들었는데···.”
“..괴물오크요? 어··· 그 오크가 워낙 강력했나 보죠? 아니면 몇몇 기사들이 멍청했거나.”
박현오는 그 이후로도 많은 걸 물어봤다. 어떻게 유세정을 발견했냐, 괴물오크는 어떻게 됐느냐 등등···
세진은 우연히 그들이 전투를 치르는 장면을 목격했고,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서 지켜보다가 유세정을 데리고 도망쳤다고 변명했다.
“그럼, 이만. 오늘 일. 감사했습니다.”
“네 뭐···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유세정을 떠나보낸 세진은 아주 오랜만에 집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날 밤.
입원한 유세정과 그 이외의 새벽기사를 두고, 괴물오크와 관련해서 난리가 났다.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고, 뉴스란도 점령했다.
「무려 새벽기사단도 실패한 괴물오크 공략··· 남은 건 칠흑기사단 뿐?」
「절체절명의 상황에 유세정을 구해준 건 사냥꾼 김세진.」
「이번에도 단 한명도 살해하지 않은 괴물오크··· 대중은 오히려 그 연전연승을 반긴다.」
뭐 이런 식이었다.
< 15. 의문, 노력 (4)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