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의문, 노력 (3) >
칠흑기사단 본부. 고위기사 ‘김유린’의 개인 사무실 안.
“몇 번이나 말씀 드렸잖아요. 연락을 안 받으신다고.”
한 남자와 마주한 김유린은 정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하소연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분 전. 그녀가 평범히 서류작업을 하던 와중에 별안간 채영호가 불쑥 찾아왔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충고와 설교를 5분동안 늘어놓고는, 다짜고짜 김세진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왔다. 당장 어제 ‘연락이 안 닿는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끈질기게.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닌가 의심까지 하며.
“허어.. 너는 애가 인맥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고작 하루 저녁 한끼로 인맥이 파탄나는게냐?”
답답함에 울먹이기까지 하는 유린의 태도에 채영호는 일단 그 말이 진실임은 받아들였지만, 물러나지 않고 이번에는 그녀의 처세술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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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이라뇨! 분위기는 좋았···.”
유린은 무어라 반박을 하려다,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가 그 때 저녁식사자리에서 파악한 김세진은 자존심이 세고, ‘더 몬스터’라는 단체에 대한 자부심이 컸었다.
그러나 자신은 김세진이 직접 제안한 단체가입문의를 단호하게 거절해버렸다. 물론 마땅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때 그는 그저 웃으며 넘겼었지만···
‘정말 혹시?’
“거봐라. 뭐 켕기는게 있나 보구나. 하필이면 요새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실수를 저지르다니··· 내가 누누이 말했잖니. 너나 네 아버지는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투르니, 나에게···”
“아니라니까요!”
채영호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린의 아버지까지 들먹이자, 그녀는 책상을 펑- 내려쳤다. 그는 살짝 쫄아 몸을 흠칫 떨었다.
“후. 기다려봐요.”
그녀는 씨근덕거리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지금 당장 한번 더 해볼 테니까···.”
그리곤 저장된 수 많은 연락처 중 하나로 전화를 걸었다.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핸드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어느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그렇게 약 40초.
“···안 받는구나.”
결국 김세진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유린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다소곳이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채영호가 그 모든 광경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크게 한탄했다.
“하아. 너는 내가 누누이 말했지. 네 능력만 믿고서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면···”
“제가 언제 우습게 봤다고 그러세요. 보시지도 않았으면서.”
“안 봐도 뻔하다. 너도 모르는 사이, 은연중에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이 행동으로 튀어나왔을 게야. 그러니 너도 인지를 하지 못하는 거고.”
“아니···.”
유린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나 김세진과의 연락이 끊긴 건 사실이기에, 그녀는 더 이상의 변명을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차피 핑계나 변명따위를 댔다간 이 괴로운 시간이 늘어날 뿐이다.
그냥 꾹 참자. 꾹 참고, 내일 다시 전화해보자.
*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
“으허억!”
오대수는 자신의 코앞에서 멈춘 충격파의 위력에 놀라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눈앞은 문자 그대로 황폐했다. 마치 대지진이라도 난 양 대지가 흉악하게 갈려졌고, 그 단면에서는 뜨거운 연기가 부스스- 피어올랐다.
꿀꺽. 그 압도적인 장관에 오대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자신이 저 충격파에 직격당했더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아마 사지가 통째로 분쇄되었겠지.
다다다닷-
그렇게 엎어져있는 오대수의 등 뒤로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힐끗 돌아보니 두 명의 사냥꾼이 달아나고 있었다. 엎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며, 추하지만 필사적으로.
오대수는 그런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그으으···”
그때 오크의 저주파 소리가 귓등에 메아리치고. 오대수의 심장이 잠시나마 작동을 중지했다.
그는 온통 땀에 젖은 얼굴을 서서히 들어올려, 언덕 위에서 이쪽을 굽어보는 오크의 모습을 망막에 담았다.
순간 격이 다른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예상보다 훨씬 세네.’
그리고, 김세진은 자기가 일으킨 현상에 자기가 놀랐다.
'강타', 메이스로 몬스터들을 쳐죽이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얻게 된 액티브 스킬. 단 한번의 공격에 한해 근력이 3배 뻥튀기 되고, 특수한 충격파가 발생한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보조를 해주는 스킬인 줄 알았는데, 써보니 거의 필살기 급이 아닌가.
과연. 한 10일동안 노가다를 한 보람이 있었다.
지금 특성의 레벨은 무려 12고, 영체로 분해 몸 속으로 스며든 무기와 장비는 죄다 상품이상. 이 폼은 비록 오크 재규어지만, 일신의 무력만큼은 아마 오크 대전사와도 맞먹지 않을까.
“으···으!”
세진이 자신의 성장세에 감탄하고있는 사이. 바닥에 엎어져 있었던 기사 한명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 푸으. 으으!”
세진은 기묘한 호흡을 뱉으며 도망가는 기사의 뒷모습을 감상했다.
몇 발자국 걷다가 풀썩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뒤를 힐끗 바라본 후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인다. 애처로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강타는 조기위협용, 굳이 저 배불뚝이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어어!”
세진은 빨리 꺼지라는 의미의 포효를 내질렀다. 오대수는 화들짝 놀라 넘어졌지만, 이내 네발로 기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러게 왜 시비를 걸어?’
가만히 도망가면 그냥 모르는 척 하고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그는 오대수의 처절한 모습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걸어 다음 사냥감을 물색했다.
*
‘아. 쑤신다 쑤셔.’
오늘 하루의 할당량을 끝마치고, 세진은 다시금 동굴로 돌아왔다.
요 10일 간. 세진은 오크폼을 한 채 몬스터는 물론 기사와 사냥꾼에게도 싸움을 걸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혹시라도 진화를 위한 조건이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 해서.
그렇다고 사람을 죽였다는 건 아니다. 무기나 장비를 깨부수거나, 아니면 기절시키거나 해서 목숨은 곱게 남겨뒀다. 물론 전투 와중에 입는 부상은 어쩔 수 없겠지만, 사지가 찢겼다거나 한 사람은 전무했으니 별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스킬만 주구장창 얻고있네.’
그러나 이 전투의 목적인 진화는 요원하고, 요상한 스킬들만 얻고 있다.
일격의 위력이 순간적으로 급증하는 액티브 스킬, ‘강타’.
온몸이 금속처럼 단단해지는 패시브 스킬, ‘불굴의 강체’. 등등···
당연 스킬이 많아진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니 오히려 좋다. 지금상황에 오크폼이 강해지는 걸 왜 마다하겠는가.
‘근데 이제··· 되겠지?’
지금 그가 하고자 하는 행위는 스킬의 조합.
조합하고자 하는 스킬은 각각 ‘레비아탄의 비늘’과 ‘불굴의 강체’인데, 당장 10일 전만 해도 스킬등급이 부족해서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이제 불굴의 강체가 등급C까지 상승하였으니, 어쩌면 F등급인 레비아탄의 비늘과 조합이 되지 않을까.
‘해보자.’
조합을 하기위해서는 그냥 두개의 스킬을 조합하겠다고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으면 된다. 그렇게 기다리면, 얼마 안 있어 알림창이 떠오른다.
바로 지금처럼.
[스킬이 조합되었습니다. ‘레비아탄의 비늘’과 ‘불굴의 강체’가 합쳐진 새로운 스킬, ‘레비아탄의 강체’를 습득합니다.]
[앞으로 89일 23시간 59분 56초 동안 스킬조합이 불가능합니다.]
▶패시브 스킬 ‘레비아탄의 강체’
- F-등급 레비아탄 비늘이 몸을 감싸게 됩니다. (활성/비활성화가능) - 레비아탄의 비늘은 모든 속성에 일정량의 저항력을 가집니다.
- 이 스킬은 어떤 폼이든 상관없이 사용이 가능합니다.
‘오 됐다.’
그는 놀라서 몸을 들썩였다.
본래 레비아탄의 비늘은 ‘레비아탄’에게만 적용되는 고유한 패시브 스킬. 그것을 불굴의 강체라는 스킬과 조합하여, 몬스터는 물론 인간폼까지 사용할 수 있게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도 하나의 성과라 할 수 있겠지.
세진은 시범삼아 스킬을 한번 사용해보았다.
전신에 서릿빛 비늘이 촤르르 솟아올랐다.
“오.”
영롱한 비늘로 뒤덮인 오크. 언뜻 보면, 꽤 폼나지 아니한가.
*
세진이 오크폼으로 몬스터필드를 배회하기 시작한 지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꽤 많은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동해에 발생한 해저균열은 무리없이 진압되었지만, 균열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아프리카 쪽 대서양(海)에도 해저균열이 발생했고, 그것은 아프리카 연합정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아직까지도 진압이 되지 않아, UN기사단이나 다른 국가 기사단에서 지원을 가야할 것이라는 소문이 스멀스멀 퍼지고 있었다.
“괴물오크··· 아, 그 중급지대 돌연변이 오크요?”
“아. 네 그··· 지금 저희가 팀을 꾸리고 있거든요.
그러나 아프리카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게 화제였다.
중하급~중급지대에 걸쳐 서식하는 한 마리의 오크, 일명 괴물오크라 일컬어지는 존재. 이 오크는 다른 오크와는 구별되게 일신이 푸른 비늘로 뒤덮여 있다고 한다.
수 많은 기사들을 모두 패배시켰음에도 단 한 명도 살해하지 않아 어울리지 않게 ‘신사’라는 기이한 별명까지 얻은 이 오크는 지금, 명성을 원하는 기사들의 대대적인 표적이 되었다.
“저희 팀에 들어오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인생 최대의 용기를 발휘하고 있는 이 ‘김원종’이라는 중급기사는, 유세정에게 그 오크의 토벌을 위한 팀 참가를 권유하고 있다. (보통 기사가 7명 이상일 때 팀이라고 말한다.) 고작 중급지대를 서성이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 팀을 꾸린다는 건 조금 많이 이상하지만, 오히려 새벽기사단에서는 중하급~중급 기사로 이뤄진 팀의 결성을 장려하고 있었다.
보통 팀 단위 사냥은 기사들이 중상급기사정도나 되어야 시작되는데, 이 오크를 대상으로 한번 미리 경험이라도 해보라는 취지였다.
게다가 이 오크는 무슨 연유에선지 단 한 명의 기사와 사냥꾼도 죽이지 않았으니 별 다른 걱정도 없었다.
물론 돌발상황은 언제나 일어나는 법이지만··· 현재 100여명의 피습자 중 가장 심한 부상이 갈비뼈 골절인 것을 보면, 이 오크가 분명 불살(不殺)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은 명확해 보인다.
오크가 살생을 꺼리다니. 아주 불가해한 소리지만, 원래 몬스터는 근본적으로 그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 아니던가.
“···.”
팔짱을 낀 유세정은 잠시 고민했다.
괴물오크. 놈의 공식적인 전적(?)은 148전 148승 0패. 챔피언도 이런 챔피언이 없다.
그러니 토벌에 성공하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실적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실적은 그대로 중급기사 승급 시험으로 직결될테고.
잠시 고민하던 세정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녀의 핸드폰 연락처에 저장될 수 있는 커트라인은 중상급 기사, B등급 마법사, 정재계의 간부.
그 속에서 사냥꾼이라고는 오직 한 명. 김세진 뿐이었다.
“잠시만요. 근데, 혹시 사냥꾼 자리는 있나요?”
“네? 아.. 어, 없지만 만들겠습니다!”
남자가 크게 소리치자, 세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능하다면. 그 남자와 함께 사냥을 하고싶었다. 아니, 이건 어쩌면 그와 만나고 싶어서 만들어낸 변명 혹은 핑계.
그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은 지 벌써 한달 가까이 되어간다. 도대체 왜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렸는지, 그녀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뚜르르르-
수화음이 길게 지속되자 유세정은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초조했다.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지금 거신 전화는···
결국 마지막은 또 이거다.
하아- 한숨을 내쉰 유세정은 상심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이쪽을 살피는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할게요.”
“오!”
그 예상치 못한 응낙에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심기가 날카로워진 유세정이 미간을 찌푸리자, 남자는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한번 했다.
“큼. 감사합니다. 그럼 그··· 사냥꾼님을 위한 한 자리는 남겨두면 되는 건가요?”
세정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럼···.”
“알아서 해주세요. 가급적이면 능력이 있으신 분들로.”
그녀는 남자의 말허리를 냉정히 잘라내고서, 터덜터덜 걸어 훈련장으로 향했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그러다 문득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그녀로서는 이런 답답한 감정조차도 어색했다. 평생 떠받들여졌던 자신이 왜 고작 한 사람에게 이토록 휘둘리고 있는지. 그 이유는 갈피조차도 잡히지 않는다.
단지 그 김세진이라는 인맥을 잃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워서? 아니. 그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그저 그것 뿐만은 아니다.
“푸우···.”
매가리없이 걷던 유세정은 어느새 훈련장의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말. 정말 이상하게도, 매일매일 하고싶었던 훈련이 요 근래는 너무나도 지겨웠다.
< 15. 의문, 노력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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