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의문, 노력 (1) >
“저거, 저것 좀 어떻게 좀 해보세요!”
“끄흐으으으···”
고고하게 비행하는 그리핀의 아래쪽은 난리통이었다.
한쪽 팔이 잡아뜯긴 스태프는 그 단면을 부여잡으며 흐느끼고, 그 이외의 스태프들은 감히 도망은 생각도 못한 채 기사들을 닦달했다.
“아 그. 일단 저희 뒤에서 꼼짝 말고 계십시오!”
그러나 기사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보통 그리핀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원거리 사격이 가능한 사냥꾼이나, 마나를 아주 섬세하게 다루는 기사가 필요하다. 허나 이쪽은 오직 중급기사 두 명, 중하급기사 두 명으로 이루어진 호위부대.
애초에 하필 오늘 하급지대에 그리핀이 출몰하리라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네.’
김세진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저들을 도와주기로. 저대로 가만히두면, 넷의 기사는 몰라도 스태프들은 100% 전멸이다.
그래서 일단 세진은 위협사격을 준비했다. 땅에 포함된 수분을 몸 안으로 끌어올린 후, 입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아직 하나의 과정이 더 남아있다.
그리핀은 불을 무서워하니, 입에 머금어진 물을 불로 변환시켜 쏘아내자.
“쀼─ 쀼─”
이건 의도가 아니라, 물을 내뿜으면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소리다.
그러나 이 맥빠지는 효과음과는 달리,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줄기는 상당히 파괴적이었다. 화염은 포물선이 아닌 일직선으로 빠르게 치밀어 그리핀을 거칠게 위협했다.
마치 섬전처럼 쏘아지는 화염에, 그리핀은 당황한 기색으로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
그리고 기사와 스태프들은 멍한 눈으로 그 화염을 뱉어내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쀼─ 쀼─ 하며 그리핀을 위협하는 화염의 줄기를 쏘아내고 있는 저 귀여운 생명체는 도대체···
이건 확실히, 실로 십년. 아니 오 십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광경이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을 망막에 필사적으로 새겼다.
“끼에에에엑-!”
그리핀이 거칠게 포효했다. 순간 모두가 긴장했다.
기사들은 혹시 모를 그리핀의 활강을 막기위해, 자신들을 도와주는 저 뿔달린 물범(?)을 보호하려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리핀은 허공에서 한바퀴 빙글 돌더니, 다른 곳으로 훨훨 날아갈 뿐이었다.
기사들은 후퇴하는 놈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온다.”
그때 한 스태프가 멍하니 외쳤고, 기사들은 화들짝 놀라 다시금 전투태세를 갖췄다.
허나 이쪽으로 엉금엉금 다가오는 그 대상을 확인한 순간. 그들은 무기를 슬그머니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왜 오는거지?”
기사 한 명이 중얼거렸다.
이 기이한 생명체는 두 팔로 몸을 질질 끌며 일행쪽으로 이동해오더니, 이내 한쪽 팔을 잃은 쇼크로 바닥에 쓰러져 기절한 스태프 앞에 멈춰섰다.
꿈결과도 같은 신비함에 젖어있던 기사와 스태프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중상을 입은 스태프에게 부랴부랴 다가갔다.
“..얘 뭐하는거야?”
그러다 다시 우뚝 멈춰선다.
이 물범(?)은, 쓰러진 스태프에게 침으로 추정되는 액체를 뱉어내고 있었다.
‘포션의 역할, 충분히 할 수 있겠지?’
회복포션은 골백번도 만들었고, 레비아탄의 몸은 이미 포션이라는 액체를 이해했다.
레비아탄은 마나의 흐름을 몸으로 느낀다. 물 속의 마나를 재조직하여 그 성질을 포션과 닮게 하는 것. 설명은 못해도,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 지. 레비아탄의 몸이 이미 알고있다.
“···어?”
몬스터의 타액이라 추정되는 액체가 팔이 잘려 나간 단면에 닿자, 별안간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 잠.. 이거. 야 이 분 한쪽 팔 어디갔어? 무사해?”
책임자로 보이는 기사가 소리치자, 다른 기사가 부랴부랴 달려가서 수풀속에 나뒹구는 팔을 하나 가져왔다.
단면이 끔찍하게 찢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기사는 그 팔을 쓰러진 스태프의 관절부에 가져다 댔다. 스태프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건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었으나, 기사들은 모두 진지했다.
저 푸른 연기는 포션이 일으키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러니 어쩌면···
“오!”
“우와!”
별안간 사람들의 감탄사가 산 속을 울렸다.
흉측하게 잘려 나갔던 팔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멍하니 이 신비함을 감상할 틈은 없었다.
아직 사지가 잘리는 중상을 입은 스태프가 한 명 더 있다.
“얘야, 저기도······ 안 그래도 가고 있네.”
기사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저 귀염둥이는 이미 쓰러진 스태프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다리 한쪽, 있습니까?”
때아닌 힐러의 등장에 긴장으로 가득했던 분위기가 이완되고, 스태프들은 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다리의 무릎 아래부분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번에는 굳이 시키지 않아도, 다른 기사가 그것을 집고서 쓰러진 스태프에게로 다가갔다.
아까와 똑같은 치유 과정이었다. 저 물범이 침을 흘리면, 잘려 나간 부분에 사지를 이어 붙인다.
“..저건 도대체.. 아. 야! 찍었어?!”
멍하니 그 신비한 광경을 바라보던 PD가 황급히 외쳤다.
그리고 다행히, 10여년 경력의 VJ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카메라를 통해 보는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휴우.”
PD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끔찍한 사고가 굉장한 특종으로······
“이제 도망갑시다. 그리핀이 나타났으니, 지체할 시간은 없어요.”
기사가 여전히 기절해 있는 스태프 한 명을 업어메며 말했다.
“..그럼 쟤는요?”
여자 스태프가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어딘가로 열심히 기어가고 있는 물범을 가리켰다. 이렇듯 자신들을 도와주었는데. 저 아이의 생사를 지켜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는게 아닌가···
“그리핀을 위협으로 쫓아낼 정도의 몬스터니, 알아서 살아남겠지요. 그것보다 어서, 어서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나 기사들은 냉정했고, 스태프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바삐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세진은 가장 먼저 하젤린의 전화를 받았다.
─아탄이 인형. 효과의 증명도 끝났고. 특허도 완료됐어요
“고작 10일만에요?”
─네. 효과측정을 해봤는데 10일동안 파동의 감소가 거의 제로 수준이고, 환경적 차이를 감안하면 완전히 0이라서 빠르게 ‘영속(永續)효과’ 판명이 났죠. 근데 정말, 어떻게 이런 걸 만든 거예요? 원기·마나를 회복해주는 인형 아티펙트라니··· 어떻게 인형에 마법효과를 부여한 거예요?
“아··· 여러 방법을 사용했죠 뭐.”
아무래도 아탄이의 카테고리는 ‘아티팩트’로 최종결정이 되었나 보다.
세진은 한쪽 볼을 긁적이며 TV를 켰다.
─근데 판매 방법은 정하셨어요?
“네? 아 그건···.”
미리 생각해둔 방법이 있었다.
아탄이의 효과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눈으로는 판명되지 않는 효과다.
그래서 가격을 비싸게 설정하면 아무리 등급이 높다 한들, 팔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싸게 책정하면 이익이 별로 나지 않고-중하급 회복포션과 중급 마나수정의 판매가만 해도 1억 가까이 된다-, 앞으로 가격을 올리는데 있어서 부담감도 생기게 된다.
“칠흑이랑 새벽한테 그냥 주려구요.”
그러니 차라리 처음 두 개는 그냥 가장 영향력이 큰 기사단에게 선물-이라 쓰고 미끼라 읽는다-로 줘버리자.
명문 기사단의 기사들은 감각이 예민하니, 한달이면 이 아탄이의 효과를 깨닫게 될 것이고, 그 이후로는 알아서 소문이 퍼지겠지. 특히 새벽 쪽은 SNS로 나불대는 게 특기라고 들었으니.
─아. 확실히 그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네요.
하젤린은 세진의 의도를 쉽게 눈치챘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요즈음 기사들의 사회영향력이 높아짐에 따라, 자사 제품을 써달라며 기사단에 후원하는 기업들도 굉장히 많아졌으니까.
─그럼 이 하나는 제가 먼저 새벽에 보낼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고, 세진은 TV뉴스를 감상했다.
때마침 오늘 있었던 몬스터 필드 난동사태의 원인을 다루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뉴스가 지적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동해 쪽 해저에 생긴 균열이었다.
5.0 규모의 균열에서 다수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있었기에, 놀란 중급지대의 몬스터들이 먼저 위험을 알아차리고 바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종의 러쉬를 했던 것.
그래도 지금은 근처 기사들과 마법사가 조기에 나서 균열이 열린 해수면을 얼리고서, 무리없이 진압작전을 하고 있다는 듯하다.
─하지만 이 재난의 과정에서, 특별한 도움이 있었습니다.
“···어?”
─바로 여태 단 한번도 발견되지 않은 귀엽고도 신비한 몬스터의 도움이었는데요.
세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뉴스 화면을 응시했다. 이건 예상 외였다.
대박이랍시고, 제작진 쪽에서 방송이 나갈 때까지 꽁꽁 숨겨둘 줄 알았는데...
─이번 ‘몬스터의 생태계’ 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팀이 촬영도중에 그리폰의 습격을 받아···.
‘홍보구나’.
다음 나온 앵커의 말에 세진은 단번에 이해했다. 일단 토막난 영상을 보여주고, 모든 영상은 다큐멘터리에서 확인을 하시면 됩니다. 뭐 이런 거겠지.
─한번 같이 보시죠.
영상은 짧게 짧게 편집되어 있었다. 웬 머리에 뿔 달린 하프물범처럼 생긴 생명체가 하늘을 향해 불을 쀼쀼 거리며 내뱉으며 그리핀을 쫓아내더니, 아장아장 다가와 침을 뱉어 중상을 입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준다.
─네. 아주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요즈음, 인간을 도와주는 몬스터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군요. 요 근래 중급지대에서도 웨어울프가 몇몇 기사를 구해줬다는 목격담도 나오고 있는데, 이제 한동안은 이 귀여운 아이가 대중들의 관심을 독차지할 것 같습니다.
그 멘트를 마지막으로 아탄이 관련 내용은 끝났다.
‘..홍보는 진짜 잘 되겠네.’
때마침, 아탄이 인형의 발매와 동시에 난 뉴스. 세진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TV를 끄려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용병 라이칸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범죄가 다시금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는 강원도 고성쪽의······
앵커의 다음 멘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
─귀여운 놈이 착하기 까지.. 엄청 기특하네.. 껴안아주고 싶다.. [추천 1038] [반대 31]
─근데 저거 정체가 뭐임? 유니콘물범? [추천 559][반대108]
└저거 더 몬스터 마스코트임. 오크 무기점이랑 요선 알케미하우스 가면 하나씩 있음. 볼때마다 졸귀탱이었는데 진짜 있는 몬스터였네;;
└ㅇㅇ 그거 이미 기자가 인터뷰함. 김세진이 우연히 봤는데, 그걸 토대로 만들었대.
─아탄이 인형 우리 기사단에 있음 ㅋㅋ 아티펙트라는데, 원기랑 마나회복 효능이 있다네. 근데 당장 어제 막 들어와서 진짠지는 모르겠음. [추천 339] [반대 182]
└ㅋㅋ 당연히 개구라지. 인형이 아티펙트라고? ○○○ 요즘 마법사들이 하는 짓 보면 십 년은 이르다. 그딴 개소리를 믿는 걸 보니 니네 기사단도 영 아니올시다.
└;; 내 소속이 어딘지는 알고 씨부리는거냐?
└알아서 뭐해. 어차피 지잡단일텐데.
뉴스의 댓글란은 아탄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난리가 나고 있으나, 오히려 세진은 심기가 불편했다. 아탄이랑 해저균열때문에 자신에겐 가장 중요한 ‘라이칸’에 관한 기사가 아예 묻혀서 올라오지도 않고 있으니.
“하아···”
세진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풀썩 드러누웠다.
모방범죄인가?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긴 한데··· 혹시.
‘보름달?’
확실히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특별한 효과가 적용되기는 한다. ‘늑대의 밤’ 이라고, 모든 능력치가 15%정도 증가하고 공격성도 특히 강해진다.
게다가 잠을 잘 때는 항상 흑색늑대 폼을 취하니, 있을 법한 이야기다.
‘···뭐야 대체.’
치미는 답답함에 세진은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트리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왜? 어째서?
머릿속에서 의문이 끊이질 않았다.
< 15. 의문, 노력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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