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위협 (4) >
집에 가만히 있기에 답답했던 세진은 뒤늦게나마 레비아탄과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자신이 포밍할 수 있는 ‘나약한 바다괴수’의 최종 진화형태가 레비아탄임은 거의 확실하므로, 그 능력의 활용법은 분명 레비아탄과 상통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이 귀여운 놈이 어떻게 레비아탄같은 흉악한 마수로 성장하는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지만.
어쨌든. 세진은 인터넷검색을 이용했다. 인터넷은 과연 정보의 산실이었고, 레비아탄에 관한 내용도 대단히 많았다.
그러나 레비아탄은 대적하는 몬스터가 아닌 기피해야 하는 괴수이기에 직접 피부로 맞닿아본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대부분이 그저 고대에서부터 전해져오는 전설, 설화와 관련된 뜬구름 잡는 내용이었다.
‘레비아탄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수면으로 보내기에, 온화하다고 착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성정은 본질부터 흉포하여, 제 영역 안에 들어온 생명체는 결코 용납을 하지않는다. 거기에 신기한 점은. 레비아탄이 물에 사는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초고열의 마그마를 입으로 발사하기도······.’
그렇게 이런저런 정보를 무려 한 시간여 동안 뒤지던 도중, 드디어 세진은 레비아탄의 직접적인 능력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마나의 원천은 자연이고, 자연은 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레비아탄이 대기중의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건 그리 미스터리한 일도 아니다.’
‘레비아탄은 자신의 몸과 맞닿은 물체 혹은 유체의 마나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마나를 복제하는 게 가능하다.’
마치 머릿속에 불빛이 번쩍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물의 지배자’라는 스킬의 생각지도 못했던 활용방법.
그는 퍼뜩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세진은 일단 욕조에 물을 잔뜩 틀어 놓고, 레비아탄 폼으로 변했다. 그리곤 물에 일정부분 스며들어있는 ‘마나’를 분리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실제로 이렇게 하니 평생동안 F-등급에 머물러있을 것 같았던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고, 아주 희미하게나마 마나와 물이 분리되는 신비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신력이었다.
“끼잉.”
그렇게 약 20분정도를 반복했을까. 어느 순간 머리가 아득해지며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이건 마나가 고갈될 때 생기는 ‘그로기’라는 상태.
세진이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후유증은 예상보다 심했다. 그렇게 머리에 뿔 달린 물범은 약 10분 동안, 아무 행동도 못하고 물이 가득 차 있는 욕조에 두둥실 떠다니게 되었다.
***
다음 날. 김세진은 몬스터 필드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꽤 오랜만에, 네 발 달린 흑색늑대폼으로 철창을 넘어서.
‘..되게 오랜만이네.’
그는 가장 먼저 최하급 필드에서도 특히 후미진, 산기슭의 한 쪽에 숨겨진 동굴로 왔다.
덩굴과 이끼, 크게 자란 초목이 입구를 가려 멀리서 보면 이곳에 동굴이 있는지 그 누구도 알아차리기 힘든,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세진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동굴.
참 오랫동안 살았던 동굴이다. 막바지에는 나가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찾아오니 괜한 감회가 가슴을 적셨다.
“흠.”
흑색늑대는 어느새 인간의 형태로 변해 동굴의 입구로 발을 내딛었다.
“···?”
헌데 들어가자마자 이상한 물건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최선을 다해 만들었던 돌침대 위에, 마치 생일선물처럼 포장되어있는 네모난 상자.
그는 잔뜩 경계한 채 그 상자로 차근차근 다가갔다.
“..아 혹시.”
그러다 불현듯, 김유린이 고블린이었던 자신에게 치유를 받고 떠나기 전 했었던 약속이 떠올랐다.
‘나중에 꼭 제대로 된 선물 들고 찾아올 테니까!’
유쾌한 기억이다.
아마 저것은 김유린이 그때 약속했던 선물.
그녀는 아직까지도 당시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 동굴에서 거주하는 동안에는 내심 그녀를 기다렸었는데, 아마 그동안은 일이 바빠서 찾아오지 못했던 것이겠지. 어쩌면 여기까지 오는 길을 못 찾아 헤맸을 수도 있고.
실제 김유린의 성격을 보아하면,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열어볼까.’
그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상자의 문을 열었다.
“···.”
상자 안에는 종이 한 장과 팔찌 하나가 있었다.
종이에는 김유린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그녀는 고블린이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뒷면에 편지를 쓰고 앞면에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 이 팔찌는···
[약속의 팔찌] 등급: 상품 내구도 10/10 -착용자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아티펙트입니다.
“상품?”
세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상품이라니. 뭐 이렇게 비싼······
그러고 보니 그때 레스토랑에서, 장비를 사느라 돈이 부족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뭔 생사도 모르는 몬스터한테 이런 비싼 걸 선물해.’
물론 목숨 값보다는 싸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천사인데.
그는 그녀가 놓고 간, 아름다운 오색 팔찌를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
팔찌는 일단 영체화하여 몸속에 보관하고서, 세진은 다시금 동굴 밖으로 나와 하급지대로 향했다.
중급지대가 아닌 하급지대인 이유는 새로운 몬스터의 육성을 위해.
물론 아탄이는 해수몬스터이니 만큼 동해 쪽에서 사냥을 하는게 옳겠지만··· 바다는 특별히 몬스터 등급구간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않다.
그냥 기사단과 정부가 관리하는 안전한 항로와 그렇지 않은 항로. 둘 만이 존재할 뿐. 그 이외의 바다에서는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예측이 힘들다.
“···낑낑.”
그래서 지금 세진은 나약한 바다괴수가 되어 땅바닥에 배를 질질 끌며 이동하고있다.
이 몬스터의 공격방법은 이미 어느정도는 익혀 두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는, 입으로 물을 쏘아 그 물이 상대의 피부에 맞닿으면 그 수분을 고열로 끓게 하는 것.
인간형으로는 물이 피부에 닿아야 그 온도의 조절이 가능하지만, 아탄이 폼으로는 반경 50m 범위에 있는 모든 수분은 물론 그 물에 포함된 ‘마나’까지도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뒤져본 레비아탄의 정보로 말미암아 알아낸 한가지, 어마어마한 활용법이 더 있다.
‘마나는 곧 자연.’
수 많은 반복수련 끝에 아주 조금의 실마리를 잡은 방법이다.
바다속에 사는 ‘레비아탄이 왜, 어째서 물이 아닌 불 혹은 독을 내뿜을 수 있는 지’ 에서 영감을 얻었다.
마법사들은 언제나 말한다.
‘마나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그들은 그 증거로 ‘마법’을 예시로 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현상.
그러나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게 아니고, 엄연히 마나라는 재료가 존재한다. 마나의 성질과 속성을 변화, 재조립해내야만 그것이 바로 ‘마법’이 된다.
거기에 ‘물의 지배자’라는 스킬의 의의가 있다.
즉. 물에 상주하는 마나의 성질과 속성을 재조립하고 변화하여, 그것을 불 혹은 독으로 발사한다. 어쩌면 마법과도 비슷한 행위.
그러나 레비아탄은 종족적 특징으로서 자신의 ‘비늘’에 닿은 모든 물질의 마나를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어, 마법사와는 달리 복잡한 영창이 필요 없다.
‘되겠지.’
집에서 한 두어 번은 성공했으니, 이제 실전에서 한번 시범해볼 차례다.
몬스터를 상대로 물이든 불이든 흙이든 재든 빛이든 벼락이든. 뭐든지 한번 거하게 뿜어내 보자.
그러나 그 계획은 초장부터 어긋났다.
부르르르르-
별안간 대지가 심상치 않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세진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목이 스산하게 떨고, 새-혹은 비행형 몬스터-들은 하늘을 향해 번쩍 날아오른다.
‘지진인가?’
그렇다면 큰일이다.
지진은 높은 확률로 ‘몬스터 난동’을 동반한다. 몬스터 난동이란 어떠한 이유로 중급-중상급 지대의 몬스터가 그 하위의 구간으로 물밀듯이 내려오는 일종의 소요사태를 의미.
만약 이 사태가 벌어질 경우, 자신의 등급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사냥하는 기사나 사냥꾼들은 심각한 인명피해를 입게 된다.
‘일단 도망을···.’
그는 일단 인간폼으로 변해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빛이 반사해와 이쪽의 눈을 찔렀다.
‘뭐야.’
세진이 미간을 살짝 좁힌 채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꿀꺽”
카메라와 카메라맨이었다. 수풀속에 숨어있는 카메라 렌즈에 불빛이 반사되어, 이쪽의 눈을 공격한 듯했다.
세진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것도 모르고 인간화를 했다간 그대로 인생 쫑나는 지름길이 되었을 터.
‘..촬영하고 있는 건가?’
헌데 자세히 보니 뒤에 몇 명이 더 있었다. 최하급~하급지대는 일반인의 출입이 허가된 유일한 몬스터 필드.
‘기사의 조건’이라는 예능이 대박을 쳐서, 요즘은 몬스터 관련 프로그램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고는 했다.
실제로 세 개 정도의 프로그램이 요 두 달 내내 이 하급지대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고 들은 것도 있고, 직접 두 눈으로도 봤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긴장됐다. 하급지대에서 촬영을 한다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최소 중급 정도되는 기사가 함께하고 있을 터.
‘아. 그냥 바다로 갈 걸.’
아탄이는 원래 바다몬스터. 육지에서는 영 힘을 못쓴다.
흑색늑대가 보유한 여러 패시브 스킬이 다른 몬스터 폼에서도 두루 적용되어 그나마 앞을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카메라가 있는 것도 인지를 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게다가 저들은 냄새와 기척을 제거하는 아티펙트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그래도··· 갑자기 달려들진 않겠지?’
이렇게 귀여운데.
실제로 카메라쪽에서도 긴장하면서 계속 찍기만 할 뿐, 별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레비아탄의 새끼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으니, 그저 희귀한 몬스터인갑다- 하고 갑작스레 등장한 대박에 반가워하고 있을 뿐이겠지.
“낑, 낑.”
그래서 세진은 부러 귀여운 소리를 내며, 짧은 두 팔로 땅을 짚어가며 이동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희미하게, 허업- 하며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잘하면 홍보 되겠는데?’
아탄이 캐릭터등록은 이미 완료했다. 물량도 적고 한정이지만 그래도 정식적으로 판매할 물건이니까.
그렇게, 세진이 움직일 때 마다 카메라가 그 모습을 아주 조심스레 좇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낙관적인 상황은 고작 5분 동안만 유지되었을 따름이다.
“으아악! 뭐야!”
으레 그렇듯. 인간은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가장 중요한걸 놓치곤 한다.
방금 소소하게나마 일었던 지진. 그것은 하나의 전조였다.
“꺄아아악-!”
별안간 하늘에서 하나의 생명체가 쏜살같이 내려와 스태프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찢겨나간 사지가 하늘 높이 떠오르더니, 땅바닥 어딘가로 떨어졌다.
그 끔찍한 사태에 수풀에 숨어있던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리핀.
매의 머리와 사자의 몸통으로 이뤄진, 중급지대의 창공을 지배하는 비행 몬스터. 그리핀은 본래 중급지대와 중상급지대의 경계에서 거주하는 몬스터로, 본래 이곳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금은 일종의 유사시. 원인은 모르지만, 방금 있었던 지진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당황하지 마세요! 저희 뒤에 숨어있으시면 됩니다!
네 명의 기사가 칼을 빼어 들고 그리핀을 응시했다. 허나 그리핀은 영리한 몬스터. 자신이 판단하기에 아주 약한 개체를 먼저 노리는 습성이 있다.
“끼에에엑-!”
놈은 귀를 찢이기는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마치 벼락처럼 낙하해 또 다른 스태프의 팔을 물어뜯었다.
여자 스태프의 처절한 비명과 울음소리가 울리고, 세진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 14. 위협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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