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49화 (49/174)

< 14. 위협 (3) >

김세진은 23년의 생애동안 이렇게 많은 기사와 마법사들의 무리를 본 기억은 없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특성이 어떻게 발현, 아 밀지 마요 좀!”

“유세정에게 문신을 해주는 대가로 강원도의 루텐 빌딩을 받으셨다는데···”

기사와 마법사, 거기에 기자까지 뒤섞인 아수라장이었다. 심지어 몇몇 마법사들은 아예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채 이쪽으로 질문을 내던지고 있었다.

세진이 멍하니 그 광경을 감상하는 와중에,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 문 앞까지 들이닥쳤다. 이대로 가만히 두면 집 안까지 들어올 기세였기에, 그는 일단 빠르게 문을 닫았다.

“···뭐야.”

쿵- 닫힌 문에 인해(人海)가 부닥치는 소리가 울리고, 세진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건 살짝 예상 외였다. 분명 한달에 한번이라는 제약이 있다고 전했고, 세정이가 매긴 문신의 가격은 무려 건물 하나. 그래서 이렇게 많은 기사와 마법사들이 ‘직접’ 찾아올거라곤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우우웅-

때마침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예. 여보세요?”

-아 세진 씨. 저 박현오입니다.

박현오는 새벽 일가의 집사와 비서실장을 겸하는 남자다. 그때 자신과 아직 싸가지가 없던 유세정이 트롤을 마주쳤을 때. 재빨리 기사를 불러와 큰 사고를 면하게 했던 남자.

“네. 근데 무슨 일로···”

-일단 가장 먼저, 저희 아가씨의 불찰로 인해 큰 피해를 입으신 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 아.. 괜찮습니다. 받은게 워낙··· 커서.”

순간 세진은 긴장했다. 혹시 건물을 주겠다는 말을 번복하려 하는게 아닐까.

-그러면 다행입니다만··· 일단 집 밖이 소란스러우시죠?

다행히 그런 의도는 일말도 없었다.

“아. 네. 조금 소란스럽긴 하네요. 언제쯤 나아질까요?”

그는 내심 그때처럼 새벽이 나서서 밖을 쓸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현오의 답변은 그 기대와는 살짝 어긋났다.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희도 세진 씨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입니다. 새벽을 제외한 모든 기사단이 동요하고 있는 탓에··· 아쉽게도 저희도 지금 어떠한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아무리 새벽이라도 쉬이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과연 권력과 합쳐진 군중의 힘은 무서웠다.

“그러면..”

-일단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지금 아가씨께서는 회장님과 단장님에게 따끔한 체벌을 받고 계시니, 아마 며칠간 연락이 안 되실 겁니다.

“아 그래요?”

-네. 지금 바로 옆방에서 회초리 맞고 계시네요.

“아··· 근데 세정이 잘못 아닌데.”

-두 분은 몸에 문신을 새기는 데 선보고를 하지 않은 것 자체에 노하셔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대답한 세진은 그녀의 무운을 빌었다.

*

이튿날 오후, 상황은 여전했다.

집 밖의 기자들은 아예 진이라도 차린 건지, 돌아갈 기미조차도 없었다.

또 번호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핸드폰으로 전화와 문자가 쇄도했다.

어쩌면 이건 기사와 마법사들의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얕본 죄.

“후···.”

그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러다가 혹시라도 집 안으로 침입하는 사람이 나오면,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자신은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음음.”

문 앞에 선 세진은 앞으로 있을 짧은 기자회견을 위해 목청을 가다듬었다.

세 번의 심호흡과 두 번의 헛기침. 그리곤 문을 열어젖힌다.

“나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누군가의 고함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세진은 일단 그들이 더욱 큰 소란을 일이크기 전에, 크게 소리쳤다.

“딱 세 질문만, 그러니까 딱 세 번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궁금하신 점을 물어보세요.”

그러나 워낙 화자가 많아 목소리가 뒤엉켜, 도저히 질문을 알아먹을 수 없었다. 세진은 미간을 살짝 좁히고서, 진정하라는 의미로 손을 번쩍 들었다. 물론 소란은 진정되지 않았다.

“문신에 관해서···”

“지금 정부에서도 세진씨를···”

“기사단은···”

“마탑···”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는 도저히 한 문장 이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진은 다시금 고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결국 그는 질의응답이 아닌 일방적인 말하기를 하기로 했다.

“문신에 관해서 많은 궁금증이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세진이 크게 소리쳤다. 부디 자신에게 집중을 좀 해주길 바라면서.

“···맞죠?! 그러니 일단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그제서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세진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그들이 궁금해할 내용을 가장 먼저 말했다.

“먼저 문신은 최대 한달에 한번만 가능합니다. 최대예요 최대. 이 특성은 제 기력을 소모하는 것인지라, 한달에 한번도 저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그래서 유세정 양이 저에게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고요. 그러니 이렇게 많은 관심을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플래쉬가 터졌고, 다시 요란해질 기미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세진은 그걸 조기에 진압하기위해 곧바로 다음을 이었다.

“여기서 딱 한사람의 질문만 받겠습니다! 거기! 남성분!”

그가 잘생긴 미남자를 가리켰다. 그 갑작스런 지명에 엘프로 추정되는 남성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은 즉슨. 문신을 하기 위해서는 돈만 있으면 된다. 이말인건가요?”

“예? 아.. 아닙니다. 물론 금전적인 부분도 고려사항이지만, 다른···”

“그럼 같은 ‘더 몬스터’ 단체원에게는 우대를 해 줄수도 있는건가요?”

“예? 아.. 네. 물론입니다. 타인보다는 같은 단체원이 최우선이죠.”

그 이후로도 질의응답은 약 10분동안 이어졌다. 세진은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 그러면 이제 돌아가주세요. 주택가라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실지도 모릅니다.”

그가 이제는 제발 돌아가달라는 염원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그렇다고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단 오늘 이정도 했으면, 슬슬 오늘 밤부터는 돌아가는 사람이 생기겠지.

예상대로 마법사와 기사들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기자들이 해산하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가세요?”

그에 당황한 건 기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세진까지 고개를 갸웃했다.

“가라잖습니까. 이미 얘기도 꽤 들었고.”

“아니 당신네들이 언제 가란다고 가는 사람들이었소?”

그리고 그 이유를, 세진은 방금 떠오르는 알림창으로 말미암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스킬이 조합되었습니다. 늑대의 하울링-듣기 좋은 목소리]

- 목소리를 통해 군중의 심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 이 스킬은 상대의 정신력에 따라 다르게 적용됩니다.

[조건 완료: 「사람이 일궈내는 가능성」 - 첫번째 스킬 조합 성공.]

- 이제부터 능력치와 스킬의 등급에 따라, 원하는 스킬을 조합할 수 있게 됩니다.

* * * *

이틀 뒤. 김세진은 아주 오랜만에 몬스터 필드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라, 사냥 파트너 한 명과 함께였다. 오늘의 사냥파트너는 예전에 곧잘 페어를 이뤘던 유세정이 아니었다.

조금은 낯선 인물, 중검을 허리에 들쳐 맨 중급기사 주지혁. 그가 오늘의 동료다.

“이거 참. 사냥이 정말 잘되네요. 하하.. 세진 씨를 수식하는 ‘천부적인’이라는 단어가 아주 이해가 갑니다.”

살다 보면, 알면 알수록 더 잘 대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보통 순박하거나 착한 티가 좔좔 흐르는 사람이 그러하다.

물론 이런 종류를 호구라 비하하며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김세진은 그런 족속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주지혁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 아닙니다······ 큼.”

그러나 주지혁이 좋은 사람인 것과는 별개로, 사이가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애당초 말 그대로 딱 한번 본 사이였으니.

“아. 들었습니다. 세진 씨. 몸에 특이한 문신을 새기는 특성을 가지고 계시다고··· 아 물론 저에게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오해는 말아주세요. 그냥 요즘 저희 기사단이나 다른 기사단이나, 그 이야기로 난리라서···.”

“하하··· 예. 그래서 제가 지금 이렇게 변장을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인기가 워낙 많아져서.”

세진은 얼굴의 반절을 가리는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가리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만큼 요 근래에는 꽤 귀찮은 일이 많이 벌어졌다.

이틀 동안은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 박혀 있어야 했으며, 시도때도 없는 연락때문에 한번 더 핸드폰을 바꿔야만 했다. 심지어 몇몇 여기사는 야밤에 전화를 걸어와 해달라는대로 다 해줄 테니 제발 한번만 도와 달라고 까지······.

그만큼 마나에 대한 기사와 마법사의 집착은 정말 대단했다. 심지어 하젤린까지 그 문신에 관심이 있다는 투로 물어왔을 정도니.

“하하.. 역시 그렇겠네요. 근데 그 특성 자체가 문신을 하는 특성인건가요?”

“아뇨. 특성의 활용 중 하나입니다. 제가 신체와 관련된 특성이라.”

“아··· 그렇군요.”

그 이후로는 침묵이었다. 주지혁은 궁금한점이 여전히 있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혹시라도 세진이 불편해할까 그 이상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걸 내심 눈치채고 있던 세진은 다시한번 이 남자의 인성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지혁과 두 마리 정도의 몬스터를 더 잡았을 때.

“···어. 오빠?”

여기사 한 명이 이 쪽을 발견하곤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음? 은지야. 네가 중급지대는 웬일이냐?”

주지혁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여기사는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하곤, 지혁의 옆에 있는 남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누구.”

“이분? 그.. 내 사냥파트너. 중상급 사냥꾼님이시다.”

“아, 그렇구나. 안녕하세요. 저는 중하급 기사 정은지라고 합니다.”

그녀가 입가에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세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네. 반갑습니다.”

정은지. 당연히 알고있다. 기사격전에서 유세정에게 패배한 기사.

그녀는 세진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뭔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은지야! 근데 왜 혼자야? 일행은 어딨고?”

그러자 주지혁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 그게··· 이제 가려고 했어요. 그냥 잠깐 와본 거예요. 그··· 소문이 퍼졌거든요. SNS이랑 단톡방에서.”

“..어? 뭔 소문?”

“그 김세진 님이 중급지대로 사냥을 나왔다는 소문이요. 혹시 몰라서 한번 서성여봤는데··· 저도 참 바보 같네요.”

정은지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보통 이럴 땐 위로를 해줘야 하는 게 맞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어··· 그래? 근데 그 분은 왜?”

“···그냥. 저도 한번 노력해볼려고. 이제 진짜 노력이 다가 아니구나~ 를 깨달았거든요.”

“음?”

“오빠도 봤잖아요. 저 처참하게 깨진거. 근데 저는 그걸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왜 걔는 집안의 힘으로 얻은 인맥으로 저보다 훨씬···.”

그녀가 푸념을 늘어놓는 도중에, 김세진은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확실히 당장 한시간과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근데.”

그러다 문득 정은지가 눈을 가늘게 좁히고 김세진을 바라봤다.

“저 분 얼굴이··· 또 냄새가···”

킁킁.

별안간 그녀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세진은 살짝 당황했다. 이 정도면 아무래도, 자신에 관한 소문이 정말 많이 퍼진 듯 했다.

“저기. 혹시 그 마스크좀 벗어주실 수 있을까요?”

“..안됩니다.”

“예? 아 한번만. 살짝만 벗어주시면···”

낌새를 눈치챈 듯, 정은지가 김세진에게 성큼 다가섰다.

“은지야 일단 나가자. 중급지대는 너한테 벅차.”

그때 주지혁이 은지의 앞을 가로막으며 세진에게 눈짓을 보냈다.

“예? 아 그건 알겠는데, 오빠 잠깐 비켜봐요.”

“아니. 안 돼. 너는 나랑 같이 중하급지대로 간다.”

“아니 알겠으니까 비켜주세요!”

“잠깐만 기다려봐.”

“뭐예요 오빠 왜이래요!”

둘은 갑작스런 실랑이를 벌였고, 그 멀리까지 퍼지는 소란을 들은 주변의 기사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어 저거 뭐야!”

은지가 흔한 유인책을 사용했다.

“뭔데?”

그리고 지혁은 보기좋게 걸려들었다.

“비켜요!”

그러나 그녀가 지혁을 뿌리쳤을 땐, 이미 세진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어금니를 꽉 깨문 은지는 발을 쾅쾅 구르며 다시금 지혁의 앞에 와서 섰다.

“···맞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지혁을 노려보며 묻는다.

“뭐가? 그것보다 너. 뭐하는거야? 고작 소문일 뿐인데, 중급지대에 혼자서 오다니.”

“어차피 이쪽부근은 선공만 안하면 상관 없잖아요. 그것보다 왜··· 아. 김세진이 남자 한명이랑 같이 있다고 하던데. 그 남자가 오빠였어요?!”

“..얘가 뭔 소릴 하는거야?”

주지혁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잡아뗐다.

그리고 그 날. 집으로 돌아온 세진은 앞으로 최소 일주일 동안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 14. 위협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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