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48화 (48/174)

< 14. 위협 (2) [이 편부터 유료연재 시작입니다!] >

-와. 저거 꽃 문양 뭐냐? 왜 갑옷 밖으로 삐져나옴? 의류형이라 얇아서 그런가?

-존예네.. 카메라 일부러 등만 찍는 거봐.

기사격전은 워낙 그 인기가 많은 탓에 인터넷과 TV 두 매체로 동시에 생중계 되었는데, 세진으로서는 실시간 반응을 볼 수 있는 인터넷 쪽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지금. 시청자들은 방금 막 시작한 결투보다도, 얇지만 단단한 갑옷 위로 섬세하게 번지는 푸른 문양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일 뿐. 그 결투와 하등 관계가 없는 궁금증은 바로 다음순간 잊혀지게 되었다.

타앗-

선공은 고려기사단의 정은지 쪽이었다. 그녀는 발을 크게 굴러 세정에게 돌격했다. 마치 벼락과도같은 쇄도, 순식간에 세정의 발치에 도달한 그녀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사선으로 그어지는 검격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세정의 심장으로 향했다.

챙-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날붙이끼리 맞닿은 단면에선 거친 불씨가 터져 올랐다.

그러나 선공자, 정은지는 단지 그 일합으로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무기의 차이. 그리고 마나의 차이.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무장의 격차는 어느정도 감안했다. 이 여자가 들고있는 무기는 모든 기사가 탐냈던 오크의 역작. 허나 지금은 그것 말고도 다른 차이가 존재한다.

왜.

도대체 왜 자신의 마나가 이 여자에게 밀리고 있는가. 고작 일주일 전만 해도 이토록 형편없이 밀리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이 여자는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가파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은지는 어쩔 수 없이 뒤로 크게 물러났다. 인정하기 싫지만, 정면대결은 가망이 없다. 그러니 빈틈을 노려야···

“--!”

바로 그 때.

유세정의 기세가 급변했다. 서슬에 고인 마나가 시리도록 푸른 검광을 발하고, 살짝 굽혀진 몸은 스프링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가공할 만한 질주에 은지는 검을 들어 대항해봤으나, 찰나의 검격은 그녀의 갑옷을 아주 쉽게 박살냈을 따름이다.

“···”

시시히다는 형용이 어울릴 정도로 빨리 끝나버린 격투, 심판마저도 잠시 할 말을 잃어 장내에는 잠시 정적이 가라앉았다.

이합. 아니, 첫번째 격돌을 그저 탐색의 의미로만 본다면 고작 일 합 만에 결판이 났다. 이것은 동급 기사간의 격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정은지가 누구인가.

비록 나이는 유세정보다 두 살이 더 많지만, 그래도 재능과 외모가 그녀와 비견할 수 있을만큼 특출나 언론에서 새벽-고려와의 관계에 빗대어 ‘유세정의 라이벌’이라 떠들던 기사가 아니던가.

게다가 실제로, 당장 저번 주 시범대련때만 해도 이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는 없었다······.

“···유세정 승리!”

본분을 깨달은 심판이 부랴부랴 외쳤다.

“..어째서?”

멍한 표정의 정은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벽.

하나의 등급을 뛰어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한계, 혹은 도저히 이길수 없을것만 같은 상대를, 기사들은 ‘벽’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은지는 지금 그 벽을 느꼈다. 고작 일주일 새에, 저 여자는 놀라우리만큼 달라졌다.

“잠깐 기···”

은지가 경악한 눈을 세정에게로 돌렸다.

그러나 세정은 이미 무심하게 뒤로 돌아, 승자를 위한 출구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자신따위는 안중에 없었다는 듯이. 패자를 위한 단 한번의 악수도 없이.

“저 썅···.”

저 빌어먹을 정도로 예의가 없는 모습에, 정은지는 두 주먹을 쥔 채 이를 까득 깨물었다.

유세정은 출구로 나오자 마자 리포터의 마이크를 받게 되었다. 일명 승자인터뷰. 그녀는 그것을 그리 기꺼워하지는 않았지만, 생방송에서 이걸 거절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등 뒤에 새겨진 문신의 정체는 뭡니까? 지금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리포터는 간단한 축하인사를 후딱 끝내고서, 곧바로 문신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세정은 김세진에게 미리 언질─마나를 사용하면 문신이 옷가지를 뚫고 푸르게 번져 오른다─을 받았기에, 태연하게 인터뷰에 임할 수 있었다.

“그건 나중에 차차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죄송합니다.”

“예? 아.. 네. 뭐.”

유세정의 정중한 태도에 리포터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녀는 모든 질문에 철저히 새벽기사단이 짜준 매뉴얼대로 대답했다.

* * *

기사격전이 끝난 그 날. 유세정은 세진을 배려해 문신에 관한 얘기는 최대한 얼버무렸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넓고 전문가는 많았다.

대중들은 이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문신을 ‘마법’이 아닐까 추측했고, 그에 따라 가장 먼저 마법사들이 나섰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이 의문에 가지는 집착은 광기에 가깝다. 그들의 지극히 열정적인 탐구에 문신의 정체는 고작 하루만에 탄로나고 말았다.

가장 먼저 강원도마탑의 탑주이자 A등급 마법사인 윤노한이 먼저 기자들을 불러들여서 말했다.

“이 문신에는 마나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주인의 가용 마나량을 늘려주는 혁신적인 장치인 것이죠. 그러나 아직 그 방법자체는 미지입니다. 일단 문신을 위해서는 마나수정이든 뭐든 마나가 포함된 물체를 액체의 형태로 변환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고열이 필요합니다. 허나 고열에 맞닿으면 마나가 흩어지기 때문에 그 효과가 아주 미약하죠.”

“그러면 재료만 있으면 유세정이 새긴 문신과 똑같은 효능이 생길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그것도 아닙니다. 액체화된 마나를 무작정 문신으로 새긴다고 해서 똑같은 효능이 있지 않아요. 오히려 부작용의 위험이 큽니다. 왜냐면 고작 문신을 새기는 것만으로는 액체화된 마나를 오롯이 체내에 잡아 둘 수 없기 때문에······.”

이 인터뷰 내용이 퍼지자 기사와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말 그대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그들에게 마나는 아주 중요한 힘인 동시에, 가장 성장하기 어려운 재능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들은 언론과 대중의 궁금증을 등에 업고 새벽과 새벽기사단, 그리고 유세정에게 진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셋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고, 기사와 마법사들은 분노해 그들에게 돌을 던졌다.

-..정말 알려도 돼요?

“어.”

그래서 세진은 그냥 자신의 특성 덕이라 말하라 그랬다.

어차피 한달에 한번밖에 안된다고 속이면 된다. 물론 그래도 들러붙을 사람들은 들러붙어 귀찮은건 변치 않겠지만, 그래도 진실을 밝힘으로써 얻을 이익이 더 크지 않겠는가.

-네. 알겠어요. 아 그리고 세진 오빠. 이 문신의 대가는 제가 나름대로 정했는데.. 괜찮아요?

“어? 대가···?”

그는 잠시 고민했지만,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새벽이 주는 대가. 안받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괜히 공짜로 해줬다는 소문이 퍼지면 진짜 벌떼처럼 몰려들지도 모르니.

“그래. 그럼 나야 좋지. 뭔데?”

-아 그게··· 단체 사무실 아직 안 구하셨죠? 제가 강원도 쪽에 남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거를 드릴게요. 물론 증여세나 여타 추후에 발생하는 세금까지 저희가 처리하는 걸로 하고요.

세진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건물··· 그게 내가 아는 건물이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문신 하나를 해준 대가로 건물 하나라··· 왠지 부담스러웠지만, 그는 그냥 세정에게 마나가 그 정도로 큰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 고마워. 고마운데··· 너무 큰거 아니야?”

-아뇨. 오히려 싸죠. 게다가···

핸드폰 너머, 유세정이 뒷말을 삼켰다.

여기엔 어쩌면 조금 이기적인 이유가 있었다.

무려 건물 하나를 통째로 문신의 값으로 지불했다 하면, 그게 가격의 기준선이 되겠지. 그렇다면 대다수의 평범한 기사들은 감히 문신을 요구할 생각도 못할 테고.

그녀는 바로 그걸 노렸다.

“게다가?”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냥··· 고맙다고요 오빠. 정말, 그때 오빠를 만난 게 어쩌면··· 하늘이 저를 도왔던 게 아닐까요?

“···끊을게.”

-어? 왜요 왜···

별안간 천사스러워진 목소리로 오그라드는 문장의 읊조림을 듣는 건 이쪽의 취미가 아니었기에, 그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후. 다시다시.”

그렇게, 세진은 다시금 전에 하던 작업에 열중했다.

지금 그의 손에 들려진 건 하나의 봉제인형. 얼떨결에 단체의 마스코트가 된 ‘아탄이’다. 이름의 유래는 당연 말하지 않아도 알 터.

어쨌든. 지금 그가 이 인형을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알케미하우스에 잠시 들렀을 때 아탄이의 인기가 생각보다 많은 걸 보고 하나의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일명 인형의 ‘아티펙트’화.

지금 아탄이에게는 단지 사람의 이목을 잘 끌고, 좋은 향내가 은은히 퍼지는 성질밖에 부가되어 있지 않다. 거기까지만 해도 분명 상품가치는 있겠으나, 문제는 이 아탄이가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류의 인형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특성상 만약 판매할 생각이라면, 한정판매로 하나하나가 고급지고 비싸야만 한다.

그런 생각의 흐름은 어느 순간 ‘아티펙트’까지 이어졌다. 목걸이나 반지, 팔찌같은 액세서리에 마법이 부가된 마법물품. 그 특유의 마법적 효과 탓에 물량이 적고, 하나같이 무지막지하게 비싼 물건들.

그러나 단지 성질을 부여하기만 해서는 그런 마법적 효과를 따라해내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이 아탄이 인형은 착용자가 아닌 ‘소유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니까 그 난해함은 더더욱 배가되었다.

그래서 세진이 생각한 게 바로 ‘마력 문신’과 ‘오크의 단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 마력문신의 등급이 올라 육체가 아닌 ‘물체’에도 문신을 새기는 게 가능해졌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인형의 뒷면에 문신을 새긴다. 하얀색으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문신의 약은 중급 마나수정과 중급 회복포션으로, 효능은 오로지 ‘마나와 원기의 회복.’

‘됐다.’

여기까지 하면 아탄이는 이제 자기 원기와 마나를 회복하는 인형이 된다. 그러나 인형에는 마나와 원기가 존재하지 않으니, 여기서 멈추면 그냥 뻘짓에 불과하다. 여기에 한가지 더. ‘오크의 단조’가 덧대어져야만 한다.

세진은 오크 폼으로 변해, 인형을 손에 쥐고 단조를 사용했다.

마력문신에 부가할 성질은··· ‘주변으로 퍼진다’.

푸르게 물들었던 아탄이는 성질 하나가 부가되자, 이내 원상태로 돌아갔다.

다시 인간이 된 김세진은 이게 잘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보창을 띄웠다.

[아탄이 인형] 제작자-김세진

부가된 효과-특히 귀여움[B], 특수한 향기[C].

특수한 향기: 반경 60m 범위에 원기회복, 마나회복 효과가 있는 향기를 은은하게 배출합니다.

“···됐다!”

완성.

이 정도 물건은 효과만 증명되면 값어치가 꽤 나가게 된다.

무엇보다 마나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건 ‘마나의 샘’을 연상시키고, 마나의 샘 하나를 제대로 축조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필요로 하니까. 물론 그렇다고 이 아탄이 하나가 마나의 샘만큼 큰 역할을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일단 물어봐야겠지.’

물건은 만들어졌으니, 이제 관련 특허와 효과증명을 위한 작업만이 남았다. 세진은 먼저 이런 일을 전담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오전.

집 밖의 소란에 잠에서 깨어난 세진은 비몽사몽한 채로 걸어 현관문을 열었다.

그 즉시. 수 많은 기사와 마법사들의 눈이 이쪽으로 향했다.

"···."

세진이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자 그들이 먼저 입을 움직였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이렇게 시끄러울 수 있는 지, 그는 그 날 처음 알았다.

< 14. 위협 (2) [이 편부터 유료연재 시작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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