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46화 (46/174)

13. 작은 발자국 (3)

기사에게 무기가 중요한 이유는 비단 그것이 기사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만이 아니다.

‘등급’을 척도삼아 표현되는 강함.

비등한 실력이라도, 아니 실력이 동등할수록 무기 하나에 강함이 차이나고, 등급이 갈리게 된다.

그렇게 갈리게 된 등급은 기사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연봉, 명예, 위신 등등······

쏴아아악-

육중한 대검이 허공에 선명한 흔적을 새기며 내려앉았다.

이 흉악한 검격의 대상은 하나의 거북이.

그러나 이것은 한낱 거북이가 아니다. 빅-자이언트-터틀. 무려 ‘크다’라는 의미의 수식어가 두개나 붙은 거대하고 희귀한 거북이.

이 놈은 거북이가 마나를 잘못 받아들여서 몬스터로 변질된 개체로,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으나 등껍질의 강도와 경도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무려 마나가 포함된 공격을 일정부분 상쇄하는 일종의 면역능력까지 있다.

그래서 등껍질이 무기나 장비의 자재로서 가치가 값비쌈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강함이 아닌 마나의 힘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기사들은 그냥 보고 넘길 수밖에 없는 귀한 몬스터다.

“···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흑철로 단조된 주지혁의 츠바이한더는 놈의 등껍질을 아주 쉽게 도륙해냈다. 이것은 무기에 부가된 ‘파쇄’와 주지혁의 중검술 간의 시너지 효과.

“대박이네. 솔직히 너 특성 중검마스터리라고 할때는 그냥 평생 중급기사로 처박혀 있을 줄 알았더니··· 무기 하나는 잘 얻었다야.”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동료기사가 약간 시기어린 말과 눈빛을 보내왔다.

그러나 주지혁은 뒷목을 긁적이며 파괴된 거북이의 등껍질을 주섬주섬 모을 뿐이었다.

‘중검 마스터리’, 주지혁의 특성이다.

양손검으로 대표되는 무거운 검을 다룰 때, 별 다른 훈련 없이도 최상의 위력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완성형 특성. 그래서 주지혁은 특성을 얻은 지 고작 일주일만에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건 오직 처음 뿐. 무기에 심히 영향받는 이 스킬은 하나의 한계와도 같았고, 주지훈은 약 5년 동안 중급기사에 정체되어 있었다.

이 ‘오크의 츠바이한더’의 주인이 되기 전 까지는.

“하하.. 그러게.”

“야, 근데 그거 우리랑 제휴맺은 쪽에 팔거지? 지금 연락한다?”

“아니.”

주지혁이 핸드폰을 꺼내들려는 동료기사를 제지했다.

“이건 내가 따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러냐? 그럼 뭐.. 근데 누구한테 팔건데?”

동료기사의 물음에, 주지혁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니 파는 게 아니라, 보답을 해야지.”

“..뭐? 그 오크 대장장이한테 줄라고? 이 비싼걸?”

“비싸니까 드려야지.”

빅-자이언트-터틀이 워낙 희귀한 몬스터인 탓에, 이 등딱지의 g당 가격은 거의 순금과 맞먹는다. 그러니 이건 당장 팔아도 억단위는 가볍게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아이템’이란 뜻.

“진짜로?”

동료기사가 기가막힌 표정이 되어 다시금 물어왔다. 집도 가난한 놈이 이런 귀한 물건을···

“응.”

그러나 주지혁은 얼굴에 미소를 띠운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인터뷰 요청이 참 많이도 들어왔다. 약 50여군데, 김세진은 대한민국에 언론사가 이토록 많은지 처음 알게 되었다.

세진은 처음엔 모두 거절하려다가, 그래도 오크 대장장이가 언론에 구타당한 전력을 떠올리고선 개중 이름이 알려진 언론사 네 군데의 인터뷰를 허락했다.

헌데 그것도 고역이었다. 물론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만,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한 언론사 최소 3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게다가-물론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건넨 가십성 질문이었겠지만- 한 기자는 ‘라이칸’과의 접점을 묻기도 했다. 라이칸은 라이칸슬로프의 줄임말, 비록 사람의 한 종족이라지만 라이칸슬로프는 몬스터와 관계가 어느정도는 있으니까.

“아 그러면 정말 정말 마지막으로, 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단체 ‘더 몬스터’의 신입을 뽑을 생각은 없으신건가요? 뭐 공채라던지 특채라던지.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많은 사냥꾼이나 기사들이 세진 씨의 단체를 가입대상으로 눈여겨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벌써 4번째 마지막 질문이다. 마지막에도 단계가 있는지 심히 의심될 지경이지만, 그래도 세진은 꿋꿋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예. 아직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스타일이라···.”

“아하. 그럼 이 단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세진 씨와 친해져야겠군요?”

“예? 아.. 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다행히도 이번 질문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기자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선 떠나갔다.

이제는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빠듯하다. 그가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갖출 때, 누군가가 책임자실의 문을 노크했다.

“누구지?”

-유프라스입니다.

“..들어오세요.”

유프라스는 하젤린이 꽂아 넣은 오크 무기점의 직원 중 한명이다. 직함은 직원을 책임지는 매니저. 그 서양식 이름답게 종족은 엘프고, 콧대가 아주 높으시다.

“무슨 일이죠?”

“주지혁이라는 기사가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유프라스는 정중하고 예의넘치는 자세로 상자를 집무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등을 보이지 않고 뒷걸음질로 빠져나갔다. 엘프가 상급자에게 보이는 예우라나 뭐라나.

“···선물?”

세진은 그 검은 상자를 들여보다가, 이내 별 생각없이 뚜껑을 들어올렸다.

‘등딱지?’

내용물은 꽤 의아했다. 선물로 왜 이런걸··· 그러나 뒤이어 떠오르는 정보창이 세진의 무지를 깨우쳐주었다.

‘잠재강도등급이 B+네?’

잠재강도등급은 이 재료가 등극할 수 있는 강도의 최고치를 말한다. B+면 거의 아다만티움의 바로 아래 격.

이 등딱지에 더해, 주지혁은 자필편지까지 동봉해왔다. 이 무기 덕분에 자신의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지.

‘좋은 사람이네.’

편지를 다 읽은 김세진은 무언가 오묘한 표정이 되었다.

이렇듯 절절한 진심이 느껴지는 감사는, 그 생애 평생 받아본 적이 없었다.

*

가장 혹독한 추위의 계절, 1월.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위때문에 밖에 나가기도 싫어하는 1월은, 그러나 기사들에게는 가장 바쁜 달이다. 반년에 한번 있는 승급시험은 물론, 기사단과 기사단이 명예를 걸고 격투를 하는 ‘기사격전’, 그리고 겨울날에는 꼭 한번은 있을 ‘몬스터 웨이브’까지 신경써야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사격전의 경우에는 5년 전부터는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바람에, 기사들에게 아주 많은 부담이 되어버렸다. 몇몇 관심을 즐기는 기사들은 오히려 제 끼를 뽐낼 기회라며 좋아하지만.

-···벽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그 탓에, 방학동안 편히 쉬고 있어야할 학생은 기사가 되어 혹독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벽? 무슨 벽.”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넘을 수 없는 벽. 요즘은 레벨업도 더디······아.

순간 핸드폰 너머의 유세정이 말을 멈췄다. 기나긴 훈련을 끝마치고 온 탓에, 잠시 정신이 늘어져있기에 가능했던 실책.

“너 특성이 레벨업이었어?”

-······네. 아 근데 뭐.. 오빠는 알아도 되긴 한데··· 그래도 다른사람한테는 비밀, 비밀로 해주세요?

김세진이 알겠다 대답하자, 그녀는 다시금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아이가 기사라는 이유로 하루 14시간동안 혹독한 훈련에 매진하고 있으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겠지.

-아. 저 이번에 전적이 8승 28패예요. 물론 중급기사랑만 대련하긴 했지만 너무 심한게 아닌가······

“아. 근데.”

그러다 문득 세진은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떠올리게 되었다.

마력문신.

여자가 무슨 문신이냐, 해도 살색으로 하면 평소에는 별다른 태도 나지 않는다.

직접 한쪽 팔에 새겨봤으니 알고 있다.

참고로 자신이 팔에 새긴 문신의 효과는 [마나를 머금고 있는 문신입니다. 가용마나량이 증가하고, 마나회복이 빨라집니다.]

“너 문신··· 해볼 생각 없니?”

-···예? 그게 뭔···.

예상대로 그녀는 어이없다는 투로 반응해왔다. 누구보다 귀하신 재벌 가의 자제, 그것도 여자가 문신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세진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 둘러대고 끊으려 했다.

-아니 오빠, 잠깐만요. 왜 갑자기 문신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강해지는 거랑 관련이 있는 거예요?

그러나 유세정은 강함에 대한 왠지 모를 집착이 있었고, 그 끈질긴 태도에 김세진은 다시 말을 이을 수 밖에 없었다.

“아 그게··· 내 특성이랑 관련이 있는 거거든?”

이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고블린의 주술은 자신의 특성 덕분이니.

“문신을 새기면 좀 더 강해질 수 있어.”

마나수정을 오크의 단조를 이용해 액체로 성질을 변화, 그렇게 액체가 된 마나원액을 주술을 이용해 몸에 새겨 넣는다. 그러면 가용 마나양이 영구히 늘어나고, 소모한 마나는 좀 더 빨리 회복되게 된다.

마나양에 민감한 기사로서는 어쩌면 최고의 발전방법. 몸에 새기는 아티펙트라 봐도 무방하다.

-네? 그···게 뭐죠? 무슨 뜻이죠?

그러나 그 모든 내용을 담아내기에는 세진의 설명이 너무 빈약했다.

“아 그러니까, 내가 전에 신체관련 특성이라 말했잖아? 이 문신은 내 특성의 활용방법 중 하나야. 내가 네 몸에 문신을 새기면, 그 약의 재료에 따라 특별한 신체효과가 생겨. 만약 마나수정을 약으로 쓰면 마나양이 늘어나고···”

-예?! 그런 게 진짜 가능해요?!

우당탕탕-

침대에 누워있던 유세정이 부산스레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 가능해.”

있는 능력을 썩혀서 뭐하겠는가. 세진은 담백하게 대답했다.

-아 근데 그.. 문신이면..

“살색으로도 새길 수 있으니까, 별로 태 안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는 살짝 뜸을 들이다가, 수줍게 말을 이었다.

-···아프지 않을까요?

“..뭐?”

세진이 어이없어하며 되묻자, 그녀가 별안간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그게.. 저 몬스터랑 싸울 때는 특성 때문에 별로 안 아파요. 그런데 이런 전투가 아닌 상황에서는 특성이 적용이 되지 않아서 조금 아플 수 있거든요. 저 말고도, 이런 기사들 꽤 많아요. 주삿바늘 무서워하는 기사도 있다니까요? 물론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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