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작은 발자국(1)
“···어머.”
오크’s 블랙스미스. 일명 ‘오크의 대장간’-이름은 대장간이지만 무기점이나 다름이 없다-이 꼭대기층에 입점한 건물의 1층은 일단 카페로 운용하기로 결정이 났다.
근처의 알케미하우스 혹은 오크를 찾는 고객들이 대기하는 시간동안 할 일이 없으면, 1층에 있는 카페를 이용할 것이라는 추측때문이었다.
그리고 하젤린의 그 생각은 완벽히 적중했다.
지금, 기사들이 한창 사냥으로 바빠도 모자라지 않을 정오. 카페 안에는 기사들로 득실득실거렸다.
얼굴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중상급이상의 기사는 없었으나, 그보다 한 급간 아래. 그러나 실전전력 축에 드는 중하급~중급 기사들은 무척 많았다. 대충 머릿수만 세어도 80은 족히 넘어갈 법 하다.
아직 초창기일 뿐이지만, 하젤린은 이 사업이 예상보다 훨씬 성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의 대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와··· 기사들 진짜 많네. 다들 뱃지도 안 꿀리는데? 오. 칠흑도 있네?”
모든 기사단에는 저마다의 상징이 새겨져 있는 뱃지가 존재한다. 이 뱃지는 그 기사가 어느 기사단의 소속인지를 알려주는 명함이 된다.
“그러게. 경쟁 심하네. 난 내가 무기 사려고 면접까지 봐야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야.”
여기사는 불평아닌 불평을 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래도 좋네. ‘오크 대장장이가 만든 무기의 주인이 되려고 면접을 봐야합니다~~’ 라면서 하루 쉴 수도 있고.”
“푸흡. 그러게. 나 이걸로 반차 내줄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래. 근데 뭐··· 물론 이 대장장이가 대단한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 무기가 구리다는 거 아니겠니.”
그들은 모두 꼭대기 층인 ‘오크 블랙스미스’의 면접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면접을 보다니,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공급에 비해 수요의 수가 워낙 많았기에. 그래서 직원은 ‘무기의 주인이 되기 위한 면접으로 생각해 달라’며 기사들을 타일러야만 했다.
그만큼 이번 공모대회로 인해 기사들 사이에서 오크 대장장이의 명성은 드높아졌다. 지금은 아직 혜성처럼 반짝 등장한 신인이지만, 곧 그 누구보다 거대한 기라성이 되어 하늘을 찬란히 수놓을 것이라며.
“중급기사 주지혁님?”
그 때, 카페의 뒷문으로 직원이 한 명 들어와서 기사를 호명했다.
“네 접니다!”
그에 남자기사가 벌떡 일어나며 크게 소리쳤다. 뱃지를 보아하니 새벽 기사단 소속인 듯 했다.
“기사님 차례입니다.”
“옙!”
주지혁이라 불린 남자는 여직원을 뒤따랐다.
우우웅-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주지혁의 자세는 굉장히 불편했다.
굳이 특별한 것이 없음에도, 엘리베이터 내부의 진동이 괜히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심장도 콩닥콩닥 뛰었다.
기사에게 무기는 어쩌면 평생을 함께할 연인과도 비슷하다. 일평생동안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과 잘 맞는 무기는 찾기 어렵고, 또 있다 하더라도 쟁취하는데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렇게 긴장을 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지혁은 자신의 마음을 애써 추슬렀다.
띵-
금세 꼭대기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
꿀꺽- 절로 침이 삼켜졌다. 내부를 보니 그랬다. 별 다른 장식은 없었다. 그저 서늘한 회색벽지가 온 사방으로 도배되어 있었을 뿐.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위압감을 주어,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김세진이 이 벽지에 특수한 ‘성질’을 부여했음을 모르는 기사는, 역시 오크 대장장이는 다르구나- 따위의 감탄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사방을 둘러보던 주지혁은 문득 하나의 명패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번쩍번쩍 노랗게 빛나는 명패에 새겨져 있는 글자는···
‘단체 더 몬스터 소속 대장장이, 오크의 대장간’
“따라오시면 됩니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명패를 바라보던 주지혁이 직원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아.. 예!”
직원의 안내를 받아 어느새 도달한 ‘책임자실’ 문 앞. 이곳에는 분명히 그 유명한 대장장이 오크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참고로 면접은 대장장이님이 아니라 단체장님이 보실 거예요~”
“···아. 그렇군요.”
단체장이라 함은 중급 사냥꾼 김세진을 의미하는 것일 터. 그는 비록 사냥꾼이긴 하지만, 요즈음 무시 못할 인물이 되어간다 들었다. 결코 쉽게 볼 인물이 아니다.
“그럼, 이제 들어가시면 되어요.”
주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책임자실의 문고리를 쥐었다.
*
“만약 제가 오크 님의 무기를 받게 된다면, 그 어느 누구보다 소중히 다룰 자신이 있습니다. 최소하루 세번 무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새벽 기사단 소속 중급기사, ‘주지혁’은 지금 자신의 인생이 걸린 면접이라도 보고 있는 양. 잔뜩 긴장한 얼굴과 곧은 자세로 자신의 앞에 앉은 남자를 마주했다.
“···그래요? 그럼··· 주로 쓰는 무기의 종류가 뭔 지 알 수 있을까요?”
지금 이 곳. 책임자실에서는 뜻밖의 면접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면접관은 당연히 김세진이고, 그간 거쳐간 피면접자는 여러 중급~중하급 기사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어 갈 길이 아주 바쁘신 중상급 이상의 기사님들은 서면을 하나, 특히 간절한 분은 여러장 보내는 것으로 끝냈지만, 그 미만의 기사들은 이렇듯 장비점까지 직접 찾아왔다.
“저는··· 양손 검, 그 중에서도 ‘츠바이한더’를 주로 사용합니다. 근데 이 무기가 만들기 어려운 건지, 아니면 여태 제 무기를 만들어온 대장장이의 실력이 그저 그런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부분이 보통 5회 정도 사냥을 나가거나, 균열탐색을 한번만 끝내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무기가뭄의 실정을 알려주는 말이었다.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멋지고 돈도 잘 버는 업종-대표적으로 기사나 마법사-이나 되려하지, 그 누구도 험난한 대장장이의 길을 추구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사들은 근 5년 전까지는 대장장이를 아주 천시하여, 있던 대장장이마저도 일을 접게 만들었다. 최근에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서 저자세로 나오고 있지만.
“심할 때는 균열탐색 도중에 부러져서 아주 곤란했던 적도 있고요.”
“그래요? 근데 츠바이한더면 가격이 꽤 비쌀지도 몰라요.”
츠바이한더는 양손검 중에서도 그 생김새가 특히 흉악한 대검(大劍)이다. 만약 이 남자가 무기의 주인으로 채택이 된다면, 마나의 양이 빠듯한 세진에게도 꽤나 어려운 도전이 될 터.
“아, 괜찮습니다! 물론 알고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 기사단에는 기사 대출시스템이 아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잡혀있어서··· 하핫!”
순박한 시골 청년처럼 생긴 남자는 웃음 마저도 순수했다.
세진은 피식 웃고는, 알았으니 돌아가보라 말했다.
“아. 혹시나 심사에서 탈락하셔도··· 너무 상심하지는 마세요. 아시다시피 지금 찾아온 기사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 분들의 무기를 모두 일일이 만들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괜찮습니다! 평생 쓸 무기를 구하는 건데, 탈락해도 다시 와야죠!”
중급기사정도면 그래도 꽤 짬이 있는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마지막까지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떠났다.
그렇게 한 명의 기사가 떠났으나, 쉴 틈도 없이 직원이 들어와 다음 예약을 확인해주었다.
세진은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는 남은 시간을 슬쩍 확인했다.
약 2시간. 앞으로 20명정도는 더 받을 수 있겠다 싶어, 들여보내라 대답했다.
바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
요즈음, 기사단에는 소문 하나가 알음알음 퍼졌다. 오크 대장장이가 단체 ‘더 몬스터’에 가입했다는 소문.
아직 단체명부에 오크 대장장이의 이름이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오크’s 블랙스미스’에 직접 방문한 기사들이 벽에 걸린 명패를 보고 놀라 동료 기사에게 전한 것이 그 소식의 시발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우리는 김유린 기사님이 그 단체장이랑 연이 있어서.”
“···어?”
그리고 지금 여기는 김유린이 주축으로 있는 칠흑기사단 1팀의 회의실, 한 시간의 피튀기는 회의 끝에 찾아온 쉬는시간.
기사들이 피로를 풀기 위한 잡담을 하던 도중, 별안간 불똥이 유린에게로 튀었다.
“맞다. 그랬었죠? 다행이네요. 다른 기사단의 머리들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데. 아 맞다 기사님, 저 무기가 요즘······.”
여기사는 짐짓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이가 살짝 빠진 장도(長刀)를 검집에서 뽑았다.
“···”
유린이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슬그머니 다시 집어넣긴 하였지만, 그 은근한 기대만큼은 진짜였다.
“..안 그래도 식사약속 있으니까 한번 물어는 볼게.”
“와. 정말요?!”
“오!”
“···.”
다른 기사들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김수겸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뭐가 그리도 불만스러운지 뚱한 표정을 유지했다.
“···풉. 기사님, 얘는 기사님이 다른 남자랑 밥먹는게 고까운가 봅니다? 새파란 중급기사에 잔뜩 어린 놈이, 감히 고위기사님을···.”
“아, 아닙니다!”
그 안색을 캐치한 여기사가 놀리듯이 말했고, 김수겸은 그제서야 얼굴이 벌게져서는 손을 마구마구 휘저었다.
“..그만 놀려. 수겸이 얼굴 터지겠다. 그리고 나한테 기대지 말고 니네가 먼저 찾아가. 무기가 어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나..”
“에이··· 그래도 명색이 중상급인데 어떻게 신인 대장장이를 직접 찾아갑니까. 물론 명품이나 제 마나를 견딜 수 있는 상급-상품 이상을 만들어 준다면야, 저도 직접 찾아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싶지만, 그건 저 뿐만 아니라 칠흑기사단의 자존심과도 관련이 있다고요."
여기사는 잠시 말을 끊고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생각만 해도 짜증난다는 듯.
"고위기사님처럼 그 대장장이의 보스와 개인적으로 만나는 거 아니면 안 돼요. 잘못해서 SNS에 퍼지면 새벽이나 고려애들한테 놀림당할수도 있다니까요. ‘무기가 급해 갓 데뷔한 대장장이를 버선발로 찾아간 중상급 기사 이혜린’뭐 이렇게.”
“너··· 후우.”
그런 태도 때문에 대장장이 수가 줄어든거잖아.
그러나 유린은 뒷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이 여기사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즈음 기세가 등등해진 새벽 쪽이 시비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
연예계 쪽에서도 유명한 새벽의 기사가 새벽기사단 내부에서 찍은 셀카를 올리면서 #(해쉬태그)를 ‘한국최고의기사단에서’ 라는 식으로 칠흑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논란이 되었고, 물증은 없지만 여러 포털사이트와 SNS등지에서 댓글 알바가 활동하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런데 중상급기사가 데뷔한 지 반 년도 안 된 대장장이를 찾아간다면 분명 나쁜 소문이 돌 가능성이 높다. (중급과는 한 글자 차이지만 강함과 지위는 ‘격’이 다르다. 중급기사가 그저 실전용 전력이라면, 중상급 이상의 기사는 기사단의 최고 핵심전력.)물론 그런 기사가 대장장이를 직접 찾아간 일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그 대장장이가 ‘명인’이나 ‘장인’이어서, 다 만들어진 무기를 받으러 갈 때의 이야기.
오크 대장장이가 지금 갑자기 유명해졌다 해도, 아직 장인도 되지 못한 신인에 불과하다. 또한 지금 특히 이목을 끄는 것도 한달에 최소 두 개의 무기를 만들겠다는 지킬 지 안 지킬 지 모르는 물량공약 때문.
지금 이혜린 기사가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이건 어쩌면 자존심싸움이다. 새벽 기사단의 중상급 이상이 먼저 그쪽을 찾아갈 때 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것.
하등 쓸모가 없지만, 기사들은 언제나 그래왔다.
“어쨌든.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나도 무리한 부탁은 못하니까.”
“네~”
“그럼 이제 다시 회의시작한다.”
“아앗! 10분밖에 안 지났는데요!”
“시끄러.”
*
‘물의 지배자’라는 패시브 스킬은 꽤 편리했다.
“오오. 따뜻해졌다.”
너무 실용적으로 쓰고 있는게 흠이지만.
세진은 욕조에 담아 놓은 찬물의 표면에 피부를 접촉함으로써 그 온기를 바꾸었다. 몸에 딱 좋은 따뜻함으로.
이게 바로 F-등급 패시브 스킬 ‘물의 지배자’의 능력, ‘등급에 따라 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의 활용법 중 하나.
물의 온도를 순식간에 바꾼다.
아직은 커피를 타먹거나 라면을 끓여먹거나 지금처럼 목욕을 하는 것 밖에 안되지만··· 분명 등급이 높아지면 다른 활용방안이 있을거라 기대하고 있다.
“끄으~”
만족스럽게 욕조 속으로 가라앉은 세진은 문득 ‘나약한 바다괴수’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번 해볼까.’
포밍몬스터가 하나 늘어나긴 했지만, 왠지 어감이 좋지 않아 여태 썩혀 두고 만 있었던 것. 왠지 오늘 기분이 좋아, 한번 해볼까, 싶었다.
“···흠.”
결정한 그는 나약한 바다괴수로 포밍했다.
빛이 번쩍이고 불꽃이 펑- 터지는 유별난 효과는 없었다. 단지 갑자기 키가 줄어들고, 온 몸에 털같은 비늘이 오돌토돌 자라났을 뿐.
“······”
나약한 바다괴수로 분한 김세진은 멍하니 천장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게 괴수야?’
괴수라기에는 너무······ 귀여웠다.
커다랗고 올망졸망한 눈망울에는 물기가 잔뜩 머금어져 있고, 온 몸에는 흰색 말랑말랑한 비늘이 덧대어져 있다. 그 탓에 눈사람처럼 하얀 몸체는 게다가 쓸데없이 앙증맞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보자면 새끼 하프물범처럼 생겼다.
단지 외모만으로도 보호욕구를 일으키는 귀여운 동물.
이건 절대 괴수가 아니다.
‘···’
세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만졌다.
빵빵하게 불어터진 양 볼은 그만큼 귀여웠다.
“낑?”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도 강아지같았다.
‘뭐야 얘?’
그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