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42화 (42/174)

12. 발전아닌 발전 (2)

심해의 마수, 레비아탄.

레비아탄은 관련된 설화나 전설이 많은 만큼, 대단히 강대한 무력을 자랑하는 괴수다. 그것은 차라리 몬스터라 부르기 보다는 재해(災害)라는 형용이 알맞을 정도.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레비아탄이 바다에 있을 때의 이야기. 지금 이곳은 운신의 폭이 아주 좁은 강이다.

김유린은 발검(拔劍)한 채, 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올리려는 레비아탄을 향해 활강했다.

허나 목표는 놈의 사살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역소환’.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마법진 혹은 부적을 소멸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도심에 생길 혼란과 피해를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일격의 목적을 ‘레비아탄, 5분간의 기절’로 설정했다.

이것은 오직 김유린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 중 일부, 일명 ‘목적성’이다. 그녀는 제 마나의 한도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특정한 목적을 검격 안에 녹여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잠시나마 하나의 진리가 되어 ‘반드시’ 이행된다.

‘···마나가.’

온 몸의 힘이 쑥 빠져나가는 느낌에, 유린이 이를 꽉 깨물었다. 사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시간도 아니고, 고작 오 분간의 기절일 뿐이다. 그러나 마나의 소모는 아주 극심했다.

“───!”

어느새 수면 위로 얼굴을 치밀은 레비아탄은 마치 뱃고동과도 같은 괴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듣기 괴로운 저주파 소리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콰아아앙-!

사방이 진동하는 폭음.

온 몸에 푸른 마나를 두른 채, 하늘에서부터 내려앉은 김유린의 일격이 놈의 미간 사이를 제대로 가격했다.

갑작스런 소환에 심기가 잔뜩 불편해져있던 레비아탄은 눈을 까뒤집고서 다시 수면으로 무너져 내렸다.

풍덩-

그 과격하리만치 거대한 물체가 넘어짐에 따라, 마치 해일과도 같은 물보라가 사방으로 퍼졌다.

“···으.”

유린은 한강 옆 대로변에 가볍게 착지했으나, 연신 비틀거리다 결국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나 소모로 말미암은 현기증.

물론 아직 절반정도의 여력은 남아있지만, 단 한번의 일격으로 무려 절반의 마나가 소모된 것은 특성을 능숙히 다루지 못했던 초보시절을 제하고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러나 쉴 새도 없이, 그녀는 재빨리 수정구 아티펙트를 들었다. 그 즉시 칠흑기사단원의 목소리가 급히 튀어나왔다.

“여기 레비··· 뭐?”

허나 그것은 그들이 지금 이 한강변의 ‘레비아탄 사태’를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기사님! 서울 남산과 강원도 몬스터 필드, 그리고 부산 쪽에 갑자기 난리가 일어났답니다! 부산은 균열이 열리기 직전이라 아예 지옥문이에요!

수 많은 사건들이. 이미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유린 기사님!”

기사로 재직하면서 평생 없었던 초유의 사태. 그러나 유린이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대처방안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세정과 김세진이었다.

“오지 마세요! 너무 위험합니다!”

유린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랑곳 않고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저건 뭡니까?”

김세진은 유세정과 함께 유린을 부축하며 다급히 물었다. 유린은 착잡한 표정으로 답했다.

“···레비아탄이에요.”

“..네?”

그 복잡한 심경이 담긴 말에, 순간 유세정이 벙쪘다.

레비아탄. 신화 속 괴수는 이곳에는 있어선 안될······

“하지만 다행히도 소환수예요. 분명 매개체가 가까운 곳에 숨겨져 있을 테니, 그것만 찾으면 돼요. 근데 지금 난리가 이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인력이······ 혹시 도와줄 수 있겠어요?”

일시적으로 불려진 몬스터는 본신의 위력이 어느정도 경감이 되고, 또 매개체가 사라지거나 지속시간이 끝나면 원래 있던 장소로 역소환이 된다. 그래서 그 매개체만 소멸시킨다면 사태는 쉽게 진정시킬 수 있다.

게다가 그 매개체가 있을 장소도 예측이 된다. 당연히 강바닥 깊은 곳에 있겠지.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고작 5분, 아니 아직 한번의 기회가 더 있으니 10분이라 하더라도, 강바닥을 모두 뒤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지속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큰 피해가 발생된다.

“네!”

유세정과 김세진이 동시에 대답했다.

유린은 그들에게 간단히 설명하고서, 재빨리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유세정도 그 즉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그 중 오직 세진만이 오히려 뒤로 물러섰다.

매개체가 뭔 지는 몰라도, 분명 그것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존재할 터.

먼 발치에서 한강의 전경을 바라보던 세진의 동공이 황금색으로 번뜩였다.

시야가 밝아지고, 온 사위가 선명해졌다. 저 거대한 레비아탄에게서는 ‘기절’의 의미인 녹색 기운이 퍼져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색이 점점 연해지는 걸 보면,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수면 곳곳을 확대하며 희미하게라도 있을 기운을 급히 찾기 시작했다.

수면 위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수면 아래.

점점 시선을 내리던 그는 드디어, 발견할 수 있었다.

이쪽으로부터 반대편. 꽤 먼 지역에서 아른거리는 진한 푸른색의 기운.

저곳이다─

그는 그쪽을 향해 지체없이 달리다가, 이내 강으로 뛰어들었다.

선풍의 질주는 과연 바닷속에서도 적용되는 유용한 스킬이었다. 그는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수면을 헤엄쳤다.

기운이 흘러나오는 지점까지 소요시간은 약 3분. 그 근원지에 도착한 세진은 즉시 잠수했다.

늑대의 시야는 수면 아래에서도 무척 밝았다. 그래서 세진은 무리없이 볼 수 있었다. 강의 바닥에 그려진 해괴한 마법진과, 그 중심에 고정된 이상한 비늘 한 조각을.

연신 아래로, 아래로 헤엄쳐 마침내 밑바닥에 닿은 그는 일단 늑대의 손톱을 활성화했다. 마법진은 ‘마나’로 그려져 있었기에, 베어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진이 순식간에 길어진 손톱을 휘두르려는 순간.

별안간 강물에 거세게 진동하며 치솟았다.

우우우웅?. 기절한 레비아탄이 다시 깨어난 듯. 마치 뱃고동과 같은 소리가 다시금 울려퍼졌다.

그러나 그것은 곧 퍽- 하는 타격음과 함께 멎고, 뒤이어 거센 파동이 수면을 타고 전해졌다.

‘···뭐야?’

그 기이한 현상에 세진은 살짝 당황했으나, 다시 마법진에 집중했다. 강(江)속인지라 행동이 전체적으로 느렸다.

휘이적- 휘이적- 세진이 손톱을 휘둘렀지만 변화는 없었다.

‘인간형으로는 등급이 부족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두 팔만 흑색늑대, 야수 폼을 취했다. 순식간에 팔이 우락부락해지며 짙은 털이 자라났다.

늑대의 흉악한 손아귀는 이 물결마저도 가를 수 있을 만큼 패악적이었다.

“ㅡㅡㅡ!”

그가 손톱을 힘차게 휘둘렀다.

그리고, 실제로 물결이 베어졌다.

아주 찰나. 손톱이 닿는 부분의 수분이 증발했다.

‘와.’

허나 이 손톱의 위력을 멍하니 두고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마법진을 향해 손톱을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세진이 손톱을 휘두를 때 마다 색이 점점 연해지던 기운은,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바닥을 힐끗 바라보니 마법진도 모두 해체되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지막지한 위협을 내뿜던 마수의 기척도 사라지고, 세진은 인간 폼으로 변해 수면위로 올라가려 했다.

헌데. 그 마법진의 중심에서 번쩍이던 자그마한 비늘이 눈에 걸렸다.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러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쥐고서 수면 위로 헤엄을 쳤다.

“푸하!”

그렇게 일을 마치고 수면위로 나오니, 먼저 사방의 난리통이 눈과 귀에 내다 꽂혔다.

사이렌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녹갈색의 전투복을 입은 군인과 탱크가 대교 위로 깔려있었으며, 한강 주변에는 실전에 투입될 기사들이 온 몸에 마나를 잔뜩 두른 채 임전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역할이나 옷차림은 모두 달랐으나, 행동만큼은 비슷했다. 모두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렸다. 이렇듯 긴급사태가 벌어진 이유였던 ‘레비아탄’이 급작스레 사라졌기 때문에.

“···후.”

세진은 그런 그들을 지켜보다가, 뭍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가 다시 눈에 띄었다. 이번에는 물건이 아니었다.

“유린 씨!”

레비아탄이 사라진 자리에서 힘겹게 헤엄을 치고 있는 김유린이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헤엄쳤다. 속도는 상당히 빨랐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닿을 수 있었다.

“괜찮아요?”

“······.”

유린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파랗게 질린 안색은 결코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꽉 잡아요.”

그 말에, 그녀는 세진의 옷자락을 강하게 움켜쥐고는 물었다.

“···세진, 씨가. 하신 거예요?”

“네?”

“소환··· 매개···.”

“아.. 네. 운 좋게 마법진을 찾아냈거든요.”

김유린은 그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세진의 품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레비아탄을 두 번 기절시킨 대가가 꽤나 컸던 듯 했다.

생각하고 보면 당연했다.

레비아탄은 바다의 왕, 해수에서만큼은 그 크라켄 마저도 한 수 접어주는 전설적 몬스터다. 그런 전설의 마수를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기절을 시켰는데, 정상을 유지하면 그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어서!”

뭍 위로 올라온 세진은 구조대에게 김유린을 건네주었다. 그들은 그녀를 둘러메고서 황급히 응급차로 향했다.

“기사님! 괜찮으십니까!”

“맥박은 정상이에요.”

그렇게 모든 관심이 유린에게로 집중되고 순식간에 찬밥신세가 되고. 세진은 그들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조심스레 손에 꽉 쥐어두었던 물건을 꺼냈다.

영롱하게 빛나는 비늘.

그 무엇보다 윤기나고 부드럽지만, 그 어느 금속보다 단단하여 어떤 날붙이도 감히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레비아탄의 비늘, 그리고 한낱 소환의 술로 바다의 마신을 소환할 수 있었던 이유.

“···.”

그는 그 비늘을 집어삼켰다. 무슨 연유에선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저 본능이 시켰을 뿐.

그리고 그 순간. 몸 내부에서부터 기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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