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동화 (2)
“···웨어울프.”
김인수가 무겁게 중얼거렸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김세진은 웨어울프가 아니다. 단지 흑색늑대가 야수화를 한 상태. 그러나 그런 미묘한 차이를 분간 짓기에, 웨어울프라는 몬스터는 너무 희귀하여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었다.
“대, 대장님! 그냥 도망갑시다. 저 웨어울프가 제가 방금 말했던······.”
“뭘 도망가요! 몬스터잖아요!”
“아니, 저건 영물···.”
재개될 뻔 했던 두 사람 간의 설전은 김인수가 재빨리 검을 뽑음으로써 조기 진압되었다.
“저, 저.. 싸울생각이십니까? 그냥 도망가도 저 웨어울프는 해코지를 안할 것 같은데.”
“웨어울프는 특히 위험한 몬스터다. 어쩌면 중급지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리고 중상급기사의 역할 중 하나는 저런 급간에 어울리지 않는 위험한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
김인수가 검을 웨어울프에게 겨냥했다. 검날의 끝에 위치한 것은, 놈의 머리. 그를 바라보던 남자 부하기사는 애써 말을 삼켰다. ‘아직 중상급기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들은 별 도움이 안되니 도망가도 좋다.”
“아뇨! 저도 싸우겠습니다.”
여기사가 씩씩하게 대꾸하며 등에 멘 활을 꺼내 들자, 김인수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 중에서 궁사(弓師)는 드물다. 화살이 주인의 손을 벗어나 적에게 피해를 입힐 때까지 마나가 집결되도록 유지시켜야 하지만, 그것은 보통 재능이 아니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법사에 준할 정도로 마나친화력이 뛰어나야만 한다.
“소여진 기사, 엄호를 부탁한다.“
“예!”
힘차게 대답한 두 남녀를 두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두 명의 남자기사도 검을 뽑아 들었다.
‘저게 미쳤나.’
그리고 김세진은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아주 간단한 표정변화일 뿐임에도, 늑대의 얼굴은 무척 험악해졌다. 그에 부하기사들이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김인수가 부하들을 진정시키며 검에 마나를 모았다. 보통 마나의 푸른 빛과는 다른, 순백의 빛이 그의 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우와···”
소여진이라 불린 여기사는 넋을 놓고 그 순백의 마나를 감상했다.
저것이 바로 ‘빛의 구원자’.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때 그 위력이 더욱 배가된다는 신성의 특성.
“···크르릉.”
과연, 저 특성은 김세진이 느끼기에도 다소 위협적이었다. 단지 위협뿐만이 아니었다. 흑색늑대는 저 순백색 마나에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손의 떨림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도망가기에는 김세진의 자존심이 걸렸다.
몬스터의 본능과 인간의 이성이 뒤섞이고, 그것은 아예 새로운 감정으로 치환되어 나타났다.
그렇게, 별안간 가슴속에서부터 뜨거운 투쟁심이 솟아올랐다.
─크어어어어!
이상했다. 분명 짐승처럼 포효할 생각은 없었는데, 절로 아가리가 벌려지고 거대한 괴성이 토해졌다.
별안간 의식이 흐릿해지고,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전의 전사가 발동되었습니다······
“······!”
선풍을 휘몰아치며, 김세진은 기사들에게 질주했다. 그 찰나의 쇄도에 반응할 시간은 전무. 김인수는 재빨리 몸에 마나강기를 둘렀으나, 늑대의 목표는 그가 아니었다.
-꺄아아악
고음의 비명이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영리한 늑대는 그의 뒤에서 엄호를 하려하던 여기사를 먼저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활은 두동강이 나고, 깊게 베인 가녀린 팔목에는 선혈이 흘러내린다.
“...이런 미친!”
김인수와 두 명의 부하기사들이 재빨리 늑대를 향해 돌격했다.
“으랴압!”
기합과 함께, 부하기사들이 먼저 김세진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지금 세진의 몸에 스며든 성질은 ‘E등급 파쇄’. 그는 손톱을 휘둘러 그들의 검을 그었다.
채앵-
하늘로 비산하는 것은. 두 동강이 난 날붙이.
마나가 스며들었던 검이 너무나도 쉽게 박살나자, 부하기사들은 극도로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세진은 그들에게 관심을 끊고서, 터질 듯 격렬한 마나가 느껴지는 뒤로 돌아섰다.
김인수. 온몸이 새하얗게 빛나는 기사가 이 쪽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앙-
그러나 그의 검은 땅을 헤집을 뿐, 어느새 하늘로 도약한 늑대는 그의 사거리에서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부하기사 한 명이 외쳤다. 김인수는 그들을 힐끗 뒤돌아보고는 명령했다.
“소여진 기사를 데리고 도망가라. 포션이 아직 남아있으니, 어렵지 않게 회복할 수 있을것이다.”
“······.”
“어차피 무기도 없으면 방해만 될 뿐이다. 어서!”
부하기사들이 머뭇거리기만 하자, 김인수는 크게 소리쳤다. 그제서야 부하기사들은 부랴부랴 뒤로 도망치고, 그는 늑대에게 검을 겨냥했다.
“영악한 놈.”
마나가 스민 검에 대항하는 세진의 무기는 오로지 손톱이었다.
“이 간교한 놈.”
김인수의 온 몸을 아른거리던 빛의 세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수준이었기에, 세진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리고 그 순간. 김인수의 몸에서 수많은 마나의 칼날이 뱀처럼 뿜어져 나와, 세진에게로 쇄도했다.
“···!”
태양마저 지워버릴 듯한 수 많은 빛줄기들이 창공을 가득 메우며,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쏟아져내린다······.
회피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늑대의 손톱은 유형은 물론 무형까지도 베어낼 수 있다. 그것은 즉, 마나까지도 베어낼 수 있다─세진은 빛줄기를 향해 손톱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어쩌면 베어넘긴다는 표현이 옳았다. 빛줄기는 손톱에 닿는 그 즉시, 아침안개처럼 힘없이 흩어져갈 뿐이었으니.
그 기이한 상황에 이번에는 김인수가 당황할 차례였다. 그는 멍하니 늑대를 지켜보다가, 이내 먹히지 않는 기술의 사용을 중지하고 놈에게 직접 쇄도했다.
-챙
늑대의 발톱과 검이 거칠게 맞닿는다. 날카로운 소리가 초목을 울리고, 뜨거운 불씨가 격렬히 튀어오른다.
“으랴아압-!”
기합과 함께 내지르는 검, 그러나 늑대는 몸을 살짝 구름으로써 쉽게 피해냈다.
그 직후, 늑대의 손톱이 아래에서부터 뻗어 올라왔다.
“큽!”
김인수는 가까스로 막아냈다. 그러나 그는 곧 눈을 부릅뜰 수 밖에 없었다. 늑대의 손톱과 맞닿은 검의 단면에, 균열이 새겨지고 있었다.
“..!”
그는 재빨리 늑대의 복부를 발로 차고서 뒤로 물러났다.
그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몬스터따위가 마나가 담긴 검에 흉터를 낼 수 있는가······.
그러나 깊은 생각도 지금은 사치였다. 늑대가 다시금 돌격해왔다. 김인수는 재빨리 몸을 굴렀다.
-샤아악
허공을 가르는 손톱의 풍압이 나무를 두 동강낸다.
김인수는 바닥을 강하게 딛고, 놈의 목을 향해 검을 치밀었다.
그 이후로는 치열한 난전의 시작이었다. 두 발자국의 간극에서 벌여지는 초근접전. 휘두르는 검을 손톱으로 막아내고, 목으로 향하는 손톱을 기민한 움직임으로써 회피한다.
그런 치열한 전투가 지속될수록, 그들의 격전장은 점점 황폐화가 되어갔다. 단지 허공에 쏘아낸 검격이 초목을 부서트리고, 노면에는 흉악한 흉터들이 깊게 새겨졌다.
그러나, 격전의 대단원은 머지 않았다.
인간의 체력과 짐승의 체력. 그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후자의 쪽이 더욱 우위일 터.
김인수의 움직임은 전에 비해서 더없이 느려졌으나, 늑대는 여전히 쾌속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김인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좀 더 버타다가 죽든가, 아니면 마지막 도박수를 내든가.
고민은 깊지 않았다.
그는 온 몸의 끝에 모인 마나까지 박박 긁어모아, 검에 집결시켰다.
그러나.
툭-
“······.”
그 전에, 검이 견디질 못하고 먼저 쓰러졌다.
김인수는 바닥에 떨어진 검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들어올린다.
늑대야수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전과는 달랐다. 붉게 충혈되었던 두 눈은 어느새 형형한 노란빛을 되찾았고, 눈빛은 차분하고 침착하다. 마치 인간처럼.
‘···이게 뭔 일이냐.’
김세진은 김인수와 알림창을 번갈아 바라보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는 떠오르는 알림창 덕에, 본능에 잠식되어가던 정신줄을 애써 부여잡을 수 있었다.
[조건 완료 (1/3): 전력을 다한 승부]
-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 앞으로 두개의 조건을 완료하면, 흑색늑대폼이 진화합니다.
- 늑대와 관련된 모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김인수.
이 놈의 무기는 참, 좋지 않았다. 중상급기사나 되어서 겨우겨우 중품을 넘어선 무기를 쓰다니. 그러니 이렇게 쉽게 박살나지.
‘거지인가?’
“···죽여라.”
세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김인수가 가느다란 탄식과도 맡은 말을 내뱉었다.
‘..뭐래는 거야?’
그러나 세진은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일부러 김인수의 눈을 마주한 채 헹- 코웃음을 치고는, 훌훌 떠나갔다.
홀로 남겨진 김인수는 멍한 눈으로 그 야수의 뒷모습을 좇을 뿐이었다.
*
서울 최고의 부촌에 위치한 새벽기사단은 그 세련된 외관과 효율적인 건물배치, 최첨단 훈련시설로 유명하다. 또한 새벽기사단의 전직, 현직단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인적네트워크 어플리케이션인 ‘오늘새벽’은 뭇 기사들의 선망과 부러움을 한번에 받고 있다.
“···네가 한번 해봐.”
“니가 해. 왜 나한테 그래.”
“네가 동기였잖아!”
그리고 지금 이곳, 중앙에 설치된 ‘마나의 샘’으로 인하여 마나 농도가 웬만한 산기슭보다도 뛰어나다는 새벽기사단의 훈련장. 두 명의 신입기사들이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아니 동기고 자시고, 나 한번도 말 못 걸어 봤다니까.”
두 남정네들의 대화주제는 저 멀리서 운동을 하고 있는 아리따운 여인, 유세정. 언제나 훈련장에 올 때면 주목받는 그녀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특별한 관심이 그녀에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 어차피 물어봐도 가입 못해. 알잖아.”
“아니 중급 사냥꾼도 거기 있던데 우리는 왜 안돼!”
그 관심의 이유는 바로 그녀가 설립한 단체, ‘더 몬스터’. 이름은 아주 험악하고 등급도 D-에 불과하지만, 현재 ‘오늘새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체다.
그것은 비단 새벽기사단의 마스코트이자 최고의 재능 ‘유세정’과 이름모를 마법사가 가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블린 연금술사, 현재 가장 핫한 연금술사 또한 그 단체에 떡 하니 가입을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건······.”
“한번. 한번만 가봐. 나는 아예 면식이 없잖아. 그리고 내 면상좀 봐. 어? 잘 되겠냐?”
“···후.”
“진짜, 야. 이거 잘만 해서 가입되면 우리 인생 쫙 피는거다. 너 요즘 소문 도는거 알지? 어? 오크랑 고블린 둘다 몬스터인거 알지?”
“야이 씨. 그건 개소문이잖아.”
그리고 요즈음은 요상한 괴소문도 돌고있다. 바로 오크 대장장이도 곧 이 단체에 가입할 것이라는 소문.
단체명이 ‘더 몬스터’이고, 오크 대장장이와 고블린 연금술사 둘은 서로 비슷한 컨셉이기에, 오늘새벽은 물론 여러 다른 기사들도 혹시-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어쨌든. 한번만 가봐.”
두 남자기사의 바람은 이러했다. 다른 단원을 가입시킬 마음은 있지만, 감히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여태 4명의 적은 인원으로만 있다고. 그래서 용기를 발휘해서 찾아가면, 흔쾌히 가입을 시켜줄 것이라고. 이른바 ‘용기있는 자가 미녀를 얻는다.’
“···하아, 알았어. 기다리고 있어봐.”
시원하니 잘생긴 남기사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유세정에게 다가갔다. 긴장으로 가득한 발걸음이 마치 로봇처럼 느껴졌다.
그의 동료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움켜쥐고서 그가 좋은 소식을 들고 돌아오길 기다렸다.
“후우.”
한 번의 심호흡.
유세정 앞에 당도한 그는 아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단체를 이..이루셨다고 드드드,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세정은 이런 상황을 수십번도 더 겪었던 듯, 아주 능숙하게 대답했다 “단체장은 제가 아니라 ‘김세진’입니다. 가입문의는 그 분을 찾아가세요.”
“······예.”
남자는 그것을 완곡한 거절이라 받아들였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와, 멀리서 지켜보는 남자에게 두 팔로 X자를 지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두 명분의 한숨이 퍼져 올랐다.
‘···왜 이렇게 가입 문의가 많지.’
유세정은 그런 그들을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고작 세 명밖에 없는 단체를 이토록 가입하고 싶어하는지. 요즈음 시험기간인지라 핸드폰을 봉인하고 있었던 그녀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유세정, 자신이라는 인맥은 아주 커다랗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이건 말 그대로 그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단체가 아닌가. 김세진 또한 그냥 중상급사냥꾼으로 승급하기 위해 단체를 결성했다고 말했고.
그러나 지금은 훈련 스케쥴. 끝나고 시험공부까지 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유세정은 일단 단체에 관한 생각은 지워버리고, 운동에 열중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뒤, 유세정은 자신을 데리러 온 집사에게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어?”
“모르고 있었어?”
“나 요즘 시험기간이잖아. 공부랑 훈련하느라 바빠가지고······ 근데 진짜로? 진짜에 진짜로?”
“너는 하여간. 이틀 전에 ‘고블린의 정화’라고, 고블린 시리즈 새거 나왔잖아. 거기에 떡하니 적혀있던데. ‘더 몬스터’ 소속 연금술사라고.”
“······”
세정은 꽤 놀란 표정으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