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37화 (37/174)

11. 동화 (1)

한달 뒤면 ‘대장장이 공모대회’ 대망의 최종심사가 시작된다.

-비록 시간은 촉박하지만,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모대회 프로그램은 이미 방영중이다. 주마다 한번씩. 2차심사에 통과한 총 11명의 대장장이들의 작업과정은 물론 일상까지도 비춰준다.

물론 세진은 촬영요청을 거절할 수 밖에 없어, 그를 뺀 열명의 대장장이가 번갈아서 나온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태산 씨가 이미 만들어 놓은 최종심사품을 폐기했다고 하시던데요?

지금 진행자가 인터뷰중인 남자는 김태산. 대한민국의 명인 김태백의 아들로, 사뭇 훈훈한 외모와 다부진 체격으로 요즈음 꽤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 대장장이다.

-예.

-그 이유가 뭔가요?

-하하······ 짐작하시는 그대로입니다. 그 물건으로는 ‘오크’ 대장장이 님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 분의 대단한 무기에 비해서, 제 것은 완성이 덜 된 미완성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전에 만들었던 무기를 폐기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저 자신과 타협할까 두려워, 아예 박살까지 냈지요.

-아··· 그건 조금 아쉽네요. 그 무기도 충분히 좋은 무기였을텐데.

-하하.. 아닙니다. 일단 따라오시죠. 제 작업공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김태산은 진행자를 대장간 안으로 안내했다.

“···쩝”

프로그램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세진은 TV를 끄고 생각에 잠겼다.

김태산, 화면에 비춰지는 그는 호쾌하고 열정적이다. 만약 저게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면, 그는 야망이 넘치는 호인(好人)이다. 거기까진 좋다. 재능이 뛰어난 누군가가 자신을 라이벌로 삼는다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여론과 대중이다. 이쪽은 어쩔 수 없이 인터뷰나 촬영에 응하지 못해, 여태 ‘ORK’라는 대장장이는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해주고, 오히려 그 신비함을 좋아할 줄로만 알았다.

아니, 처음에는 그랬다. 김태산이 TV에 출현하기 전까지는.

남자가 봐도 잘생긴 김태산은 특유의 열성적이고 겸손한 모습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오크 대장장이님이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이고,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나 제 목표는 여전히 우승입니다. 그 분을 뛰어넘기 위해, 저는 항상 노력할 것입니다.’

김태산의 그런 면모를 여실히 알려주는 캐치프레이즈다. 여기까지는 참 좋다.

그러나 급속도로 불어난 김태산의 팬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김태산의 성품을 치켜세우는 한편 정체불명의 대장장이 ‘오크’를 연신 깎아내렸다. 건방지고 겸손하지 않다며.

언론도 마찬가지로 김태산의 편이었다. 김태산은 언론에 호의적이었지만, 오크 대장장이는 아예 배척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리하여 최종심사를 한 달 앞둔 지금. 김태산은 주인공, 오크는 그 이름처럼 주인공이 쓰러뜨려야 하는 몬스터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김태산과, 코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오크.

언론과 대중은 저마다 오크의 실력적 우위를 언급했으나, 그것보다 더욱 김태산의 열정이 오크를 이겨주길 바랐다.

“···흠.”

그래도 세진은 쉽게 져줄 생각이 없었다. 악성기자와 김태산의 팬들에게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오기와 독기가 더욱 솟아올라 오히려 승리에 대한 갈망이 심해졌다.

‘최소 상품 이상으로.’

최종심사의 승리를 위해서는 최소 상품(上品)-중급 이상의 무기가 필요하다. 물론 ‘명품’이라면 이상적이겠으나, 아쉽지만 C-에 불과하는 숙련도로는 아직 무리다.

‘···잠깐.’

아니다. 무리가 아니다.

사냥을 거듭할수록 무기 그 자체가 성장하여 어느 순간에는 ‘명품’이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성질. 바보같이, 이미 그런 성질을 무기에 부여해봤으면서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흡수성장]

무기가 몬스터의 피와 살점에 흐르는 마나를 흡수하여, 자체적으로 성장하는 성질.

물론 그 흡수성장은 성질부여의 난이도가 어렵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D혹은 C-등급이 최대겠지만, 단지 그 정도만으로도 기사들이 눈을 붉히고 달려들 만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수 많은 기사들이 부단히도 원할 이 무기는 그림의 떡으로만 남게 되겠지. 이미 무기의 주인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유세정이 썼던 검의 종류가 브로드소드라고 했지.’

아마도 ‘로렌조의 브로드소드’라는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장장이의 이름이 붙을 정도로 좋은 물건. 그러나, 세진은 그것보다 더욱 뛰어난 무기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이참에 무기 하나 바꿔줘야겠네.’

어차피 ‘선점권’으로 인해 유세정의 손에 들어갈 터. 그러니 그냥 그녀의 손에 알맞게 만드는게 낫다고, 세진은 생각했다.

*

===

제목 : [늑대 수호신]

작성자 : [슬로프]

고고한 야수의 뒷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보름달을 등에 이고, 능선에 올라선 채 황금빛 눈동자로 미물을 굽어보는 형형한 짐승.

그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욕망의 화신이자, 그 어느 기적보다 환상적인 신령 ···

···

···

나는 그 누구보다 듬직한 뒷모습을 수호신이라 부르고 싶다.

===

“사냥꾼들도 참 한심하네요. 몬스터를 숭배하다니··· 차라리 종교나 믿지 이게 무슨..”

보름달이 뜬 몽환적인 밤.

한국일보 기사단평가순위 6위에 빛나는 개벽기사단은 지금 중급지대에서 ‘적응실습’이 한창이었다.

적응실습이란 상급자의 지도아래, 자신의 등급보다 한단계 높은 지대를 약 2주동안 경험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지금 파티는 3명의 중하급기사와, 한 명의 중급-곧 중상급이 될 예정이라 자부하는-기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근데 그게 이유가 다 있으니까 그런거죠. 중급지대에 출몰하는 웨어울프가 사람 구해준 거 한 두 번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웨어울프 무섭다고 사냥 안 오던 기사나 사냥꾼들도 오히려 웨어울프 덕분에 안심된다고 말 바꿨던데.”

요즈음 중급지대에 떠도는 소문이다. 중상급, 혹은 그 이상 등급의 웨어울프가 중급지대를 배회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구해준다는 소문.

항간은 그저 개소리라 치부했었으나, 목격자와 그 도움의 수혜자들이 속속들이 나타나면서 요즘은 언론까지 고개를 기웃거리는 실정이다. 물론 중급지대는 그 위험성때문에 언론통제지역이라 직접 들어오지는 못하지만, 목격자의 인터뷰를 따는 것으로 보아 확실하다.

“아~ 그 ‘늑대 수호신’이요? 그걸 믿는 거예요? 기사가? 그것도 개벽기사단 기사가?”

“···아니 그게···.”

남자기사는 뒷목을 긁적이며 여자기사의 눈을 피했다. 자신이 개벽기사단 소속의 기사라는 자부심이 넘쳐나는 여기사는 그런 그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흘겨보았다.

“그리고 만약 그게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몬스터잖아요. 저희 임무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거고.”

“몬스터가 아니라 영물이라는 썰도 있던데요. 그때 하급지대에서 자주 출몰하던 흑색늑대가 요즘 없어졌잖아요. 그래서 걔가 진화해서···”

“아니, 저기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만.”

묵직한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르자,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때아닌 설전은 책임자에 의해 종식되었다.

“소여진 중하급 기사의 말이 옳다. 우리의 임무는 몬스터를 쳐죽이는 것. 그것이 늑대수호신이던 주작이던 현무던 청룡이던, 상관은 없어.”

곧 있으면 중상급으로 승급할 중급기사, 일명 '빛의 구원자' 김인수가 짐짓 무게감을 잡으며 그들을 타일렀다.

“자네들은 내가 이 중급지대에서 어떤 전투를 하는지, 그것만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자신보다 더욱 뛰어난 기사의 전투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배움이 될 테니.”

그가 그렇게 말하며 한 발자국을 내딛은 순간.

-그어어어─

짐승의 거센 포효에 산세가 부르르 떨었다.

“따라와라!”

그 즉시, 김인수는 괴성의 진원지를 향해 질주했다.

*

김세진은 중급지대로 사냥을 나왔다. 단조의 효율을 더욱 좋게 만드는 ‘몬스터 부산물’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목표는 ‘트레이노스’라는 뿔이 세 개 달린 몬스터.

전체적인 외관은 코뿔소를 닮았으나, 뿔 뿐만 아니라 눈도 세 개나 달려있어서 외면이 흉측하다. 게다가 성정까지도 아주 포악하여 중급지대에서도 꽤 까다로운 축에 드는 몬스터다.

무기의 정보창을 열람할 수 있게 된 세진은 [‘트레이노스의 뿔’을 촉진제로 소모하면 완성품의 성질과 품질이 더욱 높아질 수 있습니다]

라는 문장을 통해, 이 놈의 뿔이 단조의 효율을 좋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김세진은 어렵지 않게 트레이노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르르─

그러나 세진과 마주한 코뿔소는 연신 으르렁 대기만 할 뿐, 감히 달려들지는 못했다. 아마 본능적으로 제 앞에 있는 이 늑대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위치한 존재란 걸 느꼈기 때문이리라.

“···크릉.”

세진이 답례로 아주 살짝 그르렁거리자, 코뿔소가 서서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는 놈이 도망을 치려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여유롭게 감상했다. 어차피 흑색늑대의 각력은 저 따위 놈이 도망친다 한들······

“그어어어어─”

헌데. 별안간 놈이 흉포한 괴성을 내지르며 전력으로 질주해왔다. 아무래도, 뒷걸음질은 추진력과 가속력을 얻기 위함이었던 듯했다.

세진은 살짝 당황했으나 굳이 저 놈을 피할 필요는 없었다. 등급이 상승하여 C-가 된 늑대발톱의 강도는 ‘프로늄’이라는, 미스릴의 바로 아래격에 위치한 광석과도 맞먹는다.

그저 단 한번 손을 휘두르기만 하면, 저 괘씸한 코뿔소는 잘게 다져진 고기덩어리가 되리라.

그는 손톱을 길게 뺐다. 그 어떤 흉기보다도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이 차갑게 번뜩였다.

쾅쾅쾅쾅쾅-

그리곤 여전히 돌격중인 코뿔소를 향해, 크게 휘두른다. 손톱에 맞닿는 공기가 찢겨져 허공이 일렁일 정도로 강맹한 일격이었다.

그렇게, 코뿔소는 늑대의 발치에도 채 닿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가 풀썩 무너진 코뿔소의 뿔을 회수하려는 그때.

등 뒤에서 예리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

세진이 퍼뜩 돌아서자, 낯익은 남자가 서있었다.

김인수.

그렇게, 김세진은 김인수와 마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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