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36화 (36/174)

10. 태동 (5)

인간형으로 중하급 지대에서의 솔로-플레이. 솔직히 많은 걱정을 했으나,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영체화를 통해 온 몸이 무기와 같은 성질을 띄게 되었고, 오크 재규어의 단조기술로 만든 무장은 꽤 잘 먹혔다. 지금의 세진을 형용하는 한 문장은, 어쩌면 수 많은 성질이 뭉친 특이성 덩어리.

[E등급 반사]

[E등급 파쇄]

[E-등급 신속]

[E등급 열화]

[추가 능력치: 근력+ 30 내구+ 25 민첩+ 10]

이 모든 영체화의 추가효과를 등에 업고, 온 몸에는 강도높은 강옥(鋼玉)무장으로 도배했으며, 손에는 마나 없이도 형형한 기운을 내뿜는 패악적인 강옥 메이스를 움켜쥐었다.

기분 좋은 템빨이었다.

대부분의 중하급 몬스터는 단단하게 제련된 강옥의 강도를 이겨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 메이스에 부가된 효과는 [F등급 흡수성장].

몬스터를 하나 하나 죽일 때 마다, 미약하게나마 무기의 성능이 성장한다. 피를 머금을수록, 또 살점이 들러붙을수록 더욱 흉악해져가는 메이스. 중하급 지대의 평범한 몬스터들은 고작 일격을 견뎌내기도 힘들어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정도 사냥에 열중했을까.

-끄에에엑!

세진이 멧돼지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 ‘위스라첸’을 사살 한 순간.

하나의 알림이 떠올랐다.

[조건 완료: 직접 만든 무기를 이용하여 100구 이상의 몬스터 처치]

▶액티브 스킬 ‘무기 초심자’를 습득하셨습니다. [등급 F]

- 무기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 이제 ‘무기 숙련도’가 해금됩니다. 무기 숙련도가 100%에 달하면 무기 숙련단계가 승급합니다. (초심자-중급자-숙련자-전문가-달인-명인)- 무기의 종류에 상관 없이 숙련도가 통일됩니다.

- 오크 폼일 때는 두 등급 상향되어 적용됩니다.

“···오.”

꽤 좋은 스킬을 얻었다. 세진은 뜻밖의 선물에 감사하며 사냥을 계속했다.

* * * *

다음날, 이른 오전.

김세진은 포션과 명함을 가지고 요선 알케미하우스로 향했다.

여기서 명함이란 ‘더 몬스터’라는 단체의 명함을 의미한다.

세진은 공무원들이 만들어준 명함을 쓰지 않고, 굳이 오크의 단조기술까지 이용해가며 꽤 있어 보이는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 얼마나 있어보이냐면, 순은을 재료로 ‘코팅’이라는 성질까지 부여했다.

이렇듯 왜 갑자기 자신이 단체놀음을 하는 건지, 사실 김세진 자신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는 몰랐다. 그저 어떠한 모임의 장(長)을 맡은 적이 이번이 처음이기에? 혹은 여태 혼자 살아왔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는 이 단체를 최대한 열심히 꾸려 나가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트릴로지’의 연대기를 본 이후로는 더더욱 그런 열성이 샘솟았다. 자신의 이 능력만 있으면, 어쩌면 트릴로지보다 더욱 대단한 단체를 만들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의어 소속감이란 걸 가져 본적이 없었던 어린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뭐야?’

김세진은 터덜터덜 알케미하우스로 걸어가다가, 별안간 사람들로 포화상태가 되어있는 앞문을 확인하곤 황급히 몸을 숨겼다.

“하암~”

“아,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네.”

“포션은 언제 또 나온답니까?”

“그걸 알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겠소?”

거의 진을 치다시피 서있는 저 사람들의 정체를, 세진은 잘 몰랐다. 그저 하젤린이 왜 ‘앞문 말고 뒷문으로 오세요’라고 말했는지 이해가 될 뿐 몸을 수그린 그는 알케미하우스의 뒷문으로 향했다. 잠입하듯 도착한 뒷문에는 간단한 지문인식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세진이 엄지를 대자 손쉽게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자 마자,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젤린의 여전한 미소가 세진을 반겼다.

“놀라셨죠?”

그리곤 바깥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예. 혹시 포션 때문인가요?”

“네. 요즘 고블린 시리즈 덕분에 저희 알케미하우스도 문전성시예요. 저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 기사단 아니면 사기업에서 파견한 직원들이고. 요즘은 선착순으로 판매하다 보니까 저렇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하젤린이 세진을 책임자실로 안내하며 즐겁다는 듯 떠들었다.

“근데 경매 같은 건 안하나요? 그때 고블린의 선의는 경매로 팔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 중하급이랑 중급은 그냥 다 상한가 수준으로 때려 박았어요. 저희 알케미하우스가 조금 좁은 편이라 매일매일 경매는 못해서. 근데 그래도 여전히 잘 팔려서, 잘만 하면 옆건물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세진씨 덕분이에요.”

하젤린이 씩씩하게 대답했고, 두 사람은 어느새 2층의 책임자실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녀는 문을 직접 열어 세진을 먼저 들여보냈다.

“커피 드릴까요?”

언제나 세진을 맞이할 때 하젤린이 꺼내는 첫마디.

“아뇨 괜찮아요.”

매번 거절하는데도, 하젤린은 커피를 권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아쉬운 눈초리로 오직 한 잔의 커피를 타고서, 총총총 다가와 세진의 앞자리에 앉았다.

“근데 오늘은 또 무슨일이에요?”

하젤린은 세진이 들고 온 가방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생선을 주시하는 고양이의 조심스런 눈빛이었다.

“일단 포션이요. 이번에는······ 좀 새로운 걸 한번 만들어 봤어요.”

“새로운 거요?”

“네.”

그는 가방속에서, 백색액체가 담긴 자그마한 유리병을 하나 꺼냈다. 이것은 세진이 기억속에 각인된 ‘정화마법’의 감각과 효능을 토대로 발명한 포션이다.

“이게 새로운 포션입니다.”

과연 약재 고블린의 두뇌는 꽤 대단했다.

마법을 경험하고, 만약 그것이 포션으로 재현할 수 있는 종류라면, 어떻게 해야 포션으로 그 마법과 비슷한 효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아주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리고 이 포션은 그 결과물이고.

어쩌면 하젤린 덕분이기도 했다. 그녀의 대단한 마법이 머릿속에 아주 강하게 각인된 덕에 이 포션을 만들 수 있었으니.

참고로 그 전에 왔던 청색등급 마법사는 지금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포션인데요?”

“’정화’요. 근데 아마 미흡할거예요. 그냥··· 그때 김요셉? 마법사보다도 효능이 떨어질 걸요. 아직 많이 부족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하젤린은 깜짝 놀랐다. 정화효과가 있는 포션은 여태 없었다.

즉, 세진은 포션을 ‘발명’했다는 뜻. 포션의 발명은 베테랑 연금술사가 몇 년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겨우겨우 일궈내는 하나의 진보적 성취나 다름이 없다.

“정화포션이요?”

“네.”

물론 사실 정화효과가 있는 포션이 발명되지 않은 이유는, 마법사가 똑같은 마법을 구사하는데 굳이 그런 포션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시간의 낭비. 냉정하게 말하자면, 차라리 정화효험이 있는 레시피를 개발하는 시간에, 다른 레시피가 공개된 포션을 제조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

“······좋네요.”

하지만 하젤린은 이것이 차마 시간의 낭비라고 일러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연금술사는 몹시 천재적이기에, 몇 년의 세월동안 이 포션에만 매달리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미 마법으로 있는 포션이라 한들 포션의 발명은 하나의 스펙이 되고, 또 팔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요즈음은 고블린 시리즈의 고정 수요층도 생겨서─김세진은 이른바 ‘네임드’가 되었다─ 이름에 고블린만 붙었다 하면 다 사재끼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것도 잘 팔아볼게요.”

하젤린은 포션들을 아주 감사히, 언제나처럼 황홀한 표정으로 품에 끌어안았다.

“아, 그리고 아직 하나 더 줄 게 있어요.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네? 뭔데요?”

일단 그렇게 운을 띄운 세진은 품 속을 뒤적이더니, 하젤린에게 명함을 다섯 장 정도 건넸다.

순은으로 만들고 성질부여로써 코팅한, 아마도 최고급 명함.

“명함입니다.”

“···예?”

하젤린은 네모 반듯한 순은 명함을 멍하니 받아 들고는, 꽤 귀여운 얼굴로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명함에는

[단체「더 몬스터」소속 창립단원 '셰나린']

이라는 검은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와.. 예쁘네요. 이거, 남 주기 아깝겠는데요?”

그 말에 세진이 피식 웃었다. 인터넷으로 한번알아 보니까, D-급 단체면 어차피 다른 곳에 명함도 못 내민다. ‘공식적’으로 활동한다고 인가를 받는 단체의 최소등급이 D-등급이었으니.

그래서 일부러 자신도 명함에 단체등급을 안 써놓지 않았던가.

“이거 완전 소속감 느껴지는데요? 왠지 더 열심히 해야할 거 같네.”

하젤린이 세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매가 여우처럼 휘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미소였다.

“하하···.”

“근데 물어보고 싶다는 건 뭐예요?”

“아 맞다.”

그녀의 물음에, 세진은 주머니에서 단체 명부를 꺼냈다.

“제가 ‘고블린 연금술사’도 이 단체에 넣고 싶은데······ 어떻게, 가능할까요? 셰나린과 하젤린처럼.”

“아~”

하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능하죠. 그냥 명부에 쓴 다음에 인터넷으로 하든 직접가서 하든 일단 제출하세요. 그러면 ‘본인확인기간’이라고 일주일 동안 유예를 주거든요? 그때 고블린 연금술사로서 서면과 증거물을 보내면 돼요. 요즘 단체에 익명요구는 흔하니까, 알아서 잘 해줄 거에요.”

“증거물은 포션이면 되나요?”

“제가 알아서 해 드릴게요 그건. 그냥 이 정화포션 내놓을 때, ‘고블린 연금술사’-단체 ‘더 몬스터’소속 이라고 써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 이외에 다른 절차가 만약이라도 필요하면 제가 해결할게요.”

아주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우며 아는 것도 많은 하젤린, 세진은 그녀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그 눈빛이 쑥스러운 듯 몸을 살짝 씩 꼬아대며, 교태 혹은 애교를 부렸다.

“고마워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네.”

김세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젤린과 악수를 하고서, 책임자실을 떠나려 했다.

“어, 근데 세진 씨. 키가 더 크셨네요?”

헌데 문득 들려온 하젤린의 목소리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키요?”

“네. 키 뿐만 아니라 체격이 전체적으로··· 그리고 얼굴도 살짝 변한 것 같네. 그 포션 효과가 아직도 지속되는 거에요?”

“······아닐텐데?”

“아뇨? 맞아요. 제 눈썰미는··· 확실한데?”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녀의 이상한 말에 살짝 당황한 세진은 일단 자신의 정보창을 띄워보았다.

[이름: 김세진] [나이: 만 22세] [키:181cm / 몸무게:86kg]

▶능력치 *인간형

[근력 83] [지구력 82] [민첩력 96][기력 34]

[마나친화력 20] [마력 19] [운 8]

‘..진짜네?’

키가 2cm가량 더 늘어 있었다. 몸무게도 불었고.

그는 왜 갑자기 키가 컸는지 살짝 고민했으나, 이내 능력치가 상승하였기 때문이라 단정을 지었다.

“아직 효과가 미미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뭐.. 더 크면 저야 좋죠.”

그래서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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