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태동 (2)
세진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에 ‘고블린 저주 치료법’을 검색해봤다.
방법은 두가지가 있었다. 버프마법을 주로 익힌 마법사에게 ‘정화’라는 마법의 세례를 받거나, 자연적으로 중화될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전자는 사흘이면 충분하지만 돈이 많이 들고, 후자는 최소 3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여보세요? 하젤린 씨?”
그래서 그는 일단 하젤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법사와 연금술사는 어느정도 연관이 있는 직종이라고 생각했기에.
-어, 세진 씨. 무슨 일이에요~?
다행히도 하젤린은 말꼬리를 늘리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아 그게, 제가······.”
세진은 방금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간략, 축소해서 설명했다. 중하급 지대에서 사냥을 하던 와중에, 길을 잃은 주술 고블린에게 저주가 걸려버렸다고.
-어머, 진짜요? 왜 하필 팔이······. 큰일났네. 근데 지금 제가 해외 출장때문에 공항에 와있거든요···? 어떻게 하지?
“혹시 다른 마법사 아시는 분 없으세요?”
-있긴 있죠. 근데 괜찮겠어요?
하젤린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대부분의 연금술사는 타인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기에.
그러나 세진에겐 그런 강박증이 없었다.
“네. 저는 괜찮아요.”
-아 그러면··· 세진 씨 집으로 후배 마법사 보내 줄게요.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세요. 아, 연금술사라고는 말 안할 테니까, 말 조심하시구요.
“네, 고마워요. 아 괜히 걱정했네. 처음부터 하젤린 씨한테 연락할 걸.”
-히힛. 괜찮을거에요. 그럼 기다리고 있으세요~하젤린의 살가운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끝났다. 생각과는 다르게 이 저주는 쉽게 일단락될 듯 했다.
저주도 해결 됐겠다, 세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지하실로 향했다. 우두머리 고블린을 죽임으로써 얻은 주술을 시범해보기 위해서였다.
넓은 지하실은 왼편과 오른편이 서로 다른 공방이었다.
왼편은 포션을 만들기 위한 도구와 약재, 마나석들이 즐비해 있는 ‘연금술 공방’이고, 오른편은 여러 금속이 보관되어있는 수납장과 소파, 그리고 여태 만든 무기를 보관해둔 진열장이 있는-물론 전혀 대장간같지 않지만-‘대장간’이다.
‘일단 영체화를 먼저.’
물체를 영체화하여 체내에 담아둘 수 있다는 ‘영체화’. 세진은 일단 그 주술을 시용(試用)해보기 위해, 서랍장에서 강철주괴를 하나 꺼내들었다.
주괴를 움켜쥔 채, 그는 눈을 감고 주술을 시전했다. 그러자 견고한 강철이 물처럼 흐물흐물해지더니, 이내 철색 기체로 산화하여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평범한 강철주괴의 영체가 스며들어, 몸이 단단해집니다. 「포화도 5/100」 (이는 다른 폼으로 전환하여도 유지됩니다.)]
? 내구 7 상승.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몸이 더욱 튼튼해졌다는 느낌은 확실히 존재한다.
역시, 문장을 두고 씨름하기보다 직접 부딪쳐보는 쪽이 이해가 쉬웠다.
‘포화도는 100이 넘어갈 때까지 물체를 담아둘 수 있다는 뜻이겠지’
납득한 세진은 다음 단계를 시도해봤다. 이번에는 유리 전시장에 진열 되어있는 무기들을 쓱 훑었다. 모두 자신이 만들었으나, 2차심사용으로 쓰기에는 아쉬움이 많아 꼬불쳐 뒀던 무기들.
그는 그 중에서도 ‘E등급 파쇄’라는 성질이 부여된 강철 메이스를 들었다. ‘쪼개짐면’이라는 성질을 조절한 이 메이스는 다른 무기를 파쇄하는 둔기로, 저보다 강도가 한 단계 이상 낮은 무기를 파괴할 수 있다.
‘영체화.’
영체화는 생각에 감응하여 발현되었고, 메이스는 영체로 산화하여 그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E등급 성질이 부여된 강철 메이스의 영체가 스며들어, 몸에 특수한 효과가 적용됩니다. 「포화도 50/100」]
? 근력, 내구 15 상승.
? F-등급 성질, ‘파쇄’가 온 몸에 적용됩니다.
“···오.”
김세진이 나지막한 감탄을 내질렀다. 확실히 이건 정말 유용하다. 이거면 이제 ‘인간 김세진’으로도 어느정도 이상의 무력을 갖추는 게 가능하다.
‘근데 마력 문신은···.’
다음 주술은 마력 문신. 설명만 들으면 아주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자기자신에게 타투를 하는 일이 아주 힘들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어쩌면 이것은 노골적으로 ‘타인’을 위한 주술. 그렇기에 우두머리 고블린과 퍽 잘 어울린다. 우두머리는 다른 고블린에게 포상으로써 이 마력 문신을 ‘하사’하는 역할이었을 테니.
-띵동
그래도 팔에 한번 문신을 새겨넣어 볼까, 생각하는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분명 하젤린이 보낸 마법사일 터. 그는 부랴부랴 계단을 올라갔다.
“누구세요?”
의례상의 질문을 던지자, 문 밖에서 -마법사입니다. 라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진은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법사 김요한입니다.”
청색 로브를 뒤집어 쓴 마법사였다. 마법사는 특이하게 로브의 색깔로 그 등급 구분이 가능한데, 청색은 C등급 마법사란 의미다. 참고로 등급은 A~F등급까지, 알파벳의 순번이 빠를수록 등급이 높다.
“네. 들어오세요.”
세진은 마법사를 거실의 침대로 안내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어색하니 말도 없이 소파에 걸터앉았다.
“바로 시작할까요?”
“예. 부탁드립니다.”
세진이 소매를 걷어 저주가 걸린 팔을 보여주자, 마법사는 순간 기함했다.
“허,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적어도 2주 이상은 꾸준히 정화를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 그렇습니까?”
“예. 그렇죠. 중하급 저주라길래 편안히 왔는데······.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저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곤 침묵. 마법사라는 남자는 멍하니 그 저주의 용태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저주가 아닌 팔 자체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15분이 흘렀다.
“······뭐하십니까?”
“···예? 아, 아. 죄송합니다. 이게.. 핏줄이 조금 이상하셔서······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그제서야 마법사는 제 손을 세진의 팔에 대고 영창을 외웠다.
그러자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대기의 마나가 그 손으로 모여들더니, 순백의 찬연한 빛을 이루었다. 따스함과 포근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빛. 세진은 눈을 감고 이 나른하리만치 기분 좋은 감각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알림이 떠올랐다.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쌩뚱맞은 알림이었다.
[조건 완료: 오크의 기쁨 ─ 평단, 매스컴, 대중의 인정.]
- 당신이 제조한 장비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포밍몬스터가 오크 전사에서 오크 재규어로 변화합니다.
- 포밍 능력치가 상향 조정됩니다.
“···와?”
“예?”
세진이 어리둥절하며 이유 모를 탄성을 지르자, 마법사가 되물었다.
“네?”
“예?”
“네?”
“예?”
“······”
별안간 벌어진 바보스러운 외마디 대화를 침묵으로 종식시키고서, 세진은 리모콘과 핸드폰을 동시에 집어 들었다.
“잠시 TV좀 켜봐도 될까요?”
“아, 예.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정화는 끝났어요.”
“벌써요?”
“네. 이 정화는 8시간동안 지속되며 저주와 싸울겁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져요. 그러나 그렇게 패배하면서 저주를 약화시키는거죠.”
“아하······.”
세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기다렸다. 그는 할 일이 끝난 마법사가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법사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새까만 TV화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
그래서 세진은 그냥 TV를 켰다. 채널은 08번. ‘대장장이 공모대회’가 방영되는 채널이다.
─‘ORK’, 혹은 ‘오크의 대장간 K’ 대장장이 님께서 만드신 ‘열화 강철제 사브레’가 평균평점 9.48로 2차 심사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프로그램은 끝나기 직전이었다.
─이 사브레는 특별한 마나 효과가 부가되어 그 등장부터 평단과 많은 기사들에게 관심을 받았는데요. 결국 2위 물품과 압도적인 차이로 끝이 났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요즘 제일 핫한 기사시죠? 유세정 씨의 마지막 마무리 멘트를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가 유세정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네. 아주 좋은 물건이었습니다. 디자인은 물론, 그 성능도 완벽했어요. 경도와 강도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그 ‘열화’라는 효과는 저도 난생 처음 볼 정도로 신선하고 또 대단했습니다.
세정은 그렇게 짧은 말을 내뱉고서 멀뚱멀뚱 진행자를 바라보았다.
─끝인가요?
─이 대장장이님의 다음 물품이 더욱 기대되는군요.
─네~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두 달 뒤에, 마지막 ‘최종 심사’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프로그램은 그걸로 끝이 났고, 세진은 핸드폰을 집어 들어 인터넷을 켰다.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자신이 만든 ‘열화 사브레’가 걸려있었다. 뉴스기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내 평단, 대장장이, 기사들은 물론, 해외언론까지 이 사브레를 열심히 소개하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절로 씨익 올라갔다.
─오늘 오전 9시 30분, 중국 베이징 일대에서 균열이 직경 500m정도로 아주 크게 벌어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사태발생 후 8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균열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과 대항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번 사건은 중국의 몬스터 대처능력이 여전히 미흡함을······
“···?”
헌데 갑작스런 뉴스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세진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마치 제집인 양 리모콘을 다루는 마법사가 있었다.
“···저기요.”
그가 기가막히다는 듯 묻자, 마법사는 그제서야 리모콘을 퍼뜩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아, 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다음부터는 다른 마법사님이 오실겁니다. 이 저주는··· 저로서는 조금 힘들 것 같아서요.”
“······네. 안녕히 가세요.”
세진은 마법사를 문 앞까지 배웅해주고서, 소파위로 돌아왔다.
─영상을 한번 보시죠.
그는 TV를 끄려 했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영상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한 마디로 환상적이었다. 수 많은 기사와 사냥꾼, 마법사의 합작. 기사의 검격이 대지를 가르고, 마법사의 파괴마법이 태풍처럼 몰아친다.
“······어?”
그리고 그 마법사의 중심에서, 세진은 아주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고위급 마법인 칼날폭풍과 낙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전장을 진두지휘하는,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
“하젤린?”
오직 하관만 보이지만, 저 갸름한 턱과 늘씬한 콧대, 확실하다. 여기서 중국 베이징까지, 마나 제트기면 10분이면 충분하니 시간대도 얼추 맞는다.
“······대단하네.”
그저 연금술사인줄로만 알았는데······ 그는 멍하니 그녀의 압도적인 무위를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