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32화 (32/174)

10. 태동 (1)

몬스터 필드의 중하급지대. 유세정과 김세진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

사냥을 시작한지 고작 한시간이 지났음에도, 확장주머니는 벌써부터 몬스터의 사체로 가득차기 직전이었다.

“아, 요즘 몬스터가 도심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많아졌대요.”

몬스터를 탐색하던 와중, 유세정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래?”

“네. 그래서 기사단이 진상조사를 나서는데, 아무래도 석연찮은 점이 꽤 많았나봐요. 모두 극비로 부쳐졌거든요.”

“흠. 이상하네. 아, 저기 또 흑색늑대 숨어있다.”

그가 수풀속을 가리키며 말했다. 흑색늑대라 하니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들었으나, 어쩔 수 없다. 약육강식의 섭리는 냉혹한 법.

“네. 갈게요.”

인간이 흑색늑대를 탐지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놀라웠지만, 이제 익숙해진 유세정은 태연히 대답하며 검에 마나를 그러모았다. 그녀가 움켜쥔 명검에 형형한 마나가 솟아오르다, 이내 정제된 칼날을 형성했다.

그녀의 마나는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서 그 농도, 빛깔 등등··· 모든 면이 확연히 눈에 띄게 성장해 있었다. 이 급격한 성장세에 대해, 세정은 자신도 특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말해주었다. 물론 그 특성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려했지만.

“하앗-!”

기합과 함께, 그녀가 지축을 박차고 도약했다. 목표는 수풀속에 숨어있는 흑색늑대.

-촤악

그녀의 깔끔한 횡베기가 수풀을 양단하고, 흑색늑대는 애처로운 단말마를 내뱉으며 즉사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잠시 애도를 표했다.

“풋. 뭐해요?”

흑색늑대의 사체를 확장주머니에 집어넣고서, 세정이 미소를 흘리며 다가왔다.

“아, 별거 아니야.”

그가 대충 얼버무렸다. 세정은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별안간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그만 가요.”

“음? 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저 내일 승급시험때문에 아덴에 가야해요.”

“아 그래?”

‘아덴’은 마천루가 즐비한 강원도에서도 특히 높이 솟은 하나의 ‘탑’을 일컫는다. 기사의 성지라 불리는 아덴은 기사들의 승급시험을 주관하고, 기사 생도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등 기사관련 행정, 교육업무를 수행한다.

“근데 아직 기사(技士)님 오시려면 시간 조금 남았는데, 그때까지 같이 커피나 마셔요.”

세정이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시간은 3시 30분. 아직 오후고, 어차피 이 이후에 따로 사냥을 나서려고 했으니 굳이 시간의 제약에 걸릴 건 없다.

“어. 좋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가요. 휴게소에 새로운 커피숍 생겼던데. 던 인 커피(Dawn in coffee)라고.”

“나는 아무대나 좋아. 그런 거 잘 모르거든.”

“네. 그럼 저만 따라오세요.”

두 사람은 발길을 되돌려 몬스터 휴게소로 향했다.

*

휴게소에 도착한 세진은 유세정에게 이끌려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계산과 주문은 세정의 몫이었다. 그녀는 능숙한 태도로 카운터에 주문을 넣고는, 김세진이 기다리는 탁자로 돌아왔다.

“언제 오신대?”

그가 묻자, 세정은 잠시 대답을 유보하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30분. 30분이요.”

그녀가 액정화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리곤 말이 없었다. 계속 혀로 입술을 축이는 게, 살짝 긴장을 한 모양새였다.

세정은 오늘부터 강원도, 기사의 성지 ‘아덴’에서 일주일동안 합숙을 시작한다. 승급시험을 위해서였다. 물론 고작 18세의 나이로 중급기사로 승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지만, 훗날 있을 승급을 위해서라도 승급시험에는 꾸준히 참가해야만 한다.

“음.. 긴장돼?”

그가 묻자, 세정은 그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신속한 반응은 오히려 그녀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 되었다.

“아뇨. 전혀요. 어차피 기대도 안해요. 실적도 그렇고, 실력도 그렇고. 아직 중급기사까지는 한창 멀었으니까요.”

“···그래?”

그러나 실제로 세정이 처음에 보였던 긴장증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들었다.

이렇듯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커피도 마시며, 그녀는 점차 제 마음이 진정되어 감을 느꼈다.

“세진 씨한테는··· 참 좋은 냄새가 나요.”

그렇게 약 20분이 흐르고. 어느새 커피도 식어버린 탁자 위에서 할 말이 없어진 세진이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기만 하자, 별안간 유세정이 스치듯 말했다.

“그래? 근데 나 향수 안써.”

“알아요. 이런 향수, 들어 보지도 못했으니까.”

세정은 그를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이 향기가 되게 신기해요. 같이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돼요. 솔직히, 저 방금 전까지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자꾸 세진 씨 냄새를 맡다보면······”

세정은 말을 잠시 멈추고서는 조심스레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맡는 행위에도 품격이란 게 존재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녀는 단아하고 조신했다.

“막 마음이 차분해지고 그러네요. 세진 씨는 모르셨죠? 원래 자기 냄새는 자기가 모르잖아요.”

“아··· 그래? 어. 나는 몰랐지.”

사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것은 특성으로 말미암은 ‘패시브 스킬’때문. 늑대의 향기는 이성에게 특별한 효과를 일으킨다고 했다. 필시 그녀는 지금 그 효과에 노출된 것이리라.

“근데 그게 또 희미해서, 지금처럼 밀폐된 공간이 아니면 맡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숲에서는. 피비린내랑 몬스터의 단내가 더 심해서.”

“그래서 일부러 여기로 오자고 한거야?”

“······넵. 그런 점도 없지않아 있죠.”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을 때, 별안간 탁자 위에 올려진 핸드폰이 위잉-하며 울었다.

“아, 오셨나 봐요. 저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유세정이 먼저 몸을 일으켰고, 세진도 따라서 일어났다.

“응. 열심히 하고.”

“네. 고마워요. 근데······ 나중에, 이런 일 필요할 때 종종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녀의 귀여운 부탁에,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알림이 울렸다.

▶’늑대의 향기’의 등급이 C-에서 C로 상승했습니다.

- 늑대의 내음. 상대의 성별과 종족, 취향과 특질에 따라 각기 다른 긍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 이 스킬은 인간형일때도 적용됩니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그··· 따라오지는 마세요. 아버지도······ 오셨거든요.”

유세정이 살짝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러나 세진은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만 배웅한 후, 몸을 돌려 다시금 몬스터 필드로 향했다.

본격적인 사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김세진의 특성은 꾸준히 성장했다. 중급지대를 부지런히 배회하며 사냥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포션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수의 마나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어삼켰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진화’였다. 진화의 실마리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았었다.

‘..주술(呪術) 고블린.’

늑대야수 폼을 취한 김세진, 그는 몸을 수그린 채 저 멀리 보이는 고블린 부락을 관찰했다. 우연히 발견한, 산등성이에 진을 친 생김새의 부락. 저 부락의 고블린이 어떤 종류인지 파악하기는 쉬웠다. 그들이 들고있는 솟대같은 막대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주술을 부리는 고블린, 일명 ‘주술 고블린’이다.

작은 몸집과 미약한 무력, 그러나 그 유약한 외견과는 달리 놈들의 악명은 하늘을 들끓는다.

그것은 비단 놈들이 온갖 해괴한 주술을 행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놈들의 흉험한 저주를 감내하고서 부락을 모두 정벌한다 하더라도 전리품은 전무. 혹시 포션을 습득 할 가능성이라도 있는 약재 고블린에 비해서도 최악,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결코 없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몬스터의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는 자들에게만 유효한 잣대일 뿐.

‘그때, 고블린을 죽여서 진화를 했었지.’

사실 고블린은 진화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순간적으로 지식을 습득한다는 의미인 ‘깨우침’이 더욱 알맞으리라.

-꿀꺽.

세진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주술 고블린. 지금의 그로서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물론 일 대 일이라면 간단하지만, 언제나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엘리트, 혹은 그 이상을 죽여야 한다.’

평범한 고블린으로는 안 된다. 그때처럼 온 몸에 문신이 덧대어져 있는 ‘엘리트 고블린’이 필요하다.

그는 늑대의 동공으로 저 부락을 더욱 멀리, 깊게 응시했다.

한정되었던 시야가 점차 확대되었다. 한계를 모르고 끝없이 뻗어 나가던 시계(視界)는 곧 하나의 고블린을 포착해냈다.

부락의 가장 깊은 곳, 이상한 의식을 벌이고 있는 유별난 고블린. 머리에 쓴 추장의 탈과 온 몸에 덕지덕지 그려져 있는 문신.

저놈이다.

야수의 심장에서부터 번져나온 늑대의 흉포한 투쟁심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떻게 저 고블린을 죽여야 할까. 방법은 간단했다.

이 산등성이를 횡단하여 우두머리 고블린만을 물어 죽이고 도주한다.

지금 여기에서 부락의 가장 끄트머리까지, 야수의 각력으로는 10초면 충분.

그러나,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블린의 주술은 아주 빠르게 시전된다. 놈들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한 신속이 필요하다.

그는 야수의 팔목에 매달려 있는 작은 주머니안에서 포션을 꺼냈다. 신체를 잠시나마 강맹하게 만들어주는 중하급 포션 ‘고블린의 용기’. 야수의 손에 비해 먼지처럼 작은 그것은 뚜껑을 열기도 힘들어, 그냥 병째로 집어삼켰다.

포션의 효능은 빨랐다. 근육이 비대해지고 몸이 뜨거워졌다.

세진은 몸을 반쯤 수그린, 전력질주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아직 하나의 도핑이 더 남아있다.

[‘역전의 전사’가 적용되었습니다. 능력치가 상향조정됩니다.]

역전의 전사는 내구와 근력, 그리고 무통에 도움을 주는 스킬, 속력과는 그렇게 깊은 관계가 있지 않다. 그러나 세진은 내구와 무통의 도움이 필요했다.

늑대, 야수의 심장은 몸을 순환하는 혈액을 조절할 수 있다. 그 혈류를 순간적으로 급가속한다면 잠시나마 한계 이상의 각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크으으···.”

체내의 혈액이 들끓듯이 분류(奔流)한다. 몸이 터질 듯 뜨거워진 속에서, 세진은 자신의 체감시간이 늘려진 듯한 묘한 감각을 느꼈다.

바람의 흐름이, 그 바람에 의해 수풀이 쏴아아- 진동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준비는 이걸로 끝이다.

그 즉시. 그는 노면을 세차게 박찼다.

그리고, 세계가 어그러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속도의 압력에 사방의 공기가 뭉개지듯 짓눌리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 때 마다 노면이 거칠게 패였다. 그렇게 어느정도 가속력이 붙을 즈음 ‘선풍의 질주’를 사용한다.

쾌속을 넘은 신속.

잔상조차도 남기지 않는 야수는 지상에서 내린 벼락이었다.

“─!”

시간으로 따지자면 2초도 채 지나지 않았을 찰나의 순간, 김세진은 우두머리 고블린의 앞에 당도했다. 고블린의 표정이 변하기 보다 먼저, 늑대의 흉험한 이빨이 놈의 모가지로 향한다─

콰직-

그는 놈의 목덜미를 깨문 채, 다시금 달렸다. 굳이 시간을 지체하여 저주에 걸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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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료 : 고블린의 전통, 기억전이]

-  주술 고블린(우두머리)의 피를 섭취하셨습니다. 이제 ‘우두머리 고블린의 주술’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가능 주술은 ‘마력’수치에 따라 다릅니다.)▶’영체화’ [숙련등급 F]

- 물체를 영체화하여 체내에 담아둘 수 있습니다.

- 영체화하여 스며든 물체는 본래 속성의 30%에 해당하는 능력을 신체에 부여합니다.

▶’속박의 저주’ [숙련등급 F]

- 체내의 혈액을 소모하여 상대방을 속박합니다.

▶’마력 문신’ [숙련등급 F]

- 포션, 타인의 혈액, 마나원액을 이용하여 자신 혹은 타인의 몸에 ‘마력 문신’을 새길 수 있습니다.

- 마력 문신은 그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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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이 떠올랐다. 김세진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영체화’. 참 좋은 스킬을 하나 얻었다. 아니, 주술인가?

어찌되었든 만족스럽다. 물체를 영체화 하여 체내에 담아 그 속성의 일부를 부여 받는다는 것은, 즉 자신이 만들 장비를 또 다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

게다가 ‘마력 문신’또한 활용방안이 무궁무진하다.

“···크르르.”

인적이 드문 개울가에 도착한 세진은 일단 고블린의 사체를 내려두고서, 혹시라도 있을 전리품을 탐색하려 했다.

헌데. 왼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

그는 어리둥절하며 제 왼팔을 바라보았다.

그 팔에서는 검은색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주’였다.

‘···아 시발.’

빌어먹을 고블린들이 그 짧은 시간에 저주를 걸었구나.

“크아아아아─!”

수 많은 기사와 사냥꾼들이 주술 고블린을 기피하는 이유를, 그는 오늘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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