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30화 (30/174)

09. 일상의 변화 (2)

가장 먼저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렇듯 쉽게 파헤쳐진 것 만 보아도 알 수 있듯, 김세진의 신상은 그렇게 값비싸지 않다. 그러나 하젤린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친목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세진은 그녀에게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었으니.

물론 애초에 다크엘프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극히 싫어하고 신뢰를 중요시해 비밀을 떠벌리거나 하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연금술사가 사냥꾼일을 부업으로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조금 찜찜했다.

“······신기하긴 하네.”

그러나 여하간 나머지가 어찌되었든, 대한민국 최고의 포털사이트인 네이버(Neighbor)에 자신의 사진과 이름, 직업까지 적힌 것은 꽤 신기했다. 이거 옆모습의 턱선이 조금 치명적이게 나온 것 같기도 하고······.

‘고작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중급 사냥꾼으로 승급한 김세진은 [천부적인]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은, 사냥꾼들도 인정한 최고의 유망주 중 한명이다.’

기자들은 참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도대체 누가 최고의 유망주라고 인정했는지는 도통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런 루머들은 보는 것 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 기사에 적힌 댓글, 대중들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로 흥미로웠다.

─얼굴도 깔끔하고, 몸도 좋고. 키도 적당하니 유세정이랑 둘이 잘 어울리던데. [추천 983][반대 482]

ㄴ어울리긴 개뿔이. 평범한 사냥꾼이랑 반물질 수저랑 연애가 가능하긴 하겠냐?

ㄴ나도 동감. 새벽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우리나라 수위를 다투는 기업인데. 그리고 유세정 고등학교 2학년임;

ㄴ근데 유세정 키 몇임?

ㄴ직접 봤는데 159~160 사이. 근데 164라고 악쓰는거 보면 키가 콤플렉스인 듯.

ㄴㅋㅋ 그거 귀여웠지. 164라구욧!! 159 아니라고요!!

물론 모두 좋은 감정만 담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밤 김세진은 댓글과 기사를 보느라 거의 하루를 꼬박 지새웠다.

* * *

다음날 오후. 세진은 하젤린을 만나기 위해 ‘요선 알케미하우스’로 찾아갔다. 무리한 부탁도 있으니, 여태 만든 포션 9개를 싸 들고서.

하젤린과 만난 세진은 일단 포션을 모두 넘겨 주고서, 그녀의 얼굴이 황홀함과 행복함으로 물들어 갈 때 즈음 본론을 꺼냈다.

“절반은··· 천천히 갚으면 안 될까요. 제가 수중에 돈이 없어서···.”

하젤린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통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신과 함께 일을 오래오래 할 연금술사가 곤궁하면 안된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그 즉시 여태 쌓인 포션대금 48억의 절반 가까이인 20억을 이체해주었다.

정말 멋진 여자라고, 세진은 생각했다.

[설득에 성공하셨습니다! 듣기 좋은 목소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별안간 떠오른 보너스에 세진이 만족하고 있을 때, 하젤린이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그 예능프로그램은 어떻게 된 거에요? 깜짝 놀랐어요 저. 세진 씨가 사냥꾼이라니. 새벽의 손녀딸과도 친하시던데.”

“아··· 그거요? 부업이에요. 골방에 틀어박혀서 포션만 만들기에는 좀이 쑤시고 해서, 스트레스도 풀 겸 하다가 어쩌다보니 세정 씨도 만나고··· 그렇게 됐네요.”

“정말요? 되게 신기하네요. 근데 뭐, 부업은 뭘 하시든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유세정은······ 크음.”

다행히 하젤린은 그리 깊은 의문을 표하진 않았다.

김세진을 알고있는 그녀로서는 사실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반신불수가 된 유세정은 포션을 도움을 얻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고, 그 포션을 만든 연금술사가 바로 김세진이니까.

‘새벽이 벌써 연금술사님이랑 접촉을 했나?’

그래서 그녀는 이런 추측을 하며, 세정과 세진이 친해진 이유 또한 저가 알아서 납득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누가 뭐래도 새벽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니, 마음만 먹으면 찾아내지 못할 사람은 없다.

“아 맞다. 연금술사님. 저희 법률상 개인 대 개인 거래는 안되고, 무조건 알케미하우스를 거쳐야 하는 거 아시죠? 거래요청 들어오시면 꼭 저한테 먼저 알려주셔야 해요.”

하젤린은 세진의 입장에선 뚱딴지같은 신신당부를 했다.

“예? 아.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

김세진은 하젤린에게서 받은 돈으로 강원도 몬스터필드 근처의 단독주택을 구매했다. 집값은 총 19억, 통장잔고가 한번에 훅 빠지는 걸 보니 제 마음이 쓰렸다.

주택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단 지상층은 거주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했고, 지하층은 연금술과 대장장이일을 위한 공방으로 만들기로 했다.

남은 1억으로는 가구를 여러 개 샀다. 침대나 소파같은 일반적인 가구는 물론, 약재를 보관하고 포션을 만들 제조대와, 여러 금속주괴를 수납할 만한 수납장까지. 그렇게 기대에 부풀어 물건을 잔뜩 샀는데, 입주까지는 여전히 일주일은 남아 있었다. 집을 구매하는것과 입주를 하는 날짜가 완전히 어긋날 수도 있다는 걸 세진은 뼈저리게 알았다.

그렇게 해서 남은 돈은 3백만원.

지금, 김세진은 여전히 동굴에 있다.

그는 어둡고 음습한 동굴에서 1주뒤가 마감인 ‘대장장이 공모대회’ 2차 심사를 위한 물건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여유가 생기면 하고싶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열정이 더욱 솟았다. 매스컴과 대중의 반응은 마약과도 같았다. 더 큰 찬사를 듣고 싶었다. 내 물건을 보고, 사람들이 더욱 열광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열정은 단조기술의 진가를 찾아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오크의 단조기술이 지닌 진정한 값어치, 최고의 가능성.

그것은 바로 ‘성질부여’였다.

말 그대로 특정한 성질을 부여하는 것. 처음에는 그저 무식한 오크처럼 일차원적으로 ‘날카로움’ ‘단단함’ 이딴 성질만 생각했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휜다, 흐른다, 타오른다, 밀도, 녹는점, 끓는점, 전도율, 열전도율, 점성도, 쪼개짐면, 물질의 색과 빛의 흡수 스펙트럼, 자기적 성질 등등······ 수 많은 물리적 성질들. 오크의 단조기술은 숙련등급에 따라 이 수 많은 성질을 적절히 취합하여 부여할 수 있었다.

검신이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뱀처럼 휘어져서 적을 공격하는 기이한 무기 ‘사복검(蛇腹劍)’, 빛의 굴절을 조절하여 사람의 눈에 그 형체가 보이지 않게 되는 ‘투명망토’ 등등··· 이 단조기술로 만들 수 있는 장비는 무궁무진했다.

물론 인간이 만든 무기중에서도 이런 성질이 조정된 무기는 심심치 않게 있으나, 그것들은 모두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 그러나 오크는, 김세진은 그 모든 성질을 임의적으로 취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숙련등급’이라는 제약이 너무 커 갈 길이 멀다. 오크 전사는 진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마나석을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마나량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단조가 완료되었습니다.]

[강도 단계: D]

[성질이 부여되었습니다: ‘D등급 발화’]

[완성도는 탁월하나, 오크 전사의 숙련등급은 D단계가 한계이기에 성장하지 않습니다.]

‘······이게 최선이네.’

그가 지금 단조해낸 무기는 ‘사브르’. 늘씬하게 쭉 뻗은 잿빛 검신과, 검면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이 귀족의 우아한 자태를 연상시킨다.

이 무기에 부여된 D등급 성질의 효과는 이름상 ‘발화’라고 되어있지만, 실제로 검에 불이 붙거나 하지는 않는다. 기사가 이 무기에 마나를 불어넣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이 검은 ‘초고열’의 성질을 띄게 된다. 즉, 본래 마나의 절삭력에 용광로의 ‘용융력’이 더해지는 것이다.

“히야.”

매일 오전, 거진 수십번의 시도 끝에 만들어낸, 드디어 마음에 드는 완성품.

머리가 어질했다. 그는 그 즉시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날 밤, 김세진은 매스컴에게 찬사를 받는 꿈을 꿨다.

* * * *

맑은 오후. 꿈에도 그리던 집에 드디어 입주하게 되는 날. 세진은 이삿짐 직원들과 함께 한창 가구를 들여놓는 중이었다.

우웅-

그러던 중 뒷주머니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부르르 울렸다.

「오늘 오후 두 시에 사냥 가요」

유세정한테 온 문자였다.

그녀와는 TV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로도 3주 동안 총 다섯 번 정도 같이 페어를 이뤄서 사냥을 했는데, 그때마다 온 사방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심지어 도촬을 해서 지 SNS에 올린 사냥꾼도 있었을 정도로.

그러나 세정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찍던 말던 보던 말던, 그녀는 사냥에 열중했고 스스럼 없이 세진을 대했다.

「오늘은 안돼. 이사중.」

그리고 세진은 어떻게든 반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사냥하는 날부터 좀 더 친해지고 싶어 반말을 슬금슬금 쓰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의 유세정은 기분 나쁘다는 티를 무안할 정도로 팍팍 냈다. 일부러 퉁명스레 틱틱대기를 반복. 처음에 적당히 간만 보려했던 세진은 그것에 오기가 생겨 끝까지 반말을 썼다. 사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4살이나 많은데.

결국 그 날 사냥은 두시간이 아닌 한시간 만에 끝났지만, 아니 유세정이 잔뜩 삐쳐서 아무 말도 없이 먼저 집으로 돌아가버렸지만, 그래도 정확히 일주일 후에 다시 연락이 왔다.

인간관계는 으레 그렇듯, 아쉬운 놈이 먼저 다가오는 법이다.

다시 만난 이후로, 유세정은 세진이 반말을 써도 꾹 참고 참았다. 그러다 요즈음은 어느정도는 익숙해진 듯 반말을 써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처음에는 영영 안 볼 생각이었는데, 다른 사냥꾼이랑 같이 사냥을 하는 게 너무 답답해져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말에, 세진은 자신의 능력에 괜한 자부심을 느꼈었다.

「왜죠.」

「좀 오래걸려」

「그럼 안 되는데. 나 이번 주는 오늘밖에 시간 없는데.」

「다음주에 하면 되지. 일단 오늘은 안돼」

이 문자대화에서 갑을관계는 명확했고, 세정은 삐쳤는지 이 이후로 메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세진은 별 관심도 없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을 계속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알아서 먼저 연락을 해올 터. 이것은 비정상적으로 유능한 사냥꾼에게 길들여진 기사의 어쩔 수 없는 말로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 4시.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고작 한 시간 남짓 남았을 때, 가구를 들여놓는 일이 모두 끝나게 되었다.

안락한 마이홈. 비록 빚내서 구한 집이지만, 김세진은 감격에 차서 이 넓은 집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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