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용병 라이칸 (3)
진한 어둠이 안개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밤.
남자, 김지한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골목길을 거닐었다
“3일 전에 한명 더 살해당했어요. 네, 총 두명. 아니 저도 모릅니다. 경찰도 모르는 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네. 두 건 다 보복살인이에요. 죽이기만 하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으니 보복살인이죠. 네, 아니. 누군지는 모른다고 방금 말씀드렸잖습니까. 감도 안 잡혀요. 그래서 일단 용병 놈들 뒤져보고 있어요. 결과는 나중에······.”
문득 김지한이 말을 멈췄다. 골목길의 끝에 서 있는 남자가 그 이유였다. 뒤를 돌아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큰 키와 다부진 체격만으로도 그가 남자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파악해낼 수 있었다.
“···잠시만요. 끊지 마세요.”
지한은 핸드폰을 한 손에 쥐고서,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불현듯 묘한 불길함이 뇌리를 스쳤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면 안될 것 같았다. 흡혈귀로서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어. 이제 가야지.”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였는지, 남성은 핸드폰에 한마디를 툭 내뱉고는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지한이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한 순간, 위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덮치듯 내려앉았다. 단말마를 내지를 틈도 없었다. 흉악한 이빨이 목을 물어뜯고, 짐승의 우악스러운 손이 팔을 찢어냈다.
뱀파이어의 피는 차가웠다. 냉수로 샤워하는 듯한 차가운 청량감이 온 몸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많은 알림이 울렸다.
▶패시브스킬 ‘야수의 육체’ 의 숙련등급이 F에서 D등급으로 승급합니다.
▶패시브스킬 ‘고강도 늑대의 손톱’의 숙련등급이 F에서 D등급으로 승급합니다.
▶패시브스킬 ‘포식자’의 숙련등급이 F에서 D등급으로 승급합니다.
▶패시브스킬 ‘늑대의 향기’의 숙련등급이 D에서 -C등급으로 승급합니다.
-어이. 어이!
그 기분좋은 레벨업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도중, 노면에 떨어진 핸드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김세진은 그것을 사뿐히 즈려밟았다.
*
바로 다음 날. 세진은 유세정과 만나기 위해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 날 이후 서로 일이 많아 미루고 미루다 꼬박 2주 만의 만남이었다.
강원도 시내에서도 가장 비싸고 고급진 커피숍에서, 유세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 쪽 구석에 혼자서 핸드폰을 보며 앉아있었다. 여고생 특유의 어린 티는 아직 여전했으나, 그녀에게서는 그것보다 더욱 고급스러운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세진은 조심스레 세정에게 다가가, 그 앞에 앉았다. 순간 주변의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다.
“···아 오셨어요? 오랜만이에요.”
유세정은 태연하게 말하며 보던 영상을 껐다.
“뭐 보고 있었어요?”
“뉴스요. 어제 또 뱀파이어 살해사건이 발생했더라구요. 이게 벌써 3명 째라던데요.”
순간 세진의 심장이 살짝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서,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봤어요. 근데 그건··· 뭡니까?”
굳이 그 얘기를 이어나가면서 스스로 고통받기는 싫었기에, 세진은 그녀의 옆자리에 놓여진 직사각형의 박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거요? 보시면 아시려나···?”
세정이 왠지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박스를 탁자 위로 올렸다. 그리곤 입가를 씰룩이며 짜자잔- 그 박스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어?”
김세진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반응을 보아하니, 저 나온 프로그램 보셨나봐요? ’마나가 잘 스며드는 철제 단검’. 그게 이거예요.”
세정이 자부심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마치 나 이런 여자야- 라고, 표정으로 자랑하고 있는 듯 하다.
“..이거, 어떻게 얻으신 거에요?”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했다. 분명히 이건 자신이 만든 물건. 허나 지금 자신의 허락도 없이 타인의 손에 들어가 있다. 분명 공모대회의 물품처분은 주최측이 알아서 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저희 기사단이 공모대회 최대 후원사라서 각 심사마다 하나의 물품을 선점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재빨리 업어왔죠.”
“···그래요? 그럼 이거 만드신 분하고 연락도 하셨나요?”
세정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꼭 그러고 싶었는데, 이분이 특이하게 우편으로만 연락을 받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 주소도 집주소가 아니라 강원도에 위치한 우체국이라··· 일단 편지를 보내놓긴 했는데, 답장이 아직까지도 없는 걸 보면··· 못 받으셨겠죠.”
“아하.”
듣고 보니 모두 자신의 기억력 탓이었다.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근데, 세정 씨한테도 그게 필요가 있나요? 더 좋은 무기가 있으신 걸로 아는데.”
“네. 그렇긴 하죠. 근데 이건 조금 많이 특이해요. 보통 검신이 짧은 무기는 마나 담금질이 잘 안돼서 마나가 잘 안 스미는데, 이건 달라요.”
세정은 그렇게 말하며 단검을 쥐고, 마나를 흘려 보냈다. 스릉- 하는 섬찟한 소리와 함께 그 검신에서 마나의 날이 번뜩 솟아올랐다.
“어때요. 신기하죠? 이 정도면, 충분히 보조무기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제가 샀어요.”
“아하······ 정말 잘 사셨네요. 이런 물건 흔치 않은데.”
선물로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만족스러워하는 세정의 모습이 귀여워, 세진은 제 얼굴에 금칠 한번 해봤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검신에 새겨진 문양도 아주 섬세해서··· 공예품이라고 봐도 될 지경이라니까요. 심지어 저희 아빠도 탐내더라고요.”
세정은 마나를 갈무리하고서 단검을 고급스러운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는 괜히 뿌듯하여 그 상자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고급상자에 담겨져 있다는 건, 자신의 물건이 그만큼 고급이라는 의미가 되니까.
“······”
그러나 세정은 그 시선을 잘못 이해했는지, 후다닥- 상자를 잽싸게 집어 제 가방 안으로 쑤셔넣었다. 상당히 급한 손놀림이었다.
세진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몸을 흠칫 떨며 그 시선을 피했다.
“······달라고 할까봐 그래요?”
“···!”
정곡을 찔렀나 보다. 세정의 얼굴이 눈에 띄게 경직되고, 낭패로 물들었다. 마치 괜히 자랑했다- 싶은 표정, 그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 정말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원······하신다면. 못 드릴 것도 없죠. 제, 제 생명의 은인이시니까요. 당연히 드려야지··· 원하시면···”
그녀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다시금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뒤적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 잡혀나오는 건 단검이 든 상자가 아닌 화장품, 지갑, 책, 금괴.. 금괴? 중간에 뭔가 어마어마한 물건이 튀어나오긴 했지만, 모두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한 수작이었다.
“..괜찮아요. 저는 그런 무기 못써요. 마나를 못 다루니까.”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세진의 말이 튀어나온 그 즉시. 세정은 정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고서, 탁자 위에 올려진 물건들을 가방 안으로 쑤셔 넣었다.
“근데, 저희 왜 만난거죠?”
문득 그 원론적인 목적이 궁금해진 세진이 묻자, 세정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사냥, 사냥 같이 하자고 제가 제안했었죠. 죄송해요. 내일 모레에 제가 사냥스케쥴이 있거든요. 세진 씨가 저랑 같이 가줬으면 해요.”
“아··· 그게 시간에 따라 다른데··· 몇시간 정도 걸릴까요?”
자신이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너무 오래면 곤란하다.
“한 2시간 정도. 저도 그 다음 스케쥴이 있어서, 오래는 같이 못 있어요.”
“음··· 그럼 좋아요.”
김세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건넸다.
두 시간. 돈을 주고서라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유세정이다. 그런 그녀에게 두 시간쯤이야 가볍게 투자할 수 있다.
“그럼 그때 봬요.”
세정이 그와 악수를 한 순간, 커피숍의 바로 앞에 검은 차가 한대 와서 섰다.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 데려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저는 혼자 가면 돼요.”
“네, 그러면 저 먼저 갈게요.”
세정은 또각또각, 그러나 뒤뚱뒤뚱 걸어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그녀는 하이힐에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그 여고생다운 모습에 세진은 엷은 미소를 짓고는, 따로 커피숍을 나섰다.
*
세정과 헤어진 세진은 그때 그 가로등 앞에 멈췄다. 이번에도 한 장의 전단지가 놓여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주택분양 전단지, 하지만 풍겨져 나오는 진한 피비린내는 이것이 ‘정보’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원도 횡성 성광아파트 입주 임박! 전화번호 05-01-0239-4039’
위치는 횡성의 성광아파트. 그리고 난이도는······ 05. 바로 어제 죽인 뱀파이어가 02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보다 2.5배정도 어려운 수준.
“···흠.”
세진은 살짝 고민했다. 몬스터 사냥과 마나석 흡수를 통해 어느정도 강해지고 있다 한들······
그렇게 김세진이 고심하고 있을 때. 빌딩에 걸려있던 옥외광고 OLED판에서 긴급속보가 흘러나왔다.
─어제 밤 발생한 3번째 뱀파이어 연쇄살해사건에 관한 특수경찰국의 공식발표가 있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특수경찰국(特殊警察局)의 국장 유백송입니다.
경찰국의 국장은 김세진도 익히 알고 있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흰색의 긴 머리, 날카롭고도 우아하게 찢어진 두 눈, 결연한 의지가 깊게 배어있는 입술. 겉보기에는 그저 아름다울 뿐인 저 여인은, 대한민국 유일 신수(神獸)과 수인. 백호 ‘유백송’이다.
개인의 무력이 웬만한 고위기사보다도 강력하다는 자타공인 핏줄의 정점.
─척살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오직 피와 증오만을 남긴 채 처절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저희 특수경찰국에은 그런 과오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앞서 발생한 세 건의 뱀파이어 살해 사건을 동일 인물이 일으킨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할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백송이 직접 TV에 나와 저런 말을 하니, 김세진도 순간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공개수사의 일환으로, 유력한 용의자의 신분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라이칸'이라는 예명을 사용한 것 부터 뱀파이어에게 의심을 받을 각오를 한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래도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유력 용의자는 ‘라이칸’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는 최고등급 A등급 용병으로 종족은 인간, 약 20년전부터 활동해온 임무 성공률 100%의, 베테랑 중에 베테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음지에서만 활동해 아는 사람이 극히 적은 이 용병은 ‘전설적인’이라는 칭호까지 부여 받을 정도로······
최고등급, 성공률 100%, 베테랑, 전설적인 등등······ 말도 안되는 단어가 섞인 발표를 들으며, 김세진은 왜 그때 선술집의 주인장이 신분노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용병의 체계는 벌써 오래전에 무너졌다. 그러니 주인장이 대충 슥슥하면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이 거짓이라 증명할 용병도 없다. 아는 사람이 극히 적다고 주인장이 먼저 선수를 쳐놨기도 했지만, 그 단락이 없더라도 용병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여서 다른 용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 이외의 알려진 사항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현재 과거 20년 전, 혹시라도 ‘라이칸’이라는 용병과 함께 일을 하셨던 분들의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시민, 혹은 과거 용병······
‘그래도 잠시동안은 숨죽이고 있어야지.’
거짓된 단서는 진실을 더욱 철저히 가리는 베일이 되지만, 그래도 유백송의 존재가 꽤나 압박이었다. 늑대와 호랑이는 전형적인 피식-포식 관계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늑대는 호랑이까지도 잡아먹을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유백송은 평범한 호랑이가 아니다. 신수, 그 중에서도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