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26화 (26/174)

08. 용병 라이칸 (1)

몬스터 필드의 동굴에서 임시거주중인 김세진은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시내로 마실가려 했다. 여기서 정상적인 루트란, 세진이 흑색늑대폼일 때 그러했던 것처럼 철조망과 산을 넘는 것이 아닌, 원래 '인간' 김세진으로 몬스터 필드의 정식적인 출입구를 거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정식루트를 이용하려면, 필연적으로 ‘안식처’라는 거대한 휴게소를 지나쳐야 했다. 서울역 대합실만한 크기의 이 휴게소에는 사냥꾼 혹은 기사들이 곧 있을 사냥을 대비해 마지막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어?”

그곳에서, 김세진은 방금 전 TV에서본 여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유세정.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말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중요한 사냥을 위해서 저렇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나, 생각하는 찰나에 별안간 카메라와 스태프가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저희는 호위기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편안히 평소처럼 사냥을 하시면 돼요. 그 자연스러운 그림을 원하는거니까. 요즘 몬스터 강습때문에 기사단 여론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 여론을 이 예능으로 단번에 역전! 하는 겁니다. 파일럿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큐가 아니라 예능인걸 꼭! 명심해 주세요. 그리고······유세정 기사님?”

“예?”

“그··· 아무래도 세정님이 얼굴마담이시다 보니까, 가장 많이 화면에 비춰지게 되실 거에요. 차가운 모습도 좋지만, 아주 좋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씩은 미소를 지어주세요. 그게 좋거든요. 하루 죙일 차가우면 미운털 박혀요. 근데 그렇게 있다가도 갑자기 한번이라도 화사하게 웃으면 완전 호감되거든요. 겉은 차갑지만 사실은 따뜻하다··· 뭐 이런느낌?”

“아······.”

유세정은 약간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고개는 까딱 끄덕였다.

‘방송 촬영이었나보네.’

아무래도 팀장이라 생각했던 남자가 사실은 PD인 듯 했다. 김세진은 한 5분동안 그들을 바라보다가 출구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저, 저기요! 잠깐만요!”

*

유세정은 지금 이 상황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이미 결정한 일. 게다가 고위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인지도 또한 어느정도는 중요한 법이다.

김유린, 어렸을 적 동경했었던 그녀처럼 되기 위해서는 모든 걸 감내해야만 한다.

“다큐가 아니라 예능인걸 꼭! 명심해 주세요. 그리고······유세정 기사님?”

몬스터사냥을 예능이라 포장하려는 이 PD가 싫었지만, 그래도 능력이 있다고 아버지가 추천한 PD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을 속으로 꾸역꾸역 삼키며, 세정은 정말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이 PD는 참 말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대강 대답하며 시선은 다른 곳으로 두었다. 그래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말 운명처럼, 혹은 거짓말처럼, 그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저, 저기요! 잠깐만요!”

“예? 으, 으억!”

갑작스런 외침에 PD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의 세정에게 PD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PD를 내팽개치고서, 그녀는 그 남자에게로 달려가 그 앞을 막아 섰다.

“···음?”

“···맞······나?”

그러나 막상 그를 마주보고 선 순간. 유세정은 먼저 의문이 들었다. 분명 얼굴은 맞는데, 체격이 원래 이랬었나······?

“저기, 김세진 씨 맞으시죠? 그때 그..”

하지만 얼굴은 기억속에 남겨진 그대로였기에, 그녀는 애써 자신감을 부렸다. 키가 좀 커버린 듯한 느낌이 있지만, 분명히 이 남자가 맞다.

“······”

“맞으시잖아요. 왜 대답을 안 하시는 거예요?”

세진이 입을 다물고 있자, 세정이 미간을 좁히며 그의 두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 높이의 차이에 다시금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확신했다. 이 남자의 얼굴은 뇌리에 각인되다시피 하여 도저히 잊을 수 없었으니까. 심지어 꿈에도 몇 번 나왔는 걸.

“···반갑습니다.”

그냥 모르는 척 할까, 했지만. 그래도 세진은 손을 건네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유세정. 새벽기사단장의 장녀이자, 기업 '새벽' 회장의 손녀딸. 그저 흘려 보내기에는 이 어마어마한 인맥이 너무 아까웠다.

“아, 역시..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고작 한 마디를 나눈 순간에, 별안간 카메라가 우르르 들이닥쳤다.

“세정 님, 이 분은 누구시죠?”

PD가 함박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로운 캐릭터의 출현. 그것도 서릿발처럼 차가운 금수저 여기사가 대단히 반갑게 다가섰던, 무려 ‘남자’. 휴게소에서는 오프닝의 한 꼭지만 따려 했었는데, 이건 뜻밖의 대박이 아닌가.

“지금 뭐하시는, 카메라 당장 치워요!”

유세정은 혹시라도 이 카메라의 포화에 김세진이 도망갈까, 그의 소맷자락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 과민한 반응에 PD가 살짝 당황했다. 그녀에게 찍히면 이 바닥, 아니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의 욕망은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급히 튀어나왔다. 이 남자는 카메라를 마뜩잖아 하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이 살짝 엿보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

“저, 남성분? 혹시, 잠깐, 아주 잠깐만 촬영 안 되시나요? 이번에 TBK에서 기사님들이 출현하는 예능이······”

“저기요!”

유세정이 PD를 밀쳐내며 김세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의외로, 그는 갑작스레 다가온 카메라를 꺼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잠깐,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그냥 오프닝에 이런 인연을 우연히 만났다~ 이런 것도 사실 그림에 좋거든요. 아주 좋죠.”

세진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TV출연. 그것은 어린시절 그가 동경했던 꿈 중 하나였다. 멋진 연예인과 기사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참 많이 부러워했었고, 그들처럼 되고 싶기도 했다. 순간의 불행으로 고아가 되었던 아이는 TV를 바라보며, 그런 이뤄질 수 없는 꿈들을 꿨었다.

“어떤 식인데요?”

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PD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세정은 표정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했다.

“..예? 괜찮으신거예요?”

“아니 뭐··· 그쪽이랑도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유세정이예요.”

“하핫! 그럼 잠시만 찍겠습니다. 간단해요. 저희는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눠주시면 돼요. 그럼, 저희는 뒤에서 찍겠습니다~”

카메라가 슬금슬금 물러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무지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세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어디, 앉아서 얘기할까요?”

“예? 아······ 네. 좋아요.”

두 사람은 휴게소 내부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

“야··· 대박인데? 저 까칠한 금수저님이 말을 저렇게나 많이 한다고?”

PD와 스태프, 심지어 같은 기사들마저 커피숍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유세정의 모습에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원래 그녀는 항상 차가운 무표정에, 말을 할 때면 맨날 툭- 툭- 돌을 내던지듯이 딱딱하게 했었다.

그러나 저 커피숍에 한 남자의 앞에 앉아있는 유세정은 다르다. 얼굴이 화색이다, 라고 말하기는 무리일지라도 적어도 차갑지는 않다. 또한 이따금씩 작고 앙증맞은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여 단문이 아닌 장문의 말을 이어간다.

여태 세정을 알아왔던 기사들은 저기 있는 유세정이 진짜 유세정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살가운 태도였다······.

“어! 방금 웃었다. 찍었냐?”

“네. 클로즈업했어요.”

“오우. 좋구만. 좋아. 오디오는 어때?”

PD가 오디오 감독에게 물었다. 그는 엄지를 척 들어보이며,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대화내용도 좋아요. 보니까 남자가 사냥꾼인데, 유세정 양을 한번 구해줬나봐요.”

“오. 게다가 사냥꾼이야? 근데 사냥꾼이 기사를 구해줘? 어떻게?”

“그건 아직 언급 안됐어요.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금은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 뿐이에요. 어!”

그러다 문득 오디오감독이 눈을 부릅뜨고 탄성을 내질렀다.

“왜?”

“방금 스카우트 제의 한 거 같은데요? 새벽기사단으로 오라고.”

*

“새벽기사단으로 오실 생각은 없으세요? 세진씨 같은 인재는 언제나 환영이에요.”

유세정의 진지한 제안에 세진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학생이 하는 말 치고는 너무 어른스럽지 않은가.

“제안은 감사드립니다만······ 저는 단독 사냥꾼으로 활동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존댓말로 답했다. 나이차가 꽤 나기에 처음에는 반말을 써봤지만, 세정이 왠지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을 보였기에 그 후로는 합쇼체로 일관했다.

“단독 사냥꾼이요?”

유세정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독 사냥꾼은 어느 단체나 기사단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냥꾼을 의미한다. 이는 무적(無籍)기사보다 더욱 희귀한데, 대부분의 사냥꾼은 혼자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세진씨는 그럴 수 있겠네요. 그때 보여주셨던 강함은 ‘특성’이겠죠?”

순간 세진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나 세정은 태연히 커피를 홀짝일 뿐이었다.

“···예. 맞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무슨 특성인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그녀의 물음에 세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최대한 뭉뚱그려 대답했다.

“신체와 관련된 특성입니다.”

"아하."

그러나 유세정은 별 다른 이견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특성이 있는 기사들도 대부분 자신의 특성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세한 내용은 숨기는 실정이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래서 그때보다 키가 커진건가봐요? 특성이 성장을 해가지고.”

“예? 아··· 예. 그렇죠 뭐.”

생각지도 못한, '포션'따위 보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변명이었다. 세진은 퍼뜩 고개를 끄덕였다.

“특성이라······.”

그리고 세정은 그의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습관이었다. 이렇듯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눈을 바라보다 보면, 언제나 상대방이 먼저 그녀의 눈을 피하곤 했었다.

그러나 세진은 그녀의 두 눈을 피하지 않았다. 보석같은 눈동자가 생각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꿈틀거리는 모습이 신기해서였다.

“근데······단독 사냥꾼이어도, 언제 저희 기사단이랑 같이 사냥은 갈수 있지 않을까요? 세진씨의 능력은 확실하니까요.”

짧은 고민 끝에 나온 말, 그에 세진이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좋아요. 그럼 연락처 좀 주세요. 아무래도 이제는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나중에 연락 할게요.”

“오전에 부탁드릴게요. 그 이외에는 시간이 없어서.”

세정이 핸드폰을 건넸다. 그녀의 성격을 닮아 심플한 디자인의 검은 핸드폰, 메탈프레임의 감촉이 서늘했다. 세진은 그 핸드폰에 제 집전화를 눌러주고서 그녀와 헤어졌다.

*

김세진은 시내를 거닐 때면 언제나 ‘야수 김세진’폼을 취했다.

그렇게 주변의 시선을 즐기며 길을 걷던 세진은 가로등에 붙여져 있는 전단지를 하나 발견했다.

아니, 전단지가 그를 발견했다.

‘냄새’.

이 전단지에서 새어 나오는 진한 혈향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용병 구함. 뱀파이어 소탕. 등급 상관 無. 보수 多」

용병, 몬스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수 많은 직업 중 가장 대표적인 세 직업 중 하나. 그러나 용병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냥꾼, 기사와는 그 생리와 목적이 달랐다.

돈을 받고 고용되는 그들의 특성상, 사람을 죽여야 하는 임무도 심심찮게 있었다. 물론 그 대상은 ‘척살대상’이라고 법으로 지정된 종족 뿐이었다. ‘뱀파이어’, ‘나가’, ‘마인’ 등등··· 사회에 해악이 되는 종족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수 많은 인권단체들의 반대와 법률개정에 부닥쳐 그 ‘살해임무’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부지불식간에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잃은 용병들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용병은 절멸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등급제도도 법률로 정해지지 않고 제멋대로이지만, ‘용병의 선술집’은 전국 13개소 정도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끝까지 남은 용병들은 근성과 악바리, 신념으로 점철된 자들 뿐이다. ‘적대종족’들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 놈들의 사지를 씹어먹기전 까지는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존재들.

뜻을 잃기 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그들이 아직 살아 숨쉬는 한, 용병은 이 세상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뱀파이어에게 어머니를 잃은 인간 김세진은 그런 그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야수 김세진은 뱀파이어를 처단한다는 이 전단지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

그는 전단지를 거칠게 뜯어내고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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