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23화 (23/174)

07. 오크의 대장간 (2)

‘답답해 뒤지겠네.’

김세진은 마나와 동기화가 되어 흡사 찰흙이 된 돌멩이를 오물조물거리다가, 순간 화딱지가 치밀어 돌멩이를 그대로 내던졌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심하다. 분명 인간인 김세진의 머릿속에는 구상이 있고 그 구상을 따라 잘 만들고 싶은데, 오크의 빌어먹을 저주받은 손재주로는 그게 불가능하다. 학창시절의 미술시간 같은 느낌이다. 분명 머릿속에는 있는데, 이렇게 그리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손이 병신이다.

그것만으로도 짜증나 죽겠는데, 다음에 떠오르는 알림창은 잠시동안 그를 고혈압으로 만들었다.

[단조가 완료되었습니다.]

[강도 단계: F]

[완제품의 완성도가 최악이기에 숙련도가 감소합니다.]

“···으아아아아악!”

결국 세진은 인간형으로 변해 괴성을 내지르며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내려갈 곳 없는 끝바닥이 F-등급인데 왜 자꾸 숙련도가 감소한다는 건지, 할 수만 있다면 저 알림창을 깨부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벌써 스무 번째다. 그 스무 번 동안 나온 단어라고는 최악, 형편없음, 혐오 이딴 부정적인 것들 뿐이다.

“하아···”

성취는 눈곱만큼도 없는데, 몸이 노곤하고 나른해져왔다. 슬슬 마나가 떨어져간다는 신체신호다. 세진은 거친 한숨을 내뱉으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

그리고 정확히 90초 뒤, 김세진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야말로 온탕속의 아르키메데스가 된 심정이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소리쳤다.

“고블린!”

오크폼으로 단조스킬을 사용하여 돌멩이와 마나를 동기화해놓고, 고블린 폼으로 변화하여(이 스킬은 오크폼으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한번 사용하면 마나량에 따라 특정 시간동안 계속 지속되는 형식이어서 형체를 조정하는 것은 다른 폼으로도 가능했다.)그것을 다듬는다. 오크의 단조기술과 고블린의 빼어난 손재주. 이건 실로 최강의 조합이 아닌가. 그는 퍼뜩 오크폼을 취하고서, 다시 주변에 나뒹구는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

“됐다···.”

이마에 한 줄기 문신이 새겨진 고블린이 만족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단조가 완료되었습니다.]

[강도 단계: E]

[완제품의 완성도가 뛰어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기분 좋은 알림, 그의 입가에 깊은 호선이 패였다.

지금 그가 제작한 물건은 하나의 대거였다. 짧은 검날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져있는 돌멩이 단검. 암석으로 만들었기에 무기로 쓰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스킬 활용이 처음으로 제대로 되어서 퍽 만족스러웠다······

······별안간 다시 불만족스러워졌다.

“이상하네.”

김세진이 중얼거렸다. 만족은 잠시 뿐, 더욱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의 천직이 대장장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웨어울프의 마나석을 흡수하고, 뱀파이어가 출몰했다는 뉴스를 본 이후로 그에게는 묘한 내적변화가 생겼다. 야심이라는 말이 옳았다. 평생을 가난하여 단 한번도 품어보지 못했던 단어. 그러나 심장에 담겨진 야수의 마나석은 그 야심을 부단히도 원했다. 늑대의 야망, 그것은 늑대인간과 철천지 원수사이인 뱀파이어의 출몰을 계기로 그의 의식으로 완전히 스며들게 된 것이다.

“흠.”

그러나 곧바로 재시도를 하기에는 마나의 부족으로 말미암은 미진한 탈력감이 느껴졌기에, 그는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하고 근처의 돌침대에 몸을 뉘였다.

*

일주일 뒤, 하젤린과의 저녁약속을 위해 동굴을 나와 시가지를 거닐던 그는 예전이라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간판을 발견하게 되었다.

‘태백 무기점’

심플한 이름의 무기점, 그러나 저 이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태백, 대한민국에 17명 있는 명인 중 한 명의 이름이다. 대장장이와 관련이 있는 스킬이 생긴만큼 관심이 동하는 무기점이었지만, 그러나 이미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모대회?”

그래서 그는 무기점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 전시용 유리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제 4회 대한민국 대장장이 공모대회’]

재능있는 대장장이 지망생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

▶응모자격: 대장장이를 꿈꾸는 모든 사람. (단, 장인 이상은 지원 불가능.)▶참가방법: 정해진 주소로 우편을 보내거나, 직접 방문하여 접수. (익명, 별호로 신청 가능)▶공모과정: 예선심사, 1차심사, 2차심사, 최종 심사의 총 네 과정이 있음. 마지막 최종심사에서는 청중들이 심사에 참여. (단, 1차, 2차, 최종심사로 단계가 올라갈 때 마다 새로운 장비를 출품해야함.)

▶시상내용: 총 상금 10억원

▶후원사: 기업 새벽, 새벽기사단, 현월경매장, 칠흑기사단 등등······

꿈을 갈망하는 많은 대장장이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멍하니 포스터를 바라보던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빚’이었다. 하젤린에게 진 빚, 무려 50억. 그리고 집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이제 인간형으로 하루에 절반 가까이 있을 수 있으니, 동굴에서의 생활은 하루라도 빨리 졸업하고 싶었다.

“······흠.”

그는 주위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그 포스터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쫘악-

포스터를 그대로 찢어서 들고 바삐 발걸음을 움직였다.

*

레스토랑에서 세진을 기다리던 하젤린은 정말로 키가 커져서 돌아오는 그의 모습에 놀랄 틈도 없었다.

“······이게 다 고작 열흘 새에 만든?”

“아뇨. 반 년 걸렸습니다. 꼬불쳐뒀던 거 가져온 겁니다. 그것보다, 이 정도면 얼마정도 될까요?”

총 열 개의 포션. 그 중에서는 검치를 갈아서 만든 ‘고블린의 선의’가 두 병 끼어 있었다. 아쉽게도 이걸로 검치가 모두 다 소진되었기에 세진의 표정은 조금 씁쓸했지만, 하젤린의 만면은 기쁨과 즐거움이었다.

“세금까지 다 때면 23억정도 할 것 같네요~ 그러니까 전에 파셨던 거까지 합치면 이제 한 3억? 정도 남으셨어요.”

“아직도.. 그렇구나···.”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직원이 음식을 내왔기 때문이었다.

“맛있겠네요.”

세진이 두툼한 스테이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젤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탁 위에 널브러져있던 포션들을 가방 안으로 소중히 담았다.

“아.”

“저기.”

나이프와 포크를 쥐기 전에,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세진이 먼저 하라는 손짓을 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근데 정말 향수 뭐 쓰시는지 알려주시면 안되나요?”

“······예?”

“아니. 정말 다른 뜻이 있는게 아니라, 냄새가 좋아서 그래요. 저도 뿌리고, 집에서도 맡고 싶어서.”

하젤린이 볼을 긁적이며 은근하게 물어왔다.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으시면 저를 집으로 데려가야해요. 정말로 향수가 아니라 체취니까.”

“······에이.”

그의 말에, 하젤린이 음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아닌 척 하더니, 이건 아주 원론적인 작업이 아닌가.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시잖아요? 다크엘프는 프라이버시에 민감해요. 그러지 말고 정말 무슨 향수를 쓰는지, 알려주기 조금 그러시면 힌트만 조금······.”

“정말이에요. 진짜로 향수가 아니라 체취에요.”

그러나 세진은 단호했다. 하젤린은 그 엄격한 태도가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살짝 좁혔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뭐···. 연금술사님이 그러시다면 그런거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은 퉁명스레 삐죽 나와있어, 누가 보아도 삐졌다는 모양새였다.

“아니 뭐, 정말 집에서도 이 향기를 원하신다면······ 진짜 데려가시던가요.”

그게 괜히 귀여워 세진이 능글맞게 말했다.

“풋, 제안은 정~말 고맙지만, 괜찮아요.”

하젤린은 웃으며 그 농담을 받아주었고,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활발한 대화는 끊기질 않았다. 말하는 쪽은 세진이었고, 들으며 웃는 쪽은 하젤린이었다.

어쩌면 하젤린이 그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세진은 이상하게 이 미인을 앞에 두고서도 자신감이 끊임없이 솟았다. 그녀와 독대할 때면 불규칙하게 박동했던 심장도 그대로고, 긴장따위는 일말도 존재치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야수의 심장’이라는 웨어울프의 작용 중 하나, 혹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신감과 자존감의 비약적 상승. 그러나 둘 중 무엇이든 간에, 세진은 지금의 자신이 만족스러웠다.

“근데, 요즘 대장장이는 돈을 많이 버나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가 운을 띄웠다. 이 단조능력의 숙련등급이 오르면 대장장이 축에서도 꽤 좋은, 아니 그 정점에 이르렀다는 명인과도 비교가 가능할 지도 모른다. 거기에 고블린의 손재주까지 합쳐진다면, 예술성과 실용성 모두 완벽한 명품을 만들 수 있겠지. 그저 썩히기엔 아쉬웠다.

“잘 만들기만 하면 많이 벌죠. 근데 어디 그게 쉽나요? 마나재능까지 어느정도 있어야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직업이 대장장이인데, 명인이 될 수 있을 정도의 마나재능이 있으면 차라리 기사하는 게 낫죠. 매번 후덥지근한 대장간에서 망치만 뚜들기고 있는 건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완성품 하나 만드는 데 2~3년 정도 걸리는데.”

“아, 잠깐. 대장장이들도 마나를 다뤄요?”

“그럼요. 마나가 서린 망치로 팡팡 뚜들기다보면 장비에 마나가 스며든다네요. 스며든 마나량이 많을수록 좋은 장비가 되는거고. 근데 그게 뭐에요? 그냥 운이지.”

하젤린이 심드렁하게 대답했고, 세진은 진한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오크 대전사의 무기가 장인보다 뛰어나고, 명인의 명품과도 맞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했다. 대장장이들은 요행으로써 마나가 스며들기를 기대하지만, 오크는 그 신체적 특성을 이용하여 마나를 아주 직접적으로 활용하며 단조를 한다.

“근데 그건 왜요?”

하젤린이 고기를 꼭꼭 씹으며 물었다.

“······아. 그냥, 근처에 대장장이 공모대회라는 포스터를 봐서요. 근데 명인이나 장인이 만드는 물건은 보통 얼마쯤 할까요?”

“가격은 어마어마하죠. 아마 최근에 거래된 장비중에 ‘록타의 힘’이라는 도끼가 있는데. 평단에 엄청난 호평을 받고, 많은 명인들이 극찬을 한 무기거든요? 매스컴에서도 막 한국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탄생했다면서 치켜세워주고. 근데 새벽기사단이 이걸 300억? 정도에 낙찰했을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진의 칼질이 잠시 멈췄다.

“···그렇군요.”

세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태연히 대답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시간 뒤, 동굴로 부랴부랴 돌아가는 그의 품에는 한 움큼의 철주괴가 들려 있었다.

강철을 사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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