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야수의 마나석 (6)
김세진은 기사 둘의 호위를 받아 지하수도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 그럼 사냥꾼이 직업이신거에요?”
헌데 조금 귀찮은 일이 벌어지기는 했다. 별다른 부상이 없음에도 여기사의 손에 이끌려 응급실로 들어와야 했고, 여기사는 그를 병상에 억지로 눕히고는 옆에 앉아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이 점점이 박혀있는 귀를 연신 쫑긋쫑긋거리며.
“예.”
그로서는 최대한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단답으로 대답했지만, 기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은근히 몸을 붙여오며, 노골적으로 코를 킁킁거린다. 역시나 문제는 이 냄새에 있는 듯 했다. 외모보다도 체취를 중시 여기는 수인에게 늑대의 향기는 치명적인 페로몬이나 다름이 없었겠지.
“그렇구나. 저는 중급기사에요. 게다가 완전 유망주에요. 연봉도 좀 쎄고.. 하핫. 언제 사냥하러 가실 때 저랑 같이가요. 저, 이래봬도 표범이거든요. 엄청 빠르고 탄탄해요.”
크앙- 여기사는 앙증맞은 포효를 하며 세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좋았다. 여기사는 미인이었으니. 표범같은 날카로운 외모와는 달리 하는 짓은 강아지처럼 귀여워서 더더욱 그랬다.
“앗, 방금 웃었다. 같이 가겠다는 의미죠 그거? 같이 가는거에요~? 후회는 안하실거에요! 제가 한 두 단계 이상은 승급시켜 드릴라니까!”
“하하, 아니 저는······”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위로, 별안간 하나의 암운이 드리웠다. 방금 전 여기사와 함께 세진을 발견했던 남자기사였다. 그는 꾸깃꾸깃 경련하는 낯짝으로 지금 자신이 전적으로 탐탁치 않음을 표현하며 입을 열었다
“김세진 씨?’
“······뭔데 왜.”
남자는 분명 김세진을 불렀지만, 여기사가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를 막아세웠다.
“너는 비키시고. 김세진 씨,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시죠? 아쉽게도 지금 부상에 신음하는 시민분들이 많으셔서요. 멀쩡하시다면······”
“뭐가 멀쩡한데? 옷까지 다 타서 없어질 정도로 엄청 고생하신 거 몰라? 당장 정신적 트라우마가 의심되는 지경이라고.”
전혀 아니다. 세진이 머쓱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요. 몸은 괜찮으니 저는 가볼게요. 약속도 있고.”
“예? 왜요? 좀 더 있으셔도 되는데······ 아 진짜!”
일어서려는 세진의 어깨를 움켜잡아 억지로 눕히고서, 여기사는 난데 없이 훼방을 놓는 남기사를 쏘아봤다. 그러나 그는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기사님······”
“로젠이에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네. 로젠기사님, 신경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이제 가봐야 해요.”
아리따운 여인의 적극적인 관심은 물론 좋다. 그러나 평생동안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그는 그것이 그저 어색하고 불편했으며, 무엇보다도 시간이라는 제약이 마음에 걸렸다.
“······그, 그럼 연락처라도 남겨주세요!”
그 단호한 태도에 로젠이 안달 난 표정으로 그의 소매를 붙잡으며 핸드폰을 건넸다. 세진은 차마 그것까지는 거절할 수 없어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고서 안녕의 인사를 보냈다.
“꼭, 꼭 나중에 같이 사냥해요!”
무슨 게임이라도 같이 하자는 듯이 말하는 로젠의 모습이 괜히 웃겨, 세진은 살풋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무 의미 없는 가벼운 미소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 야. 뒤질래? 너 진짜 무슨 생각이냐? 지금 야생의 표범한테 목숨 걸고 겨루기라도 하자는 거야 지금?”
세진이 완전히 멀어지자 로젠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남자기사를 위협적으로 쏘아붙였다. 그러나 남자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씰룩였다.
“뭐가? 그냥 나는 원칙대로 행동한 거야. 아프지도 않은데. 누워있으면 뭐해?”
"넌 오늘······"
그녀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 험악한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
세진은 부상입은 시민들의 면면을 살피며 응급실을 거닐었다. 그 정도가 심각해 온 몸이 화마에 뒤삼켜진 사람도 있었고, 그저 살갗에 얕은 자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부상자들의 몸을 살피던 와중에, 세진은 갑자기 눈에서 기묘한 격통이 전해져옴을 느꼈다.
“윽······.”
짧은 신음을 흘린 그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시야가 비정상적으로 넓어져 그런 착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시야각은 수평으로 180도. 그러나 지금 세진은 자신의 뒤에서 펼쳐지는 광경까지도 모조리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온 세상이 진하고 밝았다. 전구는 눈이 부셨으며, 어두운 공간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뚝 멈춰선 채 사방을 살펴보던 세진은 문득, 저 멀리 자신을 비추는 응급실의 거울을 확인했다.
눈동자의 색이 섬뜩한 황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조건 완료: 흑색늑대폼인 상태로 최소 열 개 이상의 부정적 기운을 한번에 감지.]
▶패시브스킬 ‘늑대의 동공’을 습득하셨습니다.
- 시야가 넓어지며 빛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또한 통상적으로 볼 수 없는 것들 조차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 이 스킬은 흑색늑대가 아닌 다른 폼일때도 활성화가 가능합니다.
또다른 스킬을 얻었다는 알람이 떠올랐다.
‘인지할 수 없는 것?’
그의 의문은 금세 해소되었다. 부상에 신음하는 사람들 위로, 불길한 기운이 여러 줄기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각각 청색, 남색, 보라색, 적색, 흑색. 아마 그 부상의 심각성에 따라 색깔이 나뉜 듯한 그 빛줄기들을 세진은 볼 수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 기운이 흘러나오는 한 부상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멍하니 그 빛무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한가지 문장을 더 떠올리게 되었다.
‘등급이 올라간다면 ‘유형(有形)’은 물론 ‘무형(無形)과 '기운'마저도 소멸시킬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혹시, 아니 확실하다.
늑대의 손톱은 이 병마 마저도 베어낼 수 있다······. 침을 꿀꺽 삼킨 그는 부상자에게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운에 손을 대고서, 손톱을 그었다.
파닥파닥. 휘적휘적.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등급이 부족한가?’
그 생각에 감응하여, 다시금 시스템이 반응했다.
[숙련등급이 부족합니다.]
“아······.”
세진이 납득했다는 의미의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간호사가 그에게 다가와 환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느냐 물었고, 세진은 고개를 젓고는 도망치듯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
하루 고작 두시간을 인간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세진에게 시간의 여유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그는 우선 아주 오랜만에 서울 변방의 월세집으로 향했다. 근 2개월동안 몬스터로 생활한다고 바빠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사도 임대인에게 전하지 못했었다.
“······오랜만이네.”
허름한 원룸빌라의 3층 302호. 세진은 괜한 감회를 담아, 헤지고 녹슨 철문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이 집의 방범기제는 그 흔한 지문이나 홍채인식도 아닌 번호키형 도어락이었다.
삑삑삑삑-
네 자리 숫자를 누르자 문이 열리고, 그는 문간을 넘어 방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억!”
그 즉시 그리 높지 않은 철문의 틀이 그의 이마를 강타했다.
과거에는 여유롭게 남았던 철문이었는데, 그래도 몸이 튼튼해져선지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세진은 고개를 숙인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흠흠···.”
집 내부의 모습은 그때 출가한 그대로였지만, 먼지만은 가득히 쌓여있었다. 고작 2개월 비웠을 뿐인데 사람사는 냄새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음?”
그렇게 원룸 안을 둘러보던 세진은 문득 집전화에서 새어나오는 푸른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음성메세지가 녹음 되어있다는 뜻이었다. 평생 없던 일이었기에 의아하게 그 불빛을 바라보던 그는 곧 한가지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하젤린. 세진은 지하수도에서 거의 사흘 가까이 잠들어 있었고, 잠에서 깨어 기사에게 날짜를 물어보니 날짜는 벌써 나흘이나 지난 후였다. 그 동안 누구에게 연락을 할 겨를이 없었으니, 본의 아니게 빚을 진 하젤린의 연락을 씹었다는 뜻이 된다.
괜히 미안해진 그는 부랴부랴 음성메세지를 켰다. 총 다섯 개가 녹음되어 있었다.
-세진 씨, 저 하젤린이에요. 아 깜짝 놀랐어요 갑자기 서울에 강습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서··· 근데 사상자 명단을 봤는데 세진씨는 없으시더라고요? 꼭 무사하셔야 하는데.. 진정되시면 꼭 연락 주세요.
처음은 비교적 잠잠했고, 정확히 그 12시간 이후에 하나의 음성메세지가 더와있었다.
-진정되셨나요? 연락이 없으시네요. 지금 사태는 점점 진정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바쁘신가요? 혹시라도 이 음성메세지를 듣게 되시면 연락주세요.
그 다음은 14시간 뒤. 이 메시지에 녹음된 목소리는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세진 씨. 어디세요? 제가 갈게요. 아무래도 만나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거든요? 아 그리고, 그 마나석이 예상보다 가격이 비쌌어요. 자그마치 50억이에요. 지금 있는 포션을 다 팔아도 세금이고 뭐고 다 떼면 그 절반밖에 안돼요. 그러니까······ 하, 세진 씨. 세진 씨? 이 메시지 들으면 빨리 연락 좀 주세요.
세진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다음 음성 메세지를 틀었다.
-김세진 씨. 설마 이 강습을 핑계로 도망치신건 아니겠지요. 부디 그런 어리석은 짓은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으셨으면 해요. 제가 이래봬도 이 바닥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입니다.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니에요. 이름도 알려주셨으니······ 잠깐, 실명 맞으시죠? 실명도 아닌거 아냐? 아 어쩐지! 연금술사가 너무 쉽게 실명을 알려주더라······ 후. 저, 그래도 찾습니다. 찾을 거에요. 지구, 아니 지옥 끝까지 가서 찾아낼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이제는 격노였다. 목소리 자체에 열기가 다분했으며, 중간중간 어금니를 꽉 깨물어서 나는 발음이 뭉개진 음성도 심심찮게 들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 음성메세지를 틀었다.
-······세진 씨. 어제는 제가 좀 감정이 격해져서 어쩔 수 없었어요. 솔직히 세진씨도 이해가 되실거에요. 만약 평생동안 번 돈 중 거의 절반이 순식간에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생각하시면.. 밤잠을 못 이루시겠죠. 왜 갑자기 멀쩡하던 돈에 날개가 달렸느냐고 분노하고 슬퍼하겠지요? 저도 그랬어요. 저는 요 사흘이 삼 년만 같았어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다크엘프는 은행도 쉽게 못 믿는 족속들이라 오직 현금이에요. 저, 다른 재산은 일체 없다고요. 진짜 그거 안 갚고 도망가시면 안돼요. 제가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려 번 돈인데······ 제발, 제발 연락좀 주세요.
그녀의 물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애처로운 울먹거림으로 바뀌었다.
세진은 음성메시지가 끝나자마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한 번 채 울리기 전에, 하젤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접니다.”
-와······
세진의 말에, 수화기 너머 하젤린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라며 몇번이고 계속 중얼거리는 하젤린에게 세진이 먼저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강습사태에 휘말려서. 그리고 제가 휴대폰이 없습니다. 그래서 연락이 조금 늦어져.......”
-아니에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아. 오히려 고마워요. 저는 최악의 상황까지, 한 일년? 예상하고 있었는데, 고작 나흘만에 연락주셨으니까······ 어디세요? 저희 지금 만나요.
“아 그게······”
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과 얼굴을 훑어보았다.
‘인간형’을 취한 김세진과, 흑색늑대가 ‘인간화’를 취한 김세진은 비슷했지만 독립적이었다. 후자의 얼굴은 본래 세진과 비슷했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일단 선이 전체적으로 날카로워졌으며, 이목구비가 또렷해졌다. 한 마디로, 원래 강아지상이었던 얼굴이 조금 날 선 늑대상으로 변해버렸다.
헌데 그렇다고 전자, 인간 김세진이 그대로인 것도 아니다. 갑작스레 능력치가 급상승한 탓인지 골격과 체격이 급성장했다.
간단히 두 모습을 스펙으로 비교하자면 이렇다.
인간 김세진이 키 179cm에 몸무게77kg로 알이 꽉 차고 다부진 몸이라면, 야수 김세진은 키 189cm에 오직 근육으로만 이뤄진 100kg라 육체 자체가 흉기나 다름이 없었다.
‘이대로 만나면 문제가 많은데.’
물론 그녀와 만날때는 항상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 썼으니 얼굴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신장이 문제다. 둘 중 어느 폼을 취하든 키가 너무 커버렸다.
“나중에 만납시다. 한 일주일 뒤에. 제가 포션을 하나 만들어야 되거든요. 거의 성공 직전이라 개인공방에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예? 바로요? 무슨 포션인데요?
“그······.”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술에 침을 두르고는 대답했다.
“키 크는 포션이요.”
-······뭐요?
하젤린의 벙찐 목소리가 들려왔고, 김세진 또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어이없는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방도는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2~3센치도 아니고 각각 무려 7센치, 17센치나 자라버렸으니.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이 포션은 절대 안 팝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
말문을 잃은 하젤린을 뒤로하고, 그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