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야수의 마나석 (5)
흑색늑대와 웨어울프의 차이는─그 무력의 다름을 제외하면─, 웨어울프는 야수형과 인간형을 취할 수 있다는 점 뿐이었다. 그러니 세진의 포밍몬스터는 여전히 흑색늑대였지만, 지금의 외견만큼은 충분히 웨어울프라 부를 수 있을 만 했다.
[흡수가 진행중입니다. ‘짐승화’가 불가능합니다.]
세진이 이를 까득 깨물었다. 이런 이족 보행하는 늑대야수, 웨어울프의 형태는 너무 눈에 띈다. 그래서 사족보행을 하는 짐승의 형태로 전환하려 했건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불가능했다.
‘잘못하면 죽는다.’
현재 자신은 확실한 몬스터, 기사들 혹은 사냥꾼들의 1순위 척살대상이다. 세진은 두 팔로 땅을 짚으며 최대한 몸을 수그린 채 움직였다.
다행히 빼어난 후각은 기사나 사냥꾼들이 없는 경로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게다가 흑색늑대는 은신에 일가견이 있는 몬스터. 아무리 지금 그가 야수화 상태라고 하더라도, 도망치기 바쁜 시민들은 어둠에 녹아들어 이동하는 그를 쉽게 알아치리지 못했다.
“크흐.”
어느정도 걷자, 세진은 몬스터와 기사가 피터지게 싸우는 1차 전장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직감하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주변의 상황은 기사만 없다 뿐이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하급과 중하급 몬스터가 건물에 매달려서, 혹은 인도를 헤집으며 시민들을 헤치고 있었다.
몬스터가 파괴시킨 빌딩의 잔해가 주차된 자동차 위로 떨어지고, 폭발한 자동차가 더욱 큰 불길을 만들었다. 그 폭발에 휘말린 아이 한 명이 도로 위에 넘어졌다. 하지만 세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모두를 무시하고 도망가야 했다.
그러니까, 늑대의 귀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무시했어야만 했다.
“엄마아아아!!!”
“수, 수정아!”
아이의 울음이, 그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의 얼굴이 흑빛으로 물들었다.
대로 한복판에 다리가 까진 채로 엎어진 아이 위로, 빌딩의 잔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고민은 깊지 않았다. 발이 먼저 움직였다.
‘선풍의 질주’. 한달음에 500m 그 이상을 쇄도한 세진은 아이를 보호하듯 감싸 안았다. 그 직후, 두 사람의 위로 철근을 비롯한 건축자재들이 흉악하게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의 울음섞인 외침이 공기를 찢었다.
‘안 아프네.’
과연 야수화한 흑색늑대의 몸은 단단했다. 잔해더미에 묻혀 사방의 시야만 없다 뿐이지, 고통은 전무. 그는 가장 먼저 품속에서 들려오는 훌쩍거림으로 아이의 무사함을 확인했다.
그리곤, 한쪽 팔을 깊게 뻗어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야수의 몸을 짓뭉개고 있던 잔해의 더미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수정······히익!”
가장 먼저 아이의 어머니가 보였다. 그녀는 한 손에 갓난아이를 안은 채,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시야를 온통 가득 채우는 것은, 한 마리의 야수.
2m를 가벼이 넘기는 장대한 육체와 흉험한 이빨을 자랑하는 늑대의 머리. 온 몸에는 검은 털이 잔뜩 나있었지만, 이 짐승의 위협적인 근육은 그 털로도 숨겨지지 않았다.
여인은 격이 다른 공포가 느껴지는 그 패악적인 모습에 뒷걸음질을 치다가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저 흉악한 야수의 품 안에 자신의 딸이 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일으켰다······.
“크릉.”
“흐악!”
하지만 야수가 먼저 움직였다. 여인은 지레 겁을 먹고 비명을 내질렀지만, 야수는 터벅터벅 걸어와 어머니의 앞에 그 딸을 내려놓을 뿐이었다.
어리둥절하니 자신의 딸과 야수를 번갈아 바라보던 여인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서 아이를 품에 껴안았다.
[북쪽방면 500m. 다수의 강한 인간]
세진에게는 그 상봉의 장면을 지켜볼 여유가 없었다. 몬스터들을 빠르게 정리한 기사들이 몬스터의 근원지를 넘어 서울의 주변부까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빠르게 발을 굴러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게······어?”
아이의 어머니가 이 기묘한 야수에게도 감사를 표해야 하나 고민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늑대야수는 여름날의 환상처럼 사라졌을 따름이다.
*
몬스터 강습에 의한 피해를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서울의 일부가 군부대에 의해 봉쇄되었다. 세진은 희미하게 느껴지는 화기의 냄새로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먼저 파악할 수 있었고, 서울을 빠져나가기 보다는 그 안에서 마나석의 흡수가 완료될 때까지 숨기로 작정했다.
비닉한 채 서울을 배회하던 그는 운 좋게 지하수도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속으로 숨어들었다.
‘···죽겠다.’
세진은 물기가 가득한 돌바닥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암흑이 짙게 깔린 암울한 분위기와 음습하고 축축한 공기는 어느정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물의 냄새는 견뎌내기 힘들었다. 흡수의 부작용인지,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기온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이 조금씩 감겨갔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기에 수면은 위험하다. 그러나 부작용의 일환인 몰려오는 수마는 그 따위 걱정을 가볍게 이겨냈다.
‘몬스터를 처리하느라 바쁠 테니 하수도에는 올 생각도 못하겠지······.’
세진은 그렇게 되길 바라며, 점차 잠에 빠져들었다.
*
-반포 근처의 이름모를 한 교회에서 발생한 균열이 조기 진압되지 않고 완전히 벌어져, 서울 일대에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근 5년만에 발생한 ‘몬스터 강습’에 대한민국의 신용등급에 타격이 있을거라 예상되는 가운데, 시민들은 균열이 모두 벌어질 때까지 방관한 기사단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울분을······.
“신경 쓰지 마.”
몬스터 강습에 의한 소요사태가 어느정도 진정되고, 기진맥진한 기사들이 잠시 대로 한복판에 눕거나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금. 고위기사 김유린이 뉴스를 들여다보며 근심에 빠진 부하기사를 위로했다.
“몬스터가 도심으로 내려올 때면 뒤따르는 일이잖아? 물론 이번에는 조금 심하게 시달리겠지만, 그래도 우리 탓은 아니니까 너무 힘들어 하지는 않아도 돼.”
우리가 아니라 균열 감지기를 보수, 관리를 소홀히 한 안보기업들 탓이니까. 덧붙인 유린은 생각만 해도 짜증난다는 듯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본래 몬스터와 균열의 감지는 기사단의 업무였다. 그러나 기사단이 그런 기술적인 부분까지 책임지기에는 너무 부담이 막중하지 않느냐, 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국가는 몇몇 안보기업들에게 그 책임을 넘겨버렸다.
사실 말만 책임이지, 명백히 이권만 넘기고 책임은 기사단에게만 남기는 일종의 비리였다. 그 빌어먹을 놈들이 균열을 감지한 대가로 수수료를 챙기고 있음에도, 오늘처럼 몬스터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면 언제나 욕을 먹는 것은 기사단이니까.
“······예.”
여전히 시무룩한 부하기사를 뒤로하고, 유린은 부상자가 모여 있는 임시 병상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헌데 그쪽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물론 사지가 잘렸다거나 하는 큰 부상을 입은 기사들이 없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기사들은 모두 한데 모여 핸드폰에서 투사되는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의외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놀라움과 신비함.
“······뭣들 하는거지?"
많은 시민이 희생당했고 재산상의 피해는 추산하기 힘들다. 물론 이런 상황에 굳이 침통한 심정을 무조건 사수하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런 모습은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엇! 안녕하십니까!”
그녀를 알아본 기사들이 부랴부랴 영상을 끄고 인사를 했다. 이곳에 모인 기사들은 모두 같은 기사단 소속은 아니지만, 유사시에 모든 기사단은 단 하나의 소속, ‘국가’라는 이름 아래 활동한다. 그렇기에 고위기사인 김유린보다 등급이 낮은 기사들은 비록 기사단의 소속은 다르지만 그녀에게 예우를 다했다.
“아픈 몸으로 허리 그렇게 숙이지는 말고. 나는 그냥 궁금해서 묻는거다. 뭘 보고 있던거지?”
“아···.”
유린의 말에, 그 영상을 다른 기사들에게 보여주었던 주동자, 칠흑기사단의 남자 중급기사 이수한이 쭈뼛쭈뼛하며 대답했다.
“시민들을 대피시키던 도중에 신기한 소식이 있어서 그만······.”
“뭔데?”
“아 다름이 아니라······ 저, 기사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희 그때 웨어울프 확실히 죽인 거 맞죠?”
유린이 미간을 팍 좁혔다.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당연하지. 그럼 웨어울프의 마나석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렇죠? 근데 저기······ 웨어울프가 또 나왔습니다. 한 시민이 영상을 찍었어요. 그 급박한 상황에도 동영상 찍는 사람이 있긴 있더라고요. SNS에 올린다는걸 일단 말려두긴 했는데.. 보세요.”
이수한이 핸드폰으로 홀로그램 영상을 투사시키며 말을 이었다.
“근데 여기 웨어울프가 찍혔는데, 진짜 대박이에요. 원래 웨어울프가 진짜 희귀한 몬스터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더 특이해요.”
영상의 첫 장면은 바닥에 내리박힌 빌딩의 파편들과, 그 앞에서 한 여자가 울부짖는 광경이었다. 그 잔인한 광경에 김유린이 이게 대체 무슨 악취미냐며 그를 쏘아붙였으나, 이수한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음을 보라고 해명했다.
“···어?”
그리고 그의 말대로였다. 이 다음 장면은 합성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격한 파열음과 동시에 잔해가 허공으로 치솟고, 그 속에서 두 명의 생명체가 등장했다. 한 마리의 야수와, 그 품에 안겨 눈을 꼭 감고 있는 어린아이.
“신기하죠? 이 웨어울프가 아이를 지켜준 거 같아요. 좀 더 선명한 영상도 있어요. 여기가 몬스터 근원지와는 조금 멀어서, CCTV가 그나마 몇 개 남아있었거든요.”
이수한이 CCTV영상을 재생했고, 김유린은 정말 넋을 놓고 그 영상을 바라보았다. 아이 위로 무너져 내리는 건물, 그리고 형상도 흐릿하게 남을 정도로 빠르게 쇄도하는 검은 생명체. 확실하다. 이 웨어울프는 분명히 ‘구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금 몇몇 수인기사들한테 보여줬는데, 장난 아니던데요? 라이칸스로프 전설이 아니냐고 난리에요. 물론 개소리지만요. 아, 욕이 아니라 진짜 개. 개과 수인이었어요.”
그 말에 유린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칸스로프는 지구로 이주해 오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세계에서도 최소 배척, 최대 멸족까지 당한 종족이었으니. 그들은 이제 하나의 전설 혹은 신화로 남았을 뿐이다.
“······신기하긴 하네. 근데 지금은 이런 거 볼 때 아니야. 핸드폰 압수하기 전에 내려놓고 부상이나 치유하는 데 집중해. 그리고 이런 정보 언론이 알면 조금 귀찮아지니까, 앞으로는 입단속 좀 하고.”
“아 그게······저는 언론에 알리는게 더 낫다고 생각돼요.”
“뭔 소리야 그게?”
김유린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봤다.
“아니 어차피 이거 우리탓도 아닌데 우리만 욕 엄청 먹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언론한테 이 영상 돌려서 화제라도 한번 전환해보자고요. 희생자들 추모는 나중에 해도······ 큼. 죄송합니다.”
말을 이어가던 이수한은 점차 흉악하게 일그러지는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고서,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말 가려서 해.”
김유린은 그렇게 위협적인 한마디를 툭 내뱉고는 다시 어딘가로 바삐 발걸음을 움직였다.
* * *
단 하나의 빛줄기도 존재치 않는 어둡고 음침한 지하수도 안.
김세진은 사람의 냄새에 눈을 떴다.
[북쪽반경 300M. 인간 한 명, 수인 한 명.]
그 순간 몽롱했던 의식에 차가움이 빗발쳤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몸상태를 확인했다. 털이 가득하다. 여전히 야수화 상태, 그러나 곧 떠오른 알림이 그의 불안을 해소시켜 주었다.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액티브 스킬 ‘야수화/인간화’를 습득하셨습니다. (이제부터 폼 전환이 가능합니다.)]
▶야수화/인간화 [성장등급 F]
- 흑색늑대폼으로 야수화 혹은 인간화를 할 수 있습니다.
- ▶야수화: '늑대인간'의 형체로 변하고, 흑색늑대의 포밍 능력치가 3배 상향되어 적용됩니다.
- ▶인간화: ‘인간’의 형체로 변하고, 흑색늑대의 포밍능력치가 감소효과 없이 온전하게 적용됩니다.
- 현재의 기력수치에 따라, 하루 24시간에 (450분)동안 인간화/야수화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능력치
- [근력 134] [지구력 133] [민첩력 175][기력30]
- [마나친화력 20] [마력 20] [운 7] 그 알림이 떠오르는 즉시, 세진은 재빨리 인간화를 취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원래의 ‘인간 김세진’과 흑색늑대가 ‘인간화’를 취한 김세진 간의 차이가 그렇게 작지 않았다.
시야가 높아진 걸로 보아 키가 커졌고, 언뜻 보이는 몸의 근육은 평생동안 단련한 사람처럼 탄탄했으며, 사타구니에는 거의 둔기에 가까운 수준의······.
“누구냐!”
별안간 남자의 고함과 예리한 마나의 서늘함이 이쪽을 향했다.
“인간입니다!”
세진이 재빨리 대답했고, 그 외침에 기사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흠.."
"어머···."
세진의 앞에 선 두 명의 남녀 기사는 그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몬스터를 피해 이곳으로 도망왔습니다. 옷은 그 도중에 불에 타서 그냥 벗었습니다”
그 변명에 남자기사는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뒤로 돌렸고, 여자기사는 얼굴을 발그레 붉힌 채 세진의 몸을 관찰했다. 아닌 척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손가락 사이로 두 눈알이 데굴데굴 구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관찰은 조금 오랫동안, 남자기사가 지적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