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9화 (19/174)

06. 야수의 마나석 (4)

“물품을 보여드리지요.”

김유린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낭랑하고 발랄했던 그때와는 사뭇 다르지만, 지금의 차갑고 기계적인 태도 또한 지극히 매력적이었다.

“이것입니다.”

김유린이 그에게 마나수정이 보관되어있는 가방을 건넸다. 살짝 열린 틈새로 마나석의 빛이 비쳤다. 세진은 양도증서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곤 다시 한번의 악수. 두 사람은 정말 서로 초면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오직 공적인 부분으로만 점철이 되어 있어, 어색이 끼어들 틈도 없었다. 김유린은 자신을 대하는 세진의 사심없는 태도가 살짝 만족스러운 듯 했다.

“아, 그럼 두 분. 이제 저희와 함께 식사나 하러 가실까요?”

갑자기 뒤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현월의 책임자가 끼어들어 말했다.

이것은 일종의 부수적인 절차였다. 판매자와 구매자끼리 물건을 인계하고 난 후, 경매책임자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 보통 구매자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판매자가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사실 이 마나수정이 예상 최고 낙찰가인 40억을 훌쩍 뛰어넘은 이유도, 어찌보면 이 식사의 이유도 있었다. 김유린과 식사할 수 있는 기회라면 적어도 얼마 정도의 가치는 있었을 테니.

“그럼 가시죠. 저희 기사단이 애용하는 좋은 식당이 있습니다.”

그에 김유린이 예의상의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내하려 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김세진이 고개를 저었다.

“식사는 나중으로 미뤄도 되겠습니까? 제가 시간이 많이 없어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유린의 몸이 우뚝 멈춰섰다. 세진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인상은 와락 꾸겨져 있었다. 고위기사보다 시간이 부족한 직종은 아주 드물 터인데······.

그녀는 애써 인상을 펴고 뒤로 돌아서, 세진의 하관을 마주보며 말했다. 로브의 후드를 깊게 뒤집어 쓴 터라 하관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제가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습니다. 나중은 조금···.”

“그럼, 식사는 그냥 없었던걸로 합시다.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이 많이 없어서.”

세진의 태도는 단호했다. 김유린이 뭐라 말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는 그 순간에, 세진은 이미 그녀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다.

“저, 잠깐···!”

평생동안 처음 받아본 기이할 정도의 홀대에 김유린이 당황하는 찰나, 엘리베이터의 문이 벌써 닫히고 말았다.

“······와. 유린 기사님, 방금 거절당하신거 맞죠?”

주변에서 부하기사들이 놀랐다는 어투로 말했다. 놀림따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그러나 유린은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이미 1층으로 내려간 엘리베이터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

“바로 서울역까지 가주세요.”

택시에 올라탄 세진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70분 남짓. 다행히 시간은 여유롭게 남았다.

안도의 숨을 내쉰 그는 먼저 가방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마나석을 확인했다. 입가에 진한 미소가 절로 걸렸다.

이제 강원도의 동굴에 도착하면, 이 마나석을 흡수하고서 느긋하게 변화를 기다리자······

그러나 그 여유로운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콰아아앙-!

선행하는 것은 고막이 터질 듯한 폭음이었고, 그 이후에는 엄청난 충격이 차체를 강타했다. 그 정체모를 추돌에 세진의 몸이 부웅 떠오르더니,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택시 밖으로 튕겨져나와 있었다.

“······뭔 씹···.”

희뿌연 시야에 잔뜩 찌그러진 차체와 그 파편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늑골과 머리의 통증을 참고서, 세진은 가장 먼저 품 안을 확인했다. 다행히 마나석은 무사했다.

“캬학캬학캬학~!”

이명이 맴돌던 귓가를 간사한 웃음이 점령했다. 그는 그 소리가 들려온 쪽, 형편없이 찌그러진 차체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등에 박쥐의 날개를 달고, 생김새는 소악마를 연상시키는 괴생명체 '가고일'이었다. 저 놈이 무식한 몸통박치기로 평안한 택시를 통째로 어그러뜨렸다.

“···끅.”

세진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일으켰다.

그리고 도심 한복판에 무슨 가고일이냐, 생각하던 세진의 망막에 그보다 백 곱절은 비현실적인 광경이 맺혔다.

그것은 수 많은 몬스터의 떼였다. 하늘에도, 길가에도 몬스터가 있었다. 오크와 해골병같은 잡다한 몬스터에서부터, 그 웅장한 몸체로 태양을 가리며 창공을 배회하는 와이번,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패도적인 진동을 전하는 오우거까지. 이것은 고작 삼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곳이 한국의 수도 서울인지 아니면 몬스터필드인지 도저히 분간이 되지 않는 광경에, 세진은 잠시 멍하니 우두커니 서서 입을 벌렸다.

-몬스터 강습, 1급 경보! 시민께서는 모두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곧 기사단이 출동할 예정이오니······.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외침이 세진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는 그제서야 가고일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보름달처럼 휜 눈.

“······.”

그는 일단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가방속에 손을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가고일은 영악하고 교활한 몬스터. 호기심이 많아,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이 취미라 들었다.

“으아아아악!!

"사, 살려줘!"

“엄마!!”

때아닌 몬스터의 강습에 주변은 수라장을 넘어 지옥도 그 자체였다. 부서진 차량이 폭발하고, 그 위로 화염이 피어올라 사방을 진홍빛으로 물들인다. 건물은 무너지고, 부모를 잃은 아이는 공포에 질려 부르짖었다.

“···끼룩.”

그럼에도 가고일은 오직 세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살짝 비틀어진 입가가, 놈이 그를 장난감으로 삼았음을 알려주었다.

가고일은 중급 몬스터다. 물론 그 무력적인 측면때문이 아니라 함정을 설치하는 등 간사한 성격 때문이지만, 강습한 가고일은 그 일신의 무력마저도 한 단계 이상 강해지게 된다. 지금의 세진이 상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무리다.

“······.”

가방속을 더듬던 땀에 젖은 세진의 손은 드디어 만질 수 있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 웨어울프의 마나석이다.

[중상급 웨어울프의 마나석, 흡수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경고: 현재 자신보다 너무 많이 강력한 몬스터입니다.)]

휘익-

알림창이 뜨는 동시에 가고일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경고는 있었지만, 깊은 생각이 불가능했다. 그는 이를 꽉 깨문 채 예를 눌렀다.

[‘흑색늑대’폼으로 동기화하여 웨어울프의 마나석을 흡수하는 중입니다······ 흡수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다른 폼으로 전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진은 눈을 부릅뜰 수 밖에 없었다.

“끄어어어억!”

격통이었다. 수족이, 뼈가 제멋대로 자라나 살갗과 장기를 헤집었다. 일초에도 수십 번 씩 쇠파이프가 몸을 꿰뚫는것만 같은 격한 고통. 핏빛으로 물든 동공에서는 피눈물이 뚝뚝 흘러내렸고, 헤 벌려진 입에서는 침과 피가 동시에 뿜어져나왔다.

“···끽?”

그 한 남자가 자멸하는 광경에, 가고일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크어···."

온 몸의 뼈가 살가죽을 길게 늘리며 튀어나오고, 다시 들어가는 것을 반복한다. 그럴 때 마다 끅끅거리며 피를 한바가지 토해내는 그 모습은 가고일에게 미소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끽끽끽끽.”

가고일은 천천히 날라가 아스팔트 위로 엎어진 세진의 등허리 위에 착지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정수리를 꾹꾹 눌러보더니, 뭐가 그리 즐거운 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끽끽끽······.”

그러나 가고일은 모든 것을 쉽게 질려한다.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놈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서, 날카로운 손톱을 꺼내들었다. 인체 따위는 무 자르듯 잘라낼 수 있는 가고일의 손톱이 서늘하게 반짝였다.

놈의 흉기가 하늘로 치켜세워졌다. 이제 그 흉험한 손톱은 그대로 김세진의 머리를 두동강 낼 터였다······..

[흡수가 일정부분 완료되었습니다. 이제는 ‘야수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에는 ‘야수화’가 자동으로 활성화됩니다.]

세진의 눈이 샛노란 빛으로 번뜩인 것은 그때였다. 햇볕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놈의 손톱이 머리를 향해 내려앉던 때.

그 손톱이 너무나 느려보였다. 또한 나약해보였다. 단지 손으로 쥐고 몇 번 흔들면 부서질 것처럼. 아마도, 피식자를 보는 포식자의 심정이었다.

세진은 한쪽 팔을 가볍게 휘둘러 놈을 후려쳤다.

퍼어어엉-!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가고일의 손톱은 조각난 채 하늘로 비산했고, 그 몸통은 격파당한 절구통같이 파격적인 소리를 내며 저 멀리로 튕겨져나갔다.

“······허어···허어···”

그제서야 시간에 대한 체감이 원상태로 돌아오고, 세진은 끓어오르는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 쉬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안식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멀리 있었을 따름이다.

“······뭐야.”

손이 짐승의 그것처럼 날카롭고 비대해지고, 몸은 털로 뒤덮여가기 시작했다. 꼬리가 생겨나고, 아가리가 튀어나오고, 이빨은 흉험해졌다.

세진은 멍하니 흑색털로 뒤덮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건······ 웨어울프가 ‘야수화’를 한 형상이었다. 그는 퍼뜩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 아수라장에서 자신의 변천에 관심을 쏟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인간. 인간형은 왜?’

그는 가장 먼저 의문을 가졌다. 왜 인간이 아니고, 이족보행하는 야수가 되었는가. 다행히도 그 의문은 친절한 시스템이 해결해주었다.

[‘인간화’는 흡수가 모두 완료되었을 시 활성화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직후, 수 많은 알림창들이 세진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많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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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완료: 야수의 심장」

- 강대한 웨어울프의 마나석을 심장에 흡수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5 상승합니다.

- 이제 흡수가 100% 완료되면, 흑색늑대 폼으로 ‘야수화’와 ‘인간화’를 활성/비활성화 할 수 있습니다. (흡수가 완료될 때 까지는 다른 폼으로 전환불가능)- 패시브스킬 ‘야수의 육체’, ‘고강도 손톱’, ‘포식자’를 습득합니다.

▶ 패시브스킬 ‘야수의 육체’ [숙련등급 F]

- 육체가 강력해지고, ‘마법’에 대한 피해를 일정부분 경감합니다.

- 탁월한 회복력, 몸의 상처가 빠르게 치유됩니다.

- 자신은 물론 타인의 혈류를 멋대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다만 타인의 혈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손톱 혹은 이빨같은 신체의 일부가 타인 체내의 혈관에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 이 스킬은 인간형일때는 효력이 일정부분 감소되어 적용됩니다.

▶패시브스킬 ‘고강도 늑대의 손톱’ [숙련등급 F]

- 강철 수준의 강도와 경도를 자랑하는 늑대의 손톱.

- 등급이 올라간다면 ‘유형(有形)’은 물론 ‘무형(無形)과 '기운'마저도 소멸시킬 수 있게 됩니다.

- 이 스킬은 인간형일때는 효력이 일정부분 감소되어 적용됩니다.

▶패시브스킬 ‘포식자’ [숙련등급 F]

- 적을 처치할 때 마다 조금씩 강해집니다. 강한 적을 상대할 경우 상승폭이 커집니다.

- 피식자는 포식자에게 공포를 느끼고, 굴복 혹은 지배되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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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이 앉아 이 수 많은 글자들을 모두 읽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먼저 오우거부터! 와이번은 고위기사님에게 맡기고!"

기사들이 벌써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세진은 그들의 눈을 피해 최대한 은닉한 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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