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8화 (18/174)

06. 야수의 마나석 (3)

서울의 세빛섬에 위치한 ‘현월 경매장’은 세계 최대의 경매장 중 하나로 그 명성이 드높고, 그만큼 경매물품의 수준이 높은 걸로 유명하다. 서울 소재 기사단들이 몬스터를 토벌함으로써 획득한 '진귀한' 전리품과, 각 지방의 대장간에서 올라오는 여러 장비 중에서도 고유한 이름이 있는 ‘명품’들만이 경매물품으로 선정될 정도다.

그리고 하젤린은 거의 5년만에 이 현월 경매장에 오게 되었다. 굳이 감회가 새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과, 오고가는 소음들을 견뎌내야 할 생각에 욕지기가 먼저 치밀었다.

'여전히 쓸데없는 돈잔치네.'

마치 선상파티처럼, 섬 위에 지어진 경매장에서는 화려한 빛무리가 피어 올라 밤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직원이 허리를 절도있게 숙이며 하젤린을 맞이했다. 현월 경매장의 직원들은 모두 하젤린이 걸친 로브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만큼 좋은 눈썰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젤린이 준비해온 VIP티켓을 건네자, 카운터의 직원이 입찰을 위한 초소형 PC와 번호표를 그녀에게 주었다. 77번. 왠지 기분 좋은 숫자다. 하젤린은 그나마 만족하며 경매장 본관으로 들어갔다.

“······세진 씨, 듣고 있으시죠?”

그녀는 왼 손목에 메워진 팔찌에 대고 어딘 가에서 듣고 있을 김세진에게 음성을 흘려보냈다. 10초간의 정적 끝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듣고 있습니다.

“지금 경매장에 도착했어요. 경매는 아마 3~4시간 정도면 끝날거고, 다음날에 물품을 인계받으러 가야 하는데······ 제가 양도증서를 드릴 테니 그건 꼭 직접 받으러 가주세요.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거기까진 못 해 드려요.”

웨어울프 마나수정은 칠흑기사단의 전리품. 비록 현월에서 물건을 위탁받아 경매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물건을 인계받을 때만큼은 구매자와 판매자(혹은 판매 책임자)끼리 얼굴을 마주보아야 한다.

그리고 칠흑기사단의 판매책임자는 안 봐도 뻔했다. 대한민국에 총 마흔 하나 밖에 없는 고위기사 중 한 명, 김유린.

하젤린은 그녀와 얼굴을 마주보는 건 죽어도 싫었다. 아니, 마주친다면 둘 중 하나가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세진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했지만, 그래도 고작 세 번 만난 사이다. 그를 위해 그런 위험까지 무릅쓰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 오래 안 뺏기겠죠?

“네. 최대 한 시간 정도일 거에요. 대금은 제가 오늘 즉시 지불할 테니까, 당장 이틀 뒤에 와서 찾아가시면 돼요.”

현월 경매장은 낙찰을 위해서는 낙찰가의 절반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낙찰 받은 지 사흘 이내에 대금을 입금해야 한다. 대단히 엄격하지만, 신뢰와 신속을 최우선 기치로 삼는 ‘현월’이기에 어쩔 수 없다.

-······예.

세진의 목소리에 담긴 떨떠름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시간에 민감할까, 하젤린은 궁금했지만 그저 기다리라 말하고서 연락을 끊었다.

“끙.”

하젤린은 로브가 접히는 걸 조심조심하며 지정 VIP좌석에 앉았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고급 양복 혹은 의류형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후죽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많은 인파에 하젤린의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쯤 경매가 시작되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훤칠하니 잘생긴 경매사가 참가자들을 반겼다. 그는 오늘 있을 물품들을 가볍게 소개하고는, 식전행사 따위 없이 본격적인 경매를 시작했다.

“먼저, 첫번째 물건. 도메니크의 목걸이! 착용자의 마나순환에 도움을 준다는 엄청난 목걸이입니다.”

보통 장비 앞에 제작자의 이름이 붙거나, 장비가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장비는 ‘명품’이다. 장비의 이름은 법률로 규격화·제도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품은 물론, 수제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그 장비의 이름은 무조건 원자재와 그 카테고리가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철로 만든 메이스’, 이런 식이다.

허나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서 ‘직공’이 되면 장비이름 앞에 단단한, 견고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그 다음은 ‘장인’. 장인쯤 되면, 국가가 장비의 이름에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부여한다. 그래서 장인은 지금 ‘도메니크의 목걸이’처럼 장비 앞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명인'. 제련·제조에서 정점에 준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 국가로부터 명인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아 ‘장비 이름 자유 명명권’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움켜쥘 수 있다.

그 영예를 거머쥔 명인은 장비의 이름을 어떠한 제한 없이 지을 수 있기에, 명인이 만든 장비는 그 목적과는 하등 관련 없는 이름들이 많다. ‘태백의 부름’, ‘로데스의 이상’ 등등. 하나같이 이름이 다 이렇다 보니, 작명에 압박감을 받는 몇몇 명인들은 작명소까지 다닌다는 후문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지경이다.

‘좋은 물건이네.’

마나순환에 도움을 주는 목걸이는 흔치 않다. 아마 저 물건을 만든 도메니크라는 작자는 근 시일내에 장인에서 명인으로 승급할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의 하젤린에게 그딴 건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두 눈을 끔뻑이고, 가끔씩 하품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번 물품은 최고의 기사단, 칠흑기사단이 출품한 ‘웨어울프의 마나수정’입니다.”

드디어. 그녀가 찾던 물건이 등장했다. 사족보행하는 늑대의 형체를 이루고 있는, 짙은 회색의 탁한 마나석. 중상급 이상 몬스터의 마나석이 지닌 특징이다. 놈들의 심장에 쌓인 마나석은 본체의 모습을 닮는다.

“웨어울프는 아주 희귀한 몬스터로,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등장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매사가 흔한 이야기로 운을 뗐다. 그러자 몇몇 수집가들은 그 보석같은 자태에 눈을 밝히고, 입찰에 임할 준비를 마쳤다. 하젤린 또한 자신의 통장의 잔고를 힐끗 확인했다.

마법사와 연금술사 생활을 청산하고서 대부분의 자산을 현찰로 보관해 두었기에 총알은 충분했다. 60억.

‘후······ 갚겠지?’

당장 1주일 전에 김세진을 도와준다고 말했으면서도, 막상 이 피같은 돈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니 불안과 걱정이 살짝 피어올랐다. 설마. 물건만 받고 도망가지는 않겠지.

“경매시작가는 오천만원, 호가는 백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 30번 신사님이 벌써부터! 오천백만원!”

입찰이 시작되었다. 살이 디룩디룩 찐 인간, 머리에 짐승의 귀가 쫑긋 솟아있는 수인, 마법지팡이를 들고 있는 엘프 마법사까지. 모두 이 마나석을 집으로 모셔가기 위해 열심히 돈놀이를 시작했다.

5억, 10억, 15억, 20억, 30억. 입찰가는 최고 예상액까지 단 한번의 휴식도 없이 폭주했다······.

“48번, 아름다운 엘프 마법사님께서 46억을! 마법을 익히는 데 영감을 주기에 충분한 물건이니, 탁월한 선택이실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정적. 46억을 부른 엘프 마법사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없으십니까?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웨어울프의 마나석! 혹시 모릅니다, 웨어울프의 어마어마한 힘을 그대로 얻게 되실 지!”

터무니없는 개소리다. 하젤린은 기가 차서 피식 웃었다. 저 하등 쓸모없는 물건에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써야한다는 데 일말의 회의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인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3번, 딱 3번만 호가하겠습니다. 46억!”

그 말이 나온 즉시. 하젤린은 47억을 입찰가로 써서 전송하려 했다.

“46억! 없으십니까?!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생각을 바꿨다.

“오오! 77번, 신비한 여인분께서 50억을!”

장래가 술렁였고, 하젤린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엘프가 가오가 있지, 눈치보면서 찔끔찔금 1억씩 올려서야 쓰나?'

*

“입금 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확인되었습니다.”

경매장의 무대 안쪽에서, 하젤린은 경매책임자와 낙찰물품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틀, 이틀 뒤로 예약을 잡아주세요. 아, 그리고 양도증서도 써주세요.”

“······양도 증서요?”

“네. 선물이거든요.”

하젤린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물론 선물이 아니라 빚이지만, 그래도 선물이라 하는 게 있어보이지 않은가. 50억을 선물하는 여자라, 아주 멋져.

"아.. 네. 알겠습니다."

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들을 불렀다.

***

“후.”

태양빛이 내리쬐는 맑은 오후, 서울역에 도착한 김세진은 바싹바싹 타는 입술을 일단 침으로 적시며 예약해뒀던 택시에 올라탔다.

서울역에서 세빛섬까지, 마나를 연료로 사용하는 고급택시를 타고 10분. 세진이 세빛섬의 현월 경매장 앞에 도착하자, 경호원들은 로브를 뒤집어쓴 그를 수상한 사람이라 생각하여 막아 세웠다.

“낙찰받은 물품을 받으러 왔습니다.”

약속시간은 오후 1시 10분. 현재시각 오후 1시 5분. 경호원들은 양도증서를 확인하고는, 이내 정중한 태도로 세진을 안내했다.

안내를 받아 경매장 안의 VIP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책임자가 다가왔고, 그녀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세진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연금술사이신가 봐요?”

마법사는 보통 얼굴까지 로브로 가리지는 않는다.

책임자가 의례상의 질문을 건넸지만, 세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딱딱한 자세로 어서 이 엘리베이터가 목적지로 자신을 데려다 주길 기다릴 뿐.

“······..”

그 차가운 무반응에 책임자는 괜히 무안해져 귀와 꼬리를 바짝 세웠다. 꼬리, 그녀는 개과 수인이었다.

“오..늘 날씨가 많이 좋죠? 한겨울인데 완전 초여름날씨에요. 무슨 일이 생기려고 그러나······.”

기분이 나빠질 법도 한데, 그러나 책임자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그 이유는 그저 그녀가 ‘개과’ 수인이기 때문이었다. 후각이 예민한 개과 수인의 이상형은 ‘체취가 좋은 남자’다. 그리고 스킬이 있는 지금의 세진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수컷다운 향내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되게 좋다.'

늑대. 그래, 늑대의 향이다. 책임자는 티나지 않게 코를 킁킁대며, 그 향기의 매력에 얼굴을 조심스레 붉혔다.

띵-

그러나 잔인한 엘리베이터는 VIP고객들을 위한 최상층에 벌써 도착해 버렸다. 책임자는 다소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와.”

윤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닦여진 대리석 바닥. 한강, 그리고 서울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보이는 조망.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이 스며들어 있어 하늘을 걷는 듯한 착각을 주는 이 화려한 공간은, 일반인은 평생 한번도 오지 못할 ‘현월’의 VIP전용 스카이라운지다.

“오신 것 같네요.”

세진이 시간의 급박함도 잊고 멍하니 내부를 둘러보며 그 대리석에 발을 디뎠을 때. 어디선가 부드럽지만 강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칠흑기사단의 고위기사, 김유린이라고 합니다.”

김유린이었다. 그녀는 과거 고블린이었던 세진을 대할 때와는 180도 다른, 차가운 무표정으로 손을 건넸다.

“아······ 예. 반갑습니다.”

세진에게는 두번째 만남. 그러나 유린으로서는 첫번째 만남. 사정이 어찌되었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악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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