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야수의 마나석 (1)
차가운 돌바닥위에서 눈을 떴다. 저 멀리 숲 속의 사냥꾼들이 보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어지러웠다. 늑대는 좀 더 멀리 보고, 좀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색 네 다리가 움직였다.
어느새 수족을 움직이기 보다 사족을 움직이는 게 익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에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두시간. 하루에 고작 두시간 인간으로 있을 수 있다면 나는 인간이 아닌 게 아닐까······.
그런 불안감에, 나는 퍼뜩 몸을 일으키고서 인간폼을 취했다.
내 두 발을 내 눈으로 바라보며, 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매만진다. 그대로였다. 정말 다행이다. 눈가에 눈물이 스몄다.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이면 특히나 힘들었다.
지금이 꿈이 아닌가, 항상 의심하게 된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바라곤 한다.
몬스터로 살아간다는 건 많은 고통이었다. 이빨에 남아있는 살점과 진한 혈향, 메이스로 생명체를 통째로 짓이겼던 감각. 적응이 될 리 없다. 단지 그것들은 나를 마모시켜 갈 뿐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답답함과 불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유난히 탁한 회백색의 아침하늘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초소형 TV를 켰다.
위잉- 홀로그램이 동굴의 한쪽 벽면으로 넓게 퍼져 올랐다.
* * *
“헥, 헥, 헥······”
오크 재규어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투쟁심과 호승심으로 똘똘 뭉친 오크가 도망간다?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 오크는 수풀이 스치는 소리에도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늑대의 냄새, 포식자의 진한 내음이 그 용감한 오크마저도 겁을 먹게 만들었다.
오크가 눈동자를 굴려 뒤를 살펴보았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빌어먹을 냄새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오크는 필사의 힘을 다해 발을 구르고 또 굴렀다.
-아우──!
하늘 드높이 울리는 부르짖음, 그 마력에 젖은 하울링이 오크의 발을 움켜쥐었다. 몸의 근육 전체가 공포에 절어 마비된 느낌이었다.
죽음을 직감한 오크는 고개만을 뒤로 비틀자······ 칠흑의 늑대가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쏟아져 내렸다.
“크엑-“
단번에 목이 물린 오크는 유별난 비명따윈 없이, 단발마와 함께 그대로 절명했다.
“크릉.”
코를 풀고, 늑대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오크 사체의 심장을 꿰뚫었다. 단단한 손톱이 물컹한 심장을 너머 어떠한 딱딱한 물체에 부딪히자, 늑대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오크의 심장에 찔러 넣은 손톱에서부터 푸른 기운이 일렁이며 솟아오르더니, 이내 서서히 이동해 늑대의 전신을 희미하게 뒤덮었다. 그렇게 몸 주변에서 아른거리던 푸른 빛은 곧 늑대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고, 늑대는 만족한 듯 눈을 떴다.
[오크 재규어의 하급 마나석을 흡수하셨습니다]
- 근력과 지구력이 0.5 상승합니다.
- 민첩력이 0.2 상승합니다.
- 기력이 0.05 상승합니다.
? 앞으로 ??개 더 흡수하면 오크 재규어의 고유한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꽤 많이 주네. 덜 성장했다고 한들 오크 재규어라 이건가?’
흑색늑대, 세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우연하게 발견한 마나석의 활용방법이었다. 계기는 어이없을 정도로 우연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일 전. 세진은 동굴에 있는 TV를 통해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 다큐멘터리는 식탐의 트롤이나 투헤드 오우거같은, 일명 ‘포식자 몬스터’들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다른 몬스터들을 섭취함으로써 강해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막바지에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놈들의 특이한 소화기관이 다른 몬스터의 마나석을 흡수한다’, 는 것이었다.
그에 세진은 괜히 호기심이 동했고, 그는 팔기 위해 동굴에 놔둔 최하급 마나석을 한번 집어삼켰다.
헌데, 그와 동시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조건 완료: 마나석 섭취]
▶패시브스킬 ‘성장형 몬스터’를 습득하셨습니다. [숙련도:F등급]
- 몬스터의 마나석을 접촉함으로써 몬스터 능력의 아주 일부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더욱 많은 능력의 흡수가 가능합니다.
이건 마치 잭팟을 터트린 기분이었다. 세진은 그 즉시 동굴에 놔둔 10여개의 마나석을 모두 집어삼켰다. 각 능력치는 6정도 올랐으나, 가장 중요한 기력은 0.6 증가한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다. 기력을 올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으니.
그 이후로는 정말 사냥에 열중했다. 하루에 최소 7~8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마나석을 흡수했다.
몬스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능력치가 더 많이 올랐고, 어떤 능력치가 오르는지는 몬스터에 따라 달랐다. 몬스터의 특질에 따라 오크라면 근력을, 늑대라면 민첩력을, 고블린이라면 마나친화력과 마력을 중점으로 올려주었다.
그렇게 사냥에 열중하길 10일.
▶능력치
- [근력 49] [지구력 48] [민첩력 63][기력14]
- [마나친화력 9] [마력 9] [운 8] - [*흑색늑대: 근력과 지구력이 26만큼 상승하고, 민첩력이 40만큼 상승한다. 인간 형체를 취할 시 효과가 1/3배 적용된다.]
드디어, 세진은 오크 재규어까지 이렇듯 쉽게 잡아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물론 이 놈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재규어 생도’라 부를 만한 송사리지만.
‘이제 진화만 하면 되는데.’
세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늑대의 입은 푸르릉-하고 숨을 뱉었다.
그가 알고 있는 바로는 혹은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이 몬스터 필드에 살아가고 있는 늑대계열의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몬스터가 바로 이 흑색늑대다.
그러니까, 여기서 한번만 더 진화하면 라이칸스로프 혹은 웨어울프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웨어울프와 라이칸스로프의 차이점은 어느정도 명확하다.
웨어울프는 야수다. 그러나 라이칸스로프는 뱀파이어, 인간, 수인, 엘프처럼 ‘사람’이다.
웨어울프는 그 능력으로 인해 ‘인간’이 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몬스터다.
라이칸스로프는 그 능력으로 인해 ‘늑대인간’이 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사람이다.
어쩌면 세진은 라이칸스로프보다 웨어울프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의 특성은 종족 자체가 ‘몬스터’로 변하는 것이니.
하지만 웨어울프는 라이칸스로프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하다. 라이칸스로프는 전설로 남았으나, 웨어울프는 그저 희귀한 몬스터 수준으로 남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이 되었든, 세진은 상관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시간제약 없이 하루를 온전이 인간으로 있을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 만으로 행복할 터였다.
*
타닥타닥- 마치 강아지가 돌바닥을 걷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세진은 동굴로 돌아왔다.
인간폼을 취한 그는 초소형 TV를 꺼내, 잘 보이는 곳에다 놓고 돌침대에 누웠다.
요즈음의 유일한 여가 생활이었다. 사냥을 마치고, 온 몸이 나른하고 쑤시는 상태에서 TV를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
이것은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인간다운’ 취미였기에, 그는 아무리 재미없는 프로그램만 나오더라도 자기 직전까지는 TV를 봤다.
-오늘 오후 대통령······
이런 건 재미 없으니 넘긴다.
-하······ 개벽 기사단에 인재가 이렇게 없나? 밥 짓는 것도 제대로 못해?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건 익숙치 않아서···
외딴 섬에 가서 하루 세끼를 직접 해먹는 프로그램. 전혀 40대 중반으로는 보이지 않는, 냉미남으로 유명한 톱스타 ‘이선재’가 ‘김시열’이라는 중급기사를 타박하고 있었다.
-근데 요즘 기사단은 뭐하냐? 근 5년간 몬스터가 도심습격 하는 일은 없지 않았냐?
-예, 그렇죠. 저희는 그.. 균열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래? 근데 너는 여기 나온 거 보니까 정말 할 일 없었나보다야.
멍청한 표정으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얼타는 김시열과, 계속해서 쿠사리를 넣는 이선재의 조화는 꽤 볼만 했다. 깨알웃음이 터지는 부분도 많았고.
‘······나도 TV에 나올 수 있을까?’
그렇게 웃으며 TV를 보던 세진은 문득, 이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고아로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왔던 21년의 생애, 아무리 젠장맞다 한들 ‘힘’을 얻게 되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그런 생각.
요즈음 기사나 사냥꾼은 TV 연예와 그다지 간극이 멀지 않다. 애초에 사냥꾼, 기사만 출현하는 프로도 있을 정도라, 몬스터만 잘 때려잡아서 기사는 중급, 사냥꾼은 상급이 되면 충분히 유명해질 수 있다.
‘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직시한 세진은 고개를 거세게 휘저으며 이뤄질 리 없는 환상을 털어냈다. 그리곤 곧바로 채널을 돌렸다.
-오늘 오후 3시. 강북구 쪽 균열에서 몬스터, ‘웨어울프’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크르렁!”
그리고 그 뉴스를 들은 즉시, 세진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전설로 남은 ‘라이칸스로프’와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웨어울프는 근 30년간 한 번도 출몰하지 않았던 희귀한 몬스터인데요. 이 웨어울프가 나타난 강북구의 균열을 정리한 칠흑기사단에서는 웨어울프의 사체로는 장비를 만들고, 마나석은 경매에 붙일거라 말했습니다.
“그르르렁!”
마나석,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진은 홀로그램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뛰쳐나왔다.
-이 ‘웨어울프의 마나석’을 포함한 균열에서 나온 전리품들의 경매는 다음 주 화요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세빛섬에 위치한 ‘현월 경매장’에서 개시 될 예정입니다. 웨어울프의 마나석은 비록 중상급이지만, 그 희귀함을 탐내는 수집가들이 많아 최소 20억에서 최대 40억 수준의 가격으로 낙찰될 거라 예상······
“안돼! 뭐가 그렇게 비싸!”
세진은 순간 너무 흥분해 저도 모르게 인간폼으로 변해 소리쳤다.
돈! 돈!
정말 순식간에, 그 어느때보다 돈이 필요해졌다.
물론 저 마나석을 흡수한다고 해도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 그것 만으로도, 지금 사무치도록 절박한 세진에게는 전재산을 걸 가치가 있었다.
“돈!”
그는 크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톱까지 깨물며 초조하게 동굴 안을 배회하길 10분.
머리속에는 계속해서 앵커의 목소리가 앵앵 맴돌았다.
최소 20억에서 최대 40억 수준으로 낙찰될 거라 예상······
최소 20억에서 최대 40억 수준으로 낙찰될 거라 예상······
‘돈이 부족해.’
세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다, 문득 초소형 TV의 연락기능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통화목록에는 오직 한 사람, ‘하젤린’의 전화번호.
고작 두 번 본 사이다. 게다가 빌려야 하는 최소 금액은 20억.
도저히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화를 해서는 안됐다.
그러나 그의 벌개진 눈과 절박한 심경속에, 이성 따위는 이미 폭사한 지 오래다.
뚜우- 뚜우-
수화음이 울릴수록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웨어울프의 마나석. 30여년동안 한번도 출몰하지 않았던 희귀한 몬스터. 놓치면 두번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네, 요선 알케미하우스의 책임자······
“하젤린 님! 저 김세진입니다!”
다짜고짜 이름부터 부르는 세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하젤린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 예 김세진 연금술사님. 무슨일이세요?”
“저, 정말 죄송하지만. 단도진입적으로 하나만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예에? 갑자기 무슨··· 아, 네. 가능하죠. 연금술사님의 부탁이라면.
그러나 하젤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별 거 아닐 거라 생각했겠지.
아니, 그녀는 오히려 별 게 맞더라도, 세진에게 빚을 지우면 앞으로의 관계 형성에 더욱 좋으니 괜찮다, 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돈 좀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열심히 일해서 포션으로 꼭, 꼭 갚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았다.
그는 하젤린으로부터 엄청난 빚을 지기를 간절히 원했다.
-······네?
얼빠진 소리 한 토막이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