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영물, 신령스러운 늑대 (3)
-뭐야! 찌, 찍었냐? 어! 찍었어 저거?!
스태프들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보셨습니까? 늑대의 주변에 이상한 도깨비불 같은 것이, 마치 늑대가 마나를 다루는 듯······ 어?
리포터가 카메라범위 밖에서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늑대는 몸을 돌려 산등성이를 훌쩍훌쩍 내려갔다. 카메라가 바삐 쫓아가보지만, 그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흐음······.”
하젤린은 핸드폰 위로 투사되는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영물, 신령스러운 짐승. 사람은 평생을 살며 한 번 볼까 말까 한다는 불가사의한 존재.
그녀도 25세때 ‘현무’라는 영물을 한번 봤었다. 크기는 컸지만, 천성이 나른하여 움직이기를 싫어했었지. 원래라면 동중국해에서 하루에 한 번 발장구를 치며 평생을 게으르게 살았어야 할 놈은, 중동 쪽 갑부의 아들이 죽을병에 걸린 탓에 살해당했다.
마나 폭주. 어떤 포션으로도 고칠 수 없어 평생을 괴로워하며 죽어야 하는 최악의 마나질환의 완치를 위해, 각기 다른 세계에서 총합 400여년을 살아왔다는 세월의 거북이는 한낱 약재가 되어 스러졌다.
똑똑-
잠시 과거에 빠져있던 하젤린은 노크소리에 현재로 돌아와 시계를 슬쩍 확인했다. 11시 50분. 겨우겨우 맞닿은 연락을 통해 잡은 그때 그 연금술사와의 약속시간이다.
“들어오세요.”
부드럽게 열리는 문 사이로 들어오는 인물은 로브를 쓴 남자였다. 하젤린은 환한 미소로 그를 응대했다.
“오셨어요?”
“예. 안녕하세요.”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서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
하젤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히 뭔가가 변했는데...... 코를 킁킁대던 하젤린은 곧 그 무언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향수 뿌리셨나봐요······?”
세진에게서 퍼져나오는 은은하니 좋은 냄새가 그녀의 코끝에 맴돌았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않은, 장려하게 가라앉은 내음.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서 그 향기를 음미했으나,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흐흠. 좋네요.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어디서 사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하젤린은 원체 후각이 예민해, 향수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었다. 그런 그녀는 이 좋은 향을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이런 향수는 장만해서 집에 놔둬야만 성에 찼다.
“안 뿌렸습니다. 그냥 체취에요.”
그러나 세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하젤린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분명 처음 만남때에는 이런 향기가 없었다. 그때는 무취였는데. 어디서 씨나락도 안 먹힐 거짓말을······
“그렇군요~ 체취가 참······ 좋으시네요.”
그러나 하젤린은 자본주의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갑을관계는 확실하니,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었다.
“예, 감사합니다.”
세진이 떨떠름하게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하젤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대충 짐작이 된다. 허언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이건 세진도 어쩔 수 없었다. 늑대의 향기라는 패시브는 활성 비활성화가 안되는 스킬이니.
“하핫, 그럼 서론은 이쯤 해도 될까요?”
김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젤린이 서랍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평범한 A4용지였다.
“뭐죠?”
“어제 통화할 때 말했던 거에요.”
하젤린은 그렇게 말하며 펜을 건넸다. 참고로 세진은 바로 어제 팔찌형 TV와 집전화를 연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원하시는 약재들, 다 적어주세요. 저희가 모두 구해드릴게요. 뭐 사람의 심장이나 검치대호의 검치 이런 거 말고는 한 달이면 다 가능해요. 원래 약재를 유통하는 것도 알케미하우스의 역할이거든요. 아, 부담은 안 가지셔도 돼요. 공짜가 아니라 돈 주고 사셔야해요. 근데 저희는 원가로 드릴 수 있죠. 시중보다는 거의 절반 가까이 싼 가격일 거에요.”
“아 예. 감사합니다.”
세진은 펜을 잡고 뭘 쓸지 고민하다가, 문득 하젤린의 책상 위에 놓여진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보름달을 등지고 있는 흑색늑대의 모습, 방송국에게 일부러 서비스 겸 찍혀준 장면이었다.
그때는 괜히 기분이 센치해지는 밤이었기에 홧김에 벌인 일이었는데······ 한낮에 직접 보니 얼굴이 다 화끈해져 왔다.
“아, 영물은 안됩니다.”
그러나 그런 눈빛을 하젤린은 잘못 이해했는지, 단호한 표정으로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영물사냥은 도의적이든 법률적이든 금지에요. 영물은 거주하는 지역과 연관이 깊을지도 모른다구요? 만약 저 늑대를 잡아버리면 산사태가 나서 대재앙이 펼쳐질지도 몰라요.”
과거 현무를 사냥할 때도 그랬다. 현무가 사망하자, 구심점을 잃은 바닷속의 마나가 갑자기 폭주하여 동중국해에 거대한 쓰나미가 몰아쳤었다.
“그럼요. 절대 아닙니다. 저렇게 멋진 늑대를 죽여선 안되죠.”
그가 웃음을 삼키며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김세진이 저 늑대라는 사실을 당연히 모르는 하젤린은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 뭐. 멋지긴 하죠. 괜히 듬직해보이는 자태도 그렇고, 사람을 도와준다는 매력적인 면도 그렇고. 근데 저는 뭣보다 보름달을 닮은 눈동자가 가장 마음에 들더라고요. 요즘 SNS에서 여자들이 난리부릴만 해요. 사실, 저도 프로필북에 공유해놨어요. 아, 혹시 프로필북 하세요?“
“흐흡··· 아, 아뇨. 저 그런 건 안합니다.”
히힛 웃으며 말하는 하젤린의 모습에, 결국 그의 입술 사이로 기묘한 미소가 세어 나왔다. 하젤린이 의문가득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지만 세진은 아무것도 아닌 척 종이에 글자를 적어갔다.
‘고블린의 선의’는 검치가 아니면 불가능하니, 다른 포션을 만들기 위한 약재를 적었다. 이름도 생각해 두었다. 신체의 위력을 강화시켜주는 건 ‘고블린의 분노’ 등등······
“이렇게만 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진이 약재가 적혀진 종이를 내밀자, 하젤린은 안보는 척 하면서도 한 글자 씩 샅샅이 살펴봤다. 약재 자체는 기존의 연금술사와 다른 점 없이 평범하다.
“네. 그럼 이대로 구해서,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에 만드는 포션도 저희와 함께······?”
“예. 그러도록 하죠.”
김세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인간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두시간 뿐이니,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못한다.
“와, 정말요? 속전속결이시네요. 보통 다른 연금술사들은 미적거리기 마련인데 연금술사님은······”
“김세진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하젤린의 눈을 바라보았다. 보석같은 눈동자는 갑작스런 자기소개에 놀라고 있었다.
“종족은 인간이죠.”
세진이 그녀에게 손을 건넸다. 하젤린은 잠시 그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붙잡았다.
“네, 김세진 연금술사님. 저희 '요선 알케미하우스'를 선택하신 것,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악수를 마친 세진과 하젤린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인데 식사는 하셨나요?”
“네. 했습니다.”
“그럼 어디 같이 가셔서······네?”
김세진의 말에, 하젤린은 잘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엘프인 그녀는 이런 종류의 거절이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의 거절은······ 단언컨데 평생 처음이었다. 그것이 완곡한 거절이라고 하더라도.
“점심은 이미 먹었습니다.”
“이, 이제 12시인데요?”
“제가 좀 빨리 먹는 편이라서요. 죄송합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지만, 하젤린은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눈만 끔뻑끔뻑거리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뭐, 예. 뭐······ 그렇죠. 그럴수도 있지, 그럴수도 있어······.”
“예. 나중에 시간되면 같이 먹어요. 그럼 저는 이만.”
그의 마지막 말이 결정타였다.
하젤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도저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중에 시간되면 같이 먹어요’, 자신은 주로 이런 말을 하는 쪽이었다. 듣는 쪽이 아니라. 도저히 적응이 안 될, 달갑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가는 세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의자로 무너져내렸다.
“······”
그렇게 하젤린은 거의 10분동안이나 영혼이 빠져나간 채 있었다.
킁킁-
그러다 문득, 그녀는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의 냄새를 맡았다.
냄새가 사라져 있었다. 왠지 아쉬웠다.
킁킁-
그녀는 마치 자신이 수인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콧속에 모호하게 남아 아른거리는, 이제는 사라진 냄새가 그리워졌다. 고작 10분전에 떠났을 뿐인데도.
“그냥 물어 볼 걸······.”
냄새 때문에 사람이 그리워질 정도면, 참 좋은 향수다.
이 정도면 무안을 줘서라도 어떤 향수인지 물어봤어야 했다. 그녀는 나지막한 회한을 읊조렸다.
킁킁-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더 코를 킁킁대던 하젤린은 어느 순간 인터넷에 ‘남자 향수’를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 * *
시내로 나온 세진은 그저 거닐기만해도 영물늑대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엿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 기사들, 마법사들. 강원도의 시민들은 저마다 늑대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씩은 했다. 영물늑대의 이야기는 제멋대로 살점이 붙어가고 있었다.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나마 여유로워진 세진은 정식적인 절차를 이용하여 몬스터필드로 걸어 들어가, 입구에 있는 대합실에 도착했다. 기사와 사냥꾼이 사냥에 앞서, 혹은 사냥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
원래부터 조용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이 대합실은 영물에 관한 내용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까지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까, 고놈의 울음이 앞에는 위험한 몬스터가 있으니 가지 말라~ 이런 뜻이었다니까? 괜히 그때 울음소리가 싸해서 돌아간 게 천만 다행이었어.”
“그렇다면 사냥꾼님도 이 영물늑대를 보신건가요?”
“······아? 아~ 보진 못했지. 근데 내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다니까! 아우- 하고 우는 거. 자네도 알잖아 요 몬스터필드에 사는 늑대들은 안 우는 거. 긍께, 내가 이거 조금 깊게 들어간 거 아닌가~? 싶을 때 딱 울어제끼더라고. 난 놀라서 퍼뜩 튀어나왔지.”
“그럼, 영물늑대가 그 이전에도 사람에게 도움을 줬다는 말이군요.
“아 고러치. 그 놈이 여간 영특한 게 아니라니까? 어! 저 있는 저 남자가 그때 그 갈색늑대한테 도움을 받았던 사냥꾼인데, 어이 태조 양반! 일로 와봐! 여기 기자님이······”
그 모든 대화를 들으며 세진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몇몇 사람들의 허풍과 거짓말이 합쳐져서, 이 소문의 열기는 조금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