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4화 (14/174)

05. 영물, 신령스러운 늑대 (2)

처음에는 그저 위험을 알려주기 위해 울었다. 세 명의 사냥꾼을 향해 오크 재규어가 다가가고 있었으니.

그러나, 아무래도 이 울음에는 예상치 못한 능력이 있었던 듯 했다.

▶[조건완료 : 늑대의 울음으로 최소 한 명 이상의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음] 패시브스킬 ‘하울링’을 습득.

- 늑대폼일 때, 울부짖음으로써 다양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예) 두려움, 공포, 신비 등등······

‘이게 무슨···’

자신의 울음을 들은 사냥꾼들은 도망은 커녕, 오히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그런 그들 쪽으로 재규어가 천천히 다가갔다.

얼마 지나지않아 사냥꾼들과 오크 재규어가 부닥쳤다. 순간 사냥꾼들은 패닉태에 빠졌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총기를 격발했다.

타앙-

격발음을 들으며, 세진은 그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탓이 얼마정도는 있었기에,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

다행히 세진은 늦지 않을 수 있었다. 사위에 회오리가 휘몰아칠 정도의 쾌속의 질주, 늑대는 아가리를 벌려 오크의 오른팔을 집어삼켰다.

콱-

하지만 통쾌하지가 않고, 막혔다는 느낌이 선연했다. 질기고 단단한 재규어의 피부는 잿빛늑대의 대단한 치악력으로도 무리였다. 오크의 무심한 눈빛이 이쪽으로 향하자, 세진은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

오크가 포효하며 오른팔을 크게 휘둘러 세진을 떼어냈다. 내팽개쳐진 세진은 재빨리 발을 굴러 뒤로 물러섰지만, 재규어의 속력은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과연 ‘재규어’라는 이름답다고나 할까. 놈은 잿빛늑대에도 꿀리지 않은 쾌속을 자랑했다.

몇 번 발을 구른다 싶더니, 어느새 세진의 지척에 도달해 무기를 내리박는다.

쿵!

세진은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피했다.

“그어어어어─!”

그 날렵한 움직임에 재규어는 격노한 듯, 마구잡이로 둔기를 휘둘렀다. 정확도는 형편없었으나 파괴력만큼은 흉악하기 그지 없었다. 세진은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그 패악질을 회피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던 노면은 밭이랑처럼 파헤쳐지고, 흙과 돌과 잡초가 서로 뒤섞인 채 파편이 되어 하늘로 비산했다.

“······”

“······”

“······”

그리고 세 사냥꾼은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들은 그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하급늑대인 잿빛늑대가 중하급중에서도 강한 축인 오크 재규어와 치열하게 싸우는 광경은, 충분히 꿈에서나 볼 법한 비현실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전투를 바라보던 중에, 별안간 여성이 총구를 그쪽으로 겨눴다.

“뭐, 뭐하는 거야?”

그에 남자가 질겁하며 그녀를 말렸다. 다른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차리리 저 둘을 자극하기보다 지금 틈을 타 도망가는게 더 옳은 방법처럼 보였다.

“오크 재규어는 집착이 심한 놈이야. 냄새도 잘 맡고 해서, 한번 본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지. 저 늑대가 우리가 떠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면 몰라도, 지금은 늑대를 도우는 게 옳아.”

만약 재규어를 해치워도 저 늑대가 우리를 잡아먹기라도 하면······! 그러나 남자는 말을 깊게 삼켰다. 애당초 저 늑대가 없었다면 자신들은 이미 죽었을테고, 늑대가 재규어를 이기지 못한다면 마찬가지로 죽은 목숨이다.

“눈과 미간, 입, 겨드랑이 위주로 노려.”

스물 세 살에 중하급과 중급 딱지를 달았다는 건, 그 나름대로 이 바닥에 구를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뜻이었다. 세 사람은 즉시 탄환을 장전하고 늑대와 오크가 뒤섞여있는 쪽으로 겨냥했다. 무식하게 움직이는 오크는 빈틈을 많이 드러냈지만, 모두 쓸모없는 빈틈이었다. 살갗이 연하거나 아예 없는 부분. 사냥군들은 그 최대의 급소를 노려야만 했다.

콰아아앙-!

오크가 무기를 휘둘렀으나, 역시 불발이었다. 이번에도 애꿏은 땅바닥을 가격한 오크는 눈을 번뜩이며 미꾸라지같은 늑대를 찾았다.

그렇게 오크가 잠시 움직임을 멈춘 순간, 뾰족한 원통형의 작은 물체가 바람을 가르며 그의 눈으로 쇄도했다.

“크아아아아아─!”

마나탄. 마나가 고밀도로 압축된 탄환은 오크의 망막에 맞닿은 그 즉시 폭발했고, 오크는 피를 흘리며 살짝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 잠시동안의 정지는 오크를 완벽한 표적지로 만들었다.

탕탕탕탕!

하나같이 급소를 노리고 발사되는 마나탄들의 향연, 그러나 오크는 손을 들어올려 모두 쉽게 막아냈다.

한쪽 눈을 잃은 놈의 분노는 이제 늑대가 아닌 사냥꾼들을 향해 타올랐다. 당장이라도 발을 굴러 그들에게 쇄도할 것 같은 뜨거운 격노였다.

“온다! 흩어져!”

마침내 놈이 늑대를 잠시 뒷전으로 두고 사냥꾼에게로 다리를 움직였을 때, 세진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세진은 역전의 전사를 사용했다.

그 즉시 늑대의 근육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온 몸에 활기가 들끓었다. 달랠 길 없이 타오르는 맹렬한 투쟁심을, 놈의 뒷목을 물어 뜯음으로써 해소하자.

일신의 격 자체가 달라진 잿빛늑대가 마치 성난 노도처럼 오크의 뒤를 습격했다.

단 두 발자국의 도움닫기면 충분하다. 발바닥에 선풍이 고이고, 그것을 추진력삼아 놈의 뒷목으로 질주한다······.

콰직-

그렇게 세진은 이빨로 살갗을 꿰뚫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치명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가리를 뒤흔듦으로써 그 상처를 최대한 덧나게 했다.

“크아아─”

오크가 괴로워하며 늑대를 떼어내려했다. 하지만 한층 더 강해진 치악력은 그 발버둥을 애써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늑대는 오크의 모가지를 꽉 깨문 채 사냥꾼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제는 너네 차례다, 라고.

“후우, 후우······.”

여자 사냥꾼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겨냥했다. 목표는 오크의 왼쪽 눈.

오크는 심하게 발버둥쳤지만, 여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권총을 발사했다.

철갑마나탄이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오크를 향해 쏘아졌다. 그렇다, 선명했다. 이건 총알의 속도가 아니다. 마치 바람에 꽃잎이 나풀거리듯, 이 마나탄은 아주 서서히 오크에게로 향했다.

정확한 적중을 위해 고급권총에 내재되어 있는 기능이었다.

속력에 의한 피해는 경감되겠지만, 그래도 철갑마나탄은 내부에서 다시 한번 폭발하기에 명중 자체에 의의를 두는 마나탄이다여자는 마나를 부려 느릿느릿한 철갑탄의 경로와 궤적을 실시간으로 조종했다. 발버둥치는 오크에 따라 이리저리 수정되던 궤적은 마침내, 놈의 눈알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미세한 폭발. 오크의 눈알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휴우.”

적중이다. 사냥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크는 두 눈을 잃었지만, 늑대는 그후로도 몇 초 동안 오크의 뒷목에 붙어있다가 떨어졌다.

“그어─ 그으─”

늑대에게 씹어먹힌 뒷목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덜렁거렸고, 마나탄에 적중된 두 눈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세어나왔다. 오크는 기묘한 신음을 내며 연신 두 팔을 휘둘렀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

놈은 풀숲에 털썩 누운 채로, 그 움직임을 멎었다.

“하······”

전투가 모두 끝나자 세 사냥꾼은 다리에 힘이 풀려 모두 주저앉았다.

세진은 숨을 몰아 쉬며 입 속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얼마 안 있어 예의 알링창들이 떠올랐다.

「조건 완료: 협동사냥」

- 최소 1명 이상의 사람과 함께 협동해 사냥을 성공했습니다.

- 이제 잿빛늑대가 아닌 흑색늑대로 포밍이 가능합니다. 포밍능력치가 상향조정됩니다.

- 이제 인간형일때에도 ‘늑대의 향기’가 적용됩니다.

▶패시브스킬 ‘늑대의 향기’ [등급 : F]

- 흑색늑대의 진한 내음. 상대의 성별과 종족, 취향과 특질에 따라 다른 영향을 끼칩니다.

- 이 스킬은 인간형일때도 적용됩니다.

보고 또 봐도 좋은 알림이었다. 그러나 쾌재를 부르기에는 타이밍이 조금 좋지 않았다.

“······야, 야! 저거 봐!”

순간 여자사냥꾼이 호들갑을 떨며 세진을 가리켰다.

그는 자신의 진화과정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모른다. 다만 넋을 놓고 입을 헤 벌린 세 명의 사냥꾼들의 모습을 보아, 조금 신비하거나 괴이하다고 추정했을 뿐.

세진은 몸을 곧게 세운 채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장소를 신속히 벗어났다.

남은 것은, 꿈이라도 꾸는 양 여전히 멍한 세 명의 사냥꾼들.

“봤냐?”

“어.”

“막 빛나면서 털색깔이 변했지?”

“······어.”

늑대의 몸이 신묘한 푸른색으로 물들더니, 회색이었던 털이 완전히 새까만 색으로 변했다. 꿈에서도 다시 못 볼 신기하고 진귀할 광경이었다.

* * * *

밤, 보름달이 커다랗게 떠있는 몬스터필드의 하급지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웬만해서는 이 몬스터필드에서 볼 수 없는 트럭과 안테나와 카메라와 마이크까지, 방송국 차량과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은 몇몇 구경꾼들의 시선과 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무언가를 열심히 취재하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세진이 조심스레 다가와 한 명의 기사에게 물었다. 그는 별안간 느껴지는 수 많은 사람들의 냄새에 깜짝 놀라 인간폼을 취하고서 달려왔다.

“취재를 한답디다. 거 요즘 퍼지는 소문 있잖아요. 영물이라나 뭐라나.. 말도 안되는 소리지. 근데 요즘 워낙 사람들이 감성적인 것에 메말라 있다 보니······쯧쯧. ”

상주기사는 아닌 밤중에 불려 나온 것이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찼다.

요즈음 인터넷은 물론 신문까지 달군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잿빛늑대에서 흑색늑대로 진화했다는 ‘영물’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세명의 사냥꾼이 사냥꾼카페에 생생한 목격담과 오크 재규어의 사체를 찍어 올림으로써 그 생명을 얻게되었다.

이 사냥꾼들은 잿빛늑대가 자신들을 도와 오크 재규어를 처치하고 나서, 갑자기 온 몸이 푸르게 물들더니 털색깔이 모두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이 늑대를 두고 ‘성장형 몬스터’가 아닐까 하고 추측을 했지만, 그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자 전문가를 포함한 대부분은 그 행동의 특이함을 두고 ‘영물’이라고 판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몬스터는 인간을 잡아먹으려 들지만, 이 늑대는 인간을 도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늑대의 털이 잿빛에서 흑색으로 변화했다는 말에, 과거 김태조라는 사냥꾼을 구해줬던 갈색늑대와 이 늑대가 동일늑대가 아니냐는 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늑대가 나타나면 어떻게 한대요?”

세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냥 카메라로 찍는거지 뭘.”

“아.. 사냥은 안한답니까?”

“푸훗. 어이 사냥꾼 양반. 직업정신은 알겠는데, 그러면 우리 다 여론한테 뭇매 맞고 뒈져.”

“아하.”

“근데,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방송국 놈들도 참 멍청하지 않습디까? 늑대가 얼마나 예민한 몬스터인데 이렇게 단체로 부산스럽게······?”

상주기사가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주변에서 자신과 얘기를 나누던 사냥꾼이 없어졌다.

“어디갔어?

그러나 그는 이내 신경을 끄고서 다시금 주변 경호에 집중했다.

5분이 흐르고, 10분이 흘렀다.

애초에 별 기대 없이 단지 영물이 출현했다는 대략적인 위치만 보도하려 했기에, 방송국 관계자들은 슬슬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우──!

늑대의 울음소리가 드높이 울려퍼졌다. 카메라를 집어넣으려던 카메라맨과 차에 올라타려단 여기자까지, 모두 깜짝 놀라 그 소리가 들려온 방면을 바라보았다.

저 산봉우리 위에, 늑대 한 마리가 보름달을 등진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늑대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고고한 자태, 위엄넘치는 늠름한 크기.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는 흑색 털과, 선명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감정을 흔드는 신비한 하울링.

“······”

늑대는 호랑이가 아니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이렇게 느꼈다. 도도하게 이쪽을 굽어보는 저 늑대야말로 ‘산군’이다······.

“······야, 야 뭐해! 찌, 찍어!”

멍하니 있던 스태프들이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메라를 이고서, 저 고고한 늑대를 최대한 잘 잡아낼 수 있는 앵글을 찾아 헤맸다.

“허······”

그리고 방금 전까지 냉소를 표하던 상주기사는 아예 넋이 나간 채로 늑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물, 그딴 건 존재치 않는다 코웃음 쳤었다. 하지만 그는 감히 저 늑대를 몬스터라고 부를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신령스러움이 저 늑대를 감싸고 있었으니.

“!”

"와앗?!"

"뭐, 뭐야!"

순간 일대에 탄성이 일었다. 단지 모습을 드러내기만 한 것으로도 모자라, 늑대의 주변에 푸른 마나 덩어리가 마치 도깨비불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찌찌찌, 찍었냐? 어! 찍었어 저거?!”

찍기만 하면 특종이다.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그에 카메라맨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순간.

“뭐야 어디갔어!”

마치 방금 일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늑대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