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3화 (13/174)

05. 영물, 신령스러운 늑대 (1)

“근데 정말 시리즈포션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보니까 귀재님은 공방을 두지 않고 혼자서 하시는 것 같던데······ 와, 근데 어떻게 혼자서 그 포션을 다 만드셨지? 진짜 이런거 보면, 재능이란게 확실히 있긴 있는 것 같아요. ”

밀려들어오는 연락들은 잠시 접어두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 직원의 감탄섞인 말에, 하젤린이 한숨을 내쉬며 그를 흘겨보았다.

“..어휴. 너까지 귀재라고 하면 어떻게하니? 그냥 기사단이랑 메스컴쪽이 제발 일 좀 열심히 해주세요, 라는 의미로 붙인 허울뿐인 찬사인데. 그리고 뭐, 재능? 아서라 아서. 귀재, 불세출, 수재, 천재, 그딴 건 이쪽 생리랑 도저히 안 어울리고, 어울려서도 안돼.”

“에이.. 그래도 이번에는 커뮤니티사이트에서 먼저 나왔는데요. 연금술카페도 난리가 났어요 지금. 혹시 만날 수는 없냐······.”

실적은 곧 보너스로 직결되기에, 잔뜩 신이 난 채 말을 이어가던 직원은 문득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에 말을 멈췄다. 저도 모르게 역린을 건드려버렸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하젤린의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 직원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갔다.

“너, 아직도 그런 거 보는거니? 내가 그런 가십사이트는 들어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익명이랍시고, 발정난 년놈들이 이상한 악성루머만 가득 뿌려놓는 곳이 거긴데.”

“죄송합니다.”

자신의 책임자는 변명이나 핑계를 죽기보다 싫어하기에, 직원은 그저 정직한 사과를 말했다.

“후···. 죄송할 것 까지는 없고, 가서 일이나 해. 그 ‘귀재’님의 의중이나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알아서 잘 물어 볼테니까.”

“네!”

직원이 떠나가고, 주변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하젤린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방금 직원을 대하던 차가운 태도와는 다소 판이한 몹시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뚜─ 뚜─

몇번의 수화음이 울렸지만, 마지막에 그녀를 기다린 문장은 '고객님은 현재 전화기가······.'

"집 전화밖에 없다면서 왜 집 전화를 안받아?"

하젤린이 불만스럽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벌써 10번째인데, 어떻게 된게 단 한번도 받질 않는다.

-삐- 소리가 나면 녹음해주세요.

"저······ 연금술사님? 저 하젤린이에요. 전화번호는 저만 알고있으니 안심하셔도 돼요. 일단 왜 전화드렸느냐면, 혹시 일과 관련해서 나중에 밥이나 한끼 할 수 있나 해서······."

* * *

연금술로 인해 금전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포션 가격만 개당 최고상한가인 5억. 거기다 그 중 두개는 선거래로 팔아 포션 가격과는 별도로 각각 7억, 6억을 받는다.

세금과 알케미하우스에 줄 수수료를 다 제하더라도 수중에 들어올 금액은 15억 남짓. 평생 꿈도 꾸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액수다. 그러나, 그 금액이 한꺼번에 나가게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강원도, 몬스터필드와 최대한 가까이 있는 단독주택의 가격은 최소 15억을 가볍게 호가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물론 어이가 없었지만 그 이유를 듣고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마당이 있는 60평 단독주택의 지하에는 자가발전장치가 있는 방공호가 있고, 몬스터 출몰 시 우선보호를 약속하는 기사단 보험이 들어있으며, 중급 이하의 몬스터에 의해서는 파손되지 않을 단단한 마법설계가 되어있다. 그쯤 되니 오히려 15억이 값싸게 느껴질 정도였다.

15억을 단번에 쓰기에는 조금 아까웠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로는 아파트는 왠지 불안하고, 이보다 더 먼 지역에 자리를 잡는 것은 시간이 부족했기에, 세진은 포션을 판 대금이 들어오는 대로 가장 먼저 집을 구매하리라 마음먹고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근데 도대체 진화는 언제하냐.’

하지만 돈이 생겼더라도 걱정이나 불안은 그 정도가 덜해질 뿐,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점. ‘자신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하는 점 때문이었다.

고작 하루에 100분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는 도저히 인간이라 말할 수 없다······.

‘갈색에서 잿빛으로 진화한 조건은 분명 최소한의 명성이었지.’

100명 이상에게 알려졌다는 알림과 함께 진화를 했다. 그러니 혹시라도 그것과 관련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잿빛늑대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후···.”

근데 그게 쉽나, 보자마자 사냥하려 들텐데. 김세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몸으로 움직여 직접 부딪혀 봐야 적어도 그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을 터.

‘일단 기사 말고, 사냥꾼들한테만 모습을 보여줘보자.’

* * * * *

“가능할까?”

“괜찮아 괜찮아~ 뭘 그렇게 걱정하는데. 어차피 몸둥아리만 조금 큰 하급일 거라고. 다른 사냥꾼들이 호들갑을 떠는거지.”

중급, 중하급, 중하급. 총 세 명의 사냥꾼이 모인 임시파티는 여성 하나, 남성 둘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성은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러나 남자 둘은 왠지 모르게 축 처져있었다. 끌려오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리고 사냥꾼 셋이 모이면, 어떤 몬스터라도 잡을 수 있다! 이게 니들이 하던 말 아니었냐? 그래서 의남매 맺었잖아 우리.”

“뭔 벌써 15년이나 된 얘기를 하고있냐. 그리고 그때는 사냥꾼이 아니라 기사였지.”

“어쨌든간에 임마! 왜 그렇게 풀이 죽어있냐고. 호랑이만한 늑대면 그 사체값어치만 해도 엄청 비쌀거고, 심장에 중급 마나석이라도 들어있으면······ 알잖아?”

여자는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며 낭랑하게 떠들었지만, 두 남자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개일 기미가 없었다.

요 근래 하급지대에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유니크 몬스터가 이 일대를 배회한다는 괴소문, 바로 '유니크 잿빛늑대'가 그것이다.

하급지대에서 호랑이만한 잿빛늑대를 봤다는 사냥꾼만해도 벌써 수십을 넘어가더니, 어느새 그 늑대는 '유니크 잿빛늑대'라는 별호를 얻어 사냥꾼 카페는 아예 온통 그 이야기로 난리 법석이되었다. 그 열기가 심상치 않아 곧 있으면 방송국의 취재까지 들어올 분위기.

그러나 안전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사냥꾼이라면 피해 마땅할 그 괴소문을, 이 여자는 오히려 들쑤시자고 두 명의 남자를 끌어들였다.

“괜찮아 괜찮아~”

유니크 몬스터, 혹은 돌연변이 몬스터. 평범한 몬스터가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변화하거나 비정상적인 성장을 하여, 동급간의 다른 몬스터보다 훨씬 강해진 몬스터를 뜻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검치대호, 맨티코어─사람의 머리에 사자의 몸, 박쥐의 날개가 달린 괴수─, 드래곤터틀 등등이 있다.

모두 상급기사 파티도 쉬이 못 잡는 특등급 몬스터들이고, 그들은 강원도의 산간지방에서도 가장 높고 구석진 벽지에서 홀로 고고한 투쟁의 삶을 이어간다.

헌데 그런 유니크 몬스터가 하급지대에서 맴돌다니? 규격외의 몬스터를 토벌하는 역할을 맡은 상주기사도 그 소문을 듣고서 너무 터무니없다 코웃음 칠 정도로 말이 안되는 괴소문일 뿐이다······. 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두 남자는 아니었다. 호랑이와 크기가 비슷한 잿빛늑대. 그 형형하고 도도한 두 눈동자를 분명히 봤다. 물론 직접은 아니고 인터넷의 사냥꾼 카페에서.

보름달을 등진 채 사냥꾼을 응시하는 그 모습은, 공포보다는 아름다움을, 흉악함 보다는 고귀함을 느낄 정도로 대단했다.

“그래도 너도 봤잖아.

“보긴 했는데, 유니크 몬스터까지는 아니라니까? 유니크몬스터였으면 벌써 기사들이 출동했겠지. 그리고 놈이 그렇게 강했으면 목격자가 왜 이렇게 많겠어? 다 죽었겠지 벌써.”

여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니크 몬스터는 다른 몬스터와는 다르게 마법에 준하는 특수공격을 행사할 수 있고, 특별한 파동을 전달한다. 만약 그 파동이 느껴졌다면 상주기사들이 벌써부터 이 하급지대로 몰려와 순찰을 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늑대 목격자들의 말도 조금 이상했다.

그들의 말로는, 웅장한 자태의 늑대가 귀신처럼 등장하여 자신들이 떠날 때 까지 앞길을 막았다고 했다. 그 크기와 눈빛에 지레 겁먹고 소스라치게 달아났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일단 그 늑대가 분명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냥 조금 큰 늑대일 뿐이야. 그리고 예로부터 크기가 큰 몬스터는 심장의 마나석이 비대했지. 물론 그만큼 강하기야 하겠지만······ 중급 사냥꾼인 내가 괜히 이걸 가져 왔겠어?”

여자가 뒷주머니에서 권총을 하나 꺼냈다. KM-758이라는 이름이 붙은, 짐승형 몬스터에게 특히 효과가 좋은 철갑마나탄을 격발하는 고급 권총이다.

“어? 어디서 났어 그거?”

“중급인 이몸은 너네들이랑은 차원이 다르잖냐. 여기저기 파티 뛰면서 번 돈으로 구했지. 이거면, 늑대는 걸리는 순간 뒤지는거야.”

말보다 믿음직스러운 무기의 출현에, 남자들은 그제서야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었다.

-아우──!!

그러나 그 자신감을 얻기 무섭게 짙은 공포가 그들을 덮쳤다. 밤하늘 높이 울려퍼지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막 피어나려던 사내들의 용기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뭐, 뭐야?”

잿빛늑대는 울지 않는다. 비단 성대가 퇴행했기 뿐만이 아니라, 은닉을 통한 기습이야말로 그들이 하급지대에서 살아남은 이유이자 최고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부러 소리를 내어 사냥을 망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이 울음은 도대체 어떤 짐승의 울음인가·.

세 사람은, 자신만만해하던 여자마저도 몸을 덜덜 떨며 서로 들러붙었다.

-아우──!

다시 한번 도래한 공포는 그 전보다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결국 세 사냥꾼은 서로의 손을 잡고 살을 꼭 맞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저 단순한 늑대의 울음일 뿐인데, 온 몸이 저릴 정도로 덮쳐오는 공포의 해일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울음에 마력적인 효과가 있을거라는 추론은 감히 떠올릴 수 조차 없었다······.

“자자자, 장전 돼있으니까, 거거거,걱정안해도 돼!’

여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움켜쥐었다. 마찬가지로 떨던 남자들은 그러나 사냥꾼의 수칙을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는다. 몬스터를 두려워하는 순간 목숨은 없나니.

한 명은 소총, 한 명은 산탄총. 총기가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은 모두 무장을 완료했다.

푸스스스-

암흑이 짙게 가라앉은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울렸다.

팽팽히 조여오는 긴장에 두려움과 공포는 잠시 의식 저편으로 가라앉고, 그들은 냉정한 사냥꾼의 모습을 되찾는다.

세 사냥꾼은 손가락을 방아쇠에 두고, 총구를 그쪽으로 겨냥했다.

스스스-

10분처럼 느껴진 1분이 지나고, 마침내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냥꾼들은 그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존재에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으으······.”

초록색의 피부와 한 손에 든 조악한 철제무기, 무엇보다도 목에 멘 뼈목걸이가 그들의 말문을 막았다. 오크 전사? 아니다. 오크 전사는 지성이 부족해 전리품따위를 취하지 않는다.

저 앞에서 제 몸을 과시하며 맹렬한 눈빛을 보내는 놈은······ 오크 재규어. 오크전사보다 강인하고 투쟁적인 개체로, 피튀기는 싸움 그 자체를 즐기는 ‘중하급’ 몬스터다.

그래, 이 놈은 중하급이다. 하급지대에 있어서는 안 될.

“······급간 나누는 기계, 또 고장났나보네.”

재규어는 그 특성상 싸울만한 개체를 찾아 몬스터 필드를 배회하지만, 하급으로 내려오는 재규어는 매우 드물다. 하급지대와 중하급지대 사이에는 몬스터가 뒤섞이지 않게끔 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몬스터들의 행동을 유도하기만 할 뿐, 완벽한 물건이 아니라 이렇듯 가끔씩 사고가 나기도 한다.

“······미안해. 나 때문에. 늑대 잡으러 왔는데, 더 좆같은게 나와버렸네.”

“아직 안 죽었어. 그리고 말버릇 좀 고치라고 했지 내가? 어째 너는 평생······.”

-그어어어─!!

그들의 대화는 재규어의 고함에 끊겼다. 세 명은 서로 간에 눈빛을 보냈다. 두 명이 시간 벌면 한 명은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네가 살래? 아니. 그럼 너는? 나도 싫어.

과연 15년간 쌓아 올린 우정은 돈독했다. 셋은 모두 거부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합을 맞추기로 작정했다.

타앙-!

먼저 남자가 소총을 격발해 재규어의 목을 맞췄다. 그러나 재규어 단단한 표피는 하급전용으로 설계된 마나탄으로는 뚫을 수 없었다.

그 간지러운 공격에 재규어가 더욱 격노하며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산탄총을 든 남자 차례였다.

펑-!

방사된 마나탄은 오크의 전신에 골고루 맞았다. 그러나 역시, 효과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권총이 남았다. 그러나 여자는 알고는 있었다. 오크는 짐승이 아니다. 이 총은 그저 발악일 뿐이다······.

자신의 죽음보다, 괜히 친구들을 끌고왔다는 게 미안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그녀가 후회속에 방아쇠를 당긴 순간.

탕-!

오크의 움직임이 멈췄다.

“···?”

바로 지척에서 멈춘 오크의 모습에, 셋 모두 당황하여 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놈은 멈춘 것이 아니었다.

오크는 자신의 무기가 들려있는 오른팔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꾼들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어디선가 튀어오른 한 마리의 늑대가 오크의 팔을 씹어먹고 있었다.

잿빛 늑대였다.

그들이 그렇게 찾아다니던, 몸뚱이가 호랑이만한 잿빛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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